예수전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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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남양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10여년째 다니던 영등포의 민중교회와 멀어졌다.
그 교회의 전도사였다가 막 안수를 받고 부임한 젊은 여성 목사님은
성실한 척하는 나를 꽤 믿고 따랐는데 이사 후 두세 번 나갔을까,
너무 멀다는 핑계로  걸음을 딱 끊었다.
고맙게도 그는 지금도 메일로 지난주 설교말씀과 주보를 보내주고 있다.
(무슨 바쁜 일이 있었는지 오늘 아침 지난주 주보가 뒤늦게 도착했다.)

4월 마지막 수요일은 용산 참사 100일째 되는 날, 청년부와 함께 그곳을 찾았다고 한다.
경찰의 원천봉쇄로 쫓겨난 유족과 추모객들은 서울역에 모였고 
4개 종단 즉 불교, 가톨릭, 기독교, 원불교가 함께 추모 예식을 진행했는데
문정현 신부님이 마이크를 잡으셨단다.

“저는 얼마 전, 용산으로 이사했습니다.
이곳에서 이들과 함께 미사 드리고 이곳을 지킬 거예요.”

이 대목을 읽는데 가슴이 뜨끔했다.
참사 현장 가까이에는 간이조문소가 차려져 있고
봄꽃 화분들이 쭈르륵 놓여 있다는 것이다.
평택 대추리의 주민이었다가 용산의 주민을 자처하는 신부님도 신부님이지만
그 화분들은 언제 누가 가져다 놓았을까?
 
함께 하지 못하는 미안함을 그나마 가끔 몇 푼의 조의금이나 성금으로 때우고는
다른 이들에 비하면 좀 덜 이기적이고 양심적인 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제 발 저린 도둑처럼 은밀히 하는 나.
그런데 그런 나의 허위의식과 자기기만을 여지없이 깨뜨려주는 사람과 글을
만날 때가 있으니.

김규항의 <예수전>.
종종 느끼는 거지만 그의 펜 끝은 탐욕스런 부자나 썩어빠진 이 사회의 지도층보다는,
'배울 만큼 배우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된(거부감이 들 정도는 아닌),
상당한 사회의식을 가진 양심적인 시민들'을 겨냥하고 추궁할 때가 많다.
'필요 이상 분열하고 배타적인 태도를 갖는 운동'
노선이 다른 동지를 적보다 더 미워하는 풍경이 횡행한다'(151쪽)고 쓴 그의 말이
자신에게 그대로 적용된다고 할까.

- 그들은 언제나 현실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스스로 그런 변화를 위한 노력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그 노력은 대개 현실의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라
현실의 외피를 덜 추악하게 만드는 일
에 머문다.
그들은 오히려 현실의 근본적인 변화를 좇는 모든 노력들을 '비현실적'이라고 냉소한다.
그들은 'NGO' '시민운동' '개혁운동', 그리고 실현 가능한 진보', '최소한의 상식의 회복'
따위 간판과 표어를 걸고 활동한다.
(......)
그래서 그들, 오늘의 바리사이인들은 사회적으로 강력한 영향력과 설득력을 가지며
'진정한 변화를 막기 위한 변화'라는 그들 본연의 임무를 지속하게 된다.(119쪽)

날카로운 그의 시선은 이른바 '의식 있는 (척하는) 양심적인 시민'뿐 아니라
'힘없는 피해자'로 묘사되는 '인민'을 향할 때도 가차없다.

- 인민은 다만 그 포악한 체제의 일방적 희생자로 묘사된다.
'박정희 군사 파시즘에 신음하던 인민들.'
그러나 그 시절 대개의 인민들은 '신음'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이 다 그런 거지', '사람이 하는 일인데 완벽할 수야 있나'하며
제 식구들 챙기며 오순도순 살았을 뿐이다.(181쪽)

- 폭력의 현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1년 내내 뺨 한 번 맞을 일 없는 사람이
점잖은 얼굴로'저항으로서 폭력도 폭력이다'라고 뇌까리는 건 참으로 몰염치한 짓이며
폭력의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폭력보다 더 끔찍한 폭력이 된다.(238쪽)

'인민들의 노동과 수고 덕에 살아가는 주제'에 겉으로는 그들을 존중하는 척 무시하며
자신의 이익과 안전만 도모하는 '인텔리들의 요사스러운 말장난' 대목에 이르면
(인텔리도 아니면서) 얼음덩어리 한 동이가 공중에서 내 머리 위로 쏟아지는 느낌이다.
글로 만나는 그의 냉소와 독설은 때로 눈살을 찌푸리게도 하지만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 사람들은 더이상 꿈꾸고 상상하려 하지 않는다.
모든 이상주의적 태도는 유치하고 어리석은 인간의 표징으로 여겨지고
(...)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의 상품성을 관리하고 제 자식을
더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만드느라 여념없다.(머리말 중에서)

'마르코복음'을 읽고 묵상하며 쓴 책이란다.
예수가 반말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0주년 신약성서>를 텍스트로 삼았다니
신선하면서도 섬세한 발상이라는 생각은 드는데
그가 옮겨 적은 존댓말 성경 구절들이 마음에 착착 감겨오지 않아 아쉬웠다.
무조건 공감하는 건 예수의 관심은 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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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9-05-15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웬디양님 이후에 로드무비님도 별 다섯개에 이런 리뷰라니.
그냥 볼까요? 종교 관련 책은 당분간 읽고 싶지 않았는데...^-^;;

로드무비 2009-05-15 16:47   좋아요 0 | URL
치니 님의 힌트에 달려가 웬디양 님 리뷰 읽고 왔어요.
글샘님 것도...
김규항의 예수에 관심이 있으면 읽어보세요.
전 통쾌하고 재밌더라고요.^^

twoshot 2009-05-15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로 만나는 그의 냉소와 독설은 때로 눈살을 찌푸리게도 하지만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그 중독성을 요사이 좀 멀리 했지요.
그 아집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닌데 자꾸 눈살을 찌푸리게 되더라구요.
리뷰 감사 드립니다, 책은 나중에 볼께요^^

로드무비 2009-05-15 22:05   좋아요 0 | URL
책이 나온 걸 알고 바로 주문했답니다.
오늘 다시 펼쳐보니 밑줄 그은 대목도 꽤 많더라고요.
흡족한 독서.^^

(저도 그렇지만, 남의 고집은'아집', 나의 고집은 '신념' 아니겠습니까요.)

에로이카 2009-05-16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오랜만입니다. 리뷰 잘 봤습니다. 김규항도 로드무비님도 여전하십니다. ^^

로드무비 2009-05-16 06:53   좋아요 0 | URL
에로이카 님, 반갑습니다.'여전하다'니 좋네요.
잘 지내시지요?^^

율리 2009-05-19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람들은 더이상 꿈꾸고 상상하려 하지 않는다.
모든 이상주의적 태도는 유치하고 어리석은 인간의 표징으로 여겨지고
(...)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의 상품성을 관리하고 제 자식을
더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만드느라 여념없다.
너무 맞는 말같다...그래서 외로웠고, 이런 글을 날려주는 니가 있어 외롭지않다

2009-05-20 0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