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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링킹
캐럴라인 냅 지음, 고정아 옮김 / 나무처럼(알펍)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눈비가 뿌리는데 저녁은 하기 싫고 남편은 늦게 온다고 하고
아이들과 간단히 먹으려고 동네 국수집으로 갔다.
한쪽 구석에서 성경을 베껴 쓰고 있던 주인 여자가 반갑게 우리를 맞았다.
잔치국수와 만두를 시키고 나서 미련이 남아 가게 안쪽의 냉장고 속을 들여다 봤다.
맨 아래칸에 맥주병들이 보이고 그 위칸에 초록색 소주병들이 일렬로 서 있다.
날씨도 그렇고 술생각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닌데
좀전까지 여자가 성경을 사경하고 있어서 그랬던지
술을 시키기가 어색했다.
지난해 <알코올과 예술가>라는 책을 읽고 윌리엄 스타이런(<소피의 선택> 작가)에게
관심이 생겨 그의 책들을 찾아 읽었다.
(우울증에 관한 보고서 <보이는 어둠>과 오래 전 절판된 <어둠 속에 눕다>.)
아니나 다를까, 캐롤라인 냅도 이 책 속에서 그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다.
-윌리엄 스타이런도 술을 마셨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술은 그의 정신이 "술 깬 상태에서는 다다를 수 없는 비전을 품게" 해주는
수단이었다.(30쪽)
그의 비전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상을 살다보면 분명 맨정신으로는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있고, 술을 마시는 게 부끄러워 술을 마시는 이상한 경지도 있는 법이다.
1959년생인 캐롤라인 냅은 저명한 정신분석가인 아버지와 화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그 자신 브라운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여러 잡지의 편집자 겸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드링킹>은 자신의 알코올 중독과 탈출 이력을 소상히 밝힌 책이다.
지성이 철철 넘치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름답고 총명한 여성이
왜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는지 궁금해서 이 책을 집어들었다.
- 자신의 거죽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 너무도 힘겨울 때 우리는 혼자서 술을 마신다.(132쪽)
- 이들은 모두 30대였고 좋은 직장에 나무랄 데 없는 가정이 있었다.
리처드는 도시설계사였고, 트로이는 영어교수였으며, 지니는 변호사였다.
만약 오다가다 그들을 보았다면 , 설령 그들이 술 마시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해도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바닥을 치는 일은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바깥에서는 그것을 알 수 없다.(255쪽)
캐롤라인의 친구 지니는 한밤중 미친듯이 차를 몰다가 차가 길을 벗어나면서
앞유리에 머리를 찧다가 운전대를 놓으면서 항복했다고 한다.
술에, 인생에 백기를!
너무 깊이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건강을 해칠 정도만 아니라면 술이 참 좋은데,
나 또한 그 적당한 선을 지금도 알 수 없어라.
'오늘 꼭 하루.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할 필요는 없다.
그냥 오늘 하루, 오늘 하루만 참아라.'(298쪽)
AA(단주 단체)의 지침이란다.
귀에 쏙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요즘 읽는 대부분의 책들은 '오늘 하루'를 말하고 있다.
약속이나 한 듯, 지금 이 순간을......
In vino veritas(라틴어 표현: 와인 안에 진실이 있도다)
책 속에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