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착함이고 무엇이 악함인가
어디선가 닭 우는 소리가 들려
나는 천수경을 외었다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1' 첫머리)


네게 불성이 있다니,
그럼 나는 불성을 포기하리라

마음 내킬 때마다의 선행으로 구원되리라 믿진 않는다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2' 중에서)


밤새 밥통의 밥이 말라 있었다, 잠시라도 가만히 있는 것은 없다
졸작을 남기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4' 중에서)


오늘은 하도 아파, 이틀치 반야심경을 한꺼번에 복용했다

내겐 멀리서 찾아올 친구가 없다, 슬픔도 없다
공자에게도 신통력이 있었다면
아버지, 저는 차력사의 아들입니다
칼날 위를 거닐어야 밥이 나온답니다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7'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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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입니다요.
요즘 같으면 돌덩어리라도 씹어 삼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쁜 일감 있으면 좀 보내주시라요.


지난주 아는 사람에게 일을 좀 달라는 메일을 보냈다.
아무리 능청을 떨더라도 부탁은 부탁이다.
시큰둥한 짧은 답장을 다음날 오후에야 받고 조금 무안했다.

살다보면 없는 용기를 내야 하는 일도 생긴다.
시인의 말대로 칼날 위를 거닐어야 밥이 나온다.

간신히 인간의 흉내나 내며 사는 삶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데
어쩐 일인지 삶이 또 아주 쾌적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누구에게랄 것 없이 "고맙습니다!" 절을 하고 싶은 것도
요즘 같은 가을에나 가능한 일.

어제는 진이정 시인의 시집을 꺼내어 읽었다.
열 편의 연작시('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를 읽으며 밑줄을 긋다가
그 밑줄들만 한 군데  옮겨 적어 보았다.
그의 시들은 이상하게 막 섞어 놓아도 또 한 편의 시가 된다.(고 우긴다.)

10년이 넘도록 몇 번을 읽어도 눈에 띄지 않았던 시 한 편이
어제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시 읽는 맛 중의 하나다.)

멍한,

저녁 무렵
문득
나는 여섯 살의 저녁이다

어눌한
해거름이다

정작,

여섯 살 적에도
이토록 여섯 살이진 않았다
(詩 '어느 해거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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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7-10-16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윤학의 풀밭,이라는 시가 생각나네요~ 나는,/마음만 먹으면/일곱 살 시절로 돌아갈 수 있어

로드무비 2007-10-16 12:24   좋아요 0 | URL
자명한 산책 님, 전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어요.
돌아갈 것도 없이 지금 마음 상태가 바로 일곱 살.=3=3=3

조선인 2007-10-16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 내킬 때마다의 선행으로 구원되리라 믿진 않는다... 정말 자명한 진리네요.

로드무비 2007-10-16 16:05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변덕에 놀아나는 선행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생각해서
아무런 선행도 하지 않는 저의 태도는 옳은 걸까요?^^

2007-10-16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6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6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6 15: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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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6 16: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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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7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코코죠 2007-10-17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장 이 시집을 사러 갔더니 품절이에요... 안타까워서... 안타까워서...

로드무비 2007-10-17 11:00   좋아요 0 | URL
오즈마 님, 오래도록 절판 상태였다가 다시 나온 시집이니
구하실 수 있을 거예요.
저도 알아볼게요.^^

2007-10-17 11: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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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9 00: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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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9 11: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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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0 16: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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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와 연우 2007-10-21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날위를 거닐어야 밥이 나온답니다.
그렇지 않아도 좋을 몇몇이 부러워 미치겠습니다.

2007-10-29 04: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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