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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쓰메 소세키 지음, 박유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늘 헷갈렸다.
일본문학에 매료되어 줄창 일본 소설만 읽어대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게 너무 오래 전이다 보니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이다.
몇 주 전, <마음>과 관련한 오후 님의 글을 읽고 처음이든 몇 번째든
무조건 주문하여 읽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 책에서 '더럽혀진 햇수가 긴 사람을 선배'로, '자살'을 '부자연스러운 폭력'이라고,
또 '사랑'을 '죄악'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
한 마디로 인간의 에고이즘과 죄의식을 이렇듯 차분하고 냉정하게
잘 버무려낸 작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타인을 경멸하기 전에 자신을 경멸했기 때문에 타인의 애틋한 마음에 응하지 않는'(17쪽)
선생님이 있다.
우연히 만나 세상 일에 초연한 듯한 그 모습에 끌려 대학생인 '나'는 그의 집에 드나든다.
서재며 풍기는 분위기로 보아 교수쯤이 아닐까 짐작했는데 그는 세상에 속한 어떠한 직함도 없다.
--선생님은 한때 굉장한 독서가였는데, 그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전처럼 그 방면에
흥미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는 말을 전에 사모님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음을 떠올렸다. (......)
"선생님은 왜 전처럼 책에 흥미를 갖지 못하시는 겁니까?"
"왜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말하자면 아무리 책을 읽어봐야 그리 훌륭해질 것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또 이유가 있습니까?"(......)
"또 있다고 말할 정도의 이유도 아니지만, 전에는 남 앞에 나서거나 남이 뭘 물어보거나 했을 때
모르면 수치로 느껴져 창피했는데, 요즘은 모른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수치가 아니라는 걸
알기 시작했습니다.(......)"(67~68쪽)
'책을 읽어봐야 별 수 없다'는 선생님의 진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는 별다른 취미가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영화와 책이 시들해지면 무슨 재미로 사나' 하여,
이 부분을 읽을 때 잠시 미간을 찌푸렸던 기억도 나고.
병으로 위독한 고향의 실제 아버지보다, 이 쓸쓸하고 무표정한 선생님에게 더 이끌리는 청년.
예전에는 선생님이 그에게 보낸 자서전 형식의 긴 편지 내용보다
뭐라 표현할 수 없이 고즈넉하고 신비한 선생님 댁의 분위기와
나이 차를 훌쩍 뛰어넘는 그들의 교제에 시선이 머물렀다.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어떤 일을 경험하고 난 후,
'나는 할 수 없이 죽은 목숨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자'고 결심했다는 선생님.
세상에는 그렇게 쓸쓸한 결심을 하고 말없이 실행하는 인간도 있는 것이다.
<마음>은 또 자연스럽게 다음에 내가 읽을 책을 지정해 주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나의 개인주의>가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