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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스캔들 ㅣ 창비청소년문학 1
이현 지음 / 창비 / 2007년 5월
평점 :
-- 안타깝게도 올해는 교생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다들 나이에 비해 늙수그레한 데다 촌스럽기 그지없다.
남자 교생들은 성장기를 냉동인간으로 보낸 것처럼 작달막하고
여자 교생들은 의도를 짐작할 수 없는 옷차림이다.(16쪽)
연두색 바탕에, 전체 금실이 체크무늬로 박힌, '도무지 의도를 짐작할 수 없는' 투피스를 맞춰 입고
교생 실습을 나갔다.
동래에 소재한 남자 중학교였다.
그 나이에 여자 교생이라면 환장을 한다는데 우리반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느 날 퇴근길, 학교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1번 꼬맹이가 석간신문을 돌리고 있길래
배달 마치기를 기다려 근처 중국집으로 데리고 갔다.
자장면 곱배기를 사먹였더니 다음날부터 눈에 띄게 얌전해졌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떠드는 녀석들을 잡도리하려 들었다.
교생실습 기간 동안은 소 닭 보듯 하던 녀석들이
무슨 속셈인지 마치고 났더니 편지를 무더기로 보내왔다.
그것이 한동안 나의 기쁨이 돼 주었다.
<짜장면 불어요>의 작가 이현이 중2 교실을 배경으로 왁자지껄한 장편을 한 편 써냈다.
<우리들의 스캔들>.
보라 이모가 보라네 중학교 2학년 1반에 교생으로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 이모가 어떤 이모냐,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문제의 소지가 많은 인물이다.
아이들은 물론 개성이 강하고 제멋대로인 이 교생선생님께 매료된다.
새빛중학교 2학년 1반에는 선생님도 부모님도 모르게 자기들끼리만 알고 몰래 드나드는
비밀의 방이 하나 있다.
그 인터넷의 가상공간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루루공주'니 '바이올라'니 '소주원샷'이니 L(<데스노트>의 L) 등의 닉네임으로 온갖 이야기를 나눈다.
-- 옛날에 나는 늘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하는 아이였다.
학교에서, 집에서 그밖의 모든 것에서.
그래봤자 주변을 빙빙 돌고 있을 뿐이었지만 마음으로는 늘 그랬다.
(......) 고백하자면 어른이 되어도 별수없이 똑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그게 뭐 어때서?"
얼굴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듯이, 생각이며 행동거지며
사는 모양새도 모두 달랐으면 좋겠다.
제멋대로, 내키는대로, 다 달랐으면 좋겠다.(<짜장면 불어요> 작가 머리말에서)
유쾌하고 미더운 머리말이라 일부러 소개한다.
델리 스파이스의 '챠우챠우'가 배경음악으로 흐른다는 그 비밀의 방에서,
아무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멋진 닉네임으로 함께 수다를 떨고 싶다.
때로 그 방에는 어른들의 세계와 별 다르지 않은 칙칙하고 무서운 이야기가 떠돌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