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내용이 도통 마음에 들지 않는 강의를 듣던 중,
강사가 별 신통찮은 말 끝에 "고무적인 일이죠"라는 말을 두 번이나 덧붙이길래
"고무가 뭡니까?" 하고 빈정댄 적이 있다.
껄렁한 나의 질문 같지 않은 질문에 그때 그 젊은 강사, 얼굴이 붉어졌는데......
버스고 강의실이고 찻집이고 간에 어둑한 구석자리만 기어들고
사람들 앞에서 발표는커녕 질문이라곤 던져본 적이 없는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것에 스스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통쾌했다!)
어제, 20여 년이 지나서 내가 쏜 화살이 그대로 나에게 돌아왔다.
어느 출판사에서 책으로 묶기로 한 원고를 좀 검토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나의 의견을 메일로 보냈다.
--그런 부분은 너무 고답적이더군요.
사실 '고답적'이라고 쓸 때 그 뜻을 정확하게 몰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그냥 '지나치게 형식적이다'는 뜻으로 썼는데
뭔가 다른 내용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순간 '고답적'이라는 말이 뭔가 고상하게 여겨지고 마음에 들어서
지우고 다른 말로 바꾸고 싶지 않았다.
어젯밤 담당자에게서 메일이 왔다.
-- 고답적'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