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햄스터)를 데리고 바깥에 잠시 나갔다 왔다.
지루한 얼굴로 피아노학원 차를 기다리고 있는 딸아이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마시던 커피 잔까지 챙겨서 나가니 딸아이 얼굴이 활짝 펴졌다.
꿈틀거리고 뭉클쿵클한 거라면 그것이 뭐든 무서워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토리에게 푹 빠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토리가 지금 무얼 하고 있을지 궁금해
마루로 달려 나간다.
기척을 느끼고 창살에 붙어서서 두 손을 맞잡고 있는 앙증맞은 모습을 보면
가슴이 뭉클하다.
딸아이는 하루에도 열두 번 토리를 꺼내어 안고 놀다가 집에 넣어주고
손을 씻느라 손등이고 손바닥이고  꺼칠하다.
토리를 만진 후에는 그것이 아무리 잠시라도 꼭 손을 씻는 딸아이.
침대에 내려놓으려고 하면 기겁을 하며 말리는데 이유인즉슨
토리의 몸에 있는 세균맨이 이불에 묻으면 우리가 잘 때
세균맨의 침공을 받기 때문이란다.

2주 전 토요일 아침에는 토리로 인해 작은 소동이 있었다.
딸아이는 학교에 가고 그 틈에 토리를 마음껏 주무르며 놀던 나,
운동 좀 하라고 마루에 내려놓았더니 순식간에 에어컨 설치를 위해
파놓은 벽의 동그란 구멍 속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 속이 무슨 미로처럼 되어 있는지 토리가 나올 줄을 모르는 것이다.
구멍 속으로 손을 넣고 한참을 휘적이던 남편,
단안을 내렸다. 벽의 구멍을 더 크게 뚫기로.
이사 오기 전 텔레비전 홈쇼핑으로 충동구매 했던 전동공구 세트가
이렇게 요긴하게 사용될 줄이야!
토리 구출작전은 무사히 막을 내렸다.
무심코 조그만 구멍으로 들어갔다가
영문 모를 어둠 속에 30여 분 갇혀버린 토리.
딸아이가 돌아오기 전 무사히 구출해서 다행이었다.
남편은 손을 깊숙이 집어넣고 토리를 꺼내다가 손등을 심하게 긁혔다.
영광의 상처......

토리를 두고 가는 게 아쉬워 딸아이는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피아노 차량에 오르고, 나는 열린 창문으로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우리 토리를 소개시켰다.
“그거 쥐 아니에요?”
얼굴을 찡그리시는 아저씨.
‘에잉? 토리가 쥐라니!’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기분이 나빴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토리는 쥐 종류였다.

아파트 화단에 토리를 풀어놓고 서서 싸늘하게 식은 커피를 마셨다.
“아줌마, 그거 뭐예요?”
처음 보는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온다.
지나가는 여고생에겐 “얘 예쁘죠? 햄스터예요. 운동 나왔어요.” 하고
내가 먼저 말을 걸어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도 했다.
흙과 풀이 깔린 화단에서 토리는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하루에 10분씩 꼭 맑은 공기를 쐬어 줘야지.
우리 집 토리는 주인을 정말 잘 만났다.
지난 주말에는 경춘가도까지 달리지 않았는가.
양평과 가평을 지날 때 딸아이는 창문을 조금 열고 토리에게
강바람을 맞게 해주었다.
친한 네 가족이 콘도에서 만나 놀고 하룻밤을 잤는데 토리는
아이들에게 대인기였다.


토리 재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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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쓴 글을 이제야 긁어 올린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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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2007-04-03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이 산책은 어떻게 하시나요? 목줄같은거 매나요?

플레져 2007-04-03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행복한 토리네요.
토리를 구출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쯤에서 이야기가 멈출까봐 괜히 조마조마했어요 ^^

마노아 2007-04-03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리는 정말 주인을 잘 만났네. 완전 가족이잖아요^^

비로그인 2007-04-03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여워 미치겠군요 정말!!! >_<

BRINY 2007-04-03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바람까지 쐬다니...우리집 녀석들은 창문 열고 창가에 갖다대주는 게 전부였는데.잉...정말 주인 잘 만났구나, 너!!! 근데, 새로운 사진 안 찍으시나요? 토리가 산책하는 모습을 보고 싶네요. 더불어 저도 새로운 햄돌이를 데리러가고 싶어요~~

2007-04-03 2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4-07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리니 님, 몇 달 미루다가 카메라를 사고 보니 컴이 고장나고, 쩝.
새로운 햄돌이라니 지금은 식구가 몇인데요?
궁금하고 보고 싶습니다.
컴이 정상화되면 새 사진 무더기로 올리겠습니다.^^

체셔고양 2 님, 더 미치게 해드릴게요.^^

마노아 님, 책장수 님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언젠가 우리 모녀가 겪어야 할 토리의 부재로 인한
정신적 공황.(그대로 옮겼습니다.^^)

플레져 님, 어쩐지 전동공구 풀세트를 사고 싶더라니요.
만물과 모든 행위에는 심오한 뜻이......^^

라일라 님, 손에 받치고 품에 꼭 안고 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