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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프로젝트 - 얼렁뚱땅 오공식의 만화 북한기행
오영진 지음 / 창비 / 2006년 12월
평점 :
시들고 마른 오이 꽁다리같이 생긴 소설가 오공식이 남한의 작가 대표로 평양에 파견된다.
'북남교류협력단'의 총책임자로 오공식을 맞이하게 된 조동식과 노총각 김철수, 그리고
중학교 교원 리영희의 안내로 그는 평양에 머무르며 시민들의 생활상을 가까이서 취재하게 되는데.
자신의 희망사항을 만화로 설정한 오영진은 <평양 프로젝트>에서 생활 중심의
소소한 에피소드 별로 '있는 그대로'의 북한과 북한 사람들의 모습을 스케치하는데,
몇 년 전 경수로건설사업 건으로 북한에 파견되어 1년 넘게 신포에서 머무른 경험을 토대로
더할 수 없이 사실적인 만화를 그렸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에 대표적인 부의 상징으로 '타워팰리스'라는 주거공간이 존재한다면,
평양에는 신흥부유층의 호화주거지로 '딸라 아빠트'가 있다.
오공식의 취재활동을 돕는 조동식은 퇴근 후 기세좋게 딸라아파트 앞에 내리는데,
바로 옆 장마당에 들러 아내의 부탁대로 콩나물, 둥근파 등의 남새(채소) 몇 가지를 산다.
저녁 반찬거리다.
장마당은 아파트 단지에 한 번씩 들어서는 알뜰시장 같은 것으로 짐작된다.
시장과 작은 교회가 있는 북한의 주택가 골목 풍경과 냄새를 상상해 본다.
북한에도 지역색이 존재하는데 함경도민은 좀 얄밉다고 하여 '정평 짜드라기' 또 잘 나선다고 하여
'찔락찔락'이라고도 하고, 평양 사람들은 타지역의 질시를 받는 편으로 깍쟁이라는 뜻의 '깜찍하다',
황해도는 성향이 좀 둔하고 게으르다 하여 '띵해도'라 한단다.
남한의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와 북한의 지역들을 의인화하여 나는 미팅 장소에 나온 처녀총각처럼
테이블에 마주보게 하고 사랑의 짝대기를 교차해 보았다.
북한에서 인기있는 신랑감 순서는 '군.당.대.기.실'이었는데, 여기서 '기'는 '5장 6기'라는 뜻으로
'5장'은 이불장, 양복장, 책장, 찬장, 신발장을 말하고 '6기'는 텔레비전 수상기 등 가전제품들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지금은 '현.장.대.기.실'로 바뀌었다니,
1위 '현'은 현물(외국돈), '장'은 장사능력이다.
통일 후를 막연하게 생각하면 북한의 타락상(?)이 되려 반가웠다고 할까.
<평양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고 있지만 이 만화는 남한의 별볼일 없는 작가와
북한의 말단관리가 만나 간식으로 군고구마를 사다먹고 더러는 술잔을 기울이는 등의
소소한 풍경을 통해 북한을 보여준다.
"보라, 보라, 우리 영미 나왔다!"
"와 길케 느리배기를 부립네까! 날래 찍지 않구서리."(59쪽 '국제아동절')
남한으로 치면 어린이날 유치원의 재롱잔치에 참석한 북한 젊은 부부의 대화이다.
내가 정말 궁금하고 보고싶었던 건 우물쭈물하다가 딸아이의 멋진 포즈를 놓쳤다고
아내에게 야단을 맞는 남편, 바로 그런 장면들이었다.
이 만화는 그런 장면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못 그린 기린 그림 같은 오영진의 그림과
평양 에세이가 아주 잘 어울린다.
('꾹돈'은 '뇌물'을 뜻하는 북한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