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송전차
호리에 도시유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호리에 도시유키의 산문집 <회송전차>는 듣도 보도 못한 모양과 맛의
화과자로 가득한 선물세트 같다.
목차에서 제목을 보고 페이지를 펼쳐 한 편씩 야곰야곰 읽어나가고 있는데,
그 순간은  마치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생긴 화과자를  골라 비닐을 벗길 때처럼 
두근거리고 입에 침이 가득 고인다.

오늘은 "1980년 윔블던 결승 중계를 보지 않은 사람과는 스포츠든 문학이든
논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써서 테니스 선수 비욘 보그와 맥켄로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
'비노동으로서의 왼손목'과,  <산타클로스 사전>이라는 그림책을 가지고
짧게 이야기를 풀어나간  '산타클로스의 등'을 읽었다.
'비노동으로서의 왼손목'은 특히 테니스와 문학, 나아가 인생을 절묘하게 버무리고 있는데
그 솜씨에 경탄을 금치 못하겠다.
사람들이 미처 모르고 지나치는 기미와 기운을 포착하는 능력이라니!
그래서일까?
아무리 멋진 모양의 화과자도 앉은 자리에서 두 개 이상은 먹지 못하는 것처럼
그의 멋진 산문은 하루에 딱 한두 편씩만 읽는 것이 좋다.
이런 독서 방식도 산뜻하지 않은가?

오늘 재밌게 읽은 '산타클로스의 등' 이라는 그의 산문을 통째 옮긴다.
'그레구와르 솔로타레프'라는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름의 작가가
실제로 있으며 우리 나라에도 그의 그림책이 두어 권 나와 있다는 걸 알고
쾌재를 불렀다.
(검색하다 보니, 연말이 코앞이라 그런지 '산타클로스 (아르바이트) 모집 대공고'도
눈에 띄더라는 사실.)


--또다시 그레구와르 솔로타레프의 <산타클로스 사전>을 펼치기에 어울리는 계절이 돌아왔다.
15센티미터 x 15센티미터 정사각형 판형을 산타클로스의 의상이기도 한 선명한 빨강으로 장정하여
금방 눈에 띄도록 한 이 책은 들고 읽다 보면 점점 무거워지는 그야말로 사전같은 풍모와
그에 뒤지지 않는 풍부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1991년 출판 당시 입수한 이래,  몇 번이나 다시 읽었는데 그때마다 정말 멋진 책이라고 생각한다.
산타클로스라는 어딘가 모르게 비인칭적인 존재를 솔레타레프는 'a'에서 시작해서 'z'로 끝나는
사전 형식을 빌린 그림을 통해 멋들어지게 그려내고 있다.

산타클로스는 한 남자가 선택한 직업이다.
"어렸을 때 그는 불행했다. 산타클로스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전제돼 있는 것처럼,
해마다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면서 다니는 일은 어렸을 때의 불행을 다소나마 줄이기 위해
그가 생각해낸 것이다. 즉 그것은 어디까지나 직업이지 천직은 아니다.
"산타클로스는, 이 직업을 선택하기를 잘한 것인가, 하고 간혹 자문하는" 일이 있으며,
자기에 대해 얘기한 어린이책을 보면 그 한심함에 때로 어이가 없기"도 하다.

독신이라 아이가 없는 그에게는 작은 산타라 할 수 있는 장난꾸러기들이 따라다닌다.
유모와 사랑으로 그들을 보살피면서 반대로 위로받는 일도 있는데, 별다른 이유도 없이
침울해 있는 모습을 주위에 보여야 하는 고독은 치유되지 않는다.
이 그림책은 사전이기도 하니까 어떤 순서로 읽든 상관이 없다.
침묵한 산타클로스의 뒷모습. 그 등에 떠다니는 쓸쓸함을 지워버릴 수 있는 인간이 과연 있을까?
"산타클로스가 등 뒤로 머리를 땋아 내렸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인간조차 거의 없는데 말이다.
('산타클로스의 등'  118~ 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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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6-12-05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세이 잘 쓰는 이가 진짜 '고수'라는 말이 또다시 귓가를 울림다. 근데 정말 먹음직스러운 리뷰네요. 화과자라...^^

Mephistopheles 2006-12-05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과자라....일단 겉으로 봐서 화려하고...한개 먹으면 질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보면 또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와 결국 다시 입으로
가져가는...^^

2006-12-05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da 2006-12-05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일까요? 산타클로스가 등 뒤로 머리를 땋아 내렸다는 것이? ㅎㅎ 처음 듣는 이야기야요. 화과자를 딱 한 번 '얻어' 먹어봤는데 별 것 아니게 생긴 녀석이 꽤 비싸다더군요. 이마에 꽃잎 한 장 턱 붙이고 있는 꼴이 영 새침해서..

짱꿀라 2006-12-06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근데요. 산타클로스는 머리를 땋아 내렸다는 것이 사실인지요. 저도 꽃양배추님과 같은 의심이 드네요. 좋은 하루되세요.

로드무비 2006-12-06 0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ntaclausly 님, 헤어스타일에 대해선 저도 아는 바가 없습니다.
아마도 그가 고독했으리라고 짐작했을 뿐.^^

꽃양배추 님, 화과자도 화과자 나름 아니겠습니까.
황남빵이 다 황남빵이 아닌 것처럼.
이마에 꽃잎 한 장 붙이고 있는 녀석이든 아니든 한입 묵고 싶으요.
자다 일어났더니.^^

나쁜 남자 통 님, 그의 영화는 꼭 극장에서 보던 때가 있었어요.
최근 영화 중 두 편은 챙겨볼 생각입니다.
'산타클로스의 등'은 짧아서 통째로 옮겨봤고요.
'비노동으로서의 왼손목'과 같은 글이 참 좋습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읽어보시길.
그리고 바쁘실 텐데 뭘 그리 서두르셨답니까.
저야 좋지만요.^^

메피스토 님, 한 편 한 편의 산문이 너무 맛깔스러워서
화과자에 비유했지만 맛은 훨씬 담백합니다.
그 비싼 과자 많이도 드셔보셨군요.
그리 잘 아시는 걸 보니.....^^

마냐 님, 리뷰 제목에 음식 이름을 넣어주면 이렇게 반은
먹고 들어갑니다.
님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리뷰'라고 말씀해 주셨잖아요.^^











2006-12-06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레져 2006-12-06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톡, 두드리는 산문을 읽고 싶을 때가 있어요. 황인숙씨 산문집을 틈틈이 보고 있는데 요 책, 참 맘에 드네요. 목차부터 구미가 당겨서 장바구니에 넣어버렸어요.
공항에서 무료하게 비행기를 기다리며 테니스를 본 적이 있는데...
라켓에 부딪치는 공 소리가 참 좋구나, 하는 생각밖엔 못해봤어요. 흑.

2006-12-12 0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산사춘 2006-12-12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과자는 먹기보다 바라보는 게 더 설레여요. 다니엘 헤니처럼... (춘, 철 좀 들어!)

2006-12-12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2-14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제이의 꿈 님, 님은 제게 이미 멋진 디제이인걸요.^^*

산사춘 님, 다니엘 헤니처럼...ㅋㅋㅋ
절묘한 비유입니다.^^

2006-12-17 0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