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싫어하는 말 - 얼굴 안 붉히고 중국과 대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
정숙영 지음 / 미래의창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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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중국은 묘한 나라다. 교역량 1위 국가인데, 비호감 1위 국가이다. (일본일 수도 있겠다. 다만, 젊은 혹은 어린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면 분명 1위일 거다.) 중국인이 자국에 대해 가지는 자부심은 대륙을 뚫고 나오는데, 한국인은 중국을 무시한다. 거기다 최근에는 사드 문제로 온통 뒤끓었고,(여러 자료들을 종합하면 사드 문제로 인한 한국 내의 진통은 중국에서의 전국민적 분노와 비교하면 소동수준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게 사드는 영토 주권의 문제였고, 19세기 초반 아편 전쟁으로 촉발된 제국주의 침략을 떠오르게 만드는 일이었다. 중국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중국의 입장이 그렇다는 거다. 사실, 중국 관련 뉴스 볼 때마다 궁금하잖아. 중국()은 왜 저렇게까지 유난을 떠는지 궁금하다면, 일단 좀 알아야지.) 홍콩의 우산 혁명을 보면서 홍콩의 독립(자치) 열망을 탄압하는 중국에 대한 반감이 커질대로 커지지 않았는가. 책이 나온 후의 일이지만, 중국발 코로나19까지 터진 상황이다.

 

중국에 가 본 적도 없고,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할 가능성도 거의 없는 내가 이 책을 읽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하다 못해 친구랑 싸울 때 싸워도 친구가 왜 저렇게까지 화를 내고 격한 반응을 보이는지가 궁금한 법 아닌가. 정보를 얻기 위해 읽은 책이었고, 책의 내용도 이러한 목적에 충실한바,(다행히 저자의 문장이 정확하고 간결하다. 그런 점에서 언론인이 쓴 책은 대체로 가독성이 좋은 듯하다.) 서평도 책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는 형식으로 진행해 보자. 제가 또 한 요약합...

 

1. 홍콩, 대만, 마카오 vs 티베트

홍콩, 대만, 마카오는 일국양제’(하나의 국가 두 개의 체제, 곧 중국이라는 하나의 나라 안에서 자본주의라는 체제 허용)의 적용을 받고, 티베트는 그렇지 않다. 티베트는 그냥 중국 안의 한 도시(라는 원칙하에 중국은 통치한). 사화·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하여 다른 체제를 인정해주는 홍콩, 대만, 마카오 역시 중국의 일부이기에 이들을 독립된 국가로 보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우산혁명 발발의 원인이 된 중국 본토식 국민교육 과목 도입을 홍콩에 추진했고,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대만 국기를 들었던 쯔위는 중국 네티즌들의 항의 때문에 죄인처럼 사과해야 했다. 홍콩과 대만이 올림픽에 참가하지만, 자세히 보면 중국대만’, ‘중국홍콩으로 출전한다. 모두 일국양제의 일환이며 장기적으로는 홍콩, 대만, 마카오를 평화적으로 흡수 통일하기 위한 중국의 전략이다.

티베트는 더 중요한 문제다. 티베트 문제의 기저에는 중국 vs 서구(사실상 미국)’의 대립 구도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달라이라마를 알고(달라이라마는 서구 종교계의 슈퍼스타.), 티베트 인권 문제, 테비트 분리 독립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미국의 선전 활동과 티베트에 대한 지원 때문이다.(라고 중국은 주장한다.) 실제 미국은 1960년대에 이미 티베트 독립운동에 매년 170만 달러를 지원했으며, 그 이후에도 달라이라마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미중 무역 분쟁이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던 2018년 초에 미국이 티베트 인권 문제를 슬그머니 거론한 것도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었을 터. 관련하여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하나 인용해 본다.

독일 자동차 회사 다임러는 보편적 진리를 말하는 달라이라마의 명언을 평범한 광고 문구로 썼지만이는 다른 한편으로 티베트와 달라이라마에 대한 서구 사회의 경외와 존경심도 느끼게 한다.


모든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면 더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불행히도 이 광고는 중국인들의 분노를 샀다중국을 대상으로 만든 광고는 아니었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이 광고가 중국까지 가는 데는 1초도 안 걸렸을 텐데벤츠는 자신의 가장 큰 고객이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깜빡했었던 듯하다불매 운동 소리가 나오지 벤츠는 급히 중국인의 정서를 무시해 거듭 죄송하다.”는 사과 성명을 내고 머리를 조아렸다. (69)

 

중국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야 됨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겠다.

 


2. 백두산에 대한 오해

1은 대한민국이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백두산 문제는 우리 문제다. 동북공정과 맞물려 중국의 백두산 공정(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창바이산이라 부르며 중국의 10대 명산으로 지정했다.)이 곱게 보이지 않는다. 일단 FACT1962년 체결된 조중변계조약에 따라 백두산 천지의 54.5퍼센트를 북한이, 45.5퍼센트를 중국이 가지고 있다. 우리가 백두산에 대해 가지고 있는 남다른 애정(단군신화가 시작된 민족의 영산) 때문에 중국의 움직임에 반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이 문제의 해결 방안에 대한 글쓴이의 제안이 제법 설득력있게 들린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중국 사랑은 유별나다. 아내가 중국인일 뿐만 아니라, 2015년에는 칭화대에서 ‘무려’ 중국어로 20분간 연설을 해 중국인들의 호감을 샀다. 중국에서 차단된 페이스북이 다시 서비스될 수 있도록 구애 작전을 펼친 것이다. 러브콜은 다음 해인 2016년에도 이어진다. 3월 18일 톈안먼 광장 앞에서 조깅하는 모습이 페이스북에 올라와 화제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이슈가 부각되었다. 하필이면 엄청난 스모그가 베이징을 덮어버린 날이라 전 세계는 마크 저커버그의 중국 사랑보다는 뒤로 펼쳐진 뿌연 톈안먼 광장에 더 놀라워했다. 타이밍도 안 좋았다. 양회가 열리는 3월은 중국이 부정적인 이슈는 안 보여주고 싶은 때인데, 국제적인 유명 명사가 베이징의 미세 먼지를 전세계에 알린 셈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체면 구길 일이다. 페이스북은 어쩌면 이때 ‘미운 털’ 점수 1점을 획득했을지도 모른다. (131쪽)



3. 국내 정치 및 미디어 통제

덩샤오핑의 문화대혁명은 복잡·미묘하다. 훙위병 코스프레를 위한 문혁 굿즈가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는 한편, 문화대혁명 시기 포스터를 배경으로 당시의 혁명 가곡과 시진핑을 우상화한 노래를 부른 사회주의 찬양 걸그룹 ‘56 둬화’(이런 걸 보면 중국이 문화 강국이 되기는 요원해 보인다.)는 비판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이와 달리 89년 천안문 사건은 복잡·미묘하지 않다. 절대적 금기이기 때문이다. 천안문 사건, 6.4, 1989. 6. 4, 모두 중국 포털의 검색 금지어이며 SNS에서도 차단당한 단어다. 인민을 해방시키기 위해 만든 군대인 인민해방군이 인민을 짓밟았으니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할 수 없는 중국이 선택한 방법은 철저한 통제와 검열인 것이다. 과연 언제까지 가능할까? 과오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통치력이 생기는 게 이치일 텐데.

천안문 사건 외에 대표적인 보도 금지어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내용 이외의 경제 뉴스’, ‘의제를 희화화하지 않기’, ‘스모그 문제등등. 이 중 스모그 문제와 관련한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중국 사랑은 유별나다. 아내가 중국인일 뿐만 아니라, 2015년에는 칭화대에서 ‘무려’ 중국어로 20분간 연설을 해 중국인들의 호감을 샀다. 중국에서 차단된 페이스북이 다시 서비스될 수 있도록 구애 작전을 펼친 것이다. 러브콜은 다음 해인 2016년에도 이어진다. 3월 18일 톈안먼 광장 앞에서 조깅하는 모습이 페이스북에 올라와 화제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이슈가 부각되었다. 하필이면 엄청난 스모그가 베이징을 덮어버린 날이라 전 세계는 마크 저커버그의 중국 사랑보다는 뒤로 펼쳐진 뿌연 톈안먼 광장에 더 놀라워했다. 타이밍도 안 좋았다. 양회가 열리는 3월은 중국이 부정적인 이슈는 안 보여주고 싶은 때인데, 국제적인 유명 명사가 베이징의 미세 먼지를 전세계에 알린 셈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체면 구길 일이다. 페이스북은 어쩌면 이때 ‘미운 털’ 점수 1점을 획득했을지도 모른다. (131쪽)



4. 모욕적 표현

이웃 나라들간에 경멸하고 조롱하는 표현이야 어디에건 있게 마련이다. 중국인을 경멸하는 표현으로는 짱꼴라’, ‘짱깨’, 그리고 왕서방이다. (한국인을 경멸하는 중국식 표현은 빵즈(고려 몽둥이)’이다.) 공적으로는 쓰지 않는 앞의 2개에 비해서 왕서방이 특히 문제다. 언론에서 특히 즐겨 쓰는 이 표현에는 탐욕에 눈이 먼 미개한 중국인이라는 이미지가 씌워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인이 뭐하기 시작하면 값이 천정부지로 오른다는 관용적인 표현도 사실 중국을 은근히 졸부로 깔보는 시선이 들어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지 않나? “중국은 한국보다 더 많은 출연료를 준다. 큰돌을 벌었다.”는 발언이 화근이 되어 곤욕을 치른 한국 연예인들이 있다는 소식까지 접하고 보면, 조금 신중하고 조심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이것 말고도 파룬궁, 노조, 영유권 분쟁, 일대일로 사업 등에 대한 내용이 조금 더 있는데, 앞의 내용의 연장선이기도 하고 반복되기도 해서 요약은 이 정도로 마친다.

 

생각해볼 만한 부분은 우리가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민주주의, 인권, 언론의 자유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그럼, 미국이 남미에서 저지른 짓은? 중동에서 일으키거나 조종한 전쟁들은? 이런 반문도 반문이지만, 우리가 특정 이슈에 대해 하나의 관점으로만 보고 있다면, 다른 관점으로 한번 바라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그게 당사자 국가라면 더욱 더 필요하다는 게 내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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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 박상영 에세이
박상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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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의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다른 소설들에 쉽게 ‘새로운‘이라는 수식어를 쓰지 말아야겠다고. 그래야 박상영의 ‘새로운‘ 소설이 오롯이 빛을 낼 수 있을 테니까. 에세이는 어떨까? 설레는 마음으로 열흘을 기다릴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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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털이 너무나 쉽게 빠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역설적이게도, 털은 분해가 잘 되지 않으며, 무덤에서 수천 년 동안 남아 있다고 알려져 있다. - 45쪽


 역설은 대체로 이렇게 비극적이다. 살아 있을 때 영원히 남아만 준다면, 무덤에 가서 부패가 되어도 요만큼의 아쉬움도 없을 텐데. 검색창이나 유트브에 '탈모'를 검색해 본 사람은 이 마음을 알 거다. '탈모'에 관해서라면 나는 사실 절망적이다. 탈모가 보통 대를 한번 건너뛰어 나타난다고 하는데, 놀랍게도 나의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아버지도 탈모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셔서 본 적은 없지만 친척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렇다. 보지 않은 것은 믿을 수 없다는 신념(을 가장한 정신승리)를 근거로 아버지가 탈모이니 나한테는 유전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자식은 안 낳겠다고 결심도 했다. 나의 굵고 풍성하고 유난히 검은 머리카락은 그 믿음을 지지하는 든든한 증거였다.


 그러나 머리카락에 한해. 지금 가지고 있는 양과 빠지는 추이는 크게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부자가 망해도 삼 년은 간다는 말은 적어도 머리카락에는 진실이 아닌 것 같다. 그렇게 풍성하던 머리칼이 어느 날 보니 휑해져 있는 거다. 정말, 그 당혹감이랄지 실망감이랄지 배신감이랄지, 그 불쾌한 느낌은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른다. 거울이 거짓말하는 것 같은 그 기분. 물론, 여전히 나는 내 나이 평균 정도의 모발량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나의 비교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늘 어제의 나가 아니던가. 별 수 있나. 병원을 가봐야지.


 병원에 갔더니 요즘은 20대 대학생들도 탈모 고민으로 많이들 온다며 나를 안심시키더니, 약을 권한다. 탈모약 관련한 여러 소문들은 사실상 썰에 불과하며 임상 보고에 따르면 활력 저하(ㅋㅋ 내가 만난 의사는 성욕 감퇴라는 말 대신, 활력 저하라는 표현을 선택했다!)는 100명 중 1명 정도 보고될 뿐이라고 한다. 임신 계획만 없다면 걱정없이 복용하라는 거다. 뭐가 문제인가. 그 길로 3개월치 처방 받아서 먹기 시작했다. 기분 탓인지 숱이 느는 것도 같았으며, 의사 말대로 '활력 저하'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더 큰 비극이 나를 찾아왔다. 간염 진단. 찾아봤더니 사람에 따라 탈모약이 간에 부담을 줘서 나올 수 있는 증상이란다. 위염, 역류성 식도염고 차원이 다른 고통이었다. 한 달 간 병가를 냈고, 하루에15시간씩 잤다. 감염에 거리면 그냥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냥 먹고 자게 된다. 


 휴식 덕에 간염은 이겨냈다. 하지만, 남은 탈모약은 바로 버리지 못했다. 부엌에서 탈모약을 볼 때마다, 건강한 몸과 풍성한 모발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이러다 나도 모르게 또 먹어 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되어서, 얼마 전에 남은 약을 다 버렸다. 읍참마속! 다행히, 나의 모발량은 여전히 내 나의 평균을 유지중이고 더 줄어들고 있지는 않다. 


 시덥지 않은 이 글과는 별개로 <바디>는 정말 재미있다. 내가 학생 때부터 이런 책을 접했다면, 지금 같은 과학 무식쟁이가 되지는 않았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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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3-05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민과 괴로움이 들어있는 글인데 재미있게 읽어서 죄송합니다, 얼음장수님.

그나저나 코로나19 탓에 일시적 백수가 되셔서... 제가 이렇게 얼음장수님 글을 읽을 수 있게된건가요, 결국?

얼음장수 2020-03-05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시기가 지나 평온과 안정을 찾았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부족하지 않기 때문에(뭐가?)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코로나19는 제가 그동안 안(못) 쓴 게 먹고 사느라 바빠서였다는 것을 극적으로 증명해 줬습니다. 일을 아예 관둬야 하는 것인가 ㅋㅋ 아마도 유일한 독자일 다락방님을 만족시키는 좋은 글을 써보겠습니다.
 
바디 - 우리 몸 안내서
빌 브라이슨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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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이루는 원소들에 특별한 점이 있다면, 바로 우리를 이루고 있다는 것뿐이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기적이다. (13쪽) 과학책에 자주 실패하는 내가 이 책을 사서 읽고 있다. 그것이 바로 빌 브라이슨의 기적이다. 부디 이 책을 완독하는 기적까지 일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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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때문에 일상이 사라졌다. 일시적 백수가 되었고, 운동도 갈 수 없고, 도서관도 못 간다. 내내 집에만 있게 된 덕분에 읽고, 보고, 요리하는 시간으로 하루를 채운다. 시절과는 별개로 일상이 사라진 내 일상은 꽤나 괜찮다. 


 가만 생각해 보면, 난 '가벼운' 책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다. 아니, 끔찍히 싫어한다. 교보문고에 '전시'된 베스트셀러를 볼 때마다, 한숨 쉬는 걸 보면 확실히 그렇다. 갈수록 얄팍한 책들이 쏟아지고, 얄팍함을 그럴듯한 마케팅으로 치장해 팔아치우는 현실이 달갑지 않다. 그렇다고 내가 대단한 책을 읽는 건 아니지만(그렇지만 에세이 신간 코너는 정말이지 견디기 어렵다.), 그래도 나는 독자니까. 책을 쓰고 만드는 사람들은 그래도 조금 더 좋은 책을 읽히겠다는 사명감은 너무 거창하고, 최소한의 직업 윤리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뭐 이런 무책임한 불평을 해댄다. 


 그런데 나는 tv나 영화는 철저히 가벼운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아니, 확실히 그렇다. 그런 면에서 앞에서 한 나의 푸념은 자기 모순이며, 내가 '책'에 대해서는 여전히 뭔가 고상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고루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예술 영화를 간혹 찾아서 보는데, 그때마다 '즐기는' 경험이 아니라 '견디는' 경험이었던 걸 보면, 나는 시각의 영역에서는 좀 더 자극적이고 통속적인 걸 원하는 사람인 것 같다. 넷플릭스 관계자가 넷플릭스 이용자들이 흔히 말하는 작품성 좋은 작품들을 보관함에 넣어 두지만 막상 시청하는 건 통속적인 로맨스물이나 드라마라는 사실을 발견하고서 그것을 사업 전략에 활용한 후 수익이 증가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랑 다르지 않나 보다.


 무슨 놈의 서론이 이렇게 길어. 본론은 요즘 보는 넷플릭스의 '연애 실험 : 블라인드 러브'.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남녀가 서로의 외모를 볼 수 없는 상태에서 대화만으로 사랑에 빠지는지를 실험하는 예능 다큐이다. 결론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인데, 대개의 연애 버라이어티가 그러하듯 결론보다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다만, 한국의 (유사) 연애 버라이어티와는 다르게 이 프로그램은 찐이다! 대화를 통해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청혼을 하고, 인연이 되면(물론, 그때는 외모를 확인하고 실제 데이트를 한다. 놀라운 건 첫데이트가 신혼 여행이라는 점 ㅋㅋ) 실제 결혼으로 이어진다. 불과 45일 동안 일어나는 일인데, 실제 결혼한 커플도 있다! 누군가는 45일을 만나도 이 사람과 연애를 할지 말지도 결정 못 하기도 할 텐데, 얼굴도 안 본 사람과의 결혼을 (내가 보기엔) 망설임 없이 '쉽게' 결정한다.


 물론, 누군가의 결혼 결심을 '쉽게'라고 말하는 건 명백한 결례다. 그런데,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한 남자 참가자 칼튼은 어떤 면에서 분명히 그랬던 것 같다. 

 프로포즈를 (승낙)한 후 걸어 나가는 커플의 모습.


 바로 다음 만남에서 '퍼킹'과 '비치'를 내뱉으며 대판 싸우는 장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칼튼의 '솔직병' 때문이었다. 그 놈의 솔직, 솔직, 솔직... '솔직히' 누군가가 '솔직히' 말하겠다고 하면 일단 의심부터 드는 나는 '솔직'이라는 말을 애초에 신뢰하지 않지만, 칼튼은 그 정도가 과하다. 칼튼의 솔직한 자기 고백에 따르면 그는 '과거'에 양성애자였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남성은 아이에 대한 애정을 덜 가진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성애자가 된 것(결혼은 여성과 하겠다고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뭐, 내가 겪어보지는 못한 감정이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칼튼은 자신이 과거에 양성애자였다는 사실이 큰 컴플렉스였나 보다. 그 사실을 말했을 때 사람들이 떠났던 경험 때문에, 칼튼은 자신이 대화를 하며 푹 빠지게 된 여성인 다이아몬드에게 그 사실을 감춘다. 이 역시 이해는 간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컴플렉스(남들이 보기에 아무것도 아닐지언정 스스로 그렇게 여긴다면 중요한 거니까)를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말해야 할지, 한다면 언제 해야할지는 누구에게나 어려운 문제이니까. 이혼 경험이 있다면, 동거 경험이 있다면, 전과가 있다면, 어린 시절 끔찍한 경험을 했다면 등등.(꼭 이런 심각한 게 아니어도 SEX 경험이 없는데, 잘 때 식은땀을 흘리는데, 안면 비대칭이 있는데, 곱하기와 나누기를 잘 못하는데...) 쉽지 않은 문제다. 이해하기 힘든 칼튼의 행동은 그 다음부터다. 자신의 청혼을 받아들인 다이아몬드와의 여행 첫날 저녁부터 둘은 삐그덕대기 시작한다. 이유는 칼튼이 자신이 양성애자였다는 사실을 숨기는 걸 '스스로가' 못 견뎌했기 때문에. 분위기를 깨뜨리는 이상한 말들을 늘어놓고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표정과 몸짓으로 낭만적이어야 할 첫 데이트를 망친다. 그리고 그날 밤 고민한 끝에 다음날 다이아몬드에게 고해성사를 한다. 'lika a past' 즉 '과거와 같은 것'을 고백해야 겠다며, 그 사실을 털어놓는다. 물론, 다이아몬드는 당황했고 그 길로 둘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털어 놓은 게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라면 그게 정말 '과거'에 국한된 이야기라면, 굳이 말하지 않았을 것 같다. 이런 태도가 더 비난받을 수도 있겠다만, 그럼 도대체 어디까지를 이야기해야 한단 말인가.) 문제는 당황한 다이아몬드에게 지속적으로 칼튼이 한 말이었다. '나는 솔직하고 싶었다. 당신에게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채 청혼했던 자신의 괴로움을 이야기하며 스스로를 피해자의 위치에 놓고,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 당신에게 약간 서운함이 들기도 한다.' 솔직함을 내세우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인 '솔직하고 싶다는 이기적인 말'에 대한 사례를 하나 더하게 된 느낌이다. 결국, 자기 마음 편하기 위해서 한 말이고, 자신이 스스로에게 정한 기준에 다다르기 위해서 타인을 괴롭힌 말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칼튼은 솔직한 자기 고백을 한 후 거기에 대한 상대의 솔직한 반응을 보다 더 차분하게 기다리고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그는 끝까지 자기의 솔직함만 중요했고, 그 솔직함이 받아들여지길 사실상 강요했다. 


 예전에 애인에게 물은 적이 있다. 

 "누구나 자신에 대해 감추는 게 있잖아. 그런 비밀들을 다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 자기는 알고 싶어?"

 크게 공감했던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보여주고 싶은 부분을 보여주고, 숨기고 싶은 부분을 가리는 것. 그 자체가 바로 그 사람인 것 같아."

 

 어쩌면, 내가 화장 전후의 차이가 큰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도 이런 것 아니었을까 싶다. 


덧) 쓰고 나서 찾아보니, 이런 책이 있다. 세상에 없는 책은 없다는 진리를 또 한번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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