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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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 교양으로 수강한 한국 근대사 강의를 맡으신 강사분은 내가 강한 인상을 받았던 몇 안 되는 교수, 강사 중 한 명이다. 강의 방식이나 글을 쓰는 방법이 대개의 분들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강의 첫 시간에 들은 그분의 독특한 이력의 영향이 컸다. 식물학을 전공해 석사학위까지 취득하고서, 진로를 틀어 사학을 전공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워낙에 관련이 없어 보이는 전공이기도 했고, 왠지 그 식물학 석사 학위가 아깝기도 해서(이런 게 바로 그 오지랖 넓다는 걸까) 그 강사는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심윤경도 대학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하고 전업작가로 급격히 방향을 튼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앞서 말한 강사분이 90도 정도 방향을 틀었다면 심윤경은 180도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 강사의 강의 방식이나 글을 쓰는 방법, 강의중 곁말들을 통해 드러나는 인생관들이 기존의 교수, 강사들과는 상당히 궤를 달리 했던 것처럼, 심윤경의 작품이나 그녀가 작가로서 보여주는 행보 또한 기존 작가들과는 차별성을 드러낸다. 최근작인 "이현의 연애"는 아직 읽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처녀작인 "나의 아름다운 정원"과 차기작인 "달의 제단"은 2000년대 한국 문단의 주류적인 경향에서 벗어나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한국 문단의 중심이 단편 소설인 상황에서 심윤경은 연속 3편의 장편만을 발표하고 있다. 작가 개인적으로 단편도 습작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발표된 단편은 아직 없다. - 이 부분에 관해서는 2007년 이상문학상 수상자인 전경린씨의 수상 인터뷰가 생각난다. 단편 중심의 한국 문단이 개별 작가들의 사회경제적 환경과 맞물려 있다는 그녀의 발언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장편소설에 대한 문학상의 비중을 늘린다던가 하는 제도적 장치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고, 문학계의 자체적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  심윤경이 꼭 단편을 써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장편에서 이렇게 훌륭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달의 제단"은 잘 읽힌다. 소재도 어찌 보면 고답적이고 이야기 전개가 크게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것도 아닌데 이 소설은 잘 읽힌다. 이는 기본적으로 심윤경의 문장이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문장이 잘 보이지 않고,묘사는 깔끔하고 정교하다. 언간에 사용되는 고문도 친절한 주석 덕분에 해석이 크게 힘들지 않다. 주인공 상룡의 복합적인 내면에 연민과 불가해를 동시에 느끼다 보면 어느새 소설속에 빠져버린다.

 

  언간의 결말에서 드러나는 대로 끔찍한 치부를 가진 가문의 위신을 위해 한평생을 바치신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눈에 차지 않는 종손 조상룡의 갈등이 소설의 기본축이다. 그리고 소설을 떠받치는 나머지 축 하나는 상룡의 10대 조모인 소산 할매가 그녀의 친할머니와 주고 받은 언간이다. 이 두 축의 교차 반복으로 소설은 짜임새있는 구성을 이룬다.

 

  책을 다 읽고 멍하니 생각을 해보니, 어쩌면 이 소설의 핵심은 조상룡의 이야기가 아니라 소산 할매의 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고문에 대한 까닭모를 거부감으로 언간 부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언간 부분이 결국 조상룡 이야기의 결말과도 맞물려 돌아가고 있고 이 작품에서 작가가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 희생된 여인네들의 복원이라고 본다면 언간이야말로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난 부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언간의 진실이 드러나면서 효계당이 푸른 달빛 속으로 불타 사그라지는 장면은, 결국 달의 제단에 바쳐진 건 효계당과 효계당으로 상징되는 남근중심주의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럼으로써 결국 복원되는 건 소산할매와 그녀로 대표되는 희생된 여인네들의 삶이라고 내멋대로 정리를 해보았다.

 

  작가가 서문에서 밝힌 대로 뜨거운 작품 하나 써냈다. - 개인적으로 달의 제단 서문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  서문과 작품에서 보여주는 그녀의 강단으로 보건대, 심윤경은 끈덕지게 뜨거운 작품들을 발표할 것 같다. 자신만의 길을 뚜벅뚜벅 힘차게 걷고 있는 심윤경의 행보를 게속 주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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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수 2007-01-14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윤경씨의 작품은 '참 공을 들여 쓰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읽고 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뒤늦게 소설가의 길을 걸어서 그런 걸까요. 소설에 대한 열정도 큰 것 같고, 쓰고자 하는 주제도 분명한 것 같아 부쩍 관심이 갑니다.
 
백년여관
임철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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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 새내기 시절에, 과방 한 구석에 낡은 서가가 하나 있었다. 책을 읽는 것보다 책을 구경하는 것을 즐겼던 내게 그 문고는 또 하나의 친구였다. 맑스주의, 소련과 중국의 공산당사, 자본주의, 한국 현대사, 대하 소설들이 주를 이루고 몇몇 교양도서들이 자리를 함께 하고 있던, 2003년도의 대학가 분위기와는 분명 차이기 있는 문고였다. 그 중 유난히 눈에 띠었던 책 중 하나가 임철우의 "봄날"이었다. 왠지 모를 공포를 주는 책표지에, 80년 광주라는 소재에 궁금해서 틈틈이 책을 집어 여기저기를 발췌독했던 기억이 난다. 어떤 이유에선지 온전히 책을 다 읽어내지는 못했지만, 그 당시의 느낌만큼은 지금까지도 꽤 또렷하다. 내게 그 책을 읽기를 권한 이가 없어 아쉽지만, 그 책을 읽기를 권하지 않았던 선배들을 탓하기에 2003년의 대학은 너무나도 '쿨'했다. '쿨', 해야만 했다.

  이제와서, 느닷없이 그 임철우의 "백년여관"을 읽었다. 이번에는 제주 4.3,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5.18 광주민주화 운동으로 역사의 외연을 해방 이후의 한반도 전체로 확장시키는 작가적 의식의 변모를 보여준다. 단행본 한 권 분량에 담아내기엔 다소 버거운 듯하고, 실제로 책을 읽으면서도 부분부분 뭔가 디테일에 부족하다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애초에 "백년여관"은 역사서가 아니라 소설책이다. 디테일이 부족하다고 느꼈으면, 역사책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꾸는 건 독자의 몫일 수밖에.

  어쩔 수 없이, 왜 "백년여관"을 쓰게 됐는지에 대한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진지함이 비웃음거리가 되고, 지난 역사는 무관심의 세례를 받는 지금에 왜 이 작가는 끈질기게 과거를 붙들고 늘어지는건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친절하게도 "해묵은 역사나 지나간 사건 따위를 얘기하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었을 뿐이다." 라고 작가 후기를 통해 속시원히 밝히고 있기는 하지만 속내는 그 사람들과 함께 역사도 기억하고 싶어했음은 쉽게 어림할 수 있다. 임철우에게 '광주'로 대변되는 한국의 처절한 현대사는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것이라고 나름대로 정리를 했다. 누구에게나, 절박하게 써야 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임철우에게는 그것이 우리의 현대사이지 않을까라고. 그것이 의무감 때문이든 죄책감 때문이든. 여기에 대해서 쓰지 않고서는 다른 작품으로 도저히 나아갈 수 없는 그 절박함이 좋은 작품을 가능하게 하고 독자들에게 진솔한 울림을 주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어쩔 수 없이, "백년여관"은 묵직한 슬픔과 역사에 대한 회환을 불러일으킨다. 동시에 "역사는 기억과의 전쟁이다"라는 금언의 책임감을 독자의 품에다가 안겨버린다. 그 책임감의 무게는 납덩이처럼 무겁다. 누구라도 그 무게를 피해, 도망치고픈 욕망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작중 진우(여러 정황상 진우는 임철우 자신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가 광주 항쟁 때 마지막 순간에 머뭇거리며 그랬듯, K 역시 결전의 날 새벽에 그러했듯, 역사에 정면으로 마주선다는 건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진우가 그리고 K가 그 부채감으로 평생을 살아가듯, 역사를 망각하고 살아 가는 우리 또한 죄없는 희생자들에게 빚을 지고 살아가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단지, '광주'를 '제주 4.3'을 기억하자고 공부하자고 말하고 싶다. 물론 나는 이 말을 주변의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그럴 자격도 없다. 비겁하지만 온라인의 익명성에 기대 그렇게 하면 어떻겠냐고 한 번 말해보고 싶은 것이다. 꼭 어려운 일만은 아니지 않은가. 임철우의 "봄날"을 "백년여관"을 현기영의 "순이 삼촌"을 조정래의 "태백 산맥"을, 책이 아니라도 각종 TV 다규멘터리를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조금의 관심만 있으면 mbc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중 관심가는 것부터 골라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에서 불과 수십 년전에 어떤 잔인한 벌어졌는지, 아무 죄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일은 - 이런 말은 나도 싫어하지만 - 얼마간은 우리의 책무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문학이 다양할 수밖에 없고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다. 김영하는 김영하가 잘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박민규는 박민규식으로 계속 쓰고 임철우는 또 임철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야 된다고 믿는다. 내가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러번 말하고 있다고 해서 모든 작가들이 임철우처럼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결코 아니다. 자기가 쓰고 싶고 잘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쓰는 게 중요한데, 문제는 이제 임철우나 공선옥처럼 쓰는 작가가 거의 등장하는 않는다는 점이다. 모더니즘이니 리얼리즘이니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문학이 가지는 기능 중 하나는 분명 '사회적 메세지'라는 점을 기억하고 싶다. 어느 쪽으로건 간에 쏠림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해롭다. 그 무대가 예술계나 문학판이라면 더욱더. 그래서 임철우의 "백년여관"이 더욱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대학교 2학년 땐가 읽었던 방현석의 "랍스터를 먹는 시간"이후로 실로 오랜만에 읽은 무거운 소설이었다. 읽고 나서의 생각이나 느낌도 무겁지만 같이 읽고서 같이 무게를 감당한다면 조금은 가벼워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함께 무게를 감당할 사람들을 부르고 싶다. 그림자의 섬 영도로. 그 영도의 백년여관으로.

덧) 내가 말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쏟아낸 것 같아서 멋쩍고 영 개운치 않은 느낌이다.  그 개운치 못한 느낌은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으로 지워나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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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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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창작에서 상상력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질문의 대상을 박민규의 작품들로 한정시킨다면 그 비중이 대단히 클 거라는 사실을 부정할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데뷰작인 "지구영웅전설"로 시작해 가장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거쳐 첫 단편집인 "카스테라"까지 그의 소설이 남긴 첫 느낌은 '독특하다, 새롭다, 심지어 기이하기까지하다' 였다. 코믹스의 만화 캐릭터를 등장시켜 미국중심주의에 반기를 들고("지구영웅전설") 1할2푼5리의 승률로 시즌을 펼친 프로야구팀 삼미슈퍼스타에 대한 이야기로 낙오자에 대한 따뜻한 위안을 다른 한편으로는 프로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체제를 통렬하게 비판하는("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그의 작품들이 그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의 무거움과는 달리 산뜻하면서도 경쾌하게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은 독특한 상상력에서 출발하는 그의 창작기법 덕분이었을 것이다.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발랄한 문체와 보도 듣도 못한 기발한 표현이 여기에 더해지면서 소위 박민규 스타일이 완성되었다. 우주의 괴생명체까지 등장시키는 "카스테라"에 이르면 이를 더욱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역시 박민규답게 이번에는 탁구라는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핑퐁"으로 돌아왔다.(야구에 이어 탁구까지 그는 도구를 사용해 공을 때리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걸까.) "핑퐁"은 전작들보다 더한 형식의 파괴를 보여준다. 작가가 직접 그린 스케치를 삽입시키기도 하고, 마치 목소리의 크기를 조절하듯이 글자의 크기를 조절함으로써 대화의 느낌을 살라기도 하고, 일종의 액자라 볼 수 있는 단품들을 중간중간에 삽입시키는 실험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핼리 혜성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임의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을 삽입한 부분은 웃음을 자아낸다. '지하철 인생'을 사는 한 남자의 이야기는 굉장한 웃음을 자아내지만 읽고 난 후 생각해보면 아릿한 슬픔과 쓸쓸함을 안겨다준다. 내 경우에는 "카스테라"에 수록된 '야구르트 아줌마'가 떠올라 더욱 재미있었던 것 같다. "존 메이슨"이라는 작가의 이름으로 삽입된 환상적 느낌의 몇몇 소품들은 박민규의 상상력의 방향과 성격을 암시하는 듯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것 같다.

 소설의 출발설정은 '왕따 2명이 탁구를 치게 된다' 이다. 간단하지만 듣도 보도 생각지도 못한 설정이다. 우주가 꼭 '깜빡'한 것만 같은 2명의 왕따 중학생들이 우연히 탁구를 배우게 되고 마침내 인류의 운명을 걸고 인류 대표와 탁구 시합을 벌이게 된다. 결국 못과 모아이는 어이없는(!) 과정을 통해 경기를 승리로 이끌게 되고 세계를 언인스톨시키는 결정을 한다.

 이 독특한 설정과 형식의 소설을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역시나 첫눈에 들어온 건 기존 세계에 대한 비판과 부정이다. 전편을 통해 작가는 치수패로 상징되는 '다수인 척'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 '다수인 척' 살아가는 그들 때문에 '다수인 척'살아갈 수 없는 못과 모아이가 왕따의 피해자로 살아야한다는 인식이랄 수도 있겠다. 다소 뜬금없는 결론이기는 하지만 결국 못과 모아이가 세계를 언이스톨시키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도 기존세계에 대한 작가의 비판과 부정을 보여주는 일면이라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못과 모아이와의 관계였다. 한 쎄트로 당하면서도 대화라곤 한마디 나누지 않았던 그들이 탁구를 치면서 유대를 형성하고 종반부로 갈수록 내적 신뢰를 가지게 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탁구란 전적으로 갑과 을이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하는 불가피의 공간이 아니었을까. 한 쎄트로 당하는 수동적인 존재들로(동시에 무한한 타자로) 머물던 못과 모아이는, 그래서 써브를 하고 리씨브를 받는다는 느낌으로 대화를 주고받아야만 했던 것이다. 작가가 탁구라는 소재를 들고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보면서, 이 작품에서 탁구가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도 그 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못내 아쉬웠던 부분은 건너뛰는 듯한 결론이었다. 그렇게 성급하게 결론에 도달해야 했던 이유도, 그렇게 무책임하게 결론을 처리해야 했던 이유도 여전히 의문이다. 작품의 결론이야 전적으로 작가의 몫이겠지만 적어도 조금 더 개연성있는 결론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3편의 장편소설과 단편집 1권으로 박민규는 이제 어느정도 그 나름의 문학상을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는 인상을 준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박민규에 대한 대중의 시선도 이제 '듀스 포인트'라는 생각이 든다. 이전의 작품들에서는 그 독특함과 참신함만으로도 열광적인 지지를 얻어냈지만 이제 '도대체 뭔가'라는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고 앞으로의 작품도(그가 한국 문학에서 차지하는 비중만큼이나) 엄중한 심판의 잣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계속 듀스포인트로 남게 될지 2점을 연이어 따내서 앞서나갈지는 작가의 차기작에 달려 있다. 내게는 여전히 소중한 작가, 박민규의 다음 작품을 차분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1."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보면서 "핑퐁"생각이 많이 났다.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탁구라는 소재가 등장하고, 건전지를 섭식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영화계와 소설계를 대표하는 두 젊은 예술가의 영감이 어디에서 통한 건지 궁금하다.

2."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다시 읽고 싶다는 욕망을 고백하는 건 작가에게 실례일까 아님 찬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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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7-10-05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신 1,2가 저와 동일하시네요 ^^

얼음장수 2007-10-06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이 잘 안 달리는 서재라 예전에 쓴 글에 대한 댓글도 바로바로 확인이 가능해서 좋네요.
이걸 보니, 어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다시 봐야 될 것 같습니다. "카스테라"까지는 아주 좋았는데 핑퐁은 조금 아쉬웠지요.
 
코드 훔치기 - 한 저널리스트의 21세기 산책
고종석 지음 / 마음산책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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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책의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데 대학 신입생 시절 우연히 고종석의 책을 한 권 읽고 그의

문장력에 반한 기억이 난다. 그 후로도 가끔 칼럼이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이름을 볼 수 있었다.

글을 잘 쓰고 싶었던 내게 고종석은 닮고 싶은 논객 중 한 명이었다.

 "코드 훔치기"를 읽은 애초의 이유도 그의 문장을 느끼고 배워보기 위해서였다. 가뜩이나 무딘 펜

군생활하는 동안 촉까지 부러지는 사태까지는 가지 않기 위해 그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21세기를 40가지의 소주제로 나누어 모색하는 이 책을 통해 얄팍하나마 내 지적 허기를

채워보겠다는 욕심도 있었다. 고종석은 첨예한 주장들 사이에서 대체로 중립 내지는 절충을 택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자유주의, 세계주의, 개인주의, 다양성의 편에 섰다. 진중권의 글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는 없었지만 탄탄한 논리가 뒷받침된 그의 주장들은 책에 줄을 그어가며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해주었다. 그리고 나 역시 (탄탄한 논리를 세울 수는 없기에) 심정적으로 그가

옹호하는 자유주의, 세계주의, 개인주의, 다양성의 가치를 지지하기에 커다란 거부반응 없이 그의

글들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지나치게 서구 사상가의 이론과 책에 기대고 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으로 남는다. 이 지적에

대해서는 머릿말에서도 충분히 해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걸 검안하다러도 지나치다는 느낌은

지워지지 않는다. 주로 인용해 의존하다 보니 자산의 생각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인용한 저자의

생각을 전달하는 건지 헷갈리는 경우도 있었다.

 인용해 의존한 글의 취약함을 저자는 적절한 배치와 거기에 자신의 주장을 더하는 방법을 통해

잘 메워낸다. 자연스러운 논리와 정확한 표현으로 이루어진 문장도 자칫 어설픈 지식의 짜집기

정도로 흐를 법한 이 책을 그럴싸한 칼럼집으로 바꿔낸다. 첫번째로 다루는 사회주의의 미래에

대한 그의 분석, 자유와 평등 사이에서의 민주주의의 향후 모색, 민족주의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경계에 대한 논의 등은 이 책 중에서 으뜸으로 꼽을 만하다.

 인용의 무게에 눌려 종종 독서가 힘들기는 했지만 치밀한 글쓰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입문 수준 정도의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더 공부하고 싶은 건 해당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보충하면 알찬 지식으로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내 지식이 부족하고 내 세게관이 완전히 정립되지는 않아서 저자가 말하는 바에 끌려다니는 독서를 할 수밖

에 없기는 했지만 애초에 독서의 목표로 삼았던 것은 어느정도 얻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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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반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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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나도 이제 알랭 드 보통을 읽었다."라는 문장으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독후감을

시작해야만 할 것 같다. 그만큼 드 보통은 지난 몇년간 많이 읽히고, (특히 젊은이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는 작가이다. 난 사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작품을 챙겨 읽는 타입은 아니다. 오히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작품은 까닭 없이 피하는 쪽에 가깝다. 단지 그것이 너무 많이 읽힌다는

이유만으로. (모모나, 공중그네같은 책들도 여간해서는 손이 가질 않는다. 이런 괴취향 때문에 놓치게 되는

 명작들은 순전히 내 책임이다. 내 손해이고. 지금까지는 나의 책 선택에 대해서 대체로 만족하는 편이기 때

문에 당분간 이 괴취향은 지속될 듯 하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작품 중  내가 읽은 작품은 대개 그것이

 나오자마자 읽은 것이거나 신작을 낼 때마다 챙겨서 읽는 작가의  작품이 출간되었을 경우이다. 가끔 예외

적인 경우가 있는데, 바로 이 책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가 그러하다. 서점에서, 혹은 친구들의 가방 속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책이었는데, 앞서 말한

괴취향과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 책 표지 때문에 그냥 지나친 책이었다. 친한 친구 한 명이 졸졸

따라다니면서 이 책 좋다고 꼭 읽어보라고 했건만 난 친구의 권유를 차디차게 물리치고 당당하게

입대를 해버렸다. 그러다 생활 하면서 여자친구에 대해서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연애나 사랑에

 관한 책을 읽어보면 어떨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연애교과서니 지침서니 하는

것들은 영 내키지 않고. 그래서 떠올리게 된 것이 예전의 목소리가 허스키했던 여자 '친구'가

그토록 강추를 외치던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이다.

 

 글솜씨나 유머 감각은 들은 대로 깜찍할 정도로 훌륭했다. 누구 말마따나 이 사람은 글을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가끔 들 정도로. 이 책의 소재는 지극히 평범하다.

누구나 한두 번은 겪었을, 뻔한 정도로 진부하기까지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이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부터 이별을 하고 상처를 넘어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되는 과정이 드 보통만의 "썰"로 풀어진다. 평범한 소재로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작가로서 굉장한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지점에서 드 보통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참조할 만한 텍스트이다. 가령 "여행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꿈을 좇아서 현실로

들어가려는 시도이다" 라거나 "사랑에서건 돈에서건 오직 빈곤만에 체제에 의문을 품게 한다.

그래서 아마 연인들은 위대한 혁명가가 되지 못하는 것 같다"와 같은 문장은 단순히 뛰어난

문장력만으로는 써내가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본인이 현재 진행중인 연애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다 보니 읽는 내내 내 경우를 들춰 보게

되었고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 생각의 결과는 대부분의 커플들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커플일 거야' 라는 도취에 빠져 있지만 어지간해서는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는 뼈아픈

확인. (순간 예전 은희경의 단편 중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이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 커플은 조금은 더 특별할 거야라는 생각마저 포기할 수 없는 건 사랑에 빠진 자만의 특권일 터.

그런 생각까지 없다면 연애가 너무 밍밍하고 시들시들해 질 것 같다.

 

 연애 중이거나 경험이 있다면 자기 경험에 비추면서 흐뭇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연애 경험은

없더라도 연애에 관심이 있다면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이나 연애에 대해서 다 아는 척 혹은 신파조로 떠드는 글들(왜 인터넷에 잘 돌아다니는 그런 글들)에 거

부감을 가지신 분들이라면 당연히 비추!라고 외쳐야 하겠지만 그런 분들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1.도무지 책 내용에 대해서는 말하는 게 없는 것 같다. 책 내용이야 마우스 클릭 몇 번이면 바로

  얻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니 뭐.

2.10권을 읽으면 9권 정도는 저자에 대한 칭찬 일색이다. 좋다는 느낌이 오면 빠져들어버린다.

   글을 업으로 삼는 사람에 대한 얼마간의 존경이 포함된 것이리라.

3.내가 늘 고민하던 문제 중의 하나가 "진부한 것을 특별하게 표현해내는 능력" 에 관한 것이었는데

  드 보통에게서 배운 바가 많다. 내 능력으로 만드는 것은 순전히 내 노력에 달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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