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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여관
임철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교 새내기 시절에, 과방 한 구석에 낡은 서가가 하나 있었다. 책을 읽는 것보다 책을 구경하는 것을 즐겼던 내게 그 문고는 또 하나의 친구였다. 맑스주의, 소련과 중국의 공산당사, 자본주의, 한국 현대사, 대하 소설들이 주를 이루고 몇몇 교양도서들이 자리를 함께 하고 있던, 2003년도의 대학가 분위기와는 분명 차이기 있는 문고였다. 그 중 유난히 눈에 띠었던 책 중 하나가 임철우의 "봄날"이었다. 왠지 모를 공포를 주는 책표지에, 80년 광주라는 소재에 궁금해서 틈틈이 책을 집어 여기저기를 발췌독했던 기억이 난다. 어떤 이유에선지 온전히 책을 다 읽어내지는 못했지만, 그 당시의 느낌만큼은 지금까지도 꽤 또렷하다. 내게 그 책을 읽기를 권한 이가 없어 아쉽지만, 그 책을 읽기를 권하지 않았던 선배들을 탓하기에 2003년의 대학은 너무나도 '쿨'했다. '쿨', 해야만 했다.
이제와서, 느닷없이 그 임철우의 "백년여관"을 읽었다. 이번에는 제주 4.3,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5.18 광주민주화 운동으로 역사의 외연을 해방 이후의 한반도 전체로 확장시키는 작가적 의식의 변모를 보여준다. 단행본 한 권 분량에 담아내기엔 다소 버거운 듯하고, 실제로 책을 읽으면서도 부분부분 뭔가 디테일에 부족하다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애초에 "백년여관"은 역사서가 아니라 소설책이다. 디테일이 부족하다고 느꼈으면, 역사책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꾸는 건 독자의 몫일 수밖에.
어쩔 수 없이, 왜 "백년여관"을 쓰게 됐는지에 대한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진지함이 비웃음거리가 되고, 지난 역사는 무관심의 세례를 받는 지금에 왜 이 작가는 끈질기게 과거를 붙들고 늘어지는건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친절하게도 "해묵은 역사나 지나간 사건 따위를 얘기하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었을 뿐이다." 라고 작가 후기를 통해 속시원히 밝히고 있기는 하지만 속내는 그 사람들과 함께 역사도 기억하고 싶어했음은 쉽게 어림할 수 있다. 임철우에게 '광주'로 대변되는 한국의 처절한 현대사는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것이라고 나름대로 정리를 했다. 누구에게나, 절박하게 써야 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임철우에게는 그것이 우리의 현대사이지 않을까라고. 그것이 의무감 때문이든 죄책감 때문이든. 여기에 대해서 쓰지 않고서는 다른 작품으로 도저히 나아갈 수 없는 그 절박함이 좋은 작품을 가능하게 하고 독자들에게 진솔한 울림을 주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어쩔 수 없이, "백년여관"은 묵직한 슬픔과 역사에 대한 회환을 불러일으킨다. 동시에 "역사는 기억과의 전쟁이다"라는 금언의 책임감을 독자의 품에다가 안겨버린다. 그 책임감의 무게는 납덩이처럼 무겁다. 누구라도 그 무게를 피해, 도망치고픈 욕망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작중 진우(여러 정황상 진우는 임철우 자신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가 광주 항쟁 때 마지막 순간에 머뭇거리며 그랬듯, K 역시 결전의 날 새벽에 그러했듯, 역사에 정면으로 마주선다는 건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진우가 그리고 K가 그 부채감으로 평생을 살아가듯, 역사를 망각하고 살아 가는 우리 또한 죄없는 희생자들에게 빚을 지고 살아가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단지, '광주'를 '제주 4.3'을 기억하자고 공부하자고 말하고 싶다. 물론 나는 이 말을 주변의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그럴 자격도 없다. 비겁하지만 온라인의 익명성에 기대 그렇게 하면 어떻겠냐고 한 번 말해보고 싶은 것이다. 꼭 어려운 일만은 아니지 않은가. 임철우의 "봄날"을 "백년여관"을 현기영의 "순이 삼촌"을 조정래의 "태백 산맥"을, 책이 아니라도 각종 TV 다규멘터리를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조금의 관심만 있으면 mbc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중 관심가는 것부터 골라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에서 불과 수십 년전에 어떤 잔인한 벌어졌는지, 아무 죄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일은 - 이런 말은 나도 싫어하지만 - 얼마간은 우리의 책무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문학이 다양할 수밖에 없고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다. 김영하는 김영하가 잘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박민규는 박민규식으로 계속 쓰고 임철우는 또 임철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야 된다고 믿는다. 내가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러번 말하고 있다고 해서 모든 작가들이 임철우처럼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결코 아니다. 자기가 쓰고 싶고 잘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쓰는 게 중요한데, 문제는 이제 임철우나 공선옥처럼 쓰는 작가가 거의 등장하는 않는다는 점이다. 모더니즘이니 리얼리즘이니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문학이 가지는 기능 중 하나는 분명 '사회적 메세지'라는 점을 기억하고 싶다. 어느 쪽으로건 간에 쏠림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해롭다. 그 무대가 예술계나 문학판이라면 더욱더. 그래서 임철우의 "백년여관"이 더욱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대학교 2학년 땐가 읽었던 방현석의 "랍스터를 먹는 시간"이후로 실로 오랜만에 읽은 무거운 소설이었다. 읽고 나서의 생각이나 느낌도 무겁지만 같이 읽고서 같이 무게를 감당한다면 조금은 가벼워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함께 무게를 감당할 사람들을 부르고 싶다. 그림자의 섬 영도로. 그 영도의 백년여관으로.
덧) 내가 말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쏟아낸 것 같아서 멋쩍고 영 개운치 않은 느낌이다. 그 개운치 못한 느낌은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으로 지워나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