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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훔치기 - 한 저널리스트의 21세기 산책
고종석 지음 / 마음산책 / 2000년 10월
평점 :
품절
정확한 책의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데 대학 신입생 시절 우연히 고종석의 책을 한 권 읽고 그의
문장력에 반한 기억이 난다. 그 후로도 가끔 칼럼이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이름을 볼 수 있었다.
글을 잘 쓰고 싶었던 내게 고종석은 닮고 싶은 논객 중 한 명이었다.
"코드 훔치기"를 읽은 애초의 이유도 그의 문장을 느끼고 배워보기 위해서였다. 가뜩이나 무딘 펜
군생활하는 동안 촉까지 부러지는 사태까지는 가지 않기 위해 그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21세기를 40가지의 소주제로 나누어 모색하는 이 책을 통해 얄팍하나마 내 지적 허기를
채워보겠다는 욕심도 있었다. 고종석은 첨예한 주장들 사이에서 대체로 중립 내지는 절충을 택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자유주의, 세계주의, 개인주의, 다양성의 편에 섰다. 진중권의 글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는 없었지만 탄탄한 논리가 뒷받침된 그의 주장들은 책에 줄을 그어가며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해주었다. 그리고 나 역시 (탄탄한 논리를 세울 수는 없기에) 심정적으로 그가
옹호하는 자유주의, 세계주의, 개인주의, 다양성의 가치를 지지하기에 커다란 거부반응 없이 그의
글들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지나치게 서구 사상가의 이론과 책에 기대고 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으로 남는다. 이 지적에
대해서는 머릿말에서도 충분히 해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걸 검안하다러도 지나치다는 느낌은
지워지지 않는다. 주로 인용해 의존하다 보니 자산의 생각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인용한 저자의
생각을 전달하는 건지 헷갈리는 경우도 있었다.
인용해 의존한 글의 취약함을 저자는 적절한 배치와 거기에 자신의 주장을 더하는 방법을 통해
잘 메워낸다. 자연스러운 논리와 정확한 표현으로 이루어진 문장도 자칫 어설픈 지식의 짜집기
정도로 흐를 법한 이 책을 그럴싸한 칼럼집으로 바꿔낸다. 첫번째로 다루는 사회주의의 미래에
대한 그의 분석, 자유와 평등 사이에서의 민주주의의 향후 모색, 민족주의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경계에 대한 논의 등은 이 책 중에서 으뜸으로 꼽을 만하다.
인용의 무게에 눌려 종종 독서가 힘들기는 했지만 치밀한 글쓰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입문 수준 정도의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더 공부하고 싶은 건 해당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보충하면 알찬 지식으로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내 지식이 부족하고 내 세게관이 완전히 정립되지는 않아서 저자가 말하는 바에 끌려다니는 독서를 할 수밖
에 없기는 했지만 애초에 독서의 목표로 삼았던 것은 어느정도 얻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