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티처 - 제2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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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 학위, 명예, 성공, 지적 성취감, 이런 거창한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 끝에는 밥벌이가 있을 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 이상의 공부를 하고 그다음은? 취업이 있다. 좋은 환경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결과를 내고 그에 합당한 급여를 받는 일. 언어를 가르치고 언어를 배우는 일도 다르지 않았다. 한 나라의 언어에 반하여 그 아름다움을 익히고 싶어서 어학당을 찾는 이는 많지 않았다. 최소한 소통을 위해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타국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서수진의 『코리안 티처』속 어학당 학생도 그랬다. 취업을 위해 한국어학당을 찾았다. 불법으로 취업을 했고 수업 시간에 열심히 하는 이들도 적었다. 그들을 가르치는 한국어 선생 사이에는 못한 갈등이 발생한다. 당연한 일이다. 언어를 배우고 있지만 완벽하게 소통할 수 없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입장이라면 어떨까? 고학력자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는 자부심으로 좋은 선생이 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저 3월마다 계약서를 갱신하는 계약직, 시간 강사일 뿐이다. 『코리안 티처』는 H대 한국어학당을 배경으로 비정규직 강사 선이, 미주, 가은, 한희 네 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학기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학당 강사인 그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이들을 붙잡고 가르치는 건 둘째치고 어학당의 눈치까지 봐야 한다. 강평(강의평가)도 높고 학생들에게 인기도 좋아야 한다.


신입 강사 선이는 베트남에서 온 특별반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진짜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학생들의 고충을 알아주며 한국어를 잘 가르치는 선생님 말이다. 동료나 선배 강사, 그리고 책임강사와도 잘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타 대학의 어학당에도 강의를 나가는 강사들 옆에서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그러다 학생들이 선이의 사진을 인스타에 올린 걸 확인하고 어학당에 알리고 개선과 해결을 요구한다. 잘못한 게 없는데 잘못한 것만 같았다.


그런 선이와 가장 다른 사람은 미주였다. 이미 8년차 강사였고 어학당에서 요구하는 것들은 대체로 무시했다. 교재나 수업방식, 서류 업무에 대해 기본만 지키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선이와 같은 입장이지만 당당했다. 학생들과의 관계가 가장 힘들 뿐이다. 대책 없이 200명의 베트남 학생들을 데려오고 어학당을 돈벌이로만 여기는 원장과 학교를 상대로 싸우고 싶었지만 미주 역시 참아야 했다. 이곳은 미주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직장이니까.


우리는 정이야. 학생이 갑이고, 당신이 을이고, 바로 옆에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책임 강사들은 병이고, 나와 같은 평강사들은 정이야. 그러니까 당신이 강평으로 우리를 자르겠다고 위협하면서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거고, 여기 있는 강사들은 위협당하는 대로 당신 비위에 맞춰 멍청한 이야기만 하고 있는 거야. 나 역시 마찬가지고. (121쪽)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는 이가 있을까. 어쩌면 인기 강사인 가은을 향한 시선은 그랬을지도 모른다. 옷차림이나 외모에서도 자신감이 보였다. 가은은 항상 강평도 1위였고 강사들과 관계도 좋았다. 다른 강사를 의식하지 않았다. 스스로 운이 좋은 편이라 여겼다. 재계약에 대한 걱정은 없었고 학생과 동료에게 잘 베풀었다. 나중에 신입 강사 선이가 학생들이 올린 사진 문제로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고 놀란다. 가은은 학생과 연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웠다. 가은에게 이보다 좋은 직장은 없었다. 그만 둘 이유가 없었다.


선이, 미주, 가은과 다르게 한희는 책임강사였다. 말 그대로 다른 강사와는 다른 위치였다. 겨울학기를 마치면 무기계약직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강평은 낮았고 임신 초기에 무리를 해서 쓰러졌다. 어쩔 수 없이 휴직을 선택한다. 그래도 아침마다 단체방을 통해 어학당 상태를 확인한다. 한희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어학당에서 베트남 학생들 대신 중국인 학생들을 데려오고 이에 일할 사람이 필요하자 자원했다. 한희에겐 일이 필요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영국인 남자친구가 일을 그만두고 월급도 받지 못했다. 한희가 나서야 했다.


한희에게 유일하게 존재하는 시간은 과거였다. 미래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무엇을 하겠다고 말할 수 있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거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된다’라고 현재를 끌어와서까지 미래를 확신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미래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한희의 의지와 예상은 늘 배반당했다. (221쪽)


네 명의 강사를 통해 한국에서 여성으로 일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새삼 확인한다. 고학력의 여성 인력이 현장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무참함이 전해졌다. 소설 속 그녀들뿐일까. 생계를 위해 일선에 나선 수많은 여성들, 기혼이며 아이가 있는 이들에게는 얼마나 부당한 일이 많을까. 현재를 지탱하느라 급급해서 계획을 세우거나 수정할 수도 없었던 삶이 여기 있었다. 넘어졌다고 주저앉는 게 아니라 일어서는 여성의 삶 말이다. 저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그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소설에서 어떤 희망을 볼 수 있었던 건 바로 한희를 통해 보여준 한국어의 미래 시제에 대한 것이다. ‘한국어’라는 단적인 표현이지만 삶의 미래를 제시한 것처럼 느껴졌다.


한희에게는 미래 시제가 필요했다. 온전한 미래가 필요했다. 의지에도, 추측에도 기대지 않는 하나의 완전한 사실로 존재하는 미래가 필요해졌다. (중략) 한희는 의지 양태도 추측 양태도 아닌 시간으로 미래를 가르치는 방법을 연구할 것이다. (223쪽)


무리하게 어학원에 출근을 해서 조산을 한 한희가 스스로에게 필요한 미래를 떠올리며 다짐하는 부분에 나는 울컥하면서도 한희를 응원하고 있었다. 소설 속 네 명의 강사에게 불안과 두려움이 아닌 명확한 미래가 다가오기를 희망한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일하는 여성 모두에게 그러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그들이 살아온 아파트가 서 있었다. 아침 해가 잘 들고, 한희가 아끼는 고무나무 화분이 있는 곳. 이제는 그곳에서 아기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한희는 지금 아주 분명한 미래를 보고 있었다. (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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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의 늦잠은 사라졌다. 귀가 아프고 병원에 다니면서 아침에 밥을 먹으면서 그랬다. 늦잠의 달콤함은 다시 찾을 수 있으니까 괜찮다. 건강한 귀를 다시 찾는 건 어렵다. 꼬박 한 달 동안 약을 먹고 있다. 주말에 만난 의사는 많이 좋아졌다면서도 다음 주에도 한 번 더 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제 끝이 보이니까. 모니터를 통해 보여준 나의 오른쪽 귀는 맑음은 아니었다. 투명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불안은 많이 사라졌다. 이제는 통증도 없다. 그러니 종종 잊는다. 나의 귀가 아직 아프다는 걸 말이다.

마음이란 이토록 간사하다. 처음 귀가 아파서 병원을 찾고 주사를 맞고 처방된 약을 먹으며 들었던 마음과 한 달이 지난 지금 병원을 방문하고 약을 먹는 마음은 같지 않다. 나아지고 있다는걸, 괜찮아지고 있다는걸, 몸으로 느끼면서 나는 처음의 마음을 잃어버렸다. 내 귀의 소중함에 대해서 생각하는 마음도 줄어들었다. 밥을 먹고 약을 먹을 때에야 확인한다. 아, 나는 여전히 귀가 아픈 사람이구나. 여전히 귀는 아직 회복 중이구나.


무엇이든 필요한 시간이 있다. 뭔가를 배우데 걸리는 시간, 일을 하는 시간, 집안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시간, 밥을 먹는 시간, 양치질을 하는 시간. 짧게는 몇 초부터 몇 시간, 몇 날, 몇 년까지. 누군가에게 그 시간은 즐겁고 누군가에게 그 시간은 힘들다. 가장 공평한 게 시간이라 하지만 그렇게 느끼는 이는 많지 않다. 배우는 걸 생각해보자. 똑같은 교구, 교수가 아니라면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지 않는다. 어떤 이는 최고의 교재와 강사가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독학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집안을 청소할 때도 최신형 청소기와 구형 청소기를 사용하는 건 다르니까.

모두에게 똑같은 시간이 주어지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은 다르다. 2020년의 시간도 그렇게 흐를 것이다. 코로나19로 병상에 있거나 그들을 지키는 이들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코로나 학번이라 불리는 20학번 아이들, 21학번을 준비하는 고3에게도 올해는 남다를 것이다. 아니,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그럴 것이다. 봄이 지나고 여름, 가을을 맞으면서 우리는 조금씩 낙담하고 지친다. 올 초에 가졌던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믿음, 괜찮아진다는 다짐, 서로를 격려하던 웃음. 잃어버린 마음, 희망을 품었던 마음, 기대했던 마음, 그 마음이 필요하다. 따뜻한 차 한 잔, 따뜻한 말 한마디, 이런 책 한 권. 당신이 잃어버린 시간과 마음이 도착하는 가을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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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10-27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 아픈 게 오래 갔지만 그래도 이제 끝이 보일 듯하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그 시간을 보낼 때는 시간이 안 가는 듯한데 지나고 나면 빨리 간 것 같기도 하죠 한해라는 시간도 그렇군요 시월 얼마 남지 않았고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니... 자목련 님 앞으로는 건강 잘 챙기세요 아프지 않으면 아플 때 일을 잘 생각하지 못하기도 해요 다 그렇지 않나 싶어요 마지막까지 약 잘 드시고 잘 낫게 마음 편하게 가지세요


희선

자목련 2020-10-27 14:44   좋아요 1 | URL
네, 끝이 보여요, 근데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걱정입니다. 조심하며 지내야 할 것 같아요.
정말 2020년도 2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어요. 희선 님도 건강 잘 챙기시고 평온한 오후 보내세요.
항상 감사합니다.
 
머지않아 이별입니다
나가쓰키 아마네 지음, 이선희 옮김 / 해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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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다양한 직업이 있다. 어디서 일하든,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 그 일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무턱대고 돈을 많이 준다는 이유로, 업무가 쉽다는 생각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그게 한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 그 마지막을 준비하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가쓰키 아마네의 『머지않아 이별입니다』의 주인공 시미즈 미소라의 일의 경우도 그랬다. 그녀는 대학 졸업반이지만 취업을 하지 못했고 한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던 반도회관의 연락을 받는다. 원하는 분야는 부동산 업무지만 현재는 장례식에서 일하고 있다. 장례식장을 떠올리면 뭔가 슬픔이 몰려온다. 그 슬픔 때문에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되도록 가고 싶지 않은 곳 가운데 하나가 장례식장이니까.


소설은 장례식장 빈도회관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죽음에 대해 들려준다. 그러니까 미소라에게는 고객들의 사연이라고 할까. 미소라에게도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자신이 태어나기 하루 전 언니가 죽은 것이다. 그 언니의 영향으로 미소라는 죽은 자를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어쩌면 장례식장에서 그녀는 꼭 필요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미소라는 반도회관에서 특별한 죽음의 장례식을 담당하는 우루시바라와 함께 일을 진행한다. 우루시바라는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베테랑이다. 그랬기에 그에게는 자실이나 사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죽음의 장례 의뢰가 많다.


살아있는 동안 한 번도 주목받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온 이가 마지막으로 분신을 통해서라도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이의 장례식, 임신한 채로 사고로 죽은 임산부의 장례식, 인해 아파서 제대로 뛰어다니지 못한 어린아이의 장례식, 병으로 떠난 남편을 부정하는 아버지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결국 죽음을 맞은 아내, 모두 안타까운 사연이다. 온전히 이별하는 일은 죽은 자와 남겨진 자 모두에게 힘겨운 일이다. 특히 미소라가 볼 수 있는 영혼에게는 더욱 그랬다. 비슷한 나이에 죽은 언니에 대한 기억이 더욱 컸다. 자신의 장례식에 가방을 들고 찾아온 임산부, 엄마 곁에서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 미소라는 그들을 이야기를 들어준다. 소설이니까 하고 생각하다가도 만약 그런 이들이 가족이라면 어떨까 싶다. 그렇다면 미소라 같은 이가 존재하기를 바라는 이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이 세상을 떠났다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아. 이런 식으로 후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승화하는 수밖에 없지. 장례는 그런 자리이기도 해.” (40쪽)


우루시바라의 말처럼 장례는 가족에게 이별의 시간이자 마지막으로 무언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 고인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일을 집도하는 일이 참 대단한 일이라는 걸 느낀다. 소설은 장례식장의 업무와 죽음에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미소라의 경우엔 죽은 언니와 심장이 아픈 할머니를 통해 죽음에 대해 더 가까이 다가간다. 동생을 무척 기다린 언니, 자신을 향한 애정을 무한정 표현했던 언니가 미소라가 태어나기 하루 전 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을 할머니를 통해 듣고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


미소라는 장례식장에서 다양한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 일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계속해서 하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읽는다. 선뜻 장례식장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걸 이해할 수 없지만 누군가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일이라는 걸 생각하면 무척 의미 있는 일이구나 싶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떤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죽음을 맞이한다. 아무리 의학이 발전했다 해도 인간에게는 반드시 끝이 있다. 남겨진 사람들은 죽은 자를 애도하고 슬퍼하고 배웅하며 가끔은 삶에 대해 생각한다. 면면히 이어지는 슬픔의 감정은 시대와 관계없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97쪽)


우리는 모두 안다. 죽음이 찾아오는 걸 말이다. 그럼에도 죽음을 생각하거나 준비하는 일은 되도록 미루려 한다. 『머지않아 이별입니다』 란 제목이 애틋하게 다가온다. 머지않은 시간, 예고 없이 찾아오는 죽음은 그 머지않은 시간도 허락하지 않는다. 죽음을 다룬다고 해도 좋을까. 죽음을 만나고 죽음을 만지는 공간인 장례식장을 다룬 소설이지만 꺼림직하거나 무서운 기운이 아닌 따뜻하고 포근한 소설이다. 아마도 그건 떠난 이를 영원히 기억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을 떠올리면 아프고 슬프지만 우리 삶은 죽음과의 동행이라는 걸 알기에 이제는 그 슬픔도 삶의 힘이라는 걸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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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0-23 0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을 많이 경험할 수록 (간접이 대부분이겠죠)그리고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해볼 수록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낼 수 있을 뿐아니라,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슬픔이 사라진데요. 죽음과 관련된 어느 책에서 읽었어요. 어쩌면 삶과 가장 맞닿아 있는 것이 죽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어요.

자목련 2020-10-26 09:55   좋아요 0 | URL
네, 말씀처럼 삶과 죽음은 하나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합니다.
많이 쌀쌀해졌어요. 감기 조심하세요^^
 


“입을 것 같은 건 버리는 거야.”

“자주 입는 옷만 남기고?”

“웅, 좋아하고 즐겨 입는 것만.”


작은언니와 나눈 대화다. 계절이 바뀌면서 정리하는 옷에 대해서다. 언니는 잘 버리지 못한다. 나의 기준으로 그렇다. 그러니 서랍장에는 옷이 넘쳐나고 빽빽한 옷걸이도 옷이 가득하다. 모두가 느끼는 것처럼 옷이 이렇게 많아도 입을 만한 옷이 없고 어디 입고 나갈 옷이 없다. 그렇다고 비싼 옷을 장만한 것도 아닌데 버릴 수도 없는 마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최고의 인테리어는 정리’란 말에 격하게 공감하면서도 정리는 늘 어렵다. 가지거나 지니고 있을 필요가 없는 물건을 버리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물건도 그러니 마음이야 오죽할까.


언니와 나눈 대화를 생각하면서 ‘입을 것 같은’에 ‘읽을 것 같은’을 대입했다. 뜨끔했다. 언니가 보기엔 내 책장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책들. 책꽂이에 가지런하게 꽂힌 책 말고도 쌓아둔 책들이 많다. 굴러다니는 띠지, 포스트잇이나 노트도 그렇다. 그러니 언니에게 충고할 입장이 아니다. 아무튼 그래서 몇 가지 물건을 버리기로 했다.


나는 컵을 좋아한다. 머그, 찻잔, 커피잔, 유리컵, 맥주잔, 모두 좋아한다. 수납할 공간이 있다면 장식장을 들려서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가 나간 컵도 버리지 못하고 볼펜 통으로 쓰거나 머리끈과 머리핀을 놓아둔다. 지금 막, 돼지 저금통을 대신해 사용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고 컵을 골랐다. 그런데 결국 고른 건 겨우 3개 정도다. 사용한 지 오래된 컵, 이미 필기구를 담아두었던 컵, 사용하지 않고 내버려 둔 컵. 그러면서 텀블러도 골랐다. 같은 디자인이 두 개인 경우, 이벤트 사은품으로 받은 경우. 더 고르고 싶지만 눈치가 보였다. 


조금씩 이렇게 골라내는 연습을 하면 괜찮아질 것이다. 소중한 의미를 부여한 물건이라 할지라도 사용하지 않거나 자리만 차지하는 것들은 과감하게 이별을 하는 게 맞다. 이렇게 버릴 생각을 하고 다짐을 하면서도 또 책을 둘러본다.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김숨의 『떠도는 땅』, 올가 토카르추크의 『낮의 집 밤의 집』, 한지혜의 신간 소설집 『물 그림 엄마』까지. 뭐 3권 정도야 괜찮은 거 아닌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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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10-19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컵이며 텀블러 좋아합니다. ㅎㅎ 어디 여행가면 기념품으로 꼭 예쁜 머그컵 같은걸 사와서 쟁여둔다죠. ㅎㅎ

자목련 2020-10-20 11:31   좋아요 1 | URL
컵은 사랑입니다. ㅎㅎ
그래서 버리는 게 더 힘듭니다. ㅠ,ㅠ

scott 2020-10-19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두개를 가득채웠던 책들은 이사하기전 몇달에 걸쳐서 나눠주거나 중고로 팔아버리고 소장용이 아닌이상 이제는 이북으로 보게 되네요.
대신, 에코백을 모아요 박물관 미술관 셔틀하면서 시즌별로 ㅎㅎ

자목련 2020-10-20 11:30   좋아요 1 | URL
와, 대단하시네요. 소장용의 범위를 좁혀야 할 것 같아요. ㅎ
언제 모은 에코백 좀 보여주세요. 에코백도 좋아요!!
 


숙면을 위해서 좋아하는 커피를 줄이고 있다. 하루에 세 잔 정도 마시는 커피를 저녁에는 마시지 않는다. 그건 힘든 일이다. 그런데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봄에는 제법 효과를 봤다. 계속 실천하지 않아서 몸이 화를 내는 걸까. 여름에는 더 많이 마신 것 같다. 열대야로 자다가 깨는 일이 익숙해서 그랬던 걸까. 최근에 귀가 아픈 이후로 종종 깬다. 화장실에 다녀와서 잠들려고 뒤척이는 시간이 너무 길다. 스마트폰을 잡지 않으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으니 자꾸만 손이 간다. 악순환이다.

지난주에 발표된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루이즈 글릭’이란 시인이다. 나는 처음 듣는 이름의 시인다. 세상에 시인은 이렇게 많구나. 번역된 시집도 없다. 좋은 시를 엮어놓은 시집에 수록된 시가 전부인 듯하다. 그러니 올해는 노벨문학상 수상작의 작품을 읽거나 구매할 일이 없을 것 같다. 발 빠르게 준비한 출판사가 빠른 시일 내 출간한다 해도 현재는 그렇다.

읽고 싶은 책은 언제나 넘쳐나니까. 기다렸던 책의 입고 소식처럼 반가운 게 또 있을까. 김이설 작가의 신간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이다. 이미 밀리의 서재를 통해 전자책으로 만난 이도 있다. 그래서 종이책을 더 기다렸다. 이 계절과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한때 필사를 했던 적이 있다. 손글씨는 아니었지만 자판으로 옮기는 것도 노력이 필요했다. 김숨의 초기 단편이었다. 현재 김숨의 소설과는 다른 결이었다. 쓰고 나니 그 단편집이 읽고 싶다. 기대하는 동화와 에세이도 있다. 『5번 레인』, 『다큐하는 마음』를 읽는 시간도 즐겁겠다.

가을이라 냉장고 여기저기 과일이 많다. 파지 사과는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다. 엊그제 방송을 보니 우리가 선호하는 빨간 사과는 인위적으로 노력해서 생산된다고 한다. 이제는 좀 더 현명한 소비를 해야겠다. 이렇게 작고 귀여운 사과도 있다. 한 입에 쏙 넣을 수 있는 디저트 사과라고 할까.






깊은 잠에 빠져들기 위해 커피를 더 줄여야 하는 걸까. 아니면 새벽에 굳이 잠들려 하지 말고 다른 무언가를 하는 게 좋을까. 처음 맞이하는 날들도 아닌데 잠들지 못하는 건 고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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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10-13 1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의 새벽을 열어주는 세가지가 자목련님 페이퍼의 제목과 같습니다. 사과, 커피, 책이요. 책 대신 인터넷이 될때도 많지만 (^^), 사과와 커피는 변함이 없는, 꼭 필요한 두가지랍니다. 파지사과 애용자예요.
김이설 작가의 소설 출간 소식, 저만 반갑게 느껴지는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그동안 꾸준히 출간하셨을텐데 제가 그동안 우리 소설을 너무 안읽고 있었어요.

자목련 2020-10-14 10:20   좋아요 0 | URL
괜히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ㅎ 파지사과 애용자라니 더 반갑고요.
김이설 작가의 장편이 무척 오랜만이라 더욱 기대가 커요. 이번 기회에 함께 읽으면 더 좋겠습니다!

stella.K 2020-10-13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과는 자두만한가 봅니다.
사과의 붉은 색이 인위적으로 만든 거라니 처음들어 보네요.
그럼 사과의 본래의 책은 뭐였을까 싶네요.
초록색? 아니면 노란색?
저도 나이가 드니 커피 세 잔 마시기가 부담스럽더군요.
커피는 수면과 그다지 연관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너무 늦게만 마시지 않는다면.
저는 오히려 아침과 저녁으로만 먹고 있습니다.
잠은 갱년기라 그런지 TV 켜놓고 잘 때가 많고, TV 끄면 말똥말똥하고
자다가도 몇 번씩 깨고. 이젠 그러려니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자목련 2020-10-14 10:2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자두만해서 한 입에 쏙 들어가요.
방송에서 과수원을 하는 분이 나와서 말씀하시는데 소비자가 붉은 사과를 선호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약간 파란, 덜 붉은 사과가 덜 익은 게 아니라고요.
커피가 잠과 상관이 없다면 저녁에도 마시고 싶은데, 제 몸을 길들여야 할까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