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것 같은 건 버리는 거야.”

“자주 입는 옷만 남기고?”

“웅, 좋아하고 즐겨 입는 것만.”


작은언니와 나눈 대화다. 계절이 바뀌면서 정리하는 옷에 대해서다. 언니는 잘 버리지 못한다. 나의 기준으로 그렇다. 그러니 서랍장에는 옷이 넘쳐나고 빽빽한 옷걸이도 옷이 가득하다. 모두가 느끼는 것처럼 옷이 이렇게 많아도 입을 만한 옷이 없고 어디 입고 나갈 옷이 없다. 그렇다고 비싼 옷을 장만한 것도 아닌데 버릴 수도 없는 마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최고의 인테리어는 정리’란 말에 격하게 공감하면서도 정리는 늘 어렵다. 가지거나 지니고 있을 필요가 없는 물건을 버리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물건도 그러니 마음이야 오죽할까.


언니와 나눈 대화를 생각하면서 ‘입을 것 같은’에 ‘읽을 것 같은’을 대입했다. 뜨끔했다. 언니가 보기엔 내 책장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책들. 책꽂이에 가지런하게 꽂힌 책 말고도 쌓아둔 책들이 많다. 굴러다니는 띠지, 포스트잇이나 노트도 그렇다. 그러니 언니에게 충고할 입장이 아니다. 아무튼 그래서 몇 가지 물건을 버리기로 했다.


나는 컵을 좋아한다. 머그, 찻잔, 커피잔, 유리컵, 맥주잔, 모두 좋아한다. 수납할 공간이 있다면 장식장을 들려서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가 나간 컵도 버리지 못하고 볼펜 통으로 쓰거나 머리끈과 머리핀을 놓아둔다. 지금 막, 돼지 저금통을 대신해 사용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고 컵을 골랐다. 그런데 결국 고른 건 겨우 3개 정도다. 사용한 지 오래된 컵, 이미 필기구를 담아두었던 컵, 사용하지 않고 내버려 둔 컵. 그러면서 텀블러도 골랐다. 같은 디자인이 두 개인 경우, 이벤트 사은품으로 받은 경우. 더 고르고 싶지만 눈치가 보였다. 


조금씩 이렇게 골라내는 연습을 하면 괜찮아질 것이다. 소중한 의미를 부여한 물건이라 할지라도 사용하지 않거나 자리만 차지하는 것들은 과감하게 이별을 하는 게 맞다. 이렇게 버릴 생각을 하고 다짐을 하면서도 또 책을 둘러본다.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김숨의 『떠도는 땅』, 올가 토카르추크의 『낮의 집 밤의 집』, 한지혜의 신간 소설집 『물 그림 엄마』까지. 뭐 3권 정도야 괜찮은 거 아닌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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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10-19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컵이며 텀블러 좋아합니다. ㅎㅎ 어디 여행가면 기념품으로 꼭 예쁜 머그컵 같은걸 사와서 쟁여둔다죠. ㅎㅎ

자목련 2020-10-20 11:31   좋아요 1 | URL
컵은 사랑입니다. ㅎㅎ
그래서 버리는 게 더 힘듭니다. ㅠ,ㅠ

scott 2020-10-19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두개를 가득채웠던 책들은 이사하기전 몇달에 걸쳐서 나눠주거나 중고로 팔아버리고 소장용이 아닌이상 이제는 이북으로 보게 되네요.
대신, 에코백을 모아요 박물관 미술관 셔틀하면서 시즌별로 ㅎㅎ

자목련 2020-10-20 11:30   좋아요 1 | URL
와, 대단하시네요. 소장용의 범위를 좁혀야 할 것 같아요. ㅎ
언제 모은 에코백 좀 보여주세요. 에코백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