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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의뢰: 너만 아는 비밀 ㅣ 창비교육 성장소설 14
김성민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8월
평점 :
시험이 내일인데 학교를 가지 않아될 일이 생기기를 바란 적이 있다. 지금은 시험을 망치면 어때서, 시험이 뭐 대수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도 아니었는데 스트레스는 받을 만큼 받았다. 만약 이런 나에게 비밀스러운 의뢰를 할 수 있는 사이트가 나타난다면 무시할 수 있을까?
김성민의 『오늘의 의뢰: 너만 아는 비밀』는 그런 사이트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오늘의 의뢰’는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렵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을 의뢰할 수 있는 비밀 채팅방이다. 매일 비번이 바뀌고 소수만 참여할 수 있다. 개인 정보에 대한 언급은 할 수 없다. 의뢰가 올라오면 의뢰를 해결한 사람이 다음 의뢰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누군가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해 줘야만 내가 원하는 일도 의뢰할 수 있다.
익명성이 보장된 공간에 올라오는 의뢰는 학교 반, 이름까지 구체적이다. 전교 1등 하는 아이가 시험을 망치게 해 달라는 의뢰, 좋아하는 여학생의 신상 정보에 대해 알려달라는 의뢰. 지역 청소년이 드나드는 채팅방이기에 알려고 하면 의뢰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지만 그런 언급을 하면 영원히 사이트 이용이 금지된다.
채팅방의 의뢰와 해결을 시작으로 호기심을 불러온 소설은 중학교 2학년 해민과 해민의 집 2층으로 이사 온 도경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해민은 반찬가게를 하는 엄마와 둘이 산다. 해민의 학교로 전학을 온 도경의 조용하고 친절한 모습과 달리 소문은 수상하다. 전 학교에서 학폭으로 강제전학을 왔다는 것이다. 조금씩 도경과 친해진 해민에게 도경은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 도경을 괜찮게 본 아이는 또 있었다. 모범생 소정이다. 곤란한 상황에서 자신을 도와준 도경과 친해지고 싶었다. 그런데 도경의 곁에는 해민이 있었다.
소정은 시험 성적, 동아리 활동, 학교 친구들과의 관계까지 좋아서 칭찬을 받는 아이였다. 그럴수록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커졌다. 국제중 입시 실패로 스스로를 가만두지 않았다. 소정과 해민은 반은 다르지만 문예 동아리 활동을 같이 했다.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고 완벽에 가깝게 노력하는 자신과 다르게 해민은 간절함도 없고 열심히 하지도 않는데 칭찬을 받는다. 소정은 이해할 수 없는 아이 해민에게 묘한 경쟁심을 느낀다.
완벽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시험 성적도 동아리 활동도 인간관계도 뭐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선생님들께는 모범적이고 예의 바른 학생이, 아이들 사이에서는 친절하고 매력 있는 친구가 되어야 한다. 잘났지만 잘난 척은 하지 않아야 하고, 내세우지 않지만 드러나야 하는 법이다. (39쪽)
그러던 차에 소정과 해민은 문예 대회에 참여한다. 소정은 자신이 대상을 받을 거라 생각했는데 해민이 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오늘의 의뢰’에 해민의 글이 표절임을 밝혀달라는 의뢰가 올라온다. 의뢰한 사람이 소정임을 아는 도경은 자신이 의뢰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도경도 비밀 채팅방에 참여하고 있었다. 우연하게 그 사실을 알게 된 해민은 도경을 통해 사이트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다.
소정이 의뢰한 일을 도경이 아니라 다른 아이가 해결한다고 했다면 해민의 글은 표절한 게 됐을 것이다. 어쩌면 그럼 해민도 억울함과 분노를 해결할 방법으로 오늘의 외뢰에 의뢰할 수도 있다. 물론 소설 속 해민과 도경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오늘의 의뢰’는 그런 마음을 이용한 사이트라 할 수 있다. 누군가 속상하고 아픈 마음에 공감하는 것 좋지만 대리 복수를 실행하는 건 정당화될 수 없다.
‘오늘의 의뢰’에 등장한 의뢰는 청소년의 일상을 통해 그들의 고민과 갈등을 보여준다. 한편으로 학교생활, 친구 문제, 부모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터놓을 공간과 대상이 없다는 걸 말한다. 현직 교사인 작가는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포착해 탄탄하게 소설로 그려냈다. 그러기에 소설을 읽으며 실제로 이런 채팅방이 존재하는 건 아닐지 걱정하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스스로 해결하려 노력하다 혼자 해결할 수 없다면 도음을 청하는 일이다. 친구나 선생님, 부모님과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조금씩 방법이 보인다. 그건 청소년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대화와 소통이 사라진 시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질문하게 만드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