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생애 소설Q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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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지쳐 아무것도 볼 수 없을 때, 여기만 벗어나면 괜찮아질 것 같은 마음이 요동칠 때, 다른 곳을 갈망한다. 누구나 살면서 느껴봤을 것이다. 그곳이 어디든 이곳만 아니면 상관없을 것 같은 어떤 절박함. 그곳에 누군가 아는 이가 있어 기댈 수 있다면 떠나는 일은 쉽다. 시징, 윤주, 미정도 그랬다. 업무라는 목적이 있었지만 시징에게 한국의 영등포는 연인 은철의 공간이었다. 방송작가를 그만둔 윤주가 우연하게 연락된 미정이 있는 제주도로 떠난 이유도, 미정이 제주로 이주를 결심한 건 보경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윤주는 영등포의 작은 원룸을 시징에게 빌려주고 제주로 떠난다. 미정이 머무는 공간 역시 누군가에게 빌린 공간이다. 자신의 공간을 내주고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는 건 잠시나마 타인의 삶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홍콩에서 한국으로 온 시징도 그러했다. 2014년 은철에게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의 방을 내주었다. 처음엔 그게 사랑인 줄 몰랐다. 조해진의 『완벽한 생애』은 시징, 윤주, 미정의 공간인 홍콩, 영등포, 제주도를 교차하며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른 삶을 살았지만 한 공간을 공유하며 그들은 조금씩 서로를 생각하고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말들을 털어놓는다.


시위 속에서 쓰러진 시징을 도와준 은철, 둘 사이의 만남과 사랑은 3개월 정도였지만 6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 시징은 영등포에서 은철의 흔적을 찾고자 한다. 윤주의 방에서 은철을 떠올리는 시징, 알 수 없는 끌림으로 시징에게 자신의 마음을 메모로 남긴 윤주. 윤주는 함께 일하던 이들에게 상처를 받고 일을 그만두었다. 안간힘을 쓰면서 살아온 지난 모든 시간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미정의 연락에 계획 없이 제주로 왔다.


인권법재단 간사로 일했던 미정은 지금은 제주에서 새 공항 반대 활동가로 일한다. 미정에게 어떤 신념이 있는 건 아니다. 제주로 미정을 부른 보경언니와 지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미정도 법조인의 꿈이 있었지만 모의재판에서 다른 사건으로 인해 꿈을 접었다. 국가 폭력에 대한 사건으로 상대가 베트남전을 예로 들면서 무너졌다. 미정의 아버지는 베트남 참전 군인이었다. 자신이 누군가 변호한다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버지에게 그 시절에 대해 물을 수도 없었다. 진실을 알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 끝을 확신할 수 없는 신념은 애초에 갖지 않아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일까. 어째서 고민을 거듭하고 애쓰며 투신할수록 생애는 엉망이 되는지, 미정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85~86쪽)


“윤주야, 난 여기가 편하고 사실 갈 데도 없어. 그게……”

“그게 내 잘못인 거야?” (101쪽)


그게 내 잘못이냐는 미정의 질문은 윤주에게 화살처럼 박힌다. 아니 우리 모두에게 그렇다. 윤주가 잘못한 게 무엇일까.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고 더 나은 삶을 원했을 뿐인데 그게 잘못일까. 시장, 윤주, 미정의 삶을 통해 우리는 이웃과 사회의 모습을 목격한다. 시징을 통해 홍콩의 우산 혁명과 독립 시위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윤주에게서 결혼, 아이, 미래를 포기하며 하루하루 견디는 이들을 보고 미정과 미정의 아버지는 베트남전의 상흔과 제주를 비롯한 여러 곳의 난 개발을 생각한다.


우리는 때로 타인의 공간을 통해 자신의 그것을 본다. 타인의 삶을 통해 나의 삶을 돌아본다. 그러나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는 삶들이 있다. 시징에는 윤철이 그랬고, 윤주에게는 연인 선우가 그랬고 미정에게는 아버지가 그랬다. 어쩌면 그들은 서로에게 상처가 될까 봐 진심을 내보여줄 수 없어서 얇은 막 같은 걸 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서야 서투른 화해를 하거나 이전보다 조금 더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을 갖는다. 은철의 공간이었을 영등포에서 제대로 이별하는 시징, 두렵지만 아버지에게 베트남 참전 이야기를 들은 미정, 멀리서 선우를 지켜보며 그를 이해할 것 같은 윤주.


부유하는 삶은 불완전해 보인다. 하지만 부유하고 떠돌면서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기도 하고 몰랐던 상처를 발견하기도 한다. 조해진 작가는 언제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의 삶의 고단함을 말한다. 혼자가 아닌 누군가 만나고 그들에게서 위로받는 생의 아름다움도 놓치지 않는다. 누군가 있어 떠날 수 있고 돌아올 수 있는 생의 여행이라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거라고.


내 좋은 친구는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라고, 이 행성에 잠시 머물다가 가는 손님일 뿐이라고요. 친구의 그 말을 상기할수록, 그가 나와 헤어진 뒤에야 다른 사람과의 정착을 결심한 걸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저 그의 생애에서는 필연적인 과정을 밟고 있는 것뿐이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요. 그것이 우리 각자의 여행이겠죠. 물론 필연적인 과정들을 통해 생애가 완벽해지는 건 아닐 것입니다. 완벽할 필요도 없을 테고요. (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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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 피플, 나라는 세계 - 나의 쓸모와 딴짓
김은하 외 지음 / 포르체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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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 하는지 알아도 성공한 인생이다. 즐기는 일이 직업이 되었을 때 마냥 즐겁기만 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끊임없이 다른 무언가에 관심을 추구하고 다가가는 삶은 지루하지 않다. 그럼 그런 이들은 어쩌다 그런 즐거움에 빠졌을까. 어떤 이는 필요에 의해, 어떤 이는 단순한 호기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게 다르고 그 취향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제목부터 힙하게 다가오는 『힙 피플, 나라는 세계』에서 크리에티브 디렉터, 서점 MD, 라디오 작가, 신문기자, 출판사 대표, 브랜딩 전문가, 갤러리 대표, 정신과 의사 SNS 마케팅 대표까지 9명의 이야기를 듣는다. 부캐와 딴짓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지는 일상, 당신의 딴짓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힙 피플, 나라는 세계』는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9명의 딴짓 혹은 좋아서 하는 일에 대한 에세이로 페이스북 사용자라면 이미 친구가 되었거나 즐겨찾기를 해 두었을지도 모른다. 9명의 저자는 현재 자신의 일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와 현재의 위치에 이르까지 어떤 시간을 지내왔는지 알려준다. 성공의 노하우라고 해도 좋으며 한편으로는 다양한 SNS의 세계 가운데 페이스북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페이스북의 이용기이자 애용기라도 해도 맞을 듯하다. 페이스북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저자 익숙한 이름이 있어 그의 이야기를 먼저 읽었다. 바로 온라인 서점 예스24의 MD 손민규다.


책을 파는 서점에서 그가 하는 일과 그것을 페이스북을 통해 어떻게 홍보했는지 알려준다. 이건 뭐 다 예상한 일이다. 흥미로운 건 어떤 종류의 글이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가 하는 건데 ‘ 더 팔린 책, 더 알리고픈 책’, ‘쓸모없지만 재밌는 기획전’ 같이 호기심 유발의 글이었다. 책을 좋아하기에 읽으면서도 궁금해져서 다시 찾아보기도 했다. 그는 유머를 중요하게 여기며 웃음에 대해 진심이라고 고백한다. 또한 페이스북 게시글에 대한 나름의 노하우도 전한다. 그가 알려주는 건 성실함과 대중성이다. 성실함이란 친구의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누르는 일, 친구 신청하기와 받아들이기에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블로그와 다르지 않았다. 그곳이 어디든 사용자는 모두 같은 마음일 테니까.


다음으로 형식. 간단히 말하자면, 잘 찍고 잘 써야 한다. 사진 품질이 떨어지고, 문장이 노잼이면 따봉이 덜 달린다. 요즘은 동영상까지 다룰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58쪽)


손민규의 경우 페이스북에 업무 외에도 산 관련 포스팅을 지속적으로 했고 그 결과 출간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이처럼 무엇이든 지속적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 손민규처럼 업무로 시작한 일이 부캐로 이어져 활발한 활동한 김진방 기자도 마찬가지다. 연합뉴스 김진방 기자는 ‘금진방’이라는 이름으로 말 그대로 부캐에 완벽하게 성공한 케이스다.


그는 베이징 특파원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취득한 인맥과 정보를 수집해 취재하는 과정에서 직접 경험한 것들을 페이스북을 통해 공유했다. 중국 음식 포스팅으로 그쪽으로는 전문가 되어 책과 강연까지 했으니. 그는 페이스북을 떠나지 않는 이유로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준 공간’이라고 말한다. 베이징 특파원을 하면서 하루 종일 정치, 외교, 군사, 경제기사를 쓰면서 직업적 글쓰기에 지쳐갈 때 페이스북에서 자신만의 글쓰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게 직업이라고 해도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썼을 때 만족감과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을 것 같다. 중국 관련해서 맛집을 시작으로 예술로 확장되니 기자 본연의 역할에 도움을 주니 훌륭한 부캐다.


개인적인 일상의 기록에서 하나의 주제를 전문적으로 다루게 된 페이스북을 출판사 녹색광선 대표 박소정은 창업기로 활용했다. 퇴사 후 자신이 좋아하는 책 가운데 고전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출판사를 창업하기로 결심한 후 그 모든 준비과정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는 이들과 소통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 권의 책이 나오는 과정에 독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할 수 있는 곳이 바로 SNS. 혼자 일하는 그에게는 페이스북 공간이 업무의 공간이자 휴식의 장소였다. 개인적인 일상을 포스팅한 글에서 댓글을 나누며 느끼는 기쁨은 경험한 자만이 알 수 있다.


누군가에게 딴짓은 제2의 일이 되었고 본업에 시너지효과를 주었다. 그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처럼 우리가 원하는 힙한 일, 딴짓은 힘겨운 일상에서 잠시나마 즐거움을 찾고 휴식을 위한 것에서 비롯된다. 라디오 경제 방송 작가가 향수를 제작해 판매하고 일상 에세이를 쓰는 일도 그러하고 아픈 마음을 치료하며 종이접기에 진심인 정신과 의사도 마찬가지다. 아들이 좋아해서 종이접기를 시작한 의사가 아들은 그리기 매력에 빠졌지만 종이접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좋아서다. 나를 알리고 관심을 받는 일은 지탄을 받거나 비난 받을 일이 아니다. 그게 무엇이든 자신의 취향에 맞게 즐기는 일, 그게 바로 힙한 인생이며 퍼스널브랜딩에 성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브랜딩은 남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발견하고 쌓아가는 것이다. 남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신경 쓰기 전에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 것은 ‘자기다움’이다. 즉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브랜드인지를 명확하게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179쪽)


모두의 딴짓이 9명의 저자처럼 책이나 강연으로 이어질 수는 없겠지만 딴짓을 통해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활력을 찾는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취미로 시작한 무언가, 아직은 서툴고 능숙하지 않는 어떤 것들이 미래는 아니더라도 시간이 지난 후 멋진 동반자가 될지도 모르니까. 그렇지 않더라도 인생을 채우는 다채로운 빛깔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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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이 봄을 향하는 걸 느낍니다. 자꾸만 화사한 옷들을 검색합니다.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말 거라는 걸 알면서도 검색을 멈추지 않습니다. 제법 자란 머리카락을 묶을 머리끈을 한 번씩 찾아봅니다. 저 멀리 초미세먼지가 달려오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활짝 창을 열어 바람을 맞고 싶은 날들입니다. 아직 겨울은 우리 곁에 머물지만 다가서는 봄의 기운을 느낍니다. 아마 당신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래서 이런 문장을 함께 읽고 싶어졌습니다. 당신과 나누고 싶은 문장이라도 해둘까요. 박준의 『계절 산문』에는 그런 문장이 참 많습니다. 편안하게 안부를 건네는 문장들입니다. 추위가 달아나지 않은 이 계절에 여름의 서늘한 온기를 느낍니다.


낮이 분명하게 길어졌습니다. 저는 하루종일 저의 하루를 살아가느라 이렇게 지쳐있는데 어둠은 조금 전에야 막 드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허정허정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초입에는 어느 집 담장 너머 만발한 능소화들이 이정표처럼 서 있습니다. 이 길이 제 집으로 가는 길이 맞는다는 듯이, 혹은 지금부터가 여름이라는 듯이.


능소화는 바람에 흔들리고 덩달아 능소화가 만들어낸 그림자도 흔들립니다. 발끝으로 그림자를 따라 몇 번 따라 짚어보다가 그만둡니다. 온통 흐르는 것들을 지나 드디어 제 방으로 돌아옵니다. 제가 누우면 하루와 어둠과 가난도 따라 눕습니다. 함께 잠이 듭니다. 벌써부터 방은 덮고 새벽쯤 땀을 흘리며 잠이 깬 저는 일어나 물을 마십니다. 물을 마시고 살금살금 자리로 돌아와 조용히 다시 눕습니다. ( 「여름 자리」, 전문 84~85쪽)


바람의 길을 따라 걷고 싶은 마음입니다. 바람이 지나는 길목에서 차분하게 이런 글을 마주해도 좋겠지요. 다정한 그리움, 송곳처럼 솟아난 날카로운 미움과 분노를 가만히 안아주는 커다란 손길을 느낍니다. 뽀족한 송곳의 마음을 다 뭉그러뜨리지는 못할지라도 한두 개쯤은 사라질 것 같습니다.





덮어두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갓 지은 밥을 공기에 퍼두었는데 반찬도 따로 담아 상 위에 올렸는데 아직 그 사람이 도착하지 않았을 때, 그래도 언제라도 저 문을 열고 웃으며 들어설 것 같을 때, 그릇 뚜껑이나 보자기를 올리듯 덮어두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또 덮어두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했고 네가 다시 그 말을 어떤 식으로 받아쳤으며 그사이 숨어 있는 잘못의 세목들, 이런 것들은 들추어 밝히는 대신 그냥 덮어두는 편이 더 나을 때가 있습니다. 또 덮어두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나의 마지막과 그 사람의 마지막을 같이 두는 것이 아니라 나의 중간에서 그 사람의 마지막을 보거나 아니면 그가 중간쯤 왔을 때 나의 마지막을 보여주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습니다. 덮어둔다는 것은 어느 낮은 시간을 그냥 흐르게 하는 것이고, 그곳으로 흘러오는 것들을 마다하지 않고 반긴다는 뜻이며 한참 세상이 지나 그 위에 무언가 쌓였다 해도 변함없는 것들을 다시 찾아내는 일입니다. (156~157쪽, 「크게 들이쉬었다가는 이내 기침이 터져나오는 겨울밤의 찬 공기처럼」, 전문)


서로 다른 계절이 만나고 헤어지는 날들, 어떤 이는 환절기를 앓기도 하지요. 그래서 짧은 몸살이나 감기로 며칠을 고생하기도 하고요. 헤어질 계절과 온전히 이별하지 못해서 생기는 통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의 계절과 헤어지듯 그 안에 담긴 나의 시간과도 헤어지는 일. 반성의 시간이 아니더라도 후회의 순간과 마주하니 안에서 탈이 난 밖으로 나타나는 건 아닐까요. 그러니 마음이 쉬어야 몸이 편안해지겠지요.


‘쉬다’라는 낱말은 여러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먼저 ‘몸을 편안히 두다. 일이나 활동을 잠시 그치다’라는 의미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미의 ‘쉬다’가 우리에게 없다면 문제가 생깁니다. 조금 부정적인 의미의 ‘쉬다’로 변하는 것이지요. ‘탈이 나서 목소리가 거칠고 맑지 않게 되다’의 ‘쉬다’ 혹은 ‘음식 따위가 맛이 시큼하게 변하다’ 할 때의 ‘쉬다’. 더불어 ‘쉬다’라는 말에는 ‘빛깔을 곱게 하려 뜨물에 담가두다’ 하는 뜻도 있습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반쯤 담그고 천천히 숨을 쉬어보았던 시간 같은 것으로 긴 겨울날이 기억되기를 희망합니다. (「쉼 쉼 쉼」, 전문 170~171쪽)


‘빛깔을 곱게 하려 뜨물에 담가두다’ 란 뜻이 참 예쁩니다. 더 곱고 빛나기 위해 쉼이 필요하고 나는 그것을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박준이 제게 알려준 것처럼 말이에요. 박준의 유려한 문장은 읽을 때마다 어떤 맑고 고운 힘을 불러옵니다. 두 권의 산문집과 두 권의 시집이 그러합니다. 그래도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이런 먹먹함 때문인지 저는 여전히 그의 첫 시집의 이런 시가 제일 좋습니다. 봄이 오고 있어서, 자꾸만 마음이 들썩입니다. 정작 봄이 와도 달라지지 않을 일상이 이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습니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의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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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6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7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22-02-16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네요.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자목련 2022-02-17 09:34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 님, 즐겁게 만나시면 좋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 매일 쓰는 사람 정지우의 쓰는 법, 쓰는 생활
정지우 지음 / 문예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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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삶을 원한다. 좋은 글을 쓰거나 멋진 글이 아니더라도 글이 주는 힘과 위안을 알기 때문이다.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마음은 무언가를 쓰는 동안 조금씩 정리되고 마음은 편안해진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가슴속 불 덩어리를 담고 사는 게 힘들었던 시절, 어찌할 바를 몰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이었다. 마구잡이의 글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글쓰기가 현재까지 이어졌다. 그럼에도 막상 글을 쓰려면 어렵다.


변호사이자 다양한 글쓰기로 알려진 저자 정지우의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나 같은 혹은 쓰고 싶은 이들에게 길잡이가 된다. 제목부터 우리의 마음을 너무 잘 아는 듯하다. 자신의 삶을 쓰려는 이에게 이 책은 세심하고 다정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두려워하지 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다정하게 전해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글쓰기의 유려한 기술을 알려줄 거라는 기대는 품지 않는 게 좋다. 왜냐하면 저자가 말하는 글쓰기는 삶에 대한 태도나 자신만의 가치를 정립하는 일이니까.


목차를 살펴보면 ‘첫 문장을 기다린다’, ‘시작할 동기’ 같은 소제목에서 어떻게 쓰는지 자세하게 알려줄 것 같다. 물론 아예 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다. 다만, 저자는 마음에서 말하는 무언가를 받아 적는 일이 글쓰기라고 한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처음 글을 쓰는 배경을 살펴보면 일기, 블로그, 짧은 글의 SNS에서 내가 느끼는 그 마음에 대한 기록이 아니던가.


글쓰기는 우리의 고유한 시선을 찾아나가며, 그 시선 안에 머무르는 일이다. 우리는 시선의 존재가 디기 위해 글을 쓴다. 나만의 시선으로 세상 모든 것을 응시하고, 그 응시의 기록을 남기고자 글을 쓴다. 관념으로 도피하지 않기 위하여, 끊임없이 대상 곁에 살아 있기 위하여 글을 쓴다. 글쓰기는 관념의 유희, 당위의 강요, 기준의 폭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기 위해 하는 것이다. (27쪽)


그러니 처음에 혼자 쓰던 글쓰기는 타자와의 대화가 되고 나눔이 된다. 블로그를 보면 알 수 있다. 비밀글이 아닌 글은 누군가에게 공개된다. 좋아요, 공감을 누르고 누군가는 댓글을 단다. 그 후로 글은 타자와 공유하는 글이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일 가운데 글쓰기만큼 좋은 게 있을까. 경험한 이들은 다 알 것이다. 글쓰기 모임에 나가는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단한 글을 쓰고자 하는 게 아니라 그저 글과 삶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다.


글쓰기는 혼자 고독 속에서 고고하게 하는 행위라기보다는, 결국 그 고독 너머에 있는 그 누군가를 찾아 나서는 일이다. 글을 계속 쓰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를 지지해 주는 존재가, 그 누군가가, 그 무언가가 있다. (53쪽)


글을 쓰는 사람으로 발견한 즐거움과 기쁨은 물론이고 글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며 사유를 확장시키는 일,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삶에 대한 것이다. 그리하여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책을 내면서 경험한 것들, 꾸준히 글을 쓰지만 여전히 자신에게 중요한 건 글을 쓰는 순간이며 그 안에서 느끼는 떨림이라는 저자의 고백은 아름답다.


‘글 쓰는 삶’에는 내가 글을 쓴다는 의미도 있지만, ‘삶이 글을 쓴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삶이라는 거대한 무엇이 써나가는, 그리하여 그것을 그저 받아 적을뿐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존재이지만 존재가 아니기도 한, 삶이 옮겨지는 유령 같은 백지가 나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째서인지 이런 생각은 아주 깊고 고요한 위안을 준다. (221쪽)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삶이 글을 쓴다’는 말에 나도 동의한다. 우리가 무언가 쓰고자 했을 때의 삶을 돌아보면 어떤 때는 분노가 어떤 때는 기쁨이 있었을 것이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나의 생각이 될 수도 있고 소소하고 사소한 개인의 기록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모두 삶에서 나온다. 모든 삶에 대해 알 수 없겠지만 뉴스나 언론에 등장하는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우리가 알아야 하고 써야 할 삶은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여기, 알려지지 못하는 삶이 도처에 널려 있다. 내가 아는 것이 너무 적다고 느낄 때는 그런 순간을 마주하게 될 때다. 정말이지 내가 아는 것은 너무 없다. 알아야만 하는, 말해지지 않는, 들릴 수도 없는, 그런 이야기들이 참으로 많다. (258쪽)


그런 의미에서 글 쓰는 삶은 더욱 중요하다. 글을 쓴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겠지만 책을 내기 위한 글이 아니더라도 당장 돈이 되는 글이 아니더라도, 글은 삶을 쓰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를 기록하고 주변을 기록하는 일은 점차 사회를 기록하는 일이며 반성과 통찰의 시간은 지나 더 나은 삶을 꿈꾸기 일이다. 기도하듯 글을 쓰는 저자처럼 말이다.


다시, 나는 좋은 글쓰기를 위해서는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삶은 내가 놓인 이곳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견뎌내며, 이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고자 하는 의지와 관련되어 있다고 느낀다. 이 삶이 엉망이 된다면 좋은 글쓰기도 없다. 곁에 있는 사람의 표정, 기분, 말 한마디도 챙길 줄 알고 조율하려 할 때, 삶과 글쓰기는 어우러지리라 믿는다. (286쪽)


무언가를 쓴다는 일은 여전히 두렵다. 그래도 쓰는 삶을 산다. 막연히 책상에 앉아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첫 문장을 기다리는 순간, 삶은 쓰인다. 다음 문장이 기쁘게 오거나 억지도 오더라도 글쓰기가 계속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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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2-02-15 09: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너무 좋네요~ 좋은 글쓰기를 위해서는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는 말도요~

얄라알라 2022-02-15 12:27   좋아요 2 | URL
햇살과함께님 댓글 보고, 다시 제목에 도장 꾹 찍고 왔어요. 글이 좋아서 두 번 읽었는데 제목은 뒤늦게 들어오네요^^ 햇살과함께님 덕분

햇살과함께 2022-02-15 13:08   좋아요 1 | URL
ㅎㅎ 저도 얄라알라님 댓글 보니 본문 다시 찬찬히 읽어봐야겠습니다~

자목련 2022-02-16 09:16   좋아요 1 | URL
글쓰기는 어렵지만 쓰는 동안 뭔가 채워지는 기분이 들어 좋아요.
좋은 삶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요. ㅎ

- 2022-02-15 09:4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애정하는 정지우 작가님이 또 에세이를 내셨네. 그런데 변호사셨군요. (갑자기 멀어진다...) 소개해주신 문장들이 너무 정지우 같고, 그래서 제가 정지우님 글을 좋아한다죠. 삶과 글쓰기가 어울려져야 한다는 식의 글을 이렇게도 단단히 되풀이해서말하는 또래의 저자가 있다는 건 개인적으로 자극받는 좋은 일이예요.
저는 남들 몰래 글을 쓰면서 저를 조금씩 좋아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남들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그건 어쩌면 아닌 것 같고.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도 좋은 글을 써야겠군요.
자목련님의 쓰는 삶도 독려합니다. 공들여 쓴 독후의 감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2-02-16 09:20   좋아요 2 | URL
정말 열심히 쓰는 작가라는 걸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처음 작가의 글을 읽었을 때는 글의 분위기나 감성이 여성 작가라고 생각했어요. 아내에 대한 글이 나와서 남성이라고 알았어요. 변호사, 저도 이 부분에서는 멀어집니다. ㅎ
몰래 글쓰기, 저도 처음에는 모두 비밀글이었는데, ㅎㅎ 나에게 좋은 삶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요. 그게 가장 중요하고 그게 시작이 아닐까 해요. 오늘도 쟝쟝 님께 좋은 쟝쟝 님이기 바라요. 저도 그러기를 바라고요!

거리의화가 2022-02-15 09:57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글은 삶을 쓰는 일이라는 것 정말 공감되네요. 어떤 글을 쓰든 그 글엔 그 사람의 삶이 녹아들기 마련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읽고 남기는 감상이든 일상을 쓴 글이든 자신만의 경험과 해석이 담길 테니까요. 글쓰는게 항상 어렵고 두렵지만 제 삶을 위해 열심히 써나가야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2-02-16 09:21   좋아요 2 | URL
네, 어떤 글이든 자신의 일부가 담기는 것 같아요. 픽션인 소설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해요. 글에 내가 있다는 걸 아니까요.
거리의 화가 님, 충만한 하루 이어가세요^^

그레이스 2022-02-15 10: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왜 심각해질까요? ;;
삶이 글을 쓰다!
삶이 누추하면 글도 그렇겠죠!
이 댓글 쓰면서 반성중입니다.

자목련 2022-02-16 09:23   좋아요 2 | URL
심각해지지 마세요. 그럴 필요도 없고요.
저마다의 삶은 충분히 아름다우니까요.
그러니 오늘도 아름다운 하루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2-02-15 12: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앱으로 오전에 읽고, 다시 들어왔습니다. 뭔가 쓰고 싶어지게 만드는 자목련님의 페이퍼였습니다. 저는 정지우 작가님을 모르는데 공쟝쟝님, 자목련님의 애정을 받고 계시니 그 또한 찾아봐야겠고요^^
자목련님께서 품으신 가슴의 불덩어리가 어떤 열기인지, 다뤄질 불이었는지 상상하며 지나갑니다.
행복한 오후, 보내세요. 자목련님.

자목련 2022-02-16 09:27   좋아요 3 | URL
다시 들어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최근 활발하게 글을 쓰시는 것 같아요.
당시의 불덩어리는 총체적인 미움이라고 할까요. 아마도 어려서 그랬던 것 같아요.
독한 말, 나쁜 말을 마구 썼어요. 키보드에 그런 말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지요. 의외로 스트레스가 풀려서 저는 나쁘지 않았어요. 다정한 마음 건네주신 얄라 님도 따듯한 하루 이어가세요^^

희선 2022-02-16 0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읽기도 그렇지만 글도 안 써도 괜찮지만, 쓰기 시작하면 안 쓰지 못할지도 모르죠 사람마다 이야기가 있겠네요 글을 쓰는 게 안 쓰는 것보다 조금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

자목련 2022-02-16 09:28   좋아요 2 | URL
읽고 쓰는 일, 말씀처럼 안 쓸 수 없는 삶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저게는요.
사람마다 다른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듣고 품는 게 우리를 따뜻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드네요.
희선 님, 포근한 하루 보내세요^^

2022-02-16 1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6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잿빛극장
온다 리쿠 지음, 김은하 옮김 / 망고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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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지 못했던 일상을 살고 있다. 3년 전에는 이런 세상이 올 줄 몰랐다. 어쩌면 하루하루가 그런 삶인지도 모른다.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무언가가 가득하니까. 그래서 놀랄 만한 사건이나 사고로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할 때 주어진 일상을 돌아본다.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산다는 게 무언지.


온다 리쿠의 『잿빛극장』 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실화를 소재로 한 소설이라 더욱 그런 마음이 따라왔는지도 모른다. 소설은 20여 년 전 두 명의 여자가 다리에서 함께 투신자살을 한 신문 기사를 전업작가인 ‘나’는 소설 <잿빛 극장>으로 완성한다. 그리고 다시 그 소설은 연극으로 만들어져 무대에 상영된다. 소설은 단순하게 연극으로 다시 탄생하는 그 과정을 다루는 건 아니다.


소설은 특이하게 0, (1), 1로 구분하여 구성되었는데 0은 <잿빛 극장>을 쓰는 ‘나’의 일상, (1)은 <잿빛 극장>을 연극으로 만드는 과정, 1은 신문 기사 속 익명의 두 여인 T와 M의 일상을 다른다. 0, (1), 1이 교차하며 이어지기에 조금 혼란스러운 면도 없지 않지만 몰입에 방해될 정도는 아니다.


신문 기사 속 두 여인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연극까지 상영하게 된 과정에서 ‘나’와 독자가 가장 궁금한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결정적인 이유일 것이다. T와 M은 대학에서 처음 만나 친해졌지만 T의 결혼으로 연락이 끊겼다가 T가 이혼 후 다시 재회한다. 결혼이 자신이 원한 선택이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T는 친정으로 돌아가는 대시 번역을 하면서 혼자 살기로 결정한다. 그러다 M에게 같이 살자고 제안한다. 생활비를 줄이고 집에서 일하는 T가 자연스럽게 살림을 한다. 함께 지내면서 서로에 대해 알지 못했던 점을 알아간다. 가령 T의 갑작스러운 결혼과 이혼 같은 것.


소설을 이끄는 건 당연 0, (1)이다. 익명의 두 여인에 대한 정보는 너무 적기에 ‘나’는 막상 연극에 출연 배우를 결정하는 오디션에 참여하면서도 막상 그들의 존재를 연극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알게 된다. 20여 년 전 마흔 중반의 두 여성이 아주 젊은 나이라는 걸 말이다. ‘나’가 당시 많게 느꼈던 그들의 나이가 현재의 자신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리고 복잡한 생각에 빠져든다.


‘파란만장‘ 하지도 않고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며 ‘온 힘을 다해’ 살지도 않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인생이다.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한정된 시간을 사는 인생이다. 그 일회성만큼은 어떤 인생이든 마찬가지고 예외가 없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내 인생이다. (1 - 154쪽)


M이 느꼈던 것처럼 우리는 그저 살아간다. 돌이켜보면 저마다 파란만장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게 무엇일까. 주어진 삶에 대해 하루하루 살아가면서도 뭔가 허무하고 허전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런 회의감 때문에 죽음을 선택할 것일까. 독자인 나는 점점 궁금해진다. ‘나’처럼 20여 전 그들의 일상을 상상하게 된다.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그들의 삶을 말이다.


그 두 사람이 죽어서 이룩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사랑? 우정? 신뢰? 체념?

그것도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었을까?

그 두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난 지금도 여전히 모르겠다. (0 - 192쪽)


어쩌면 우리도 어느 시기에는 그녀들과 같은 삶은 살아갈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이미 그 시절을 지나왔을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그 시절을 통과하는지도 모른다. 익명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낸 ‘나’가 그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처럼.


나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기로 했다. 내가 느낀 허무, 메마른 절망, 그 모든 것을 나는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고 냄새도 풍기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느끼지 못하도록 한 그 자체가 내가 남긴 유서일지도 모른다. (1- 334쪽)


묘한 소설이다. 먹먹하게 아프다. 소설 속 T와 M이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삶이라는 게 살아갈수록 힘들고 알 수 없는 일 투성이라는 걸 알기에 그렇다. 그럼에도 삶이라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기에 그들의 선택이 안타깝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인간의 심연, 그 깊은 곳에 내려앉은 절망과 슬픔의 일부를 만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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