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과 음악 말들의 흐름 10
이제니 지음 / 시간의흐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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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삶이란 상실과 함께 살아가는 거라는 걸 배운다. 누군가 나를 붙잡고 그게 삶이라고 가르쳐 준 기억은 없다. 거대한 죽음 앞에, 개인의 존엄을 파괴하는 폭력 앞에서 저절로 배운다. 이토록 잔인한 가르침이라니. 차곡차곡 쌓아놓은 삶은 한순간 무너져버리고 처음으로 되돌려놓는다. 돌림노래처럼, 이어 부르기처럼 계속 돌고 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이하는 생과 사의 순간, 준비한다고 반가울 리 없는 그 순간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말이 통하지 않는, 나를 아는 다정한 얼굴이 없는 곳에서 사고를 당한 시인의 경험으로 시작하는 글은 내가 기대했던 산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몰고 왔다. 그러나 이 글을 썼다는 건 시인이 회복되었다는 뜻이라는 사실이 나를 안도하고 위로했다. 시베리아에서 당한 사고로 그곳의 병실에서 지내면서 마주한 고려인 여인의 목에 새겨진 꽃(체첵)이라는 낱말. 자신의 이름이 꽃이라고 알려준 그녀. 자세히 볼 수 없어 휴대폰으로 찍은 화면으로 볼 수 있었던 모국어의 말. 어쩌면 모두 잊어버리고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순간, 시인 앞에 나타난 모국어는 슬프고 아름다운 말이었다. 그 감동은 내게도 그러했다.


결국 쓴다는 것은 자신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단어 속에서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슬픔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자기가 가진 지극히 단순한 낱말 속에서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또 다른 소리와 의미를 다시 새롭게 겹쳐 새겨 넣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일상 속의 아주 사소한 구멍. 아주 작은 틈새로. 추락하듯이 나아가면서. 비틀거리면서. 머뭇거리면서. 망설이면서. 주저하면서. 잘못 말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19쪽)


시인의 산문집은 이처럼 그녀가 직접 겪은 사고로 시작해 그것을 기록하며 고통과 상실을 글로 쓰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긴 미용 가위, 쌍둥이 자매, 낚시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위한 플레이리스트. 고통을 글로 쓴다는 건 가능한 것일까. 글로 쓰일 수 있다는 건 고통의 구덩이에서 조금은 올라오고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극한의 고통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잠시라도 고통과 분리될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전부다. 그건 슬픔도 마찬가지다.


고를 수 있는 낱말이 있는 게 아니다. 설명하고 싶지만 설명할 수 없다. 상실의 횟수는 늘어나고 감당해야 할 슬픔은 차고 넘친다. 시인이 쓰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슬픔과 고통에 관한 것이라는 건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순수하고 명징한 슬픔, 함부로 쉽게 쓸 수 없고 내뱉을 수 없는 고독과 쓸쓸함이라고 할까. 정확하지 않다. 정의할 수 없다. 그래서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시인의 산문이니 그래야 마땅하지 않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써 내려갔을 문장, 혹은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표현은 문장 속으로 독자를 이끈다. 그 장면 속으로 기필코 들어간다. 나는 상상한다. 얇고 가는 빛, 정수리를 지나 심연으로 파고드는 빛. 만질 수 없고 잡을 수 없지만 무엇보다 강렬하다는 걸 느낀다.


여기 어떤 빛이 있다. 어떤 어둠이 있다. 어두운 방안. 이제 막 밝아올 새벽빛을 암시하고 있는. 혹은 언젠가의 새벽의 어둠을 품고 있는. 어둡고 밝은 빛이. 얇게 휘날리는 여름 드레스의 질감 사이로 엷게 스며드는 푸르스름한 기운처럼. 어떤 빛이 곧장 내게로 다가와 오래전 사랑했던 사람의 기억을 가슴 아프게 감각하게 한다. 이미 지나갔지만 다시 돌아오고 있는 빛. 그 빛이 내게로 온다. (84쪽)


그러니 이 산문집은 산문이 아니다. 시를 향해 가는 과정이고 쓰기의 출발선이다. 그것은 고통과 슬픔을 껴안은 이들에게 전하는 안부이다. 각자의 상실,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고유한 슬픔, 문신처럼 새겨진 고통의 순간을 아는 시인의 곡진한 위로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혼자 와서 혼자 가는 것. 그 곁에 동반자가 있고 없고와는 무관하게. 기쁨 혹은 슬픔과도 무관하게. 혼자로 오롯이 서서 살아가다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그 과정에서 영혼의 수준을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다면 더욱 좋을 테고. (90~91쪽)


글쓰기는 개인의 고독과 병증에서 출발한다.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글쓰기는 한 개인 내부의 가장 허약한 지점에서 떠오른다. 백지 위로. 불쑥. 하나의 신음처럼. 어떤 고통들, 어떤 결핍들, 어떤 충격들, 그 글쓰기가 나아가는 지점은 개인의 더 큰 고독과 병증, 거대한 입을 벌리고 있는, 아직 자신에게조차 밝혀지지 않은 심연의 저 밑바닥이다. (145쪽)


아니다. 잘 모르겠다. 시인의 말처럼 눈물처럼 쏟아지는 어떤 음악이다. 쓴다는 게 무엇인지, 쓰기의 궁극적인 목표를 찾아 헤매는 시인의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할 수 없다. 내가 옮겨둔 시인의 시를 찾아본다. 시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반했던 시. 이런 시도 있구나, 시인이 이끄는 세계는 뭔가 생격했지만 특별하다고 느꼈던 순간을 더듬어본다. 아득하고 아득했던 시절의 나를, 지금까지 시집을 사게 만든 그 시작의 일부에 그녀의 시집도 있다는걸.


더 자세히 쓰고 싶지만 쓸 수 없다. 더 많은 말로 『새벽과 음악』로 쓰고 싶지만 군더더기만 더할 뿐이라는 걸 안다. 정제된 말로 쓰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나는 알 수 없고 감탄할 뿐이다. 나는 쓸 수 없고 읽을 뿐이다. 나는 알고 싶고 더 읽고 싶다. 나는 알고 싶고 그래도 쓰고 싶다. 그것이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쓸 수 있다는 게 반갑고 기쁘다. 이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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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4-10-14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좋아요!‘ 를 한번 만 누를 수 있다는게 너무 아쉽네요. 좋아요x100! 자목련님의 ‘알고 싶고 읽고 싶고 쓰고 싶은데 그 무엇이 되지 않아도 기쁘며 그게 전부‘ 라는 표현이 너무 와 닿습니다. 좋은 글 감사 합니다. _()_

자목련 2024-10-16 10:58   좋아요 1 | URL
과분한 말씀 감사합니다. 마힐 님 덕분에 환한 기분의 수요일이 열립니다!!
 


어제저녁 8시가 되기 전 노벨문학상을 검색했다. 수상자가 궁금해서였다. 노벨문학상을 기대하고 관심이 많았던 때를 지나왔지만 그래도 누가 받았을까 궁금하기는 했다. 속보로 기사가 떴다.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순간 나는 대박!이라고 외쳤다. 혼자였다. 얼마 후 H가 카톡을 보냈다. 한강 작가 소식 들었냐고, 너무 좋다고. 좀 전에 다른 친구가 한강의 수상 소식에 깜짝 놀랐다는 카톡을 전했다.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 문학을 읽고 좋아하는 이가 없다는 게 쓸쓸했다.


한림원의 선정 이유가 기사로 뜨기를 기다렸다. TV 채널을 돌렸다. 늦은 밤에야 뉴스로 접할 수 있었다. “매우 놀랍고 영광스럽다”는 한강은 “아들과 차를 마시며 조용히 축하하고 싶다”고.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다룬 기사를 읽었다. 온라인 서점의 마케팅이 시작되었다. 이참에 『디 에센셜: 한강』을 들여놓을 생각이다.


사색하기 좋은 가을일까, 그런데 사색이 아닌 잡념만 늘어난다. 잡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이런 책이 나를 도와주기를 바란다. H를 만났을 때 『일인칭 가난』에 대해 말했었다. 둘 다 읽기 전이었고 얼마 전 H는 이 책을 읽었다고 했다. 나는 이제 읽으려 한다. 작가의 나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작가가 태어났을 때 나는, 뒷말은 생략하겠다.








소설도 읽어야지. 단풍을 연상시키는 표지의 『소설 보다 : 가을 2024』, 조경란의 단편을 읽기 시작한 『2024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그리고 책장에 있는 한강의 단편집을 다시 읽고 싶다.
























한강 작가는 『작별하지 않는다』, 『흰』, 『채식주의자』를 추천했다고 하는데 나는 여전히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이 좋다. 아무려나 어떤 책이든 무슨 상관일까. 이 기회에 좋아하는 마음을 더하며 한국문학이 더 많은 사랑을 받으면 좋겠다. 책은 쌓이고 감격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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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4-10-11 1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민음사 라이브 보고 있다가 진짜 그 소식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정말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어요. 저는 <소년이 온다>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자목련님이 좋아하신다는 소설들도 읽은 것 같은데 아, 기억이 안 나요. 기록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희랍어 시간> 읽어보고 싶어요. 기분좋은 금욜이네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자목련 2024-10-13 08:08   좋아요 0 | URL
정말 놀라고 기쁜 날들이에요!
<희랍어 시간>, <흰>은 정말 고통을 아름답게 그려낸 시 같아요. 당분간은 한강 덕분에 우쭐할 것 같아요. ㅎㅎ

망고 2024-10-11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너무 기뻐서 잠이 안 오더라고요ㅎㅎㅎ이 기쁨을 저는 가족과 나눴습니다.부모님이 함께 좋아해 주셨어요 이렇게 쓰니 제가 탄 상인줄ㅋㅋㅋㅋㅋㅋㅋ

자목련 2024-10-13 08:10   좋아요 0 | URL
부모님과 함께이 기쁨을~~
방송에서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관련된 소식이 나놀 때마다 집중하고요 ㅎㅎ

coolcat329 2024-10-11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문학 애독자이신 자목련님에겐 어제 한강 작가의 수상이 더욱 큰 기쁨으로 다가왔을 거 같아요.
오늘도 즐겁습니다.

자목련 2024-10-13 08:11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기뻤어요. 이 기회에 천천히 재독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드립백 가을하다 - 12g, 7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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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처럼 예쁜 커피가 왔다. 작년에도 만난 커피, 올해도 반가운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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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과 함께 가을이 왔다. 더 이상 창을 활짝 열지 않는다. 환기를 위한 시간이 아니면 활짝은 사양한다. 징검다리 휴일을 지나고 나니 이번 주는 어영부영 다 사라졌다. 실은 추석 연휴부터 어영부영 보냈다. 여름 명절 같은 더위에 지쳐서 하는 일 없이 짧은 안부를 나누는 게 전부였다. 느닷없이 임시공휴일이 된 국군의 날은 모두가 쉬는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가족 일원 중 한 명은 월차를 쓰고 10월의 첫날을 쉬었다고 했다.


아무튼 덧신이 아닌 양말을 챙겨 신어야 할 10월이 되었다. 올해는 10월, 11월, 12월까지 세 달이 남았다.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내년에는 얼마나 빠르게 지나갈 것인가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하지 않기로 한다. 그냥 가을이니까 시집을 샀다. 분명한 명분도 있다. 시집의 제목에 ‘작약’이 있으니까. 자고로 작약을 좋아하는 이라면 이런 제목의 시집은 구매해야 한다. 뒤늦은 발견으로 미안해할 정도다.






이승희 시인의 『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한데』, 김경미 시인의 『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그리고 신용목 시인의 『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까지 세 권의 시집. 세 권의 시집을 훑어보다 멈춘 시는 이런 시다.

발이 구두를 다 써서

발가락이 구두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

귀가 말을 다 써서

더는 듣고픈 말이 없는 것

다 쓴 관계들이 가득한 사진첩들

다정도 부드러운 손을 다 썼을까

저녁노을 다 써 버린

커피색 유리창 옆

당신과 맞잡은 나의 손이 풀린다 (김경미 「다 쓴다는 것」, 전문)



시집과 더불어 읽고 싶은 단편은 조경란이 수상한 『2024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이 책에는 신용목의 단편도 있다. 시인의 단편이 궁금하다. 이미상 단편을 읽을 수 있는 소설 보다 : 가을 2024』. 그건 그렇고 어쩌자고 나는 자꾸 시집을 사는지 모르겠다. 시를 읽지도 못하고 시집을 정리하기도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시 읽는 밤이면 좋겠다. 시 읽는 밤이 이어지길 바란다. 시가 머무는 밤, 시가 맴도는 밤이면 좋겠다. 2024년 가을이 그렇게 지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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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0-04 19: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조경란 작가가 영예를 안았군요.
그렇지 않아도 조용해서 뭐하며 지내나 궁금했는데
소식들으니까 반갑네요. 예전에 잠깐 인연이 있어서 말이죠. ㅎ
나중에 한 번 사 봐야겠습니다.^^

자목련 2024-10-05 16:32   좋아요 3 | URL
오, 그 인연이 궁금하네요 ㅎㅎ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yamoo 2024-10-07 1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경란 작가...아직도 건재하군요. 제겐 너무 지루한 작품이라 몇 권 읽고 말았습니다. 서하진과 조경란 등은 좀 지루하더군요. 공선옥 작가가에 비해서요....^^;;

자목련 2024-10-08 17:06   좋아요 1 | URL
말씀하신 공선옥 작가와 비교하면 지루하다고 할 수 있죠. 조경란 작가의 초반 소설을 열심히 읽었던 때가 있는데....

그레이스 2024-10-16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시경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습니다.
제목때문에 ㅎㅎ
 
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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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궁금하다. 돌아가신 엄마는 아버지와 결혼해서 행복했을까. 행복이 뭔지도 몰랐을 엄마에게 기쁨은 무엇이었을지 말이다. 아이를 다섯이나 낳고 살았지만 기억 속 어디에도 엄마에게 다정함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나의 아버지. 그러나 막내딸인 내게는 다정했던 아버지. 엄마가 돌아가시고 고모가 들려준 말은 내가 모르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아이를 업고 집을 나갔지만 곧 돌아왔다는 엄마. 등에 업힌 아이는 누구였을까. 나는 아니었을 것이다.


가끔 궁금하다. 큰언니는 왜 결혼을 하지 않았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 후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가 결혼은 천천히 해도 된다며 반대를 했다고 하는데 진짜일까. 나는 왜 한 번도 언니에게 남자친구에 대해 묻지 않았을까. 엄마가 돌아가시고 큰언니의 든든한 돌봄을 받았지만 큰언니의 외로움이나 상처는 알지 못했다. 오히려 내게 했던 아픈 말들을 곱씹기만 했다. 엄마와 큰언니에게 가족은 어떤 존재이며 의미였을까.


클레어 키건의 단편집 『푸른 들판을 걷다』를 읽으면서 아이를 업고 집 앞에서 서성였을 젊은 엄마의 슬픈 얼굴이 떠올랐다. 정작 나는 알지 못할 슬픔으로 가득 찼을 얼굴. 속상한 마음을 터놓을 이가 없었을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다. 엄마는 어디로 가고 싶었을까. 정해진 곳이 있었다면 엄마는 떠날 수 있었을까. 그곳이 어디든 그냥 떠나도 괜찮다고 나는 말해주고 싶다. 손을 내밀어 젊은 엄마를 데리고 나오고 싶다.


그러니 나는 아무렇지 않게 폭력과 학대를 지속하는 아버지를 방관하는 어머니를 떠나는 「작별 선물」 속 ‘당신’을 응원하다. 낯선 뉴욕의 삶이 어떨지 알 수 없지만 이곳을 떠나 그곳으로 향한다는 것만으로 당신은 괜찮아지고 있으니까. 혼자서 모든 농사를 감당할 오빠에게 고맙고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당신은 더 빨리 떠났어야 했다. 따뜻한 울타리가 아닌 족쇄였던 부모로부터 말이다.


클레어 키건은 구체적인 묘사로 불편함을 전하는 대신 작은 몸짓과 시선이 닿는 공간과 배경으로 마음의 상처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더 상처는 더 크고 묵직하게 다가온다. 처음엔 상황을 바꾸려 시도하고 노력했을 마음이 어떻게 무너져 무기력으로 변하는지 말이다. 젊은 엄마를 다시 생각한다. 엄마가 바랐던 삶은 무엇이었을까. 서른 살의 나이 때문에 결혼 이야기를 꺼낼 남자가 없을 것 같아 디건의 제안을 받아들인 「삼림 관리인의 딸」 속 마사에게 다시 젊은 엄마를 본다. 마사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자신의 방식으로 마사를 사랑한 디건.


가끔 헛간에 서서 씨앗을 쪼는 닭들을 바라보며 행복감을 느끼다가도 이내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삼림 관리인의 딸」, 87쪽」


무엇을 기대했을까? 그녀는 감정이 점점 크고 깊어져서 사랑이 될 줄 알았다. 지금 마사는 친밀함을, 오해를 뛰어넘는 대화를 간절히 원했다. 일을 찾아볼까도 생각했지만 이미 늦었다. 조금 있으면 아이가 태어날 참이었다. (「삼림 관리인의 딸」, 89~90쪽)


주변 시선이 중요하고 땅과 집을 지킨 후 찾아올 미래의 삶이 중요했던 디건, 지금의 행복이 중요했던 마사. 마사를 배려하지 않는 디건의 말과 행동은 폭력인 줄 몰랐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그 역시 폭력이다. 화해의 타이밍은 지나갔다. 마사는 집을 떠날 계획을 세우고 디건은 그 계획을 모르지만 마사가 떠날까 두렵다. 문득 궁금하다. 젊은 아버지는 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었을까. 디건처럼 두렵기는커녕 관심조차 없었지 않을까.


클레어 키건이 소설을 통해 보여주는 아일랜드의 삶은 권위를 내세우는 남성 중심의 사회를 꿰뚫는 동시에 고요하고 정확하게 비판한다. 그 삶이 우리의 그것과 닮아서 아프고 쓰라리고 고통스럽다. 상처로 얼룩진 시간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작별 선물」의 ‘당신’, 과거를 잊고 원하던 아이와 함께 떠나는 「퀴큰 나무 숲의 밤」의 ‘마거릿’의 선택은 멋지고 눈부시다.


그러나 나를 오래 붙잡는 건 「물가 가까이」였다. 소설 속 아들은 새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해 생일을 원하지 않는 리조트에서 보내야 한다. 새아버지의 비위를 맞추는 엄마가 싫지만 그곳을 떠나지 못한다. 아들은 바다를 보며 할머니를 생각한다. 할아버지와 결혼했을 때 바다가 보고 싶다고 말한 할머니는 정작 바다에 도착했을 때 자신을 기다려주지 않고 가 버린 할아버지를 떠나지 못했다. 나중에 왜 그랬냐고 물었을 때 할머니는 “바다가 얼마나 깊은지 몰라서” (160쪽) 그랬다고 대답한다.


엄마도 그랬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등에 업은 아이 때문에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엄마가 가고 싶은 곳으로 원하는 대로 어디든 한 걸음 나가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의 젊고 어린 엄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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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4-09-24 1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단편집이군요~! 키건 첫번째 읽었던 책이 그냥 그랬어서 안읽고 있는데 이 단편집은 좋을거 같아요~!!

자목련 2024-09-25 11:53   좋아요 2 | URL
키건의 초기 단편이라고 해요. 새파랑 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독서괭 2024-09-24 1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휴 소설보다 자목련님 어머니 이야기에 마음이 저릿저릿하네요 ..

그레이스 2024-09-24 20:59   좋아요 1 | URL
저두요

자목련 2024-09-25 11:54   좋아요 2 | URL
엄마랑 많은 이야기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너무 일찍 하늘나라로 가셔서...

구단씨 2024-09-24 2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많은 엄마가, 자신의 바람을 버리고 자식 때문에 다시 돌아왔을까요...
저에게도 비슷한 기억이 있어요.
사는 게 힘들어서 엄마가 집을 나갔는데, 부모님 잘 아시는 분이 엄마를 설득해서 집으로 돌아오셨죠.
제가 많이 어릴 때라, 엄마가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정도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꼭 그 일 때문은 아니지만, 저는 지금 엄마에게 빚진 마음으로 사는 것 같기도 해요.
그때 엄마의 선택을 버릴 수밖에 없던 이유 중의 하나인 자식으로, 오랫동안 엄마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 채로 살아온 가족으로.

이 책 속 단편 세 편 정도 읽었어요. 시간이 없어서 나머지 부분 미뤄두었는데,
작가의 전작을 떠올려 보면 이 작품도 완독해야만 할 듯하네요.

자목련 2024-09-25 11:55   좋아요 1 | URL
내가 모르는 엄마의 모습이 얼마나 많을까 싶어요. 내가 안다고 생각한 엄마는 아주 아주 적겠지요.

나머지도 즐겁게 읽으시길 바라요. 가을 건강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