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에 관하여 -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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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태도attitude’란 ‘어떻게how’라는 살아가는 방식과 가치관의 문제로, 그 사람을 가장 그 사람답게 만드는 고유자산이다.’ (7쪽, 서문 중에서)

 

 신념을 지키며 사는 일은 어렵다. 산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버거워 어떤 의미를 찾거나 돌아볼 여력이 없는 것이다. 소신대로 밀고 나가고 싶지만 그것을 막는 장애물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게 삶이다. 그럼에도 소신 있는 사람은 무너지지 않는다. 장애물을 뛰어넘고 더욱 단단해진다. 임경선의 『태도에 관하여』를 읽고 태도란 말 대신 ‘신념’, ‘소신’을 넣는다. 살다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혼자가 아닌 함께 사는 세상이라 더욱 그렇다. 

 

 가족을 시작으로 친구와 연인, 직장 동료로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경선의 이런 말은 진짜 나를 찾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준다. 특히 직장인이라면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그러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현재의 위치를 견디는 일상, 그 안에서 내가 얼마나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최선을 다하는지 묻게 된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일의 본질은 같다. 최선을 다해야 하고, 사람들과 조율할 줄 알아야 하고, 규칙을 따라야 하며 스스로를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조직 생활도 나의 지울 수 없는 과거이자 지금의 내가 만들어진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곳임을 인정한다. 변화 이전의 모습이 ‘악’이고 변화 이후의 모습이 반드시 ‘선’은 아니다.’ (155쪽)

 

 결국엔 모든 문제의 답은 나에게 있다. 사회구조적 문제를 배제할 수 없지만 어차피 내 인생은 내가 주인공이니까. 타인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도 없고 나를 버리면서 무조건 타인을 이해할 필요도 없다. 타인의 범주엔 가족도 포함된다.

 

 자존감이 소중한 것은, 나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쓸 때 우리는 타인을 있는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상대의 결핍이나 불완전함을 이해할 포용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에 묶여 자신에게 가혹한 사람이나, 자신의 껍데기 안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서도 역시 가혹하거나 깎아내리려 할 뿐이다.’ (193~194쪽)

 

 임경선은 후배나 동생의 고민 상담을 하는 언니처럼 자발성, 관대함, 정직함, 성실함, 공정함이라는 다섯 가지의 태도에 관해 친절하게 조언한다. 오랜 시간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는 친구처럼 편안한다. 거기다 연애, 결혼, 육아, 관계 모든 분야에 이상하리만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그녀의 글에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그녀의 이야기가 완벽한 정답은 아니지만 책을 덮고 나서 후련한 기분이 드는 건 나뿐은 아닐 것이다.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니까. 나를 나답게 만드는 나만의 태도에 대해서 말이다.

 

 나 스스로를 지키는 일은 어렵도고 어렵다. 단단하다, 견디다란 단어를 나에게 건넸다. 뭔가 대단한 게 되려는 게 아닌데도 하루하루가 힘겨울 때도 있다. 최근에 『자유로울 것』을 읽으면서 다시 꺼내보는 구절이다. 그러면서 또 질문한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관계에 대해 유연한가, 내가 지향하는 삶을 위해 제대로 걸어가고 있는가. 여전히 물음표만 이어지는 시간들이다.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느낌표를 찍을 순간이 오긴 올까.

 

 ‘자기 내면이 단단해지려면 디테일에서도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문제를 다 좋고 나쁘다고 판단할 게 아니라, 그 문제를 자잘하게 썰어서 하나하나 곱씹어볼 수 있는 어떤 치밀함, 집요함 그리고 신중함이 필요할 것 같아요.’ (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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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용실에 갈 계획을 짜고 있다. 계획을 짰다는 말이 꽤나 거창하게 들린다. 아파트 가까운 건물에 새로운 미용실이 생긴다는 광고를 봤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매만지는 일은 내게 중요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미용실을 방문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아직 그곳에 가서 머리카락을 자를지 결정한 건 아니지만 조만간 미용실에 갈 것이다. 그곳이 어디든 말이다. 이사를 오기 전에는 아파트 상가에 있는 미용실에 다녔다. 일 년에 한 번, 혹은 세 번 미용실에 갔다.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거나 퍼머를 하는 게 전부였다. 이사를 온 후에는 병원 옆에 있는 미용실에 다닌다. 진료를 받을 일이 생길 때 아침 일찍 미용실의 첫 손님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내 머리카락은 제법 길다. 수술하기 전 도토리 모양에서 옥수수수염처럼 길게 자랐다. 재작년 겨울에 자른 것이다. 작년 가을에 만난 친구는 단발  형태를 보고 이제야 좀 괜찮다고 말을 했었다. 머리 모양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친구의 말을 듣고 머리카락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

 

 머리카락의 변화를 보고 사람들은 심경의 변화를 짐작한다. 어떤 결심의 표현으로 머리카락에 변화를 주기 때문이다. 계절에 따라 옷차림도 변하지만 머리 모양도 변한다. 입춘이 지났고 2월은 절반이 남았다. 절반은 아주 많거나 아주 적은 모양과 부피를 떠올리는 말이다. 절반 정도 읽었다는 말과 절반 정도 남았다는 말은 같은 듯 다르게 다가온다. 내 2월의 절반은 어느 쪽으로 가고 있을까.

 

 미용실에 갈 계획은 잠시 미루고 책을 고른다. 알림 문자가 반가운 조해진의 『빛의 호위』, 알라딘에서는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올 거라고 안내를 하고 있었는데 창비에서 나왔다. 그리고 뜬금없이 생각이 난 최윤의 소설집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이 소설집은 언제 읽을지는 알 수 없다. 언제 읽을지 모르는 책도 있지만 조금씩 읽고 있는 소설도 있다. 우산을 좋아하기에, 이런 제목의 소설은 더욱 좋다. 호텔 프린스』속 황현진의 「우산도 빌려주나요」의 첫 부분을 옮기면 이렇다. 우산이 등장한다.

 

 그녀는 엄마를 마중 나가고 싶지 않았다. 날씨가 나쁘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다.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이 하루에 서너 번씩 꼬박꼬박 전해졌다. 기상 캐스터의 말대로라면 주말 안에 기필코 상륙할 예정이었다. 거리는 혹시 모를 수해를 대비하느라 소란했다. 가게들은 차양을 펼쳤고, 천변에는 통행금지 표지판이 세워졌으며, 행인들은 우산을 지팡이 삼아 걸었다.

 

 허은실의 첫 번째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도 읽으려 한다. 제목처럼 잠깐 설운 삶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잠깐은 금세 지나가는 시간이니 견딜 수 있고 그 시간의 끝에는 단단한 마음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러나 잠깐이 반복된다면 곤란한다. 곤란한 상태를 떠나 힘겨워진다. 어쨌거나 나는 이 시집을 읽을 것이다. 읽고 있는 책을 잠시 멈추고 말이다. 잠깐 멈추고. 우선 이런 시부터.

 


  늦은 찬으로

 묵나물을 먹는다

 

 나물 삶는 냄새

 가득한 마당

 어린순을 한 짐씩

 부려놓던 사내

 

 새 흙무덤에

 고사리 고사리

 

 이러다 봄이 오겠어  - 「변경」,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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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2-14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용실은 가지 않지만 , ㅎㅎ 자목련 님은 잘 다녀오세요 ~^^

자목련 2017-02-15 10:17   좋아요 1 | URL
미용실을 시작으로 치과도 가야 하고, 갈 곳이 많아요, ㅎ

[그장소] 2017-02-15 12:38   좋아요 0 | URL
아하핫~ 바쁘게 휭 다녀오세요!^^
 

 

 책을 정리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소설, 시, 인문, 과학, 세계문학 순으로 정리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한데 모아두기도 한다. 읽었지만 소장하지 않을 책, 읽지 않았지만 결국 읽지 않을 것 같은 책도 한 곳으로 모아진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읽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끝내 읽지 않을 운명의 책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구매한 책한데 말이다.

 

 

 

 

 책장을 정리하면서 발견한 책들이 많다. 언제 어떤 계기로 책을 구매했는지 기억은 없지만 말이다. 반대로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던 책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번에 문학과지성사의 책을 정리하면서 반가웠던 책은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 이광호의 『사랑의 미래』, 박혜상의『새들이 서 있다』였다. 한강, 정용준, 정이현, 윤이형이 첫 소설집도 있고 읽지 않은 오정희, 김숨, 박완서, 김현의 책도 있다.

 

 

 

 

 

 시집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어떤 계기로 정리했기 때문이다. 시인의 첫 시집을 소장하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 읽다가 멈췄거나 읽지 않은 시집이 훨씬 많다. 정현종, 허연, 유희경, 심보선의 시집을 자주 바라본다. 계절마다 달마다 생각나는 시집이 있고 좋아하는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시집이 있다.

 

 

 

 

 

 문학과지성사의 책을 살펴보니 시집이 제일 많고 한국문학이 다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인지 한눈에 보였다. 의외로 김연수는 문학과지성사 책이 한 권밖에 없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다루는 세계문학(대산세계문학총서)는 구매하지 않았다. 책장을 더 들이지 않을 것이라 책을 계속 줄이고 있다. 필요하면 다시 구매하는 편이다. 그러니 같은 책을 몇 권씩 사기도 한다. 직배송 중고도 가끔 이용한다. 문학과지성사의 최근 변화는 한국문학의 표지 디자인이다. 표지가 너무 예뻐서 자꾸만 눈이 간다. 신간이 나올 때에도 이번엔 표지를 기대하게 된다. 가장 최근 이유의 『커트』도 그렇다. 조해진의 소설집 『빛의 호위』를 즐겁게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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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2-11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 책장 보고 ㅡ 아, 역시 문학과 지성사는 시집인데~ ... 괜히 뺏군 , ㅎㅎㅎ 눈이 즐거운 책장 공유 입니다~

자목련 2017-02-12 15:08   좋아요 1 | URL
이벤트 참여하면서 잊었던 책도 발견하고 책장도 정리하고 좋아요.

[그장소] 2017-02-12 15:12   좋아요 0 | URL
ㅎㅎㅎ이 책들 정리한다고 책장을 뒤엎어 놓곤 아,,, 괜한 짓였엉~~ 막 후회중 ㅡ 왤케 금세 피곤이 닥치는지.. ㅎㅎㅎ

자목련 2017-02-12 15:53   좋아요 1 | URL
책이 별로 없는데도 책장에서 책을 빼면 책이 막 늘어나는(?) 것 같아요, ㅎㅎ

[그장소] 2017-02-12 17:27   좋아요 0 | URL
으앗~ 바로 바로 그래요!^^ 찾을 땐 없으면서!!^^

낭만인생 2017-02-11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집 읽고 싶네요.. 전 아직 시에 약해서.

자목련 2017-02-12 15:07   좋아요 1 | URL
저도 시에 약합니다. 그냥 읽어요, ㅎ
 
나의 형, 체 게바라
후안 마르틴 게바라 & 아르멜 뱅상 지음, 민혜련 옮김 / 홍익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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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가의 가족으로 산다는 걸 상상할 수 없다. 보통의 삶이 아닌 정의를 위해, 온전히 타자를 위한 삶을 사는 부모나 형제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겨울 것 같다.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가족이라 해도 말이다. 체 게바라는 혁명의 전설이며 상징이다. 검은 베레모와 단호한 표정, 그리고 시가를 피우는 모습이 떠오른다. 쿠바의 혁명을 위해 투쟁하다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는 정도다. 그렇다.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무엇이 그를 혁명가의 삶을 살게 했는지, 왜 조국 아르헨티나가 아닌 쿠바의 영웅이 되었는지. 때문에 ‘체 게바라 50주기 추모작’『나의 형, 체 게바라』는 인간 체 게바라와 혁명가 체 게바라에 대해 알려줄 것 같았다. 물론 이 한 권의 책으로 체 게바라의 삶 다 말할 수도 없도 다 만날 수도 없다.

 

 책은 영웅 체 게바라의 죽음과 그 죽음의 진위를 확인할 수조차 없었던 가족의 안타까움으로 시작한다. 에르네스토 게바라의 막냇동생 후안 마르틴은 혁명가 체 게바라가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큰형에 대해 들려준다. 체 게바라의 삶을 동경했고 그를 지지한 사람이다. 평범한 아르헨티나 중산층 부모의 다섯 아이의 첫째로 태어난 그는 심각한 천식 때문에 유년 시절 학교에도 가지 못했다고 한다. 대신 어머니가 교육을 담당했고 집에는 항상 책이 많았다고 한다. 체 게바라의 혁명에는 자유로운 성향의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의 영향을 주었다고 동생은 말한다.

 

 그렇다면 의과대학에 다니던 평범한 청년은 어떻게 혁명가가 되었을까? 어쩌면 모든 건 우연으로 시작해 운명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반복된 일상에서 안위하는 게 아니라 이곳을 벗어나 다른 곳, 다른 세상을 꿈꿨던 단순한 오토바이 여행에서 체 게바라는 길가에서 만난 가난한 빈민들(강자가 약자를 무차별적으로 착취하는)의 현실을 마주하면서 온전히 자신의 존재를 바쳐할 것을 찾은 것이다. 그것은 혁명가의 삶이었다. 잘못된 것을 보고 잘못되었다 말할 수 있는 용기는 누구에게나 있는 게 아니다. 알면서도 모른 척 지나치고 나 아닌 누군가가 할 일이라 여긴다. 그러나 체 게바라는 달랐다. 바꾸려고 노력했고 끝내 바꿨다.

 

 ‘어머니, 저는 본질적으로 치유불능의 방랑자입니다. 정착민의 규범에 갇힌 의사라는 직업에 저는 그 어떤 미련도 없습니다. 제가 믿는 것이 최종 승리하리라는 사실에 대한 신념은 전혀 바뀌지 않습니다. 저의 유랑은 언제나 우리 가족의 기대와는 반대 방향일 테고, 이 여정을 끝내겠다는 결정은 절대 하지 않을 것입니다.’ (139쪽)

 

 쿠바에서 산업부장관까지 지낸 그는 멈추지 않았다. 콩고의 반군을 돕기 위해 게릴라 요원으로 활동했고 볼리비아의 혁명을 위해 투쟁하다 서른아홉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에게 누군가 만든 혁명은 의미가 없었다. 민중이 함께 모여 외치고 힘을 모아 나가는 것, 그것만이 진짜였다. 혁명가의 동생으로 후안 마르틴의 생도 평탄치 않았다. 좌파운동을 하다 8년 넘게 감옥생활을 한 프롤레타리아다. 그는 체 게바라가 쿠바나 볼리비아에서 하나의 상징이면서 관광상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화가 나고 안타깝다.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체 게바라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후안 마르틴이 체 게바라의 생애를 통해 세상에 전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도 알 것 같다. 변화와 혁식이 필요한 세상에 새로운 체 게바라의 등장을 바라는 건 나 혼자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세상은 체 게바라에 대해 왜곡된 시선을 갖고 있다. 과연 누가 체 게바라의 사상에 대해 알고 있는가. 내 생각에, 거의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당대의 위대한 마르크스 사상가 중 한 사람이었다. 이 사내가 무기를 들고 시대의 벽에 도전한 게릴라였다는 사실만이 훌륭했던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는 스스로를 모험가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선택한 진리를 위해 삶을 내놓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죽기를 마다하지 않은 진정한 인간이었다.’ (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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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제6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정지돈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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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읽을 때 항상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읽다가 멈추는 소설이 늘어난다. 소설의 문장만 읽고 있을 뿐 작가가 그리는 그림이나 메시지를 찾지 못할 때가 많다.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이라는 걸 안다. 취향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친구는 그런 말을 했다. 인물을 이해하는 게 힘들다고, 그래서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많이 읽는다고 말이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걸 보니 나도 그런 때가 오는 건가 싶기도 하다. 제6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다가 든 생각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 소설집을 다 읽지 못했다는 말이다. 궁금했던 작가의 소설과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만 읽고만 것이다.

 

 처음 읽게 된 홍희정의 「앓던 모든 것」은 무척 아름다웠다. 홍희정이란 작가의 다른 소설을 읽고 싶어졌다. 일흔넷의 화자 ‘나’는윤오라는 청년을 수영장에서 처음 만났다. 갈 곳이 없는 윤오에게 자신의 집의 방을 내준다. 누가 보면 할머니와 손자처럼 보이는 사이다. 그러나 ‘나’에게 눈부신 청춘인 윤오가 다르게 보인다. 한때 문학에 적을 두었던 나에게 노랫말을 쓰는 윤오는 잃어버린 시절에 대한 보상처럼 여겨진다. 그러니까 젊음에 대한 욕망을 조심스럽게 탐한다고 해야 할까. 윤오의 이해할 수 없는 언어와 사고마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독특한 관계 설정과 아름다운 묘사가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백수린의「첫사랑」은 아련하고 아득한 기분을 몰고 온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는 ‘나’는 짝사랑했던 J선배와 만날 약속을 한다. 만약을 위해 예쁜 원피스라도 장만하기 위해 동기의 소개로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곳에서 만난 동기들과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현재 통폐합 위기에 처한 현실을 생각한다. 동기들은 대학원에 다니며 공부만 하는 나에게 사회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하기도 한다. 그러다 J선배의 근황을 듣게 된다. 소설을 첫사랑이라는 제목처럼 낭만적인 부분이 등장하지만 문학을 사랑하는 일이 현실의 괴리에 대해서도 잘 보여준다.

 

 김엄지의 「느시」는 다시 읽어도 묘한 매력을 지녔다. 무기력한 일상의 반복임에도 경쾌함 같은 리듬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아마도 개인적인 애정에서 비롯된 감정일 듯하다. 궁금했던 정영수의 소설 「애호가들」도 나쁘지 않았다. 스페인 문학을 강의와 변역을 하는 주인공을 둘러싼 관계를 무척 현실감 있게 담아냈다. 박민정의 버드아이즈 뷰」는 몰래카메라라는 현실적인 소재를 통해 왕따와 관계의 단절에 대해 말한다.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날카로운 일침을 던진다고 할까. 오한기의 「사랑」은 기괴하면서도 독특했고 신선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어내면서도 사회적 메시지를 놓치 않는 김솔의 「누군가는 할 수 있어야 하는 사업」도 기억에 남는다.

 

 소설에도 유행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 시류에 따르지 못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정지돈, 이상우(후장사실주의자)가 주목받는 작가라는데 그들의 소설이 내게는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지만 쉽지 않다. 해박한 지식과 이론을 병행한 이야기, 모든 것을 소설이 될 수 있는 것에 동의하지만 아직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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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5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6 1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물선 2017-02-06 17:40   좋아요 0 | URL
저두요 저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