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에 갈 계획을 짜고 있다. 계획을 짰다는 말이 꽤나 거창하게 들린다. 아파트 가까운 건물에 새로운 미용실이 생긴다는 광고를 봤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매만지는 일은 내게 중요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미용실을 방문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아직 그곳에 가서 머리카락을 자를지 결정한 건 아니지만 조만간 미용실에 갈 것이다. 그곳이 어디든 말이다. 이사를 오기 전에는 아파트 상가에 있는 미용실에 다녔다. 일 년에 한 번, 혹은 세 번 미용실에 갔다.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거나 퍼머를 하는 게 전부였다. 이사를 온 후에는 병원 옆에 있는 미용실에 다닌다. 진료를 받을 일이 생길 때 아침 일찍 미용실의 첫 손님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내 머리카락은 제법 길다. 수술하기 전 도토리 모양에서 옥수수수염처럼 길게 자랐다. 재작년 겨울에 자른 것이다. 작년 가을에 만난 친구는 단발  형태를 보고 이제야 좀 괜찮다고 말을 했었다. 머리 모양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친구의 말을 듣고 머리카락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

 

 머리카락의 변화를 보고 사람들은 심경의 변화를 짐작한다. 어떤 결심의 표현으로 머리카락에 변화를 주기 때문이다. 계절에 따라 옷차림도 변하지만 머리 모양도 변한다. 입춘이 지났고 2월은 절반이 남았다. 절반은 아주 많거나 아주 적은 모양과 부피를 떠올리는 말이다. 절반 정도 읽었다는 말과 절반 정도 남았다는 말은 같은 듯 다르게 다가온다. 내 2월의 절반은 어느 쪽으로 가고 있을까.

 

 미용실에 갈 계획은 잠시 미루고 책을 고른다. 알림 문자가 반가운 조해진의 『빛의 호위』, 알라딘에서는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올 거라고 안내를 하고 있었는데 창비에서 나왔다. 그리고 뜬금없이 생각이 난 최윤의 소설집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이 소설집은 언제 읽을지는 알 수 없다. 언제 읽을지 모르는 책도 있지만 조금씩 읽고 있는 소설도 있다. 우산을 좋아하기에, 이런 제목의 소설은 더욱 좋다. 호텔 프린스』속 황현진의 「우산도 빌려주나요」의 첫 부분을 옮기면 이렇다. 우산이 등장한다.

 

 그녀는 엄마를 마중 나가고 싶지 않았다. 날씨가 나쁘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다.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이 하루에 서너 번씩 꼬박꼬박 전해졌다. 기상 캐스터의 말대로라면 주말 안에 기필코 상륙할 예정이었다. 거리는 혹시 모를 수해를 대비하느라 소란했다. 가게들은 차양을 펼쳤고, 천변에는 통행금지 표지판이 세워졌으며, 행인들은 우산을 지팡이 삼아 걸었다.

 

 허은실의 첫 번째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도 읽으려 한다. 제목처럼 잠깐 설운 삶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잠깐은 금세 지나가는 시간이니 견딜 수 있고 그 시간의 끝에는 단단한 마음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러나 잠깐이 반복된다면 곤란한다. 곤란한 상태를 떠나 힘겨워진다. 어쨌거나 나는 이 시집을 읽을 것이다. 읽고 있는 책을 잠시 멈추고 말이다. 잠깐 멈추고. 우선 이런 시부터.

 


  늦은 찬으로

 묵나물을 먹는다

 

 나물 삶는 냄새

 가득한 마당

 어린순을 한 짐씩

 부려놓던 사내

 

 새 흙무덤에

 고사리 고사리

 

 이러다 봄이 오겠어  - 「변경」,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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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2-14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용실은 가지 않지만 , ㅎㅎ 자목련 님은 잘 다녀오세요 ~^^

자목련 2017-02-15 10:17   좋아요 1 | URL
미용실을 시작으로 치과도 가야 하고, 갈 곳이 많아요, ㅎ

[그장소] 2017-02-15 12:38   좋아요 0 | URL
아하핫~ 바쁘게 휭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