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스토리
리처드 파워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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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들은 마법에 걸린 것처럼 점점 더 두꺼워진다. 밤나무는 빠르게 자란다. 물푸레나무가 야구방망이 정도로 자랄 동안 밤나무는 화장대를 만들 정도로 자란다. 몸을 구부려 어린 나무를 보려고 하면, 나무가 당신의 눈을 찌를 것이다. 나무껍질의 갈라진 틈은 몸통이 위쪽으로 비틀려 자라나며 이발소 간판처럼 빙빙 돌아간다. 바람 속에서 가지들은 짙은 녹색과 밝은 녹색으로 번갈아 반짝거린다. 이파리의 넓은 면은 더 많은 햇빛을 찾아 밖으로 뻗어 나온다. (18~19쪽)

 

 어린 시절 마당에는 두 개의 커다란 향나무가 있었다. 마치 우리 집을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말이다. 폭설이 내리는 겨울에는 정말 아름다웠고 해가 지는 저녁에는 길고 긴 그림자를 마당에 드리웠다. 그저 그 자리에 있었기에 누가 그 나무를 심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나는 알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향나무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감사하게도 다른 나무들이 꽤 많이 있다. 나무, 숲, 나아가 자연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는 리처드 파워스의 『오버 스토리』는 그런 나무들을 불러온다. 신령스러운 나무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관계, 오직 나무만이 알 수 있는 우리가 모르는 비밀들. 사실 묘하게 아름다운 이 책에 대해 말하는 건 어렵다. 아니 그 방법을 잘 모르겠다고 하면 맞을까. 저마다의 사연으로 나무와 연결된 9명의 이야기, 그들이 운명처럼 하나의 나무의 가지로 이어진다.

 

 이 광대한 소설의 시작은 그들에 대한 소개다. 매달 21일 농장의 밤나무를 찍은 할아버지를 시작으로 그것은 약속이 되었다. 100년 가까이 밤나무를 찍은 사진을 물려받은 화가 닉은 자신에게 어떤 운명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을까. 어디 화가뿐일까. 아버지에게 받은 두루마리의 그림과 옥으로 된 뽕나무 반지가 자신의 삶을 지배할 거라 엔지니어 미미도 몰랐을 것이다. 나무 덕분에 목숨을 거진 참전 군인 더글라스, 자신의 단풍나무를 사랑했지만 돌고 돌아 그것과 진정하게 마주하는 교수 애덤, 아마추어 연극 무대에서 나무를 연기하고 정원에 나무를 심자던 레이와 도로시, 나무에서 떨어져 얻은 장애로 인해 휠체어 신세를 지면서 게임을 만들어 나무와 숲을 자유롭게 지배하는 닐리, 잘 들리지 않아 어눌한 말 때문에 나무와 친구가 되고 결국은 나무의 세계를 이해하는 과학자 패트리샤, 마약과 술에 찌들어 감전되었지만 놀랍게 살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올리비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오던 그들은 우연처럼 서로에게 연결된다. 성공한 엔지니어 미미는 휴식처가 된 공원의 나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사실에 놀라고 잘려나간 나무의 자리에 돈을 주고 나무를 심는 남자 더글라스를 만난다. 계시처럼 운명의 목소리에 이끌려 길을 떠난 올리비아는 공짜 나무 작품이란 포스터를 보고 닉의 외양간에서 닉의 작품을 마주한다. 벌목을 하는 이들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한다. 사람들의 심리를 관찰하기 위해 애덤은 그곳에 도착하고 마침내 그들은 모두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간다. 나무와 숲을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공무원과 대치한다.

 

 그들이 밖에 있다면 과학자 패트리샤는 꾸준하게 숲 안에서 자신의 연구를 한다. 나무와 나무가 서로 소통하고 성장한 사실을 이론적으로 밝혀내는 일. 처음에는 무시했던 이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책을 인정하고 강의를 청한다. 위기에 놓인 나무의 종자 은행을 만들기로 한 패트리샤는 강의를 통해 사람들에게 숲과 인간의 공존에 대해 말한다.

 

 숲의 모든 것들은 숲이다. 경쟁은 협조의 끝없는 변종에 속한다. 나무들은 서로 한 나무에서 이파리들이 싸우는 만큼만 싸운다. 대부분의 자연은 전혀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존재가 아니다. 생명체 피라미드의 바닥에 있는 종들은 싸울 수 있는 이나 발톱이 없다. 하지만 나무들이 자신들의 창고를 공유한다면, 모든 무자비함은 초록의 바다 위로 떠가게 될 것이다. (203쪽)

 

 우리가 언제나 나무로부터 이것저것 원했던 것처럼, 나무도 우리에게서 뭔가를 원합니다. 이건 신비주의적인 이야기가 아니에요. 환경은 살아 있어요. 목적을 가진 서로에게 의존하는 생명들의 유연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거미줄이죠. (중략) 우리에게 미끼를 어떻게 찾는지를 가르치면서 나무들은 우리에게 하늘이 파란 걸 보게 가르쳤죠. 우리의 뇌가 숲을 풀어나가도록 진화했어요. 우리는 우리가 호모사피엔스였던 기간보다 더 오래 숲을 형성하고 숲에 의해 형성되었어요. 인간과 나무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가까운 사촌이에요. 우리는 같은 씨앗에서 나와서 공유 장소에서 서로를 이용하며 반대 방향으로 자라난 두 개의 존재예요. (638쪽)

 

 아득한 먼 옛날 밤나무의 씨앗으로 시작해 인간의 추악한 욕망의 끝을 보여준다. 나무의 열매, 나무의 가지, 나무를 통해 무언가를 얻고, 모든 것을 준 나무를 정작 눈에 담지 않는 인간의 모습. 소설에서 패트리샤의 목소리는 가장 중요하다. 그녀가 들려주는 나무의 생애는 매혹적이고 황홀한 숲을 상상하게 만든다. 또한 그녀는 경고한다. 나무와 숲과 인간이 공존 해야만 하는 너무도 많은 이유를. 인간이 그것을 모르는 척 살아왔기에 지금 지구의 숲은 망가졌다고. 숲의 외침, 숲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임을 말한다.

 

 정성을 모아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면서도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았다는 게 놀랍다. 내가 아는 나무의 이름을 가만히 부르고, 울창한 숲의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하다. 그런 면에서 바버라 킹솔버의 『본능의 계절』가 떠오르기도 했다. 은유로 채워진 활자를 통해 삼림욕을 한 것 같기도 하고, 숲의 전령사인 수많은 나무의 손짓을 목격한 것 같다. 하지만 그들에게 받은 기운의 모양이나 크기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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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2-24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나무 느낌처럼 초록색이네요.
자목련님,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자목련 2019-02-27 14:44   좋아요 1 | URL
네, 싱그러움을 전해주는 표지입니다.
서니데이 님, 즐거운 수요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