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생애 소설Q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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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을 듯한 사람들, 그러나 닿지 못하는 이들, 그래서 더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 정착하려 애쓰지만 끝내 도착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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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시대 - 문보영 에세이 매일과 영원 1
문보영 지음 / 민음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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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무거나 쓰다 보면 어느 날 그 글은 소설이 되기도, 시가 되기도 한다. 일기는 무엇이든 될 수 있기에. 일기가 집이라면 소설이나 시는 방이다. 일기라는 집에 살면 언제든 소설이라는 방으로, 시라는 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34쪽)


문보영처럼 아무거나 써도 잘 쓸 수 있다면 좋겠다. 이 글에는 그런 바람이 담겼다. 그러니까 문보영의 에세이 『일기시대』 에 대한 리뷰나 글이 아니라 그냥 내가 쓰고 싶은 마음을 쓴 글 정도가 되겠다. 일기쓰기에 진심인 글이라고 할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를 따라하게 된다. 작가를 좋아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문보영은 아주 어렸을 때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그랬다고 한다. 친구가 하는 걸 모방했는데 심지어 손가락을 다친 모습으로 수학 문제를 푸는 것까지 따라 했다고. 그래서 수학 성적이 올랐다고 한다. 이런 순수하고 긍정적인 모방은 꽤 괜찮아 보인다. 이 책은 거의 절반 이상이 문보영의 방 형태에 대한 그림과 불면증으로 잠들지 못하는 시간에 그가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뭐 그러니까 일기시대가 영 틀린 건 아니다.


잠들지 못하는 밤을 떠올리면 우리는 불면의 괴로움과 고통이 따라온다. 문보영의 동선은 그날그날 다른데 침대에 있다가 책상으로 바닥으로 때로는 옷장으로 때로는 거실의 소파로. 책상 서랍에서 라면을 꺼내 끓여 먹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게임을 하기도 하고 온몸으로 잠들기를 고대하면서 결국엔 아침 6시에나 잠든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이 그녀의 일기다. 학창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그녀의 친구들과 편의점에 가거나 산책을 한 일, 영화를 본 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한 것들이다. 누구나 경험하는 보통의 일상이지만 문보영만의 뭔가가 있다. 나는 그게 부럽다. 그게 무엇일까, 그걸 또 정확하게 모르겠으니 답답하다. 어떤 형식이나 제도에 구해 받지 않고 쓰는 당당함이라고 할까. 아닐지도 모르겠다. 애착 인형과 상상친구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나 그들과 꾸준하게 대화하는 상상력의 힘이라고 하면 맞을까.


대학시절 우연하게 듣게 된 시인의 수업 덕분에 시를 배우고 시를 쓰게 된 이야기는 정말 드라마 같다. 수업을 듣고 소설에 흥미가 생겼던 그는 선생님께 메일을 보냈는데 시인이라서 소설을 안 가르친다는 답을 받았고 종각에서 어르신 대상으로 시 수업을 한다고. 어른들의 시 창작 수업에서 문보영은 시를 일고 시를 배운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시는 학교 문학회로 이어졌고 그는 시인이 되었다.


시를 읽고 쓰는 순간에만 숨을 쉬고 슬픔을 잊을 수 있었다. 시를 읽는 순간에만 슬픔은 강렬하고 시원하게 느낌으로써 슬픔을 소화했다. 그게 무엇이건 간에, 어떤 것에서, 큰 도움을 받고 나면 그것은 큰 안목을 준다. 시에 큰 도움을 받은 이후에는 더 많은 시를 읽을 수 있게 되었고, 그런 시간을 한번 통과하자 아플 때만 시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무탈할 때도 시를 읽는 사람이 되었다. 시를 내 삶에 심어 버린 것이다. (96쪽)


아무거나 아무렇지 않게 쓰지만 그 안에는 멋진 비유가 있고 사유가 있다. 친구(친구의 닉네임이 참 기발하다. 이제 책에서 등장할 때 지난 책에서 만났기에 반갑고 심지어 내가 아는 이들 같다)와 같이 운전면허 시험을 보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그런 비유는 등장한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 켜는 법을 배우는데 강사는 시동을 켤 때 키를 너무 오래 잡고 있으면 엔진이 타버린다고. 문보영은 누군가와 손을 오래 잡고 있던 장면이 떠올라 사람의 손도 너무 오래 잡고 있으면 둘 중 하나가 타 버리기도 한다며 관계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간다. 손을 잡는 것은 관계에 시동을 행위라고. 운전을 못하기에 내가 시동을 걸 일은 없지만 차에 탈 때마다 누군가의 손을 잡는 일에 대해 생각할 것 같다. 그나저나 책에서는 운전면허를 타지 못했는데 그 결과가 궁금하다.


다채로운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다. 하나같이 재밌고 흥미롭지만 문보영이 밤에 시를 들려주는 이벤트에서 독자에게 한 말처럼 우리가 잠든 사이에 잠들지 못하는 그를 생각하면 안타깝고 안쓰럽다. 그러다가 그 시간 덕분에 그는 글을 쓰고 내가 읽고 있으니 계속 잠들지 말라고 해야 하나 혼자 생각했다. 일기든 무엇이는 쓰는 시간, 시를 쓰는 과정과 마감, 직업이 시인이냐고 답하는데도 직업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나는 살짝 놀랐다. 우리 사회에서 시인은 하나의 직업으로 인식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건 시만 써서는 생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여하튼 그의 일기 가운데 나는 글에 대한 이야기가 제일 좋았다.


글을 쓰는 한 나는 세상의 순서를 망각하며,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들의 순위는 내 멋대로 재조정된다. 세상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글을 쓰는 동안 중요하지 않고, 세상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 또한 글을 쓰는 동안에는 여전히 중요하지 않다. (260쪽)


그리고 이런 문장은 시리다. 가슴을 때린다. 밝고 천진난만하게 보이는 글의 이면에 그가 얼마나 아프게 살았는지 느낄 수 있다. 깊은 잠을 잘 때가 있는데 그건 우울증을 앓을 때라는 말도 자꾸 생각난다. 잠을 잘 때는 아플 때고 건강할 때는 잠을 못 자고 있으니. 사람으로부터 멀어지는 시간이 길어지기를 바란다. 그 시간 아무것도 아닌 존재여도 상관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 나는 너무 사람이다. 그래서 종종 사람이 아닌 시간이 필요하다. 가끔은 사람으로부터 멀어지려는 나 자신을 응원하고 싶다. (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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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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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근처 작은 마을, 그림 같은 풍경의 빌라에서 사체가 발견됐다. 아래위 다섯 집으로 모두 10호의 하자키 목련 빌라다. 아무도 살지 않은 빈 집인 3호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최초 신고자는 부동산 업자의 아내다. 손님에게 집을 보여주려 왔다가 사체를 만났다. 도대체 누가 빈 집에 침입해 살인을 저지른 걸까. 전 주인과 관련된 사건일까. 놀라운 건 사체의 모습이다.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건 없다. 얼굴도 엉망이고 지문도 없다. 잔인한 수법이라고 짐작할 수밖에. 사건이 발생한 날은 태풍으로 외출을 하기도 어렵고 외부에서 빌라를 찾는 방문객도 없었다. 사건 당일 심장 발작으로 병원에 입원한 2호 할아버지와 제사를 모시러 친정에 간 할머니를 제외하곤 10호의 모든 주민이 유력한 용의자가 된다.


고마지 형사반장과 히토쓰바시 경사는 차례로 주민들을 방문해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와 3호에 대해 묻는다. 빌라 뒷편의 저택으로 최근 이사를 온 작가 고다이와 아내 야요이도 포함이다. 각각 개성이 뚜렷한 입주민은 한결같이 태풍 때문에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고 이상한 사람을 본 적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슬쩍 다른 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빈 집이었던 3호를 방문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부동산 사람들뿐이지만 그들 또한 알리바이가 있었고 열쇠도 분실하거나 한 적이 없다. 하지만 부동산을 방문한 주민들은 금고가 열려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열쇠는 쉽게 복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피해자의 신원이 파악되지 않아 사건 해결은 총체적 난국이다.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고 근처에 산이 있는데 굳이 집 안에 시체를 둔 이유는 무엇일까. 3호의 사건으로 뒤숭숭해진 몇몇 주민은 8호 세리나가 운영하는 호텔 겸 레스토랑 남해장에 모여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형사에게는 하지 않았던 말들을 꺼낸다. 빌라에서 유일하게 사건 메이커인 5호의 아케미 부인이 사건 당일 빌라 뒤 산길을 올라가는 두 사람을 봤다면서 말투를 흐린다. 아케미 부인은 혼자서 쌍둥이 딸을 키우는 시청 공무원 1호 후유와 다툼이 있었고 학원을 운영하는 4호의 두 남자 다큐야와 아키라와 고서점을 운영하는 7호 노리코와도 미모가 출중한 9호의 게이코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나마 6호에 사는 번역가 쇼코는 두루두루 사이가 좋은 편이다.


3호의 사건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저마다 범인을 추리하기에 이른다. 3호에서 발견된 사체의 신체조건이 3년 전 실종된 3호의 후유의 남편과 7호 노리코가 과거에 사귄 남자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 9호의 게이코는 결혼 전 승무원이었던 시절 불륜에 대해 협박 편지를 받고 형사의 탐문에 그 사실을 털어놓는다. 우연히 5호의 아케미 부인이 대화를 듣고 게이코와 심하게 다툰다. 살인사건으로 인해 저마다 감추고 있던 비밀이 하나씩 밝혀진다고 할까. 3호의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 그러니까 게이코와 아케미가 심하게 다툰 후 아케미가 둔기에 맞아 죽는다. 이게 연쇄살인의 시작일까. 살인범은 정말 빌라 사람 가운데 있을까.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아니, 독자인 나만 그렇다. 이미 누군가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야 곳곳에 작가가 숨겨둔 유머장치와 복선을 알아차린다.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도 흥미롭지만 다양한 인간 군상을 코믹하고 유쾌하게 다룬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끔찍하고 잔혹한 살인사건을 소재로 하면서도 전혀 무섭거나 무겁지 않다. 아주 사소한 다툼 정도로만 분위기를 이끈다. 이웃 사이에 지나친 관심을 불편을 초래하지만 적정한 거리를 두고 이웃의 정을 쌓아야 한다는 교훈 아닌 교훈 같다고 할까.


등장인물이 많아서 처음엔 살짝 혼란스럽지만 조금씩 드러나는 캐릭터를 통해 소설 전체를 볼 수 있다. 물론 하자키 목련 빌라의 약도가 없었더라면 어려웠을 것이다. 추리소설의 묘미를 잘 살린 소설이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이에게 재미와 즐거움을 안겨주는 일상 미스터리를 찾는다면 이 소설이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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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아파트먼트 - 팬데믹을 추억하며
마시모 그라멜리니 지음, 이현경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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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곧 사라진다. 시간이 흐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도 곧 어제가 되고 과거로 진입한다. 힘든 시간을 지내고 있을 때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에 의지하는 마음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는 아름답게 미화되고 추억의 일부가 된다. 전 세계가 겪는 이 코로나도 그럴 거라는 걸 안다. 이 시대가 영화가 되고 소설이 될 거라고 말이 벌써 실행되었다. 팬데믹이 3년 째 이어지고 있으니 빠른 게 아닐지도. 마시모 그라멜리니의 『이태리 아파트먼트』는 현재 우리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소설이다.


세상은 ‘현재’ 안에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현재를 사는 동안 그 현재는 언제나 이전의 모든 현재들보다 훨씬 나빠 보였다. 그렇지만 몇 년 뒤 사람들은 왜곡된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 시간을 그리워했다. 우리가 수천 년 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299쪽)


2080년 화자인 ‘마티아’는 자신의 손자에게 들려줄 목적으로 60년 전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니까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에 등장했던 시기, 아홉 살 소년 마티아가 경험한 일상을 들려주는 소설이다. 마티아는 밀라노의 한 아파트먼트에 로사나 누나와 엄마와 함께 산다. 마티아는 바이러스 덕분에 생일 파티를 생략하고 학교도 가지 않아 좋았다. 마티아는 의자 친구 ‘퍼프’만으로도 충분했다. 위층에는 젬마 할머니도 사시니까. 바이러스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치는 엄마가 지나칠 정도로 소독에 집중하는 모습과 별거 중인 아빠와 지내게 된 것이다. 로마에서 지내는 아빠는 한 번씩 마티아를 만나러 오지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엄마와도 곧 이혼을 할 예정이고 이번에도 마티아의 생일이라 온 것이다. 그런데 바이러스가 로마로 돌아가는 길을 차단했다.


마티아에게 아빠는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마티아에 대해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과 한 집에서 지내야 하다니. 아홉 살 인생에서 최대의 고비였다. 소설은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일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밀라노라는 배경만 다를 뿐 아파트라는 공동주택,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비대면으로 수업을 하는 마티아와 로사나, 재택근무를 하는 아빠와 엄마. 혼자 지내는 할머니. 이웃들의 근황은 테라스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누군가 집안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밖으로 나가지 못해 아파트 마당에서 인형 놀이를 하는 여자아이, 안부를 전하는 일도 어렵고 만나는 일은 더욱 어렵다. 그러니 마티아는 아빠와 자꾸 부딪힌다. 아빠의 전화 통화 내용과 엄마랑 나누는 이야기도 듣고 로사나 누나와 아빠가 꾸미는 일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이상하게 조금씩 아빠에 대해 알게 되고 잠을 잘 때 엄마에게 했던 이야기를 아빠에게도 하고 만다.


강제적 구금 상태는 가족의 사이를 멀어지게도 하고 가깝게도 했다. 엄마와 아빠도 그러했고 자신과 아빠의 사이도 그랬다. 그러던 중 마티아가 열이 나기 시작하고 응급실로 향한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건 아닐까. 마티아도 검사를 받게 된다. 아홉 살 마티아의 시선에는 그 모든 게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보인다.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주인의 모습이었으니까.


소설이 특별한 점은 바로 아홉 살 소년의 시선에서 그려낸다는 것이다. 아홉 살 소년에게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곳이고 바이러스 때문에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도 이상하다. 이웃 간의 교류는커녕 단절로 가득한 사회, 바이러스 치료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이들을 향해 바이러스를 전파시키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까지. 그건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모습이었다. 우리 사회 역시 그렇지 않던가. 감염자가 다녀갔다는 장소를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아무렇지 않게 마스크 사재기를 하는 이들도 많았으니까.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경험하면서 우리 사회는 더 안전한 쪽으로 향할 것이다. 의학과 과학은 발전할 것이고 또 다른 바이러스에 대비도 할 것이다. 그건 아홉 살 소년 마티아에게도 그랬다. 아빠와 함께 지내는 동안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점점 아빠와 친해지고 좋아졌다. 아빠가 로마로 돌아가는 게 싫었다. 그런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상대는 오직 젬마 할머니뿐이었다. 할머니는 마티아의 마음을 다 아는 듯 공감해 주며 때로는 어려운 말을 많이 했다. 우리는 젬마 할머니처럼 아이들을 살피고 있을까. 소설을 읽으면서 코로나로 인해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는 건 아이들과 청소년이 아닐까 싶었다. 예상했던 대로 소설 속에서 바이러스 종식은 등장하지 않았지만 아홉 살 소년 마티아는 그 시간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알아가고 성장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경험하고 느끼는 것처럼. 


“마티아, 사랑은 춤이야. 인생은 다른 음악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지. 두 사람이 함께 춤을 출 때는 상대의 발을 밟지 않으면서 변하는 박자에 맞춰야 해. 두 사람에게 계속 춤을 출 힘을 주는 이유를 찾으면서 말이야.” (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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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2-23 10: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080년 미래라면 69세의 마티아도 중년이겠고 훗날 증손자에게까지 2020년 펜데믹 이야기를 하게 되겠네요^^ 어떻게 이야기가 전해질까요?^^그런 상상 해본 적 없다가 자목련님 페이퍼 읽으면서..^^

자목련 2022-02-24 09:02   좋아요 3 | URL
아마도 그렇겠지요. 돌아가신 할머니가 우리에게 전쟁이야기를 해주셨던 것처럼요.

mini74 2022-03-08 1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

자목련 2022-03-10 11:18   좋아요 2 | URL
감사드리며 저도 축하드립니다. 월요일 같은 목요일 즐겁게 이어가세요^^

그레이스 2022-03-08 1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2-03-10 11:18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 님, 저도 축하드려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새파랑 2022-03-08 19: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당선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2-03-10 11:19   좋아요 3 | URL
저도 새파랑 님의 당선 축하드려요^^
맛있는 하루 보내세요^^
 
당신이 살았던 날들 -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
델핀 오르빌뢰르 지음, 김두리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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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살았던 날들' 리뷰 대회


생은 유한하기에 우리는 죽음을 인식하며 산다. 죽음을 이해하거나 아는 건 아니다. 다만 먼저 떠난 이를 그리워하고 슬픔을 달래며 사는 일도 죽음을 인식하는 일부라고 여긴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죽음이 우리 곁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 사람이 떠난 빈 공간, 부재로 존재하는 이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삶이 어느 순간 일생을 지탱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걸 알기에.


랍비 델핀 오르빌뢰르의 『당신이 살았던 날들』를 읽으면서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그가 참석한 누군가의 장례식장의 풍경이나 모습은 우리가 느꼈던 슬픔과 의구심은 우리가 느꼈던 것들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죽음을 말하는 건 삶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느낀다. 가족, 이웃, 친구를 잃은 이들을 위로하면서 나눠야 할 것도 바로 그렇다. 비탄과 상심이 가득하겠지만 죽은 이의 생이 우리와 어떻게 연결되고 겹쳐지는지.


오르빌뢰르가 마주한 죽음은 다양하다. 죽음이 특정한 누군가를 정해놓은 게 아니니까. 책에서 그가 마지막 인사를 전하며 만난 이들은 다양하다. 원리주의에 희생양으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정신과 의사 엘자, 엘자와 죽음과 공포에 대한 생각을 서신으로 교환했던 마르크,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란 비밀을 혼자 간직하고 쓸쓸히 죽은 사라, 아픈 역사로 우리에게 남은 아우슈비치에서 함께 지내 생의 마지막까지 서로를 응원한 시몬과 마르셀린. 같이 놀던 형을 남기고 떠난 어린 동생 이사악, 암에 걸린 오르빌뢰르의 친구 아리안. 성경 속 모세와 이스라엘의 죽음까지. 그녀는 랍비로서 죽음을 알려주며 남겨진 삶을 위로하고 성찰의 메시지를 전한다.


나는 자주 생각한다. 우리의 장례식 날에 우리의 삶이 비극의 형식과는 다르게 이야기될 수 있고, 우리가 다른 어휘와 다른 상황의 언어로 회상될 수 있기를, 그리고 우리의 삶 역시 스릴러, 로맨스 시리즈, 신화, 심지어 대중적인 코미디 영화처럼 간주될 수 있기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 역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의 장례식에선 우리가 우리의 죽음으로 요약되지 않고, 그래서 우리가 살아생전에 얼마나 살아 있었는지를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57쪽)


사실 이 책은 너무 슬프다. 내 곁을 떠난 사랑하는 이들을 하나씩 떠올리기에 충분하고 저마다의 죽음은 곧 그들의 삶이니까. 생의 마지막인 죽음 앞에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자식을 잃은 부모를 에둘러 위로하는 말들, 안타까운 사건에 대한 탄식과 비난이 아니라 죽음의 당사자, 곧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이 살아온 삶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말이다. 한 사람의 고유한 생이 그려낸 아름다운 기록. 그것이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죽음과 마주할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죽음이 무엇인지 인식하면서도 그것의 공포는 여전하다. 팬데믹의 시대, 가족과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나는 이들이 많다. 그것은 사회적 죽음이며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그들의 죽음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몇 년 전 여름의 뜨거운 날에 떠난 큰언니는 가을에 떠날 수 있기를 바랐다. 남겨진 이들의 자신의 장례를 치르는 게 힘들 거라면서. 그게 조금 더 살고 싶다는 말이었다는 걸 어리석은 나는 바로 알지 못했다. 생의 끝자락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나와 보냈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큰언니 생각이 많이 났다. 암에 걸려 자신의 죽음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친구 아리안을 지켜보며 오르빌뢰르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어떤 날은 친구로 어떤 날은 랍비로 아리안을 대하며 함께 웃고 울었던 시간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은, 있을지 모를 세상으로 향하는 통로를 열어둘 수 있다. 죽음은 두 세상을 분리하지만 때로는 죽음을 실제로 만나야만 새로운 세상에 들어갈 수 있다. (200쪽)


종교적인 색채와 성경의 의미를 뒤로하고도 오르빌뢰르가 들려주는 죽음의 사유는 아름답고 귀하다. 이 책에 대해 잘 말하지 못해 아쉽지만 분명한 사실은 아주 훌륭하고 좋은 책이라는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고 삶을 생각한다. 언제일지 모를 나의 죽음을 생각하며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먼저 떠난 일들을 생각하며 삶의 거룩함을 생각한다. 어쩌면 죽음은 삶의 연장선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더욱 경건하고 진실해야 한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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