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아파트먼트 - 팬데믹을 추억하며
마시모 그라멜리니 지음, 이현경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재는 곧 사라진다. 시간이 흐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도 곧 어제가 되고 과거로 진입한다. 힘든 시간을 지내고 있을 때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에 의지하는 마음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는 아름답게 미화되고 추억의 일부가 된다. 전 세계가 겪는 이 코로나도 그럴 거라는 걸 안다. 이 시대가 영화가 되고 소설이 될 거라고 말이 벌써 실행되었다. 팬데믹이 3년 째 이어지고 있으니 빠른 게 아닐지도. 마시모 그라멜리니의 『이태리 아파트먼트』는 현재 우리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소설이다.


세상은 ‘현재’ 안에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현재를 사는 동안 그 현재는 언제나 이전의 모든 현재들보다 훨씬 나빠 보였다. 그렇지만 몇 년 뒤 사람들은 왜곡된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 시간을 그리워했다. 우리가 수천 년 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299쪽)


2080년 화자인 ‘마티아’는 자신의 손자에게 들려줄 목적으로 60년 전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니까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에 등장했던 시기, 아홉 살 소년 마티아가 경험한 일상을 들려주는 소설이다. 마티아는 밀라노의 한 아파트먼트에 로사나 누나와 엄마와 함께 산다. 마티아는 바이러스 덕분에 생일 파티를 생략하고 학교도 가지 않아 좋았다. 마티아는 의자 친구 ‘퍼프’만으로도 충분했다. 위층에는 젬마 할머니도 사시니까. 바이러스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치는 엄마가 지나칠 정도로 소독에 집중하는 모습과 별거 중인 아빠와 지내게 된 것이다. 로마에서 지내는 아빠는 한 번씩 마티아를 만나러 오지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엄마와도 곧 이혼을 할 예정이고 이번에도 마티아의 생일이라 온 것이다. 그런데 바이러스가 로마로 돌아가는 길을 차단했다.


마티아에게 아빠는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마티아에 대해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과 한 집에서 지내야 하다니. 아홉 살 인생에서 최대의 고비였다. 소설은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일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밀라노라는 배경만 다를 뿐 아파트라는 공동주택,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비대면으로 수업을 하는 마티아와 로사나, 재택근무를 하는 아빠와 엄마. 혼자 지내는 할머니. 이웃들의 근황은 테라스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누군가 집안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밖으로 나가지 못해 아파트 마당에서 인형 놀이를 하는 여자아이, 안부를 전하는 일도 어렵고 만나는 일은 더욱 어렵다. 그러니 마티아는 아빠와 자꾸 부딪힌다. 아빠의 전화 통화 내용과 엄마랑 나누는 이야기도 듣고 로사나 누나와 아빠가 꾸미는 일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이상하게 조금씩 아빠에 대해 알게 되고 잠을 잘 때 엄마에게 했던 이야기를 아빠에게도 하고 만다.


강제적 구금 상태는 가족의 사이를 멀어지게도 하고 가깝게도 했다. 엄마와 아빠도 그러했고 자신과 아빠의 사이도 그랬다. 그러던 중 마티아가 열이 나기 시작하고 응급실로 향한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건 아닐까. 마티아도 검사를 받게 된다. 아홉 살 마티아의 시선에는 그 모든 게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보인다.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주인의 모습이었으니까.


소설이 특별한 점은 바로 아홉 살 소년의 시선에서 그려낸다는 것이다. 아홉 살 소년에게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곳이고 바이러스 때문에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도 이상하다. 이웃 간의 교류는커녕 단절로 가득한 사회, 바이러스 치료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이들을 향해 바이러스를 전파시키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까지. 그건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모습이었다. 우리 사회 역시 그렇지 않던가. 감염자가 다녀갔다는 장소를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아무렇지 않게 마스크 사재기를 하는 이들도 많았으니까.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경험하면서 우리 사회는 더 안전한 쪽으로 향할 것이다. 의학과 과학은 발전할 것이고 또 다른 바이러스에 대비도 할 것이다. 그건 아홉 살 소년 마티아에게도 그랬다. 아빠와 함께 지내는 동안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점점 아빠와 친해지고 좋아졌다. 아빠가 로마로 돌아가는 게 싫었다. 그런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상대는 오직 젬마 할머니뿐이었다. 할머니는 마티아의 마음을 다 아는 듯 공감해 주며 때로는 어려운 말을 많이 했다. 우리는 젬마 할머니처럼 아이들을 살피고 있을까. 소설을 읽으면서 코로나로 인해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는 건 아이들과 청소년이 아닐까 싶었다. 예상했던 대로 소설 속에서 바이러스 종식은 등장하지 않았지만 아홉 살 소년 마티아는 그 시간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알아가고 성장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경험하고 느끼는 것처럼. 


“마티아, 사랑은 춤이야. 인생은 다른 음악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지. 두 사람이 함께 춤을 출 때는 상대의 발을 밟지 않으면서 변하는 박자에 맞춰야 해. 두 사람에게 계속 춤을 출 힘을 주는 이유를 찾으면서 말이야.” (301쪽)




댓글(8)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22-02-23 10: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080년 미래라면 69세의 마티아도 중년이겠고 훗날 증손자에게까지 2020년 펜데믹 이야기를 하게 되겠네요^^ 어떻게 이야기가 전해질까요?^^그런 상상 해본 적 없다가 자목련님 페이퍼 읽으면서..^^

자목련 2022-02-24 09:02   좋아요 3 | URL
아마도 그렇겠지요. 돌아가신 할머니가 우리에게 전쟁이야기를 해주셨던 것처럼요.

mini74 2022-03-08 1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

자목련 2022-03-10 11:18   좋아요 2 | URL
감사드리며 저도 축하드립니다. 월요일 같은 목요일 즐겁게 이어가세요^^

그레이스 2022-03-08 1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2-03-10 11:18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 님, 저도 축하드려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새파랑 2022-03-08 19: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당선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2-03-10 11:19   좋아요 3 | URL
저도 새파랑 님의 당선 축하드려요^^
맛있는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