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살았던 날들 -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
델핀 오르빌뢰르 지음, 김두리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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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살았던 날들' 리뷰 대회


생은 유한하기에 우리는 죽음을 인식하며 산다. 죽음을 이해하거나 아는 건 아니다. 다만 먼저 떠난 이를 그리워하고 슬픔을 달래며 사는 일도 죽음을 인식하는 일부라고 여긴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죽음이 우리 곁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 사람이 떠난 빈 공간, 부재로 존재하는 이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삶이 어느 순간 일생을 지탱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걸 알기에.


랍비 델핀 오르빌뢰르의 『당신이 살았던 날들』를 읽으면서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그가 참석한 누군가의 장례식장의 풍경이나 모습은 우리가 느꼈던 슬픔과 의구심은 우리가 느꼈던 것들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죽음을 말하는 건 삶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느낀다. 가족, 이웃, 친구를 잃은 이들을 위로하면서 나눠야 할 것도 바로 그렇다. 비탄과 상심이 가득하겠지만 죽은 이의 생이 우리와 어떻게 연결되고 겹쳐지는지.


오르빌뢰르가 마주한 죽음은 다양하다. 죽음이 특정한 누군가를 정해놓은 게 아니니까. 책에서 그가 마지막 인사를 전하며 만난 이들은 다양하다. 원리주의에 희생양으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정신과 의사 엘자, 엘자와 죽음과 공포에 대한 생각을 서신으로 교환했던 마르크,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란 비밀을 혼자 간직하고 쓸쓸히 죽은 사라, 아픈 역사로 우리에게 남은 아우슈비치에서 함께 지내 생의 마지막까지 서로를 응원한 시몬과 마르셀린. 같이 놀던 형을 남기고 떠난 어린 동생 이사악, 암에 걸린 오르빌뢰르의 친구 아리안. 성경 속 모세와 이스라엘의 죽음까지. 그녀는 랍비로서 죽음을 알려주며 남겨진 삶을 위로하고 성찰의 메시지를 전한다.


나는 자주 생각한다. 우리의 장례식 날에 우리의 삶이 비극의 형식과는 다르게 이야기될 수 있고, 우리가 다른 어휘와 다른 상황의 언어로 회상될 수 있기를, 그리고 우리의 삶 역시 스릴러, 로맨스 시리즈, 신화, 심지어 대중적인 코미디 영화처럼 간주될 수 있기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 역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의 장례식에선 우리가 우리의 죽음으로 요약되지 않고, 그래서 우리가 살아생전에 얼마나 살아 있었는지를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57쪽)


사실 이 책은 너무 슬프다. 내 곁을 떠난 사랑하는 이들을 하나씩 떠올리기에 충분하고 저마다의 죽음은 곧 그들의 삶이니까. 생의 마지막인 죽음 앞에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자식을 잃은 부모를 에둘러 위로하는 말들, 안타까운 사건에 대한 탄식과 비난이 아니라 죽음의 당사자, 곧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이 살아온 삶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말이다. 한 사람의 고유한 생이 그려낸 아름다운 기록. 그것이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죽음과 마주할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죽음이 무엇인지 인식하면서도 그것의 공포는 여전하다. 팬데믹의 시대, 가족과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나는 이들이 많다. 그것은 사회적 죽음이며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그들의 죽음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몇 년 전 여름의 뜨거운 날에 떠난 큰언니는 가을에 떠날 수 있기를 바랐다. 남겨진 이들의 자신의 장례를 치르는 게 힘들 거라면서. 그게 조금 더 살고 싶다는 말이었다는 걸 어리석은 나는 바로 알지 못했다. 생의 끝자락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나와 보냈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큰언니 생각이 많이 났다. 암에 걸려 자신의 죽음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친구 아리안을 지켜보며 오르빌뢰르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어떤 날은 친구로 어떤 날은 랍비로 아리안을 대하며 함께 웃고 울었던 시간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은, 있을지 모를 세상으로 향하는 통로를 열어둘 수 있다. 죽음은 두 세상을 분리하지만 때로는 죽음을 실제로 만나야만 새로운 세상에 들어갈 수 있다. (200쪽)


종교적인 색채와 성경의 의미를 뒤로하고도 오르빌뢰르가 들려주는 죽음의 사유는 아름답고 귀하다. 이 책에 대해 잘 말하지 못해 아쉽지만 분명한 사실은 아주 훌륭하고 좋은 책이라는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고 삶을 생각한다. 언제일지 모를 나의 죽음을 생각하며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먼저 떠난 일들을 생각하며 삶의 거룩함을 생각한다. 어쩌면 죽음은 삶의 연장선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더욱 경건하고 진실해야 한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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