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둘만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 뜨겁게 사랑하고 있는 중에도 사랑을 의심하는 경우가 있다. 연인의 사랑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내 곁에 있는 사랑이 나를 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이 줄어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은 밥도 아니고 사랑은 돈도 아니라서 먹을 수도 없고 좋은 물건을 사는데 사용할 수도 없다. 사랑은 한 사람을 사랑하는 순간, 사랑받는다는 느낌만으로 존재한다. 그 사랑이 때로 누군가를 살게 하고 누군가를 죽게 만든다. 그렇다면 폴에게는 사랑은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었을까. 아니면 고칠 수 없고 버릴 수 없는 습관이었을까.
이혼 경력이 있고 이별의 경험이 있지만 반복되는 상실을 감당하기에 서른아홉 살의 실내장식가 폴은 지쳐있었을지도 모른다. 연인 로제에 대해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혼자라는 외로움을 이겨낼 수 없을까 두려워서다. 폴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에 완벽한 책임감을 강요당하는 걸 원하지 않았던 로제는 폴과 이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신이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곳에 폴이 있다고 굳게 믿었다.
사랑이라는 게 날씨처럼 예측할 수 없다는 걸 폴과 로제는 모르는 척했다. 스물다섯 시몽이 폴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걸 알았지만 폴과 로제는 그들의 관계가 여전히 맑음이라고 착각했다. 시몽에게 폴은 새로운 날의 시작이었고 그녀를 사랑하는 일만이 중요했다. 시몽은 폴의 외로움을 건드렸다. 폴은 부정할 수 없었다. 로제의 이기적인 사랑을 말이다. 점점 커지는 로제와의 간극 사이에 시몽이 우뚝 솟았다. 폴에게 시몽의 말과 행동은 어리숙하며 불완전했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에게 향하는 마음을 거부할 수 없었고 시몽의 뻔한 질문에 결국 무너지고 만다. 아니, 폴은 사랑이 아닌 자기의 현재 모습을 보게 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57쪽)
시몽의 눈에 비친 폴의 삶은 불행하고 쓸쓸해보였다. 그런 폴에게 충분히 아름다웠고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했고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는 걸 일깨워주고 싶었다. 시몽은 서른아홉이라는 나이가 갖는 삶의 무게를 몰랐다. 아니 알 수 없었다. 폴과의 사랑만으로 모든 게 다 잘 될 거라 자신했으니까. 그런 시몽의 젊음과 사랑에 폴은 빠져들었고 로제가 아닌 시몽을 선택할 수 있다고 다짐했다.
오래된 연인과 켜켜이 쌓인 시간의 힘이었을까. 젊은 남자의 육체를 탐한다는 소문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았던 탓일까. 폴에게 사랑은 습관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시몽의 열정적인 감정을 원하면서도 로제를 받아들인다. 도저히 버려지지 않는 로제를 향한 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녀는 한 번 더 그를 품에 안고 그의 슬픔을 받쳐 주었다. 이제까지 그의 행복을 받쳐주었던 것처럼. 그녀는 자신은 결코 느낄 수 없을 듯한 아름다운 고통, 아름다운 슬픔, 그토록 격렬한 슬픔을 느끼는 그가 부러웠다.’ (150쪽)
세 사람의 사랑이 모두를 만족시키고 행복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사강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예상 밖의 선택이다. 본인 외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게 사랑이다. 폴에게 기다림만을 안겨준 로제의 구속 아닌 구속을 견딜 수 없다는 듯 당연히 시몽과의 멋진 사랑으로 끝나야 하지 않았을까. 사강은 사랑과 연애가 아닌 폴의 내면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가오는 사랑을 통해 여자의 심리를 잘 보여준다.
결국 폴은 세 개의 점이 만드는 삼각형을 벗어나 점과 점이 이어진 선을 원했던 것일까. 그 선이 아름다운 글과 그림을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혼자 선을 그어나가야 한다는 걸 스물네 살의 사강은 알고 있었나 보다.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자신을 던지는 일이 사랑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