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사라지고 싶지 않은가 보다.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지만 낮에는 여전히 뜨겁다. 아파트 주변에 고추를 말리는 풍경이 정겹다. 햇빛과 만나면서 반짝이는 붉은 색이 참 예쁘다. 언제부터 그 빛깔들을 보고 예쁘다, 생각했던가. 맵기만 한 고추, 긴 겨울에 뿔을 따느라 손이 아렸던 기억밖에 없던 고추가 예쁘다니. 달라진 건 나였다. 내가 달라져야만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누군가 내게 말해주었지만 곧이 듣지 않았던 시간이 지났구나, 혼자 생각했다.

 

 주말에는 H를 만났다. 출장 다녀오는 길에 시간을 내어 내게로 왔다. 어느 시절에는 밤을 꼬박 새울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잠을 자야만 하는 내가 되었다. ​잠들기 전까지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다. 계획된 일정에 대해, 소소하지만 거창하다 말할 수 있는 삶의 일부에 대해 말했다. 감사를 느끼는 순간에 대해, 두려움을 이겨냈던 순간에 대해, 화가 나고 속상했던 일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순간에 대해 말이다. 좋은 밤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죽음을 말하는 사이가 된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채울 수 없는 욕심을 버릴 수 있는 용기와 그저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숭고한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만남, 이별, 그리고 관계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흐르는 강에 다리는 놓은 일은 아닐까. 그냥 건너뛸 수 있는 물에는 다리는 놓지 않는다. 젖어도 괜찮다고 여기니까. 그러나 깊고 넓어지는 강에는 반드시 다리가 필요하다. 깊고 넓다는 건 오랜 시간을 두고 만난 관계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다리는 놓은 일은 수고스럽다. 많은 왕래에도 튼튼한 다리, 갑자기 쏟아지는 비, 바람을 견딜 수 있는 다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성을 다해야 한다. 정성으로 상대를 대하는 마음, 진실을 보여주는 행동, 어렵지만 꼭 필요한 것이다. 피곤을 안고 먼 길을 가야하는 H를 배웅하며 산다는 건 별게 아닌데, 그런 생각도 들었다. 만남을 기약하는 이별은 따뜻하다. 문자나 메신저, 전화로 수많은 다짐과 약속을 반복하지만 얼굴을 마주하는 짧은 순간처럼 온전한 감정의 교류는 없다. 그러니까 H를 만나서 나는 너무 좋았고 행복했다.

 

 좋아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이런 책도 즐겁다. 드디어 『악스트 Axt 8호에서 김연수를 만난다. 이번 호는 정말 많이 팔릴 것 같다. 류근의 두 번째 시집 『어떻게든 이별』, 구병모의 장편소설『한 스푼의 시간』, 강영숙의 단편집『회색문헌』​. 9월의 리스트다. 강영숙의 소설집은 5년 만에 나오는 것이다. 명절연휴에 읽어도 좋겠다. 긴 연휴, 스트레스는 날려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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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9-13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자목련 2016-09-14 07:40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도 건강한 명절 보내세요. 언제나 다정한 안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