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꽃다리의 연한 자줏빛 꽃봉오리는 우리 아파트에도 봄이 왔다는 신호다. 이사를 오고 3년이 지나서야 겨우 꽃의 이름을 외웠다. 같은 아파트지만 동마다 봄이 다르게 찾아온다. 피는 꽃도 다르다. 제일 먼저 매화가 피고 벚꽃과 목련도 뒤를 따른다. 그렇게 천천히 봄이 오는 동안 4월이 되었다. 도처에 봄이라는 걸 알리는 건 예배를 드리며 오가는 길에서 만나는 자동차들이다. 근처에 바다가 있으니 주말에는 자동차가 급격히 늘어난다. 도로 옆 밭에는 제법 자란 보리가 싱그럽고 하지 감자를 심은 작고 아담한 비닐하우스가 즐비하다. 자동차 차 문을 열면 흙냄새가 맛있게 달려온다.

 

 내가 좋아하는 4월이다. 4월은 잔인한 슬픔을 간직한 달이지만 좋아한다. 4월에 기다렸던 소설이 나왔다. 작년 가을부터 내가 기다린 소설집이다. 김이설의 두 번째 소설집 『오늘처럼 고요히』. 소설집에 수록된 소설은 여전히 잔혹하고 참담하다. 표제는 첫 번째 소설에 수록된 단편의 제목이다. 어찌할 수 없는 고통의 4월을 견디는 건 소설이나 현실이라 같을 듯하다. 편혜영의 장편소설 『홀』도 비슷한 것 같은 느낌이다. 지난 소설 『선의 법칙』과는 다른 기대감이랄까.

 

 4월에는 이런 책도 읽을 것이다. 한귀은의 문장과 그녀가 선택한 문장을 만나는 시간 『여자의 문장』​, 기억의 끝이 어디인가 스스로 묻고 또 묻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쉽게 읽을 수 없는 예술서에 대한 이야기 『혼자가 되는 책들』 ,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세월호, 그날의 기록』.

 

 

 

 

 

 

 

 

 

 

 

 

 

 

 

 

 

 

 

 4월이 되니 낮에는 제법 덥기도 하다. 곧 소매가 짧은 옷을 입을지도 모르겠다. 거리마다 꽃눈이 내릴 4월, 꽃이 지면 눈부신 초록이 가득할 4월, 특별히 변화와 희망의 씨앗을 잉태하는 4월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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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6-04-04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락이 수수꽃다리라고 딸아이가 그래서 정말? 어제 그랬어요. 오늘은 정말 꽃들이 만개하고 하늘은 맑고... 너무 예쁜 봄날이었어요.

자목련 2016-04-05 18:02   좋아요 0 | URL
따님과 제가 통했나 봐요, ㅎ
눈 닿은 곳마다 꽃이 가득해요. 봄, 봄, 봄이구나 싶어요!
 

 

 거창하게 말하자면 돌아왔다. 가장 긴 시간 집을 떠나 있었다. 넓은 공간에 있다가 좁은 공간에 오니 답답하면서도 애틋한 느낌이 든다. 완벽하게 회복된 건 아니어서 일상의 복귀는 아직 힘들다. 적지 않은 부분에서 도움을 받는다. 그래서 살짝 우울하다. 건강하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생각하는 날들이다. 다시 감사의 이유를 찾아야 하는 날들이기도 하다.

 

 가지런하게 쌓인 책들이 웃는 것 같다. 빈 방에서 나를 기다려준 책이라서 읽기도 전에 애정이 자란다. 잊고 있던 책도 있어 반갑다. 김숨의 소설 『바느질하는 여자』는 꽤 긴 시간을 필요로 할 것 같다. 이상하게도 그곳에서 이곳으로 돌아오면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책정리다. 그만큼 책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말이다. 읽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다. 눈이 나빠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집중력이 떨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윤대녕의 장편소설 『피에로들의 집』이 나왔으니 조만간 곁에 둘 것 같다. 퇴원 후 특별히 신경썼던 부분이 먹거리였던 터라 예전보다 음식을 다룬 글에 관심이 커졌다.『황석영의 밥도둑』이 개정판이라는 사실도 몰랐을 정도니 말이다. 왕성한 입맛은 돌아오지 않았고 아침엔 역시나 파프리카와 구운 고구마를 먹었다.돌아오 마자 순대, 떡볶이, 치킨을 먹었는데 기대했던 맛이 아니었다. 이상한 일이다. 맥주를 마시지 못해서 그런 걸까. 앞으로 나는 맥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다. 그런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자세라는 말이 나왔으니 허연의 이런 시를 읽고 가야지. 내게는 곧은 자세, 기다릴 줄 아는 자세, 열심을 내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세

 

 

 위대한 건 기다림이다. 북극곰은 늙은 바다코끼리

가 물에 올라와 숨을 거둘 때까지 사흘 밤낮을 기다

린다. 파도가 오고 파도가 가고, 밤이 오고 밤이 가

고.​ 그는 한생이 끊어져가는 지루한 의식을 지켜보

며 시간을 잊는다.

 

 그는 기대가 어긋나도 흥분하지 않는다. 늙은 바

다 코끼리가 다시 기운을 치리고 몸을 일으켜 먼바다

로 나가아갈 때. 그는 실패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다시 살아난 바다코끼리도, 사흘 밤낮을 기다린

그도, 배를 곯고 있는 새끼들도, 모든 걸 지켜본 일

각고래도 이곳에서는 하나의 자세일 뿐이다.

 

 기다림의 자세에서 극을 본다.

 

 근육과 눈빛과 하얀 입김.

 백야의 시간은

 자세들로 채워진다.

 

 

 그리고 이 책이 있다. 정결한 문장으로 웅숭깊은 시간을 선물하는 책. 봄에 만나면 더 좋을 제목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이제서야 읽는다.

 

 창은 눈이다. 내 눈이 보는 것을 믿을 수 없으니 창에 드리워진 얼룩을 탓하는 말은 애초에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또 다른 차에 기대어 본다. 마음의 창이다. 내 작은 창에 난 얼룩들이 사람을 보는 청안이 되면 좋겠다. 세월 가며 차츰 얼룩으로 흐려질 두 눈에 세상을 보는 혜안이 되면 더 없이 좋겠다.’ (71쪽)

 

 

 ‘우리의 마음도 한순간의 풍경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즉심이다. 애초에 정처 없는 것들, 바람 끝자락에 매달려 나붓대는 것들에 마음이 붙들리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창밖에는 밤하늘과 하나된 검은 강이 낮게 엎드려 뒤채고 있다. 풀벌레도 덩달아 잠 못 드는 밤에 또 생각이 잦다.’ (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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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4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7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젯밤에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꿈을 꾸었다. 할머니는 건강한 모습이었고 깐깐한 잔소리를 생생하게 늘어놓으셨다. 그것은 큰언니 집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마도 내가 이 공간에 대해 고민하고 있기에 그런 꿈을 꾼 것 같다. 예상보다 휠씬 긴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고 있다. 모든 것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큰언니만 그 자리에 없을 뿐. 작년 여름에 급하게 유품을 정리하지 않았나 싶은 후회가 밀려온다. 온전한 정리를 한 건 아니지만 급한 마음이 있었다. 정리한다는 말이 사라진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존재한다는 걸 느끼는 나는 때때로 서럽다.

 

 우리는 더이상 큰언니의 부재를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큰언니를 언급하는 일이 줄어든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나는 큰언니의 손때가 묻은 것들과 함께 한다. 현관문에 달려있는 풍경의 소리는 문을 열 때마다 우리의 시선을 빼앗는다. 언니의 부탁으로 내가 주문한 빨간 스탠드, 필요한 생필품을 창고나 서랍에서 꺼낼 때마다 반듯하게 정리된 모습에 감탄한다. 버리지 못한 신분증과 여권 속 사진은 언니의 시간을 짐작하게 만든다.

 

 초반에 몰려오는 고통의 예리한 모서리들이 무뎌지면서, 마비되고 분개하던 마음이 천천히 현실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옮겨 간다. 슬픔은 더욱 깊어진다. 허전함과 결핍감, 동요의 순간들과 함께. 상냥함이 깃든 슬픔이 퍼지는 것은 더 나중이다. 부드러운 아픔이 떠난 사람의 이미지를 둘러싼다. 죽음이 우리 안에 똬리를 틀었다. 그 흐름에는 지름길이 없다. 거기서 빠져나올 수도 없다. 죽음은 삶에 속하며, 삶은 죽음을 껴안는다.’ (『수런거리는 유산들』119~120쪽)

 

 아무리 연습해도 이별은 속수무책이다. 그저 멀고 긴 여행을 떠났다고 여겨도 어려운 일이다. 분명 잘 가라고 인사를 했는데 떠나는 이를 바라보며 서 있다. 뒤를 돌아 내 자리로 돌아와야 하는데 한 번에 돌아지지 않고 수많은 연습을 필요로 한다. 이곳에 머물지 않았다면 나는 이런 책을 찾지 않았을 것이다. 김연수가 언급했다는 이유로 제목만 기억하고 있었지만 읽을 용기를 내지 않았다. 집 안의 모든 사물이 수런거리는 소리를 상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부모님의 집을 비우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부모님의 연애편지를 읽으면서 그들의 사랑과 삶을 마주하지만 나는 언니가 꼼꼼하게 기록한 메모나 일기를 대면할 수 없다. 일부는 읽다가 덮었거나 일부는 태웠고 일부는 그대로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곳을 정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용기를 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옳지 않을 일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용기를 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시간을 요구하는 것들이 있다. 죽음도 그 하나다. 엄마, 할머니, 아버지, 큰언니의 죽음은 저마다 다른 질량의 시간을 요구한다. 마음을 나눠 수많은 비밀의 방을 만들고 살아가는 동안 죽음의 방은 하나가 될 수 없다. 그 방은 열린 채 쉽게 닫히지 않는다. 그곳을 채울 수 있는 건 통증과 그리움이며 애도다. 누구나 언젠가는 누군가가 만든 그 방으로 들어가야 한다. 영원할 수 있다고 믿는 인생은 영원할 수 없다. 어디선가 들은 오늘이 인생이라는 말을 잊지 않으려 한다. 오늘은 오늘일 때 가장 빛난다. 어제였던 시간은 사라졌고 내일인 시간은 잡히지 않기에. 느닷없는 일들이 인생을 지배한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이라는 말에 담긴 절실함을 모르고 산다. 모든 일은 오늘 일어난다. 작별을 준비하면서 살 수는 없지만 오늘이 인생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묘지는 놀이터였다. 놀이터 중에서도 가장 놀랍고 가장 흥미진진한 놀이터였다. 그러나 지금 나는 아버지의 무덤 앞에 서 있다. 나는 놀이의 비밀을 잃어버렸다. 나는 어린 시절을 잃어버렸다. 모든 날들이 작별의 나날인 것이다.’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95쪽)​

 

 아침에 아주 소중한 사람과 통화를 했다. 목소리로는 자주 만났지만 눈을 바라보며 같은 공간에서 머문 시간을 모두 합해도 하루가 되지 않는다. 대부분 우리는 그렇게 산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에 집중하며 자신의 삶을 산다. 가까운 듯 멀리서 서로를 응원하며 살아간다. 서로를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으며 산다. 무엇이 인생인지 모르며 그렇게 살아간다. 아무리 연습해도 속수무책인 이별을 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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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2-20 14: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무뎌지지않는 것이 있다면 그게 아마 이별의 상실일텐데 그래서 어쩜 신은 (신이 있다면) 인간성의 최후에 만들어 놓은 것 중 하나가 죽음 아닌가 그럴 적이 있어요.
잘 읽고 갑니다...이런 글에 ㅡ개인의 사유에 (인지)덧글함이 옳은지 한참 망설이다 혼자보다는 누군가 이런 고민을 같이 한다는게 덜 외로우실 듯 하여..

자목련 2016-02-22 10:51   좋아요 1 | URL
[그장소] 님, 고맙습니다. 이별을 인정하고 삶을 직시하고 살아가는 과정에 [그장소] 님의 댓글이 힘이 됩니다.

blanca 2016-02-20 14: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쩔 수 없이 죽음과 만나야 하는 시간들이 앞에 놓여 있는 인생이 참 무섭기도 하지만...태어난 이상 숙명이겠지요? 자목련님처럼 잘 해 나갈 수 있을런지, 자문해 보게 됩니다.

자목련 2016-02-22 10:50   좋아요 2 | URL
멀리 있다고 여겼던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걸 실감하는 날들입니다. 말씀처럼 숙명이니 받아들여야하겠지요.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것을 알아가는 게 삶인 것 같아요.

2016-02-20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22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16-02-20 16: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언니를 보내고, 언니가 남긴 일기장을 본 적이 있어요. 가슴이 미어진다는 게 어떤 건지 그때 알았어요. 그 일기장을 다시 펼칠 수가 없어 49재 마지막에 옷가지랑 태웠는데 지금도 후회가 되진 않아요. 10년이 지났어도 지금도 펼칠 수 없을 것 같거든요. 이런 얘길할 때는 어둠이 함께 했는데 이젠 햇살 드는 빈 방에 허전히 앉아 있는 느낌이 들어요. 용을 쓰며 견디다 이제 힘이 빠진 탓일까요?

자목련 2016-02-22 10:44   좋아요 2 | URL
이누아 님, 고맙습니다. 같은(결코 같을 수는 없겠지요)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어떤 시간은 흐리지 않는 것 같아요. 어둠이 지나고 햇살로 가득한 방을 저도 만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다시한 번 고맙습니다.

비로그인 2016-02-20 22: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죽음을 영원한 안식으로 이해하면 삶의 완성, 삶의 일부로 긍정할 수 있을텐데요. *^

자목련 2016-02-22 10:43   좋아요 2 | URL
머리로는 인식하면서도 가슴으로는 받아들지 못하는 게 아닐가 싶어요. 그러니 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걸 모른 채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장소] 2016-02-22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입니다.위로받으셨다면..^^
 

 

 2015년 마지막 날 퇴원을 했다. 24일이라는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병원 생활을 뒤로 하고 병원을 나섰다. 해넘이와 해돋이를 보러 가는 흥분을 숨기지 않고 달리는 수많은 자동차들과 함께 고속도로를 지나 큰언니네 집으로 도착했다. 큰언니 아파트에 있기로 했다. 열을 안고 퇴원한 나는 고열에 시달리기도 했고 항생제 사용으로 인해 발진과 가려움과 함께 지냈다. 익숙한 반응이었지만 친숙해지기는 어려운 시간이었다. 퇴원 일주일 후에는 가까운 병원에서 몇 가지 피검사를 했고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다시 일주일이 지났고 외래로 병원을 찾았다. 역시 피검사와 엑스레이를 찍고 1시간 30분 가까이 기다렸다 의사를 만났다. 염증 수치를 비롯한 모든 수치가 괜찮았고 수술 부위도 깨끗하다며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간단한 내 질의에 답변을 해주었고 2달 후 CT를 찍자고 말했다. 모든 게 감사했다.  생사를 결정하는 수술을 한 건 아니다. 그러나 8시간 이상의 큰 수술이었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의사에게 계획한 대로 수술을 했다는 말을 듣고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입에 달고 산다.

 

 이 공간에서는 조카가 나를 돌봐주고 있다. 바쁜 아이라서 하루 종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건 아니지만 식사를 준비하고 빨래며 내가 필요한 것들을 살핀다. 2주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냈다. 지나치게 게으름을 부렸다. 그로 인해 살이 많이 졌고 도토리 같았던 머리카락은 아주 지저분해졌다.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고 낮잠을 자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침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새로운 증상은 다리가 붓는다는 것이다. 의사에게 언급했지만 친절한 답은 없었다. 무리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스스로 약속한 리뷰를 지키지 못했고 당분간도 그러할 것이다. 집으로 도착한 택배에 어떤 책이 들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주문한 책인데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이곳으로 두 권의 시집을 주문했다. 읽을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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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6-01-15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몹시 힘든 과정을 겪으셨군요. 어서 빨리 쾌차하시길 빕니다.

자목련 2016-01-23 11:27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oren 님. 갑자기 추워진 날들 건강하게 보내세요^^

사과나비🍎 2016-01-15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수술하셨었군요... 회복 잘하시길 바랄게요~ 드시는 거 잘 챙겨드시구요~ 푹~ 쉬시길 바랄게요~

자목련 2016-01-23 11:28   좋아요 1 | URL
네, 사과나비 님의 댓글이 회복을 보태주네요. 잘 먹고 잘 자는 게 필요해요!!

서니데이 2016-01-15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시간이면 큰 수술이었겠네요. 앞으로는 좋아지는 일만 계속되셨으면 좋겠어요.
자목련님, 행복한 금요일 되세요.^^

자목련 2016-01-23 11:28   좋아요 1 | URL
좋아지는 일, 이 말이 정말 좋습니다. 서니데이 님도 건강하고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프레이야 2016-01-15 1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그동안 너무 뜸해서 걱정했어요. 수술을 8시간이나 걸려 하셨다니요.ㅠ
잘 되었다니 마음 놓이지만 다리 붓는 증상은 속히 알아보시기 바래요.
잘 나으셔야 합니다. 마음 편히 쉬세요.

자목련 2016-01-23 11:31   좋아요 2 | URL
짧은 잠에서 깨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구요.
모든 건 지나간다고 믿지만 여전히 그 과정이라서 때때로 지치기도 합니다, ㅎ
프레이야 님의 안부 고맙고 감사합니다!

hnine 2016-01-15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술을 무사히 마치셨다니 다행이고 회복 과정도 잘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자목련 2016-01-23 11:32   좋아요 1 | URL
잘 이겨낼 수 있다고 믿고 지내고 있어요. hnine 님 감사합니다^^
 

 

 가을비가 그친 토요일 오후 집 안은 어둑하다. 거실 한쪽에는 고모가 보내준 홍삼 상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방금 한 봉지를 컵에 따라 마셨다. 정성을 다해서 마셔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고모의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매일 서너 알씩 단감을 먹고 있다. 굵고 튼튼하게 생긴 단감을 먹으면서 M을 생각한다. 이걸 내게 먹이고 싶었을 M을 생각한다. 마음을 받는다는 건 언제나 감사하고 고맙다. 그 마음에 나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는 채 말이다. 그저 그 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 그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점심엔 싹이 난 부분을 깊게 깎아 낸 작은 감자를 간장, 설탕, 기름, 마늘을 넣고 조렸다. 달달한 간장과 설탕 냄새가 아직도 가득하다. 이번에 요리책을 참고하지 않고 내 맘대로 양을 조절했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맛있는 감자조림을 할 줄 모른다. 그게 뭐든 잘 하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드는 오후다.

 필립 로스의 『전락』을 읽고 있다. 어떤 일에 자신감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 경험한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그것이 늙음 때문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상하게 필립 로스의 소설은 무척 빨리 읽게 되는 소설과 지루할 정도로 천천히 읽히는 소설이 있다. 예상했듯 『전락』은 후자의 경우다. 『에브리 맨』도 무척 그리 읽혔는데 강렬하게 남았다. 이 소설도 그런 책이 될까. 어쨌든 다 읽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읽고 있는 책과는 별개로 이런 문장을 생각한다. 다시 펼쳐 읽고 옮긴 건『7번 국도 Revisited 』의 한 부분이다. 읽으면서 지금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당신이 왜 그곳에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그건 나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요즘 고민이 많다. 모두 하나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나는 왜 존재하는가란 질문으로 이어진다. 선택을 했고 결정을 내렸지만 11월이라는 계절 탓인지 불안하고 불안하다.

 

 ‘길들은 지금 내 눈앞에 있다. 길들은 만나고 헤어지고 가까워지고 멀어진다. 그게 길들이 확장하는 방식이다. 길들은 도서관에 꽂힌 책들과 같다. 서로 참조하고 서로 연결되면서 이 세계의 지평을 한없이 넓힌다. 길들 위에서 나는 무엇이든 배우고자 했다. 길들이 책들과 같다면, 그 길을 따라가면 언제나 미지의 세계를 만나리라. 처음에는 다른 세계를 향한 열망이 훨씬 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길들 자체에 매혹됐다. 그저 읽고 또 읽는 일만이 중요할 뿐인 독서가처럼, 거기서 무엇도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걷고 또 걷는 일만이 내겐 중요했다. 그리하여 여기는 어디일까? 나는 왜 여기 있을까? 나는 누구인가?’ (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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