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봄의 아쉬움을 붙잡아야 할 것 같은 연분홍의 표지, 벚꽃잎이 흩날린다. 말랑말랑한 연애, 사랑의 감정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벚꽃나무 아래』란 제목 옆 ‘시체가 묻혀 있다’는 문장은 섬뜩하다. 정말 벚꽃나무 아래에 우리는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는 건 아닐까. 가지이 모토지로의 단편집 『벚꽃나무 아래』는 그런 호기심을 갖고 읽기 시작했다. 모두 12편으로 제법 긴 중편, 단편, 아주 짧은 일기 같은 소설을 만날 수 있다.


소설 속 화자는 대부분은 병약한 존재다. 깊은 병을 앓고 있거나 그로 인해 요양을 위해 홀로 지내는 경우도 많다. 몸이 아프다는 건 우울한 일이고 그 시간이 지속되면 우울도 깊어진다. 그럼에도 소설 속 화자는 전혀 그런 분위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일부러 아닌 척하는 것 같기도 하고 모든 걸 다 포기한 마음 같기도 하다. 제목부터 기꺼이 병을 맞아주겠다는 태도의 「태평스러운 환자」속 요시다는 폐가 나쁘다. 도쿄에서 대학에 다니다 병으로 인해 시골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낸다. 요시다는 밤마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지만 도움을 받을 곳이 없다. 의사를 부르기도 그렇고 어머니가 걱정하실까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병을 아는 어머니가 좀 더 정성껏 돌봐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특별한 일 없는 일상, 그런 그에게 들려온 잡화점 딸의 죽음. 그녀 역시 폐병을 앓고 있었다. 그럼에도 죽음에 대해 태연함을 보이는 요시다의 태도는 가지이 모토지로의 그것일 것이다.


가지이 모토지로는 담담하면서도 섬세하게 인간의 내면을 묘사한다. 소설 곳곳에서 병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생활, 그 안에서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을 만나는데 어둡거나 무거운 신산함이 아니라 아름답고 신비롭다. 바다에 대한 이미지, 바다를 보고 느끼는 감정을 들려주는「바다」나 아픈 몸을 이끌고 산책을 하다 발견한 과일 가게 앞 레몬을 구매하는 이야기 「레몬」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한 편의 긴 편지를 읽는 기분이 드는 「바다」의 이런 부분은 내가 아는 바다가 아닌 처음 접하는 바다를 상상하게 만든다.


그것은 실로 밝고 쾌활하고 생기가 넘치는 바다다. 아직 피로나 근심과 걱정에 더럽혀진 적 없는 순수하게 밝은 바다다. 유람객이나 병자의 눈에 닳고 닳아 너무 달아져 버린 포트와인 같은 바다가 아니다. 시큼하고 떫고 거품이 생긴 와인같이 아주 깊고 야만적이 바다다. (「바다」, 77쪽)

어디 그뿐인가. 자신을 지배하는 모든 감정이 레몬 한 알로 인해 바뀔 수 있다는 「레몬」의 문장들. 폐결핵으로 신경쇠약까지 걸렸지만 전혀 곤란하지 않다는 화자는 하루 종일 우울해 거리를 떠돌아다닌다. 마음을 달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리고 그가 발견한 레몬. 자유자재로 감정을 지배하는 가지이 모토지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을 이끄는 병에 저항하고 대항한다고 느꼈다.

계속해서 내 마음을 짓누르던 불길한 덩어리가 레몬을 손에 쥔 순간부터 어느 정도 누그러진 것 같아서 나는 거리 위에서 굉장히 행복했다. 그렇게도 집요했던 우울함이 이런 과일 하나로 풀리다니. (「레몬」, 147쪽)

그러나 병세로 인해 세상과 단절하듯 지내는 화자의 쓸쓸함이 묻어나는 소설도 있다. 요양지였던 N 해안에서 우연히 만난 K에 대한 이야기「K의 죽음」가 그렇다. 화자는 바닷가에서 달빛에 비친 그림자를 쫓는 K와 이야기를 나눈다. 한 달 가까이 지냈지만 K의 죽음을 짐작할 수 없었다. 건강이 좋아져 그곳을 떠난 화자에게 들려온 K의 죽음. 밤을 가득 채우는 달, 그리고 바다.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떠올리기에 충분하지만 K는 그때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을까. 홀로 적막했을 K가 달로 갔을 거라는 화자의 바람이 맞았으면 싶은 마음이 든다.

세상과 단절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이들은 스스로를 견디고 위로할 방법을 갖기 마련이다. 말도 안 되는 상상 혼잣말의 시간, 그 모든 것들이 표제작 「벚꽃나무 아래」에서 느낄 수 있다. 독백처럼, 편지처럼 시작하는 이 단편에서 화자는 자신과는 다르게 생생한 아름다움이 불안할 뿐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달랠 공상이 필요했던 아닐까.

이 골짜기에서 나를 즐겁게 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휘파람새와 박새도 하얀 햇빛을 새파랗게 물들이는 나무의 새싹도 단지 그것만으로는 몽롱한 이미지에 불과하지. 나에게는 슬프고도 잔인한 사건이 필요해. 그런 균형이 있어야 비로소 내 이미지가 명확해지거든. 내 마음은 악귀처럼 우울하게 메말라 있어. 내 마음속 우울함이 완성될 때만 내 마음은 온화해지지. (「벚꽃나무 아래」, 200쪽)


온통 우울하지만 우울하다고 말할 수 없는 단편집이다. 권태로운 아름다움, 쓸쓸한 위태로움이라고 할까. 아무렇지 않게 수북하게 쌓인 꽃잎을 밟고 지나가는 삶이라고 할까. 생의 절망 앞에서 한없이 간절한 기도가 들리는 듯하다. 31세의 나이로 영면한 작가의 작품집이라는 게 아쉽고도 아쉬울 뿐이다. 일본 작가들의 산문집 『슬픈 인간』 과 함께 읽으면 좋을 단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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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22 10: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어보니 아름답고 우아한 우울이라는게 뭔지 느낌이 오네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재능있는 사람들이 요절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그래서 안타까운 ~

자목련 2021-04-23 10:42   좋아요 3 | URL
슬프고 절망하는 상황인데 그렇지 않고, 화자가 그러했어요. 말씀처럼 일찍 세상을 뜨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소설을 만날 수 있었겠죠.

scott 2021-05-07 15: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 축하 ~축하~
저도 이책 읽고 감동!!(온통 우울한 분위기였지만 ㅎㅎ)

오월에 건강하게~
오늘 황사 조심 하귀 ^ㅅ^

자목련 2021-05-09 16:20   좋아요 2 | URL
스콧 님, 감사해요. 그리고 저도 축하드려요.
5월인데 마냥 날씨가 좋지는 않네요. 춥기도 하고, 바람도 많이 불고요.
남은 오후 즐겁고 평온하게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1-05-07 17: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1-05-09 16:20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5월 이어가세요^^

초딩 2021-05-08 18: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작 페이퍼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1-05-09 16:23   좋아요 2 | URL
초딩 님, 축하해주셔서 감사드리며 저야말로 멋진 데미안의 글 축하드려요^^
편안한 오이 이어가세요!

그레이스 2021-05-08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축하합니다

자목련 2021-05-09 16:23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님, 감사합니다. 저도 한아름의 축하를 보네요^^
향기로운 5월 이어가세요^^*
 

지난 금요일에는 병원에 다녀왔다. 이제 귀는 약한 존재가 되었다. 귀가 가렵기만 해도 덜컥 겁이 난다. 평소와 다른 느낌이 들어 진료를 받았다. 의사가 이번에는 내 귀를 보여주지는 않았고 염증이 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라고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피식 웃음이 났다. 스트레스까지는 아니어도 신경이 쓰이는 일이 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무심히 지내는데 내 몸은 그게 아니었을까. 처방받은 약을 잘 먹으면 된다. 그러면 될 것이다.

그제는 생일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하루 종일 미역국을 먹었다. 고기를 넣고 끓인 미역국은 먹을 때마다 더 진하고 좋은 맛이 났다. 사촌동생과 올케언니와 친구에게 용돈을 받았다. 어른이 된 이후로 용돈을 받는 일은 거의 없는데, 생일이라서 용돈을 받다니. 이상하면서도 신이 났다. 내가 태어난 날을 기억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나는 음력으로 생일을 챙겨서 내 생일을 기억한다는 건 더 관심을 기울여야 가능한 일이다.

내 생일 다음 날은 친구의 생일이다. 친구도 음력 생일이라 우리는 서로 생일을 축하한다. 나는 친구에게 책을 선물했다. 책을 선물할 수 있는 사이는 좋다. 친구는 내가 고른 책을 기쁘게 받아주었고 받자마다 읽은 부분에 대해 신성하다고 전했다. 내 곁에도 있는 책, 우리는 같은 책의 같은 부분에 멈출 수도 있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과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시간, 참 소중하다. 선배 언니는 꽃을 보냈다. 내가 좋아하는 작약이 보였다. 작약을 보는 시간, 언니를 생각할 것이다. 언니의 생일은 3월이고 양력이다. 언니와 가까이 지내는 이들이 유독 봄에 생일이 많다고 했다. ‘가까이 지내는’, 이 말이 특별한 다정함으로 다가온다. 앞으로 내겐 좋아한다는 그 이상의 말로 남을 것이다.





나를 위한 선물로는 책을 택했다. 이주란, 이장욱의 산문을 읽고 싶어 고른 『술과 농담』, 조해진과 편혜영의 단편집. 앞의 책에서 두 작가의 산문이 있다. 김멜라를 더 읽고 싶다고 느낀 문지와 문학동네의 책. 젊은 작가를 만나는 일은 즐겁고도 어렵다. 김멜라를 발견할 수 있어 좋았다. 이미 단편집을 출간했지만 나는 알지 못했다.책을 읽고 꽃을 보며 가까이 지내는 이들을 생각하는 4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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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4-20 16: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늦었지만 생일 축하 합니다.
봄철 환절기에 몸 곳곳에 오는 이상 신호!
병원에서 별탈 없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지인분들의 축하와 사랑
특별한 것 없어도 사랑과 우정이 가득한 소중한 분들이네요

저도 꽃중에 작약을 가장 사랑합니다.
항상 이시기에 상반기 회화전을 열였던 간송 미술관과 환기 미술관 정원에 활짝 핀 작약이 그립네요
[책을 읽고 꽃을 보며 가까이 지내는 이들을 생각하는 4월]
자목련님 생일 축 !!(🌼❛ ֊ ❛„)

자목련 2021-04-21 10:10   좋아요 3 | URL
축하해주셔서 감사해요.
특별할 것도 없는 보통의 사랑과 우정이 정말 귀하다는 걸 느껴요.
작약, 이름도 특별하고 저도 정말 좋아하는 꽃이에요.
이제 작약을 생각하면 스콧 님도 함께 떠오르겠네요!

mini74 2021-04-20 16: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생일축하드려요 자목련님 꽃도 참 예쁩니다 ~ 책을 읽고 꽃을 보며 행복하고 안온한 4월 보내세요 *^^* 좋은 계절에 태어나셨네요 ~~

자목련 2021-04-21 10:08   좋아요 4 | URL
미니 님, 감사합니다. 전에는 몰랐는데 4월이 참 좋은 날들이구나 싶어요.
건강하고 향기로운 하루 이어가세요^^

새파랑 2021-04-20 17: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생일축하드립니다~! 생일선물로 책받으면 정말 좋을거 같아요. ‘술과 농담‘ 저 시리즈 다 읽어보고 싶네요^^

자목련 2021-04-21 10:07   좋아요 3 | URL
새파랑 님, 감사해요. 최근 시간의 흐름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은 다 좋은 것 같아요.
화창한 하루 보내세요^^

coolcat329 2021-04-20 17: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생일이셨군요. 주변 지인분들과의 관계가 좋으신거같아 보기 좋네요. 책과 꽃선물 참 부럽습니다~~♡

자목련 2021-04-21 10:07   좋아요 4 | URL
고마운 분들이 많습니다. 이 공간에서도 그렇고요. 쿨캣 님을 비롯한 다정한 분들^^
책과 꽃은 언제나 반가보 기쁜 선물 같아요. ㅎㅎ

붕붕툐툐 2021-04-20 23: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지났지만 생일 축하드려요! 꽃사진 참 예쁘네요!
‘가까이 지내는‘ 이 말 참 좋네요. 저희 가족, 친척에도 4월 생이 참 많거든요~ 왠지 자목련님과 더 친밀한 느낌이 듭니다~ 행복하세요~♡♡(아, 제가 젤 좋아하는 꽃이 목련입니다.ㅎㅎ)

자목련 2021-04-21 10:05   좋아요 3 | URL
네, 가까이 지내는 이 말이 저도 참 좋아요. 붕붕툐툐 님의 가까운 분들도 4월생이 많군요. 말씀처럼 저도 친해진 기분입니다. 어떤 빛의 목련이든 목련은 매력적인 꽃입니다. ㅎ 목련 같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2021-04-21 02: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났지만 자목련 님 태어난 날 축하합니다 친구분하고는 하루 차이라니 그것도 좋을 듯합니다 용돈을 받기도 하다니 좋았을 것 같네요 자목련 님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자목련 2021-04-21 10:03   좋아요 3 | URL
희선 님, 감사합니다. 생일이면 항상 떠오르는 친구가 있다는 게 좋습니다. 희선 님,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에 행복했다가 어지러운 뉴스를 접하면서 분노한다. 아침에는 즐겁고 저녁에는 우울하고 다가올 내일이 두려운 시간도 많다. 안락한 내 공간에서 소소한 즐거움에 만족한다고 스스로를 달래다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 고민에 빠진다. 어른 말씀에 사는 거 모두 똑같다고 속 끓이지 말라고 했던가. 그러자고 단호하게 다짐하면서 사소한 감정에 무너지는 게 인생인가. 캐서린 맨스필드의 단선 『가든 파티』속 읽으면서 인생은 알 수 없다는 걸 깨달는다. 알 수 없으니 계속 살아내야 하는 건가. 잘 모르겠다.


감히 이렇게 평해도 좋을까 싶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단편이었다. 표제작「가든 파티」만이 이미 읽은 소설이었다. 소설 속 인물이 한눈에 그려지는 단편은 적었고 읽다가 앞으로 돌아간 단편도 있었다. 평범한 일상에 대한 묘사로 시작하지만 단순하지 않았다. 소설집 전체를 아우르는 건 인생에 대한 질문들, 스스로를 다잡는 주문, 다른 삶에 대한 호기심, 열망, 욕망 같은 것들이라고 할까. 저마다 주어진 삶을 살아가면 괜찮은 거라는 이전의 생각을 주춤하거나 주저하게 만든다. 타인의 삶은 방관해도 좋은가. 내 안위와 평화가 우선이라고 말해도 좋은가. 9편의 단편 속 화자의 시선이 다양하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러니까 캐서린 맨스필드는 다양한 계층과 세대의 생각을 읽고자 했던 것이다. 「가든 파티」속 소녀, 유일한 남성 화자인「나는 프랑스어를 못합니다」도 그렇고 등장인물이 많은「서곡」에서도 모든 인물의 생각과 감정을 잘 표현한다. 대부분 여성 화자를 통해 그녀들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섬세하게 잡아낸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모든 것이 완벽, 그 자체인 「차 한 잔」의 로즈메리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불안은 아주 작은 선의에서 시작되었다. 우연하게 차 한 잔의 값을 부탁하는 거리의 젊은 여성을 향한 마음. 따뜻한 집에 가서 차 한 잔을 대접하는 게 뭐 대수일까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발견하지 못한 게 있었다. 남편의 등장으로 확인한 그녀의 미모. 자신보다 젊고 예쁜 여성을 향한 남편의 관심을 차단해야 했다. 남편에 의해 결정되는 여성의 삶을 단적으로 잘 보여준다. 그런 여성의 삶은 「죽은 대령의 딸들」에서도 마주한다. 아버지는 죽었는데 여전히 그의 그림자 속에 살아가는 자매의 모습은 어처구니가 없다. 군위적이고 지배적인 아버지로 인해 오랜 시간 학습된 결과라고 해야 할까.


자매들이 용기를 냈더라면, 결혼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갔더라면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여성에게 안전한 곳이 아니었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가정교사를 위해 길을 떠나는「어린 가정교사」속 어린 여성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여성 전용 기차에 오르지만 호시탐탐 자신을 노리는 남성들에게 곁을 내주지 않는다.의 심하고 조심했건만 노신사의 친절함에 경계를 허문다. 아, 나는 당장 소리치고 싶었다. 조심해, 그는 흉측하게 늙은 늑대야. 예상대로 흘러가는 이야기. 어린 그녀가 자책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냥 소설이라고 할 수 없는 이야기들. 캐서린 맨스필드의 놀랍고 대단한 통찰력. 내면에서 하나의 점으로 시작하는 불안, 공포, 우울, 절망이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는지 인물의 심경 변화를 말과 행동으로 보여준다. 「뜻밖의 사실」에서 끔찍한 불안에 시달리는 서른세 살의 예민한 모니카는 10년만 젊었더라면 생각하고 젊은 여자들을 곁눈질하는 남편이 못마땅하다. 유독 바람이 강한 아침, 모든 게 귀찮다가 불현듯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주문을 외듯 중얼거린다.


“난 자유로워. 나는 자유야. 바람처럼 자유라고.” 그러자 이제 떨리고, 요동치고, 신나고, 펄럭이는 세상이 모두 그녀 차지였다. 그녀의 왕국이었다. 그래, 그렇지. 나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야. 오직 인생의 것이지. (「뜻밖의 사실」, 133쪽)


예민하지만 당당한 모니카는 미용실에서 예전과 다르게 자신을 대하는 마담이 이상하다. 그러나 뭐라 할 수도 없고. 머리를 만지는 심상치 않은 조지의 태도까지. 관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조지가 모니카에게 들려주는 말, 자신의 어린 딸이 죽었다는 사실. 불쾌했던 모니카의 마음은 서늘해진다. 아, 인생이란 뭘까. 누가 우리의 불운과 불행을 조정하는 것일까. 


복잡하고 미묘한 여성의 마음은 「서곡」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시내에서 벗어난 한적한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가족. 그곳으로 이동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서곡」에서는 린다의 여동생 베릴과 어머니 페어필드의 부인, 어린 세 딸까지 각기 다른 세대의 여성이 느끼는 감정을 담아낸다. 언니의 코에 비해 자신의 코가 끔찍하지만 머리카락에 만족하는 베릴, 딸과 손녀까지 돌보는 페어필드, 호기심 가득한 세 딸. 평범한 일상은 이어진다. 꽃과 나무들로 채워진 아름다운 정원까지 평온한 것 같다. 하지만 잔잔한 풍경 뒤에 숨겨진 내면은 너무도 복잡하다. 린다는 자상한 남편을 존경하면서도 자신에게 강한 그가 혐오스러웠다. 평범한 일상이 때로 지루하고 허무하다. 어디서 기쁨을 발견할 수 있을까. 어머니와 여동생, 아이들에게서도 찾을 수 없는 그 무엇을 안겨주는 건 알로에였다.


아래쪽에서 보니 알로에 잎 가장자리에 길고 예리한 가시가 돋아 있었는데 그것들을 보고 있자니 린다의 심장이 점점 단단해졌다… 특히 길고 예리한 가시가 마음에 들었다… (「서곡」, 245쪽)


「서곡」은 읽을수록 점점 더 좋아지는 단편이다. 인생에 대한 궁금증, 나의 내부를 흔드는 게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길고 예리한 가시 같은 존재에 대해서. 캐서린 맨스필드는 우리의 인생을 채우는 각각의 감정들을 어쩜 이렇게 잘 표현했을까. 나를 흔드는 문장들이 많았다. 유일한 남성 화자의 시선인 「나는 프랑스어를 못합니다」의 이런 문장에 감탄한다. 빈틈없이 완벽한 단편선이라 말하고 싶다. 책장에서 꺼낸 나의 <가든 파티>, 나는 더 캐서린 맨스필드의 소설과 가까워져야 한다. 


나는 인간이란 커다란 여행 가방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로 채워지고 움직이기 시작하고 내동댕이쳐지고 덜컹거리며 보내지고 잃어버려졌다가 다시 찾아지고 갑자기 반쯤 비워지거나 아니면 더 꽉꽉 채워지다가 마침내 궁극의 짐꾼이 궁극의 기차에 홱 올려놓으면 덜그럭거리며 사라져버린다… (「나는 프랑스어를 못합니다」,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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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3-05 15: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작 ! 축!카!
맨스필드 단편 사랑하는 1人
자목련님 페이퍼 두번 읽고 가여 ^.^

자목련 2021-03-08 10:19   좋아요 1 | URL
이 단편집 좋았어요.스콧 님 맑은 한 주 시작하세요^^
 


친구의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많이 아프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아니라서 놀랐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요양보호 센터에서 지내신 걸로 안다. 친구가 시어머니를 뵈러 올 때 그 도시에 내가 있을 때면 항상 나를 보러 왔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자주 뵙지 못하는 아쉬움을 전하던 친구를 기억한다. 그저 코로나 사태가 안정세로 접어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었는데 들려온 소식에 안타까울 뿐이다. 직접 장례시장에는 갈 수 없어 인편에 조의금을 부탁했다.

다시 겨울의 한복판으로 질주하는 양 추위가 몰려온다.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힘겹다. 기다림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듯 삶은 우리에게 수많은 기다림을 안겨준다. 그 과정이 삶일 것일까. 밥을 먹으려고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일, 자판기에서 나오는 커피를 기다리고, 언제 도착할 거라는 친절한 안내를 해주는 버스를 기다리고 눈이 그치기를 기다리고, 누군가는 눈이 내리기를 기다리고.

이상하게 생각이 기다림으로 모아진다. 연휴로 인해 주문한 책을 받아 볼 마음에 기다리는 택배 상자, 급한 연락을 하고 답장을 기다리려 스마트폰을 매만진다. 일초의 기다림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생의 테두리 안에서 우리는 조바심을 내는 걸까. 오후에는 조카에게 아르바이트 자리가 생겨 의향을 물어보는 연락을 했다. 빨리 보고 확인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조카의 상황을 나는 알 수 없고, 조카는 내가 다시 연락을 해줘야 하는 상황을 모른다. 그 짧은 몇 분의 시간에 나는 그 일에만 집중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냥 천천하게 나의 할 일을 하면서 기다릴 수도 있는데 이상하게 조급함이 몰려왔다. 그 자리를 조카가 놓칠까 아쉬웠던 걸까. 조카가 하겠다고 응답도 하기 전에 나는 그런 아쉬움을 먼저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비가 오면 우산을 준비하고 날씨가 추우면 따뜻하게 입을 준비를 하면 괜찮다. 설령 우산을 챙기지 못해 비를 맞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음에는 더 준비를 잘 할 수 있으니까.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치면 다음 버스는 또 온다. 기회도 그럴 것이다. 단 한 번의 기회라고 여기고 준비를 해야겠지만 살다 보면 그 기회가 최선이 아닐 때도 많다. 사람도 그렇고. 좋은 사람을 기다리며 할 일은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이다.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어렵다. 어쩌면 우리는 끝내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지도 모른다. 그럼 또 어떤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는 걸 내가 알면 충분하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 그 순간에 내가 그것을 기다리며 그것을 생각하는 것으로도 괜찮을 게 아닐까. 컵라면에 물을 넣고 끓기를 기다리는 몇 분, 전자레인지 속 즉석밥을 기다리는 몇 분 동안 우리는 맛있게 먹을 생각으로 즐겁고 행복하니까.


연휴에 기다린 건 이런 책들이다. 노란 표지 때문에 더 읽고 싶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산문집, 이제야 만난 루시아 벌린의 단편집, 무얼 버리는 걸까 궁금했던 시인 문보영의 책. 기다렸던 것들과 만나는 순간, 기다림은 끝난다.다른 기다림이 시작된다. 기다리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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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은숙의 『여자들은 다른 장소를 살아간다』란 책을 읽기 전 표지의 그림을 한참 바라보았다. 의자에 앉은 한 여자의 무릎 위에는 한 권이 책이 올려져 있다. 편한 자세로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무릎 위 책의 제목은 무엇일까.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그 그림 속 여자가 나라면 나는 무엇을 보고 싶고 가장 편안한 자세로 무슨 책을 읽고 싶을까 그런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세상에 대한 것이었고, 결국 책 속 여자들의 세상과 다르지 않았다.


여자와 장소를 동시에 생각하니 특정한 장소가 몇 개 떠올랐다. 책에서도 언급한 부엌(주방)과 화장실이 가장 먼저였다. 나 역시도 최대한 공동화장실 사용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경험하지 않아도 두려움과 공포를 안겨주는 공간이다. 여성에게 불합리한 장소, 차별적인 장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기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묵과해온 나의 상처를 대면하는 순간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훌륭하고 좋은 책이다. 내가 경험한 장소와 공간의 의미와 관행에 대해서도 의문과 의심을 갖게 만들었으니까.


부엌은 항상 여자의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가족을 위한 음식을 만드는 일에 대해 보살핌과 희생정신까지 고스란히 그곳에 담겨 있었다. 과거와 다르게 편리해졌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여성들의 공간으로 여긴다. 식기세척기, 전기밥솥, 전자레인지는 여성만을 위한 제품이 아니다. 세탁기와 청소기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집안의 주방과 곳곳을 노동의 현장, 노동을 요구하는 공간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일하는 남자와 똑같이 일하는 여자에게도 집은 노동의 연장선이 아니라 휴식과 쉼, 즐거움의 장소여야 마땅하다. 부엌에서는 더더욱.


동일한 공간을 무대로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아주 다른 ‘장소’를 살아간다. 장소는 경험이 일어나고 무르익는 곳인데, 성별·나이·계층 등에 따라 특정 공간에서 맺는 관계와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 『여자들은 다른 장소를 살아간다』, 11쪽)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면 교육으로 실천해야 한다. 부엌뿐만 아니라 이 책에 등장하는 13개의 장소에 모두 그렇다. 우리는 알지 못해서 실수를 범하기도 하지만 알면서도 잘못을 행한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장소와 열린 공간이 상처로 연결되면 안 된다. 학창 시절 운동장은 여학생들에게 닫힌 장소였다. 저자의 경험처럼 2차 성징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해 체육 활동을 제한하거나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일도 다르지 않다.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 시간에 축구나 농구를 하는 학생들은 남학생이었다. 교실과 장례식이라는 장소에서도 여성은 주체가 아닌 도움을 주는 존재였다.


회장이나 반장은 남학생을 중심으로 운영되었고 그게 당연시되었다. 장례식장에서 상주는 남자라는 사실도 그렇다. 한 번도 고민을 해본 적이 없는 문제라서 나 역시 놀랐다. 딸이 아니라 사위가 상주이고 어린 남자아이가 상주 역할을 하다니. 돌이켜보니 큰언니의 장례식에서도 그랬다. 결혼을 하지 않은 큰언니의 상주는 조카였다. 물론 현재는 다르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그것을 고치기까지 저자와 같은 여성 인권활동가의 수많은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행을 온전히 느낄 수 없다는 점도 충분히 공감한다. 남성의 경우, 무박여행, 자유여행에 대해 아무런 제약의 시선을 보내지 않는 반면 여성은 불편한 시선을 동반한다. 여행지의 숙소에서 벌어지는 불미스러운 일들에 대한 대책과 제도 개선이 아니라 혼자 여행을 온 여성에게 관심을 집중시킨다. 친절과 배려에도 경계할 수밖에 없는 게 여성의 현실이다.


여성들의 장소 투쟁은 지금 이 시대에 산소호흡기 같은 것이다. 그런 곳으로 정치적 여행을 확장하고 싶은 것이 내 꿈이기도 하다. 불안을 동반자 삼아야 하고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유독 가시화되는 여행이더라도 장소와 장소를 연결하고 책임지는 마음이라면, 여행의 세계를 바꿀 힘이 여성의 여행에 있을 거라고 믿는다. ( 『여자들은 다른 장소를 살아간다』, 111쪽)


이전에는 머물고 생활하는 장소를 사유한 적이 없었기에 여성과 장소를 연결하니 더욱 집중하게 된다. 하나의 장소에 대해 그곳의 의미와 함께 우리가 살아갈 장소에 대해서 고민하고 충분히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려준다. 청소년과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를 떠나서 우리의 주변에서 익숙하게 자행되는 차별적인 행동과 불합리한 제도에 대해 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자리와 나의 공간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 이 공간에 대한 감사함도. 어린 시절 오빠에게는 방이 있었다. 성이 달라서 주어진 공간이 아니었다. 아들이라서, 장손이라서.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두 권의 책이 생각났다. 제목 그대로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하재영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과 김이설의 소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이다. 하재영의 에세이는 작가가 지나온 공간, 그러니까 어린 시절 가족이 모두 함께 살았던 집, 독립을 하면서 살게 된, 방들, 그리고 원하는 공간으로 이뤄진 집까지. 다양한 공간이 등장한다. 보통의 에세이였지만 공간에 대한 사유는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안겨주었다.


공간을 소유하는 것은 자리를 점유하는 일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만큼이나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하는 물음이 나에게 중요했다. 집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집에서의 내 자리’를 인식하는 일이었다. 사회도 물리적으로는 하나이 거대한 장소이므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나의 위치도 자리의 문제였다. 이것은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넓게는 이 세상에서, 좁게는 이 집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130쪽)


내가 자기만의 방을 소망할 때 나는 무엇을 소망하는가?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나 자 자신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 나의 고유함으로 자신과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일 것이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135쪽)


하나의 공간에 특정되는 인물, 엄마에 대한 부분은 속상한 마음이 컸다. 엄마에 대한 공간, 엄마의 자리에 대해서. 나만의 공간에서 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엄마에겐 어떤 공간이 필요했고 가장 절실했을까. 공간이 무엇으로 채워졌느냐를 통해 우리는 그곳의 주인에 대해 짐작할 수 있다. 편안한 공간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는 엄마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북성로 집에 살던 어느 날, 내가 거실과 주방에 없는 엄마를 찾으러 다니며 엄마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고 느꼈던 기억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 나는 엄마의 자리, 엄마의 일이 다른 어딘가, 다른 무언가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142쪽)


엄마의 역할, 엄마의 자리를 생각은 엄마의 노동으로 이어진다. 가치를 평가받지 못했던 노동,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던 일, 그 고단함을 헤아려준 이가 없었다. 김이설의 소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에서 화자가 하는 일이다. 그녀는 밖에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든 집안 일과 양육을 도맡았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일은 어려웠다. 그럴수록 자신의 공간, 자신의 자리가 간절했다. 그녀가 삶의 전반을 살아온 목련빌라를 나와 작은방을 얻었을 때 어떤 안도감을 느꼈다면 그건 당신도 그런 시절을 견뎌왔기 때문이리라. 우리에게 온전히 나를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은 하지 않았다. 언제든지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린 적도 없다. 그러나 지금은 잠시만이라도 나는 나로 살고 싶었다. 필사 노트는 계속 늘어났다. 혼자 지내게 되었다고 곧바로 시가 써질 리 없었다. 그러나 나는 혼자 있는 동안 온전히 나에게 몰입할 수 있었다. 오늘은 그래서 시가 쓰고 싶었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170~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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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22 10: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가치를 평가받지 못했던 노동,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던 일, 그 고단함을 헤아려준 이가 없었다]이구절에 깊이 공감합니다.
아들이 형제 서열에서 최고로 하고 딸들은 부엌데기로 키운 유교문화
몇주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서 한국에 유교문화는 오랜세월에 걸쳐서 언어에 뿌리깊게 박혀 쉽게 사회적 성차별 가족간 서열에 따른 비극이 사라지지 않을것 같다고 썼더군요

자목련 2021-01-22 10:35   좋아요 1 | URL
어렸을 때는 엄마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던 것 같아 너무 미안해요.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사회 곳곳에 남은 차별은 여전하겠지 싶어요.
좋은 책이라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스콧 님, 비 오는 금요일, 포근하고 안전하게 보내세요^^

2021-01-21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2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