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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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함께 읽고 싶은 시집. 이 가을에 다시 만나니 더욱 새롭다. 시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던 애틋하고 고마운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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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일에는 서울에 다녀왔다. 피곤함과 휴식을 핑계로 잠깐씩 졸고 있다. 서울이라는 공간에 잠깐 머물렀다. 온전히 나를 소모하고 돌아왔다. 높은 빌딩들과 한강을 바라보며 이곳에서 나는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걸 확인했다. 한때는 서울에 볼 일만 있으면 어떻게든 친구를 만나고 서울을 즐기기도 했다. 젊었기 때문이었을까. 복잡한 도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길을 잃은 미아였고 출구를 찾지 못하는 미로에 갇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어른이었다. 서울을 향할 때는 무척 초조하고 불안했지만 서울과 이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하고 편안했다.

 

 어제는 감자와 양파를 볶아 카레를 만들었다. 요리를 잘 할 줄 모르니 때로 카레는 정말 요긴하다. (그래서 오늘 저녁엔 돈가스를 튀겼다.) 노란 카레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도 있다. 추석 선물을 주문하기도 했고 끼니마다 커피를 마셨다. 올 초에 커피를 줄이겠다고 했는데 일정 부분 지키는 셈이다. 책도 많이 읽고 많이 쓰기로 했는데 그건 잘 모르겠다. 읽고 싶었던 소설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를 선물 받았고 제목처럼 사랑스러운 김용택 시인의 시집 <사랑이 다예요>를 읽는다.

 

 

 

 

  입맞춤

 

 

  달이 화안히 떠올랐어요.

  그대 등 뒤 검은 산에

  흰 꽃잎들이 날았습니다.

  검은 산 속을 나와

  달빛을 받은

  감미롭고도 찬란한

  저 꽃잎들

  숨 막히고, 어지러웠지요.

  휘황한 달빛이야 눈 감으면 되지만

  날로 커가는 이 마음의 달은

  무엇으로 다 가린답니까. 

 

 

  지금

 

 

  지금 내 곁을 스치는

  작은 바람결에도 나는 당신을 봅니다.

  봄바람인걸요.

 

  지금 내 곁을 스치는

  작은 바람결에도 나는 당신을 봅니다.

  꽃이 핀걸요.

 

  지금 내 곁을 스치는

  작은 바람결에도 나는 쓰러집니다.

  당신인걸요. 

 

 

 서울에 대한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을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도 조금씩 읽는다. 그리고 인문 메달을 받은 줌파 라히리의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를 기다리고 있다. 내일이면 안아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 서울에 올라가게 되면 누군가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신일지도 모르는데 괜찮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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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6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17 0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17 0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17 05: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17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17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른 아이’란 말이 있다. 나이만 어른일 뿐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아이 하나가 자라고 있다는 뜻이다. 어린 시절에 채우지 못한 욕망에 대한 간절한 바람도 어른 아이를 키우는 일이다. 누군가는 심리학 용어로 설명하겠지만 결핍이란 말로 치환하겠다. 몇 권의 동화책으로 집약되는 어린 시절의 책읽기를 떠올리면 이 책은 빠지지 않았다. 그것이 왜곡된 기억이라도 말이다. 『비밀의 화원』은 그렇게 나를 지배하는 책이 되었다. 

 

 반드시 다시 읽겠다는 생각보다는 소유의 의미로 곁에 둔 동화책이다. 제목을 거론할 수 없는 몇 권의 책도 그렇다. 동화를 읽는다는 게 비밀이 될 수는 없겠지만 내게 속한 동화책은 조카에게도 절대 빌려주지 않았다. 우선은 주인인 내가 먼저 읽어야 했다. 그러니까 이건 굉장히 부끄럽고 슬픈 일이기도 하다. 창피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비밀의 화원』을 읽으면서 내가 기억하는 인물은 메리와 콜린뿐이었다. 한데 디콘이 있었다. 나는 도대체 책을 읽기는 한 건가? 디콘은 정말 존재 자체로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메리와 콜린이 보지 못한 세상을 볼 줄 아는 아이, 황무지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아이, 생명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아이였다.

 

 알다시피 메리는 고아다. 어린 시절에는 메리의 시선으로 책을 읽었다. 인도에서 영국 요크셔의 고모부 집으로 오게 된다. 혼자 남겨진 슬픔과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공간이 필요했다. 그곳은 고모가 죽고 버려진 화원이었다. 다시 마주한 동화는 메리가 아닌 무책임한 어른을 본다. 자기애가 강한 메리의 엄마, 아내의 죽음으로 아들을 잊은 콜린의 아빠. 전쟁과 콜레라로 부모를 잃은 메리와 꼽추가 될지도 모른다는 짐작 때문에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콜린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열 살의 아이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방치가 아닌 관심과 사랑이었다.

 

 ‘기괴하게 생긴 거대한 현관문은 육중한 참나무 판자로 되어 있고 큼지막한 쇠못이 가득 박혀 있었으며, 쇠로 된 묵직한 빗장이 걸려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자 엄청나게 큰 회랑이 나왔다. 회랑을 비추는 불빛이 너무도 침침해서, 메리는 벽에 걸린 초상화 속의 얼굴들과 갑옷을 입은 입상들을 흘낏이라도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 돌로 된 바닥 위에 서 있는 메리는 아주 조그마한, 정말 기묘하게 조그마한 새카만 물체처럼 보였다. 메리는 그렇게 보이는 만큼이나 자기가 보잘것없고, 외롭고, 버림받은 아이가 된 것 같았다.’ (36쪽)

 

 모두가 부러워할 거대한 저택에 수많은 방과 하인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녀 마사의 엄마 수잔만이 그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아이는 아이답게 자라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잘 먹고 잘 크도록 줄넘기를 선물하는 마음. 그리하여 메리는 흙을 밝고 비밀의 화원까지 찾아내기에 이른다. 마사의 동생 디콘의 도움으로 화원을 가꾸기 시작한다. 그리고 저택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이상한 울음소리의 주인공 콜린과 마주한다. 자신은 죽을 거라 믿는 아이 콜린에게 메리는 비밀의 화원의 존재를 알려준다. 계절의 변화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약해진 콜린, 아버지가 자신을 미워한다고 믿는다. 콜린에게 사촌 메리와 디콘의 등장은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를 불러온다.

 

  “봄이 오고 있다고? 그게 어떤 건데? 아파서 방에 누워 있으면 그걸 볼 수가 없어.”

  “그건 비가 오고 있는데 햇살이 내리쬐고, 햇살이 내리쬐는데 비가 오는 거야. 온갖 것들이 땅 속에서 흙을 밀고 나오고 움직이는 거지.” (182쪽)

 

 콜린의 엄마가 사랑했던 장미꽃 화원에서 바깥공기를 마시고 운동을 하고 또래 아이들과 웃고 계절을 만지며 열 살 아이로 태어난다. 아버지처럼 등에 혹이 크고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버리고 건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자란다. 자신을 둘러싼 무성한 소문을 걷어내고 아버지에게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콜린의 의지는 박수 받아 마땅하다.

 

 “마법을 처음 시작하는 방법은, 어쩌면 말야, 멋진 일이 일어날 거라고 그냥 얘기하는 걸지도 몰라. 마침내 그 일이 일어나게 될 때까지 말이야. 난 한 번 실험해 볼 거야.” (323쪽)

 

 계절이 바뀌며 변화하는 자연의 묘사가 압권이다. 메리, 콜린, 디콘과 함께 비밀의 화원으로 걸어가는 듯하다. 맑고 밝은 눈빛의 아이들을 상상한다. 자연 속에서 아름답게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가장 귀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비밀의 화원에서 피어나는 우정도 마찬가지다. 메리에게 디콘이 없었다면, 콜린에게 메리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메리와 콜린은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는 게 무엇인지 몰랐을지도 모른다. 봄이 오는 걸 볼 수 없었던 콜린에게 봄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사랑이라는 걸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동화를 읽는다는 건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이 아니라 잃어버렸던 마음을 불러오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대상에 대해서 편견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보려고 했던 마음. 그것에 대해 더 많이 알고자 가까이 다가섰던 용기 같은 것 말이다. 다시 읽겠다고 곁에 둔 동화가 늘어나는 건 그만큼 내가 잃어버린 마음이 많다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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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9-09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갖고 있고 싶어 조카들 주지 않고 갖고 있는 동화책, 그림책들이 있어요. 비슷비슷할 듯요. 가끔 들춰보면 그저 위로가 되는‥자목련님의 가을날들이 님과 잘 어울리길 바라요^^

자목련 2015-09-09 20:25   좋아요 0 | URL
동화책은,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에요.
가을과 어울리는 날들이라니, 가을 바다가 보고 싶어집니다!

책읽는나무 2015-09-09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리,콜린,디콘??
주인공 이름들이 생소해요^^
분명 아름다운 나만의 <비밀의 화원>이라 자부했건만ㅋ
어린시절의 동화책들!!
잃어버렸던 마음 되찾기!!
님의 말씀이 맞네요!!
헌데 저는 동화책을 읽을수록 세부적인 내용들이 새로운 책을 읽는 것처럼 어찌나 새롭던지~~~기억력의 한계체험에 좀 울적하기도 하더라구요^^ 그래도 동화는 아름다워요!!

자목련 2015-09-09 20:26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어요, 특별하고도 특별한 <비밀의 화원>.
아마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요. 이래서 재독을 해야 한다는, ㅎㅎ
동화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워요^^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 2015 제39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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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가 담아내는 삶이라는 경우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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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눅하다. 방을 도려내서 전자레인지에라도 돌리고 싶다. 내일도 비 소식이 있다. 제습기를 돌리는 시간이 늘어난다. 건조대에는 기운 없는 표정의 옷가지들이 있고 침대에는 책 몇 권이 널브러져 있다. 악스트를 읽고 구매한 최진영의 구의 증명,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윤이형의 『개인적 기억』도 그 시리즈다. 김중혁의 단편집을 제대로 읽은 기억이 없다. 이상한 일이다. 나란하게 보이는 『악기들의 도서관』, 『펭귄뉴스』도 읽지 않았다. 산문집은 빨리 읽었는데 소설집은 미뤄진다.  어쨌거나 연애소설이란 부제 아닌 부제가 붙은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은 꼼꼼하게 읽고 싶다.

 

 연애, 사랑에 대해 말하자면 시작하는 연인들은 투케로 간다를 빼놓을 수 없다. 말랑말랑하면서도 절절하고 당돌한 사랑에 대한 표현에 빠져든다. 아껴가며 조금씩 읽고 싶은 소설이다. 그래서 현재 멈춘 상태다.

 

 그녀는 열세 살이 되던 여름에 떠났다. 우리의 경쾌함과 밝은 웃음, 내 불멸의 사랑, 그녀가 처음으로 흘린 피까지 모조리 가져가 버렸다. 나는 계속 그녀를 기다렸지만 나의 기다림은 남자들의 매력적인 야성미에 보잘 것 없었다. 그녀는 나 없이 성숙했다. 그녀는 나 없이 아름다워졌다. 그 누구도 마음대로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졌다. 상대방을 고통스럽게 하는 아름다움. (57~58쪽)

 

 독서 에세이는 거부할 수 없다. 읽는 인간이 그런 책이다. 오에 겐자부로가 선택한 책이라니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 한동안 큰언니와 지내면서 가족과 형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족이라는 병을 통해 가족에 대한 전문가의 견해와 조언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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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15-07-28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작하는 연인들은 투케로 간다는 여행에세이 인줄알았는데 아니군요. 김중혁의 소설집이 반가워요. 전 이분의 장편보다 단편이 좋아요

자목련 2015-07-29 09:24   좋아요 0 | URL
묘한 매력을 지닌 소설집이에요. 김중혁 님의 이번 소설은 연애라는 키워드가 있어 기대가 커요^^

프레이야 2015-07-29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작하는연인들, 담아가요
표지가 어디론가 부르네요. 환상 같기도 하고 허상 같기도 하고‥
이곳은 햇볕이 점점 뜨거워지는 날씨에요. 밤이라 식었지만 그래도 후텁지근ㅠ 내일은 더할 것 같은데‥ 여름답게요! 김중혁의 신간 단편집도 끌려요. 편안한 밤~^^

자목련 2015-07-29 09:23   좋아요 0 | URL
바다, 축제, 바탕스, 그리고 사랑의 감정들이 골고루 담긴 소설이라고 할까요.
각 단편마다 등장하는 꽃의 이야기도 흥미로워요.(아직 다 읽지는 못해지만요.)

여긴 비가 와요. 비 오는 수요일입니다. 쏟아져요, 그래서 또 제습기 돌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