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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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눅눅한 날씨 같은 일상을 견디는 삶을 생각한다. 그 여자, 윤영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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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 끝났을 때 비로소 사랑은 그 실체를 드러낸다. 그것이 얼마나 빛났는지, 얼마나 조악했는지 말이다. 7년 동안 연인으로 지냈던 루이자와 패트릭의 사랑은 전혀 빛나지 않았다. 그러니 그들의 이별은 현명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윌과 루이자의 이별은 달랐다. 윌의 결정을 존중하고 따를 수밖에 없었던 루이자에게 사랑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는 분명 로맨스 소설로 읽힌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지마비 환자 윌과 그를 간병하는 루이자의 사랑 이야기다. 6개월이라는 시한부 사랑이니 얼마나 진부하고 식상하겠는가. 하지만 소설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다. 유쾌해서 많이 웃었고, 눈부시게 아름다워 황홀했고, 절절하게 애틋해서 아팠다.  

 

 모든 게 완벽했던 젊고 부유한 사업가 윌은 불의의 사고로 타인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생을 이어간다. 최고의 의료진과 간병인을 두었지만 윌의 삶엔 의욕은 존재하지 않았다. 부족함이 없던 과거였기에 현재를 인정할 수 없었다. 때문에 스스로 삶을 끝내려는 결정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어느 부모가 자식의 그런 선택을 받아들 수 있겠는가. 간병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 루이자가 면접을 보자마자 취직이 된 이유는 그녀의 활기차고 밝은 성격이 윌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으리라 믿어서다.

 

 루이자는 나고 자란 고향을 한 번도 벗어나지 않은 단순한 삶을 사는 여자다. 카페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행복했다. 주인이 문을 닫지 않았더라면 간병이라는 직업을 몰랐을 것이다. 미혼모인 여동생과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 실직 위험에 놓인 부모님을 생각하면 어떤 일이라도 해야 했다. 그러니 사지마비 환자 윌의 곁에서 상태를 지켜보고 여유 시간에 청소를 하며 고액의 급료를 받는 일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처음엔 고약하기만 했던 윌과 점차 가까워진다. 윌을 통해 자신이 몰랐던 세계에 대해 알아간다. 단순한 간병이 아니라 진심으로 윌을 좋아한다.

 

 그러다 루이자는 윌의 선택에 대해 알게 된다. 왜 그녀가 6개월만 고용되었는지 말이다. 윌이 부모님에게 6개월의 시간을 제시한 것이다. 루이자는 분노한다. 그러나 곧 윌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 공교롭게도 남자친구 패트릭과 이별한다. 윌과 잦은 외출을 감행한다.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연주회를 가고, 가족을 소개하고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다. 루이자가 혼자만 간직한 고민에 대해 털어놓으면 윌은 항상 멋진 답을 제시한다. 루이자는 윌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해외여행을 떠난다. 영국을 떠나 도착한 휴양지, 루이자는 스스로 대견하고 윌은 루이자의 모습에 행복하다.

 

‘우리를 에워싼 세상이 점점 작아지더니, 결국은 폭풍우 소리, 자줏빛 도는 흑청색 바다, 그리고 부드럽게 일렁이는 거즈 커튼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밤바람에 흔들리는 연꽃 냄새를 맡고 멀리서 짤랑거리며 부딪는 유리잔과 황급하게 의지를 미는 소리를 들었으며, 어딘가 먼 축하 파티장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정없이 날뛰는 자연의 포화를 느꼈다. 팔을 뻗어 윌의 손을 내 손 안에 꼭 쥐었다. 한순간, 나는 지금 이 순간처럼 세상에 또 다른 인간에게 이토록 강렬하게 연결된 느낌을 다시는 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462쪽)

 

 자신이 마음을 전한 루이자는 윌이 스위스행을 포기할 것이라 믿었다.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윌의 결심은 확고했다. 그랬다. 뻔한 결말이 아니었다.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윌과 루이자의 행복한 결말을 짐작했다. 아니, 제발 윌이 루이자와 예쁜 사랑을 하기를 기대했다. 루이자를 찾는 윌을 향해 스위스에서 둘의 아름다운 언약식이 그려지길 간절하게 바랐다.

 

 윌은 떠났고 루이자는 남았다. 윌은 루이자에게 많은 유산을 남겼다. 루이자가 몰랐던 루이자의 재능과 꿈을 찾기에 충분했다. 작은 마을을 떠나 더 넓은 세계에서 루이자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가 남긴 편지. 그 어떤 고백보다 뜨겁고 감미롭다. 

 

내 생각은 너무 자주 하지 말아요. 당신이 감상에 빠져 질질 짜는 건 생각하기 싫어요. 그냥 잘 살아요. 그냥 살아요.’ (534쪽)

 

 아마도 루이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때로 사무치게 그립고 때로 미치도록 보고 싶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도 알잖아요, 내가 얼마나 씩씩한 여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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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지를 구매한 적이 언제였던가. 화장품, 악세사리 같은 사은품에 눈이 멀어 구매한 적이 있었다. 문학잡지는 아니었다. 문예지를 정기구독한 적도 있지만 섬세하게 읽었다고 말할 수 없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나 리뷰 정도가 전부였다. 악스트는 나 같은 이를 위한 잡지다. 가격도 이렇게 착할 수 있을까, 아니 이렇게 착해도 되는 건가?

 

 구성과 필진을 보면 기존의 계간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가 읽은 작가의 소설, 연재, 단편이 있다. 색다른 점은 시가 없다는 것. 그렇다. 악스트는 오로지 소설을 위한, 소설에 의한, 소설을 주로 다루는 잡지인 것이다. 시인 김민정은 시가 아닌 그림을 소개한다.

 

 김태용과 최진영에 대한 에세이도 있다. 최진영에 대한 글을 읽고 『구의 증명』이 읽고 싶어졌다. 단편집 『팽이』에서 만난 최진영에 끌려 장편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를 책장에 두었다는 잊고 있던 기억도 떠올랐다.

 

 

 

 

 

 좋아하는 작가 정용준이 천명관을 인터뷰한 내용도 읽고 천명관의 소설을 읽는다면 소설 쓰는 천명관의 모습을 상상하게 될 것 같다. 인터뷰를 마무리한 정용준의 이런 문장이 어떤 믿음을 안겨준다.

 

 ‘소설쓰기는 권투 같다고 했던 헤밍웨이의 말을 비슷하게 바꿔본다면 천명관에게 있어 소설쓰기는 격투다. 그는 권투도 하고 킥도 쓰고 필요하다면 레슬링도 하는 종합 격투기 선수다. 빠르고 유연하며 강한 선수다. 상대는 그가 뭘 사용할지 모른다. (…) 그는 능숙한 테크니션이자 지지 않는 싸움꾼이다.’

 

 

 

 

 

 꼭꼭 씹거나 정성을 다해 한 줄 한 줄 읽은 건 아니다. 그러니까 훑어보기라 할 수 있다. 첫 시작엔 든든한 박수가 필요하다. 박수가 그치고 나면 지속적인 응원과 조언이 필요하다. 만드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에게 말이다. 좋아했던 『풋』처럼 사라지지 말고 도끼날이 무뎌지지 않고 영롱하게 빛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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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철 2015-07-23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간지 `자음과모음`이 처음 나왔을 때도 시 없이 `거의` 소설로만 승부하는- 그 부피! - 값이 아주 저렴하다는 특장을 띠고 있었죠.

아무려나 악스트는... 이짝 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기사 젊고 보다 신선하니까요.^^

...시 있었나? 죄송, 술을 너무 마셔서 제 기억에 자신이 없습니다요.ㅎㅎ

자목련 2015-07-24 10:16   좋아요 0 | URL
아, 자모 계간지도 그랬군요.
은행나무도 계간지가 없으니 어쩌면 악스트가 그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르겠네요.
저 역시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데...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금요일, 복숭아 한 입 베어먹으면 맥주를 마셔도 좋겠습니다, ㅎ
 
쥐포 스타일 - 제3회 스토리킹 수상작 비룡소 스토리킹 시리즈
김지영 지음, 강경수 그림 / 비룡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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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자 마자 잼나게 읽은 동화. 기발한 아이디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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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했던가. 어떤 일이든 반드시 원인과 결과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종종 속상한 일을 당했을 때나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을 때 환경을 탓한다. 속상한 마음을 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결과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옳은 것일까. 아들러 심리학을 기반으로 행복한 삶을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게의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다르게 설명한다. 그건 책임을 타인에게 미루는 것이며 용기가 없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소위 말하는 자기계발서와는 많이 다르다. 그건 인간은 변할 수 있고 세계는 단순하며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는 아들러 심리학을 풀어가며 인생을 점검하기 때문이다. 책은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로 누구나 의심을 갖는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는 명제에 다가간다. 둘의 대화는 자신의 삶이 불만족스러운 청년이 철학자에게 변화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변화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기에 독자는 모두 청년과 같은 입장이 된다. 철학자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구체적인 예로 쉽게 설명한다. 은둔형 외톨이가 외출을 하지 않는 이유는 과거의 어떤 상처가 아니라 외출을 하지 않는 게 목적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자신을 삶을 사는 게 아닌 타인을 의식해서 생긴 문제라 설명한다. 선뜻 이해가 되는가? 다르게 설명하면 과거에 매여 있는 삶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걷는 것은 누군가와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지금의 나보다 앞서 나가려는 것이야말로 가치가 있다네.’ (107쪽)

 

 과거와 타인을 배제하면 아주 쉽다는 듯 말한다.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에 가능한 말인가? 하나의 행동이나 사건에 있어 내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성공이나 명예를 떠올리는 특별한 삶이라는 것 역시 타인의 시선에 비친 삶이라는 것이다. 왜 우리는 평범이 아닌 특별한 삶을 꿈꾸는가. 누군가와 비교하며 스스로 열등감에 빠져 힘든 사람들을 꼬집는다. 결국에 행복은 나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타인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나와 타인의 관계를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청년처럼 직상 상사나 부모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철학자는 타인을 평가하지 않는 용기를 언급한다. 철학자가 제시한 대로 타인을 평가하지 않는다면 인간관계는 좀 수월할지도 모르겠다.

 

 ‘타인이 ‘무엇을 했는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존재하는 그 자체를 기뻐하고 감사해야 하는 걸세.’ (239쪽)

 

 존재 자체를 기뻐하고 감사해야 한다니. 점점 더 어려워진다. 수직이 아니라 수평 관계는 용기를 낸다고 처음부터 만들어지는 걸까? 필요한 건 자기수용이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고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복해서 겪는 오류를 떠올리면 어렵지 않다.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변할 수 있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구분하면 된다. 불가능한 것에 힘을 쏟는 게 아니라 변할 수 있는 것에 주목하라는 말이다. 이 말은 평범한 삶과 같은 맥락으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철학자가 하고 싶은 말도 다르지 않다. 바로 지금, 여기에 관한 것이다. 지난 과거나 닿지 않은 미래는 변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우리는 좀 더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야 하네. 과거가 보이는 것 같고, 미래가 예측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자네가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지 않고 희미한 빛 속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일세. 인생은 찰나의 연속이며, 과거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아.’ (308쪽)

 

 이쯤 되면 독자는 수많은 강의와 책에서 주장하는 현재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를 떠올리며 씁쓸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분명 다르다. 책 속의 청년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청년의 분노와 좌절이 점차 자신을 수용하는 용기로 변하는 걸 확인하는 순간 느낄 수 있다. 그 다름을 쉽고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나의 한계가 안타까울 뿐이다. 책을 통해 나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해 생각한다.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을 말하는 『올 어바웃 러브』도 생각나는 책이다. 또한 지인이 강력하게 추천하는 『자존감의 여섯 기둥』도 함께 읽으면 좋겠다. 이 책을 필두로 아들러 심리학이 뜨고 있고 기시미 히치로의 책도 함께 인기를 누린다. 더불어 ‘~할 용기’ 제목도 종종 보인다. 어떤 분야든 유행이 있기 마련인데 현재 심리학의 유행은 자존감과 아들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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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7-19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저는 거의 북플로만 들어오는데다 알람을 끈 상태라 이렇게 여유있게 북플을 살펴보지 않으면 지인들의 북플을 찾기 힘드네요~~~ㅠㅠ
늘 좋은 글을 써주시는 지목련님의 북플도 찾을 시간이 없이 제 북플을 찾아오는 분들의 북플에 답방하는 수준입니다요~~~.
언니는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님의 글을 읽으니 다시 생각나는 글인데,,,자존감은 어른이 되어도, 아니 중년이나 노년이 되어도 꼭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니 자신을 마주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일이겠지요. 암튼 늘 건강히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

2015-07-19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