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꺼번에 5통의 알림 문자와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그러니까 관심 작가의 신간에 관한 것이다. 짐작한 이도 있겠지만 문학상 수상작의 경우가 그러하다. 기사를 통해 소식을 접했지만 책으로 나오면 한 번 더 기쁘고 반갑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의 수상 소식에 말이다. 후보가 아니라 수상작이었다. 이미 다른 작품집에서 읽은 단편이지만 좋은 소설은 다시 읽어도 좋지 아니한가.

 

 이제 그 작가에 대해 말하려 한다. 소설집『가나』로 처음 만났다. 블로그 이웃이기도 했다. 지금은 블로그 활동을 하지 않는다. 소설에서 만난 문장은 슬펐고, 아름다웠다. 장편소설 『바벨』과 단편소설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그리고 곧 장편소설도 나올 예정이다.

 

 문단의 상황이 좋지 않다.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독자의 바람은 좋은 소설과 시를 읽는 것, 그리고 그들을 응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함께 성장하고 애정을 키우는 일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2016 제16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선릉 산책』을 많은 이가 읽기를 바라는 마음의 포스팅이다. 물론 수상작 외에도 김숨, 권여선, 최은영, 최진영,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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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이 되었다. 곧 첫눈이 내릴 것이다. 어제는 새벽 예배를 드리기 위해 일찍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한 달에 한 번, 내게는 의식처럼 행해지는 일이다. 차가운 바람이 자꾸만 내게로 달려들었다. 적군을 향한 맹렬함이 느껴졌다. 겨울이구나, 생각했다. 하나의 기도를 계속 드린 것 같다. 아니, 다른 기도도 있었다. 무언가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만큼은 이전과는 다른 순수한 인간처럼 여겨진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마주한 하늘은 밝은 잿빛이었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하늘이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사진을 찍어두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따뜻한 무언가를 찾는 계절이다. 장갑, 워머, 덧신. 몸을 감추는 계절이다. 마음을 감추는 계절은 아니었으면. 11월은 분주하면서도 여유가 있다. 아직은 두 달이라는 시간이 남았다는 안도감이랄까. 그 시간에 무언가를 다 채울 수도 없고 무언가를 찾을 수도 없으면서 말이다. 곁에 둔 김상혁의 시집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에는 십일월에 대한 두 편 시가 수록되었다. 같은 듯 다른 십일월을 상상하게 된다.

 

 십일월에 내리는 눈에는 비가 섞여 있어 잠을 자고 나면 꿈의 차디찬 들판을 달리던 가슴에 식은땀이 흐른다네 오늘 우산도 없이 현관문을 두드리던 사람이 내일도 꼼짝없이 눈 속에 서서 떨어야 하는 식이지 누구나 화가 앞에서 발가벗을 용기를 가진 건 아니라네. (「십일월」 ​중에서)

 

 십일월은 내년을 기대하기에도 한 해를 돌아보기에도 좀 이르다. 자동차 정비를 핑계로 부모에게 꾼 돈으로 아이를 지우거나 그런 일을 겪고 내가 개종을 해도 지인들은, 십일월은 참 조용한 달이야, 하고 낮게 중얼거리고는 차를 따뜻하게 끓이기 시작할 만큼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애인과 모텔 전기장판 위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아버지를 잃게 된 어머니의 나이를 생각하면서. 십일월 우기에 태어났다는 신에 대해 생각하면서. ​(「십일월」전문)

 

 11월의 빛을 생각하며 호퍼의 그림을 보기도 한다. 그림 속 여인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무엇을 바라보고 있느냐고 그곳에서 누구를 기다리는냐고. 이런 놀이 아닌 놀이는 11월과 호퍼의 그림이 있기에 가능하다.  

 

 어제를 보냈고 곧 오늘도 보내겠지. 11월의 날들에 나란하게 걷을 수 있는 이가 있기를 바란다. 손을 맞잡고 발을 맞추며 걷는 다정한 사람이길 바란다. 귀여운 강아지 혹은 도도한 고양이여도 좋겠다.​ 곧게 뻗은 은행나무라도 괜찮다. 밤이 되면 전부를 불태워 빛이 되는 가로등이어도 나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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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의 계절이 사라졌다. 여름이 지난 자리에는 가을이 당당하게 서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을 정리하고 여름에 사용했던 물건을 정리하는 것처럼 삶의 일부도 정리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풍성함으로 가득한 가을을 느끼면서 여름을 정리한다. 너무 많은 것들로 채워진 삶을 본다. 욕심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고가의 물건도 없고 넓은 집에 살지 않고 좋은 차를 타지 않지 않는다. 현재 특별하게 갖고 싶은 물건도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집안을 둘러보면 빈 공간이 없다. 적지 않게 쌓여 있는 책들, 베란다를 가득 채운 살림살이, 주방에 그릇이 가득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버리지 못하고 서랍장에 넣어두는 옷도 많다. 왜 버리지 못하는가? 반대로 왜 버리고 비워야 하는가? 그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물건뿐이 아니다, 관계에 대해서도 그렇다.

 

 왜 단순하게 살아야 하는가? 그 이유는 매우 분명하다. 물질에 몸과 마음이 매이지 않아야만, 비로소 인생과 그 본질적 가치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24쪽)

 

 장석주는 단호하게 말한다. 단순한 삶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채우지 않고 비워둔 공간에서 생기를 찾고 빛나는 삶이다. 자신의 인생에 최선을 다해 집중하는 삶, 그것이야말로 삶을 사랑하는 삶이라고 말이다. 알려진 대로 그는 시골에 산다. 산책을 즐기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산다. 자연에 기대어 사는 그의 글에는 안온한 삶이 있다. 그의 삶이 정답은 아니지만 단순함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은 정갈하게 정돈된 삶이 주는 평화를 보여준다. 내 주변을 둘러본다. 내게 속한 것들, 그것이 진정 삶의 본질을 위한 것들인가.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빠르게 변화한다. 그 속도에 맞춰 살아야 할 의무가 없는데도 몸부림을 치며 쫓는다. 소읍에 살고 있는 나는 여전히 도시를 갈망한다. 그곳에서 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한 번씩 이곳과 다른 곳을 꿈꾸었다. ​부질없는 욕망을 손에 쥐고 있었던 것이다.

 

 장석주의 글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눈과 귀로 느끼는 일상의 기쁨을 다시 찾는다. 무엇을 소유하고 무엇이 되려는 게 아니라 나의 내면과 마주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한가롭게 걸어본 적이 있는가. 가만히 나무와 꽃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헤아릴 여유가 있었던가. 시골에 살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런 삶과 가깝게 살 수 있다. 그러나 욕심으로 마음을 채운 삶에는 여유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

 

 ‘걷기는 하늘과 태양과 바람을 가슴으로 품는 일이고, 빛으로 가득 찬 누리 속에서 자유와 고요함 속에서 몸을 끌고 나아가는 활동이다. 전진의 리듬에 존재를 내맡기는 이 무보상적 행위를 통해 얻는 것은 전적으로 무해한 기쁨이다. 날마다 하루의 일부를 쪼개 걷기에 나서는 것은 그것이 내면의 기쁨으로 채우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174쪽)

 

 어쩌면 장석주가 예찬하는 걷기는 여유가 들어갈 틈을 만들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산책하기 좋은 계절인 가을이라는 이유만으로 걷기의 이유는 충분하다. 오롯이 가을의 특권인 투명한 하늘과 더운 여름을 견디고 단단한 열매를 맺는 거룩한 자연의 일부와 만날 수 있는 건 기쁜 일이니까. 그런 여유가 쌓이고 쌓이면 자신만의 철학으로 자리할 것이다. 그러니 프레데리크 그로의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이 떠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산책과 리듬은 그 단어만으로도 경쾌한 멜로디가 되는 듯하다.

 

 ‘산책을 한다는 것이 갑작스럽고 단순한 휴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치 걸음을 멈추는 것만이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산책은 오히려 리듬이 달라지게 만든다. 즉, 억압받던 팔다리와 영혼의 능력을 해방시킨다. 산책을 한다는 것, 그것은 우선 억압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즉, 나는 나의 여정과 나의 리듬, 나의 표상을 선택할 수 있다.’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236쪽)

 

 이 산문집에는 단순한 삶에 대한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다. 좋아하는 꽃들이 피고 지는 것들 보고 집으로 날아드는 수많은 새들과 인사를 나누며 단출한 밥상의 맛을 아는 시골살이와 함께 시인으로 살아가는 삶, 자연을 통해 얻는 즐거움과 사유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정갈한 문장으로 쓰인 시인의 소박한 삶에는 충만이 넘친다. 작지만 작지 않은 삶, 단순함이 주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삶을 소망한다. 최소한의 것들로 살 수는 없지만 최대한을 욕심내지 않는다면 평온한 삶을 시작할 수 있다.

 

 ‘먹고 사는 것과 상관없더라도 가끔은 들길을 걷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자. 한밤중 곁에서 걷는 친구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밤하늘에 가득 뜬 별들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시집도 읽고, 음악회도 가고, 연극도 보며 살자. (204쪽)

 

 물질에 매몰되는 하루에서 벗어나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보고 높아지는 가을 하늘을 바라보는 삶은 결코 어렵지 않다. 타인의 삶과 비교하는 습관을 버리고 상념으로 채워진 마음을 조금만 비워도 충분히 단순해질 것이다. 단순한 것이 아름답고, 중요한 건 복잡하지 않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단순함으로 시작하는 경쾌하고 가벼운 삶이 가까이 있다. 말미를 주지 않고 떠나는 가을을 즐기는 일, 책과 함께하는 산책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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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7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07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 몸뚱이를 갖고 스스로 울기 시작하면서 나는 괴로워졌다. 내 손으로 밥을 집어먹고 내 입으로 말을 하게 되면서 나는 고통스러워졌다. 추운 걸 알게 되고 배고픈 걸 알게 되고 맞으면 아프다는 걸, 원망하고 미워하고 분노하는 걸 알게 되었다. 원망. 미움. 고통. 괴로움. 공포. 분노. 나는 그 글자의 의미를 다 안다. 아니까 기억한다. 그 느낌. 뽀족한 바늘로 내 몸에 하나하나 새겨 넣던 그 감정들.’ (206쪽)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슬픔을 지닌다. 존재에 대한 이유를 몰라서 슬프고 존재에 대한 확신을 얻지 못해 슬프다. 무엇이 나를 존재하게 만들었는지 누군가에게 따지고 묻고 싶을 뿐이다. 왜 태어나서 이런 세상에 살게 되었을까. 끊임없는 질문은 정체성을 찾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시작은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설사,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더라도. 모든 존재는 고귀하며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될 때 성장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영악하게 재빨리 그것을 알아차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길고 긴 성장통을 앓기도 한다. 자존감 회복을 위해 일생을 몸부림치기도 한다.

 

 ‘이년’, ‘저년’, ‘언나’, ‘간나’로 불리던 소녀는 알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가짜 아빠에게 맞고 집을 나가는 가짜 엄마가 아닌 진짜 엄마를 찾으면 알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아이가 집을 나갔다 돌아오지 않아도 찾지 않는 부모, 자신의 슬픔과 분노에 갇혀 아이를 볼 수 없던 부모가 아닌 다른 부모가 필요했다. 그런 상상으로 불안을 걷어가려 애쓰고 있었다. 당돌한 이 소녀는 자신이 만날 세상이 핑크빛이 아니라는 걸 예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의 구멍을 찢고 바깥으로 나왔던 그때 그 순간, 나는 이미 끝을 경험했는데.’(19쪽)

 

 소녀와의 동행이 길어질수록 나는 소녀가 끝이 아닌 시작과 만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하게 따뜻한 누군가와의 도움이 아니었고 행복도 아니었다. 세상이 행복한 곳이라고 나는 소녀에게 말해줄 수 없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어떻게 해야 자신을 지킬 수 있는지 알게 된 소녀는 더욱 당돌하고 사납고 거칠게 굴었다. 행복이라는 순간은 짧고 긴 불행이 찾아오는 걸 몸으로 익혔다. 그러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로 인해 살만한 곳이라고 말해주고 싶기는 했다. 그것은 황금다방의 장미 언니처럼 자신의 처지에서 시작된 연민이며 태백식당 할머니의 애틋한 사랑이었고 폐가에서 만난 남자의 침묵과 진짜 엄마를 찾아주겠다던 과격한 각설이패의 단순함과 자신을 동등하게 대하던 가출 소녀 유미와 나리의 시비 같은 것이었다. 소녀를 알아본 이들은 모두 소녀처럼 불행을 안고 살아간다. 정착할 곳이 없어 떠돌며 결핍으로 채워진 삶을 사는 외롭고 쓸쓸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소녀의 존재를 인식했기에 이름을 물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저마다 불리는 이름이 있으므로.

 

 세상의 모든 가짜를 불태워버리면 진짜로 가득한 세상이 될 거라고 믿었던 어린 소녀는 이제 없다. 가짜와 진짜를 구분해야 할 이유는 사라졌다. 어린아이에서 소녀로 엄마가 될 수 있는 몸으로 성장하는 동안 진짜 세상의 민낯을 보고 말았기 때문이다. 가면으로 가득한 잔혹한 세상의 단면을 말이다. 어떤 이유로 세상은 모두 가짜였고 어떤 이유로 세상은 모두 진짜였다.

 

 ‘거리를 떠돌며 내가 정했던 진짜엄마의 조건은 모두 껍데기고 포장이며 환상이고 거짓말이다. 나의 진짜엄마는 어떤 얼굴이라도 가질 수 있으며 그래서 결국, 어떤 얼굴이라도 상관없는 그런 사람이다. 맞는 대신 때리는 자이고 때리는 게 번거로우면 죽여 없앨 수도 있다. 그 모든 게 귀찮을 땐 외면한다. 상관없는 척한다. 그뿐이다. 오직 중요한 건 자신의 생존이다. 불행이나 행복 따위엔 관심도 없다. 이제야 알겠다. 그런 사람을 찾기는 너무 쉽고, 너무 쉽기 때문에 나는 여태 못 찾고 있었다. 너무 흔하니까, 어디에나 있으니까. 거울을 보면, 그 속에도 있다.’(274쪽)

 

 그런데 정말 소녀는 이름이 없었을까. 소녀가 진정으로 바랐던 이름은 기차 소리를 닮은 ‘드드덕’이었을까.  당찬 얼굴로 나를 쏫아볼 것만 같은 소녀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다. 너의 존재를 나는 알고 있다고. 너를 만나 반가웠고 나는 너를 기억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묻고 싶다. 존재하는 고통과 분노와 슬픔이 조금은 사라졌냐고. 아마도 소녀는 미친 소리라고 말하겠지. 그래도 한 번쯤 피식 웃어줄지 누가 알겠는가.

 

 김사과의 단편소설 『02』속 영이, 오정희의 장편소설 『새』속 우미를 떠올린다. 그러나 존재하지만 부재하는 소녀의 지독한 성장기라 할 수 있는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은 비단 한 소녀의 성장소설이 아닌 모두의 성장소설이다. 왜냐하면 소설 속 소녀를 보았지만 못 본 척했고 알지만 모른 척 지나쳤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관계가 없고 타인의 삶에 관여할 수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아니, 멈춤 없이 성장하는 소설이 맞겠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소녀와 소년을 만나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 스쳐가지 않게 먼저 인사를 건네도 눈을 마주할 소녀와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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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6-09-21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재에 대한 이유를 몰라서 슬프고 존재에 대한 확신을 얻지 못해 슬프다.
무엇이 나를 존재하게 만들었는지 누군가에게 따지고 묻고 싶을 뿐이다....
 

 

 새벽녘에 반가운 소리에 눈을 떴다. 비가 오고 있었다. 어젯밤부터 기다렸던 비다.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고 침대 구석에 내팽개졌던 이불을 끌어당겼다. 여름과의 온전한 이별이 남았지만 가을이 오는 것만 같았다. 말복도 지나고 처서도 지났으니 조금씩 생활이 달라진다. 아침에는 뜨거운 커피와 함께 부드러운 단호박을 먹었다. 선명한 단호박이 나를 보고 웃는 듯했다. 빗소리는 잦아들었다. 곧 비가 그칠 것이다. 길어진 가뭄의 갈증을 풀어줄 비를 또 기다리겠지.

 

 하나의 계절이 가고 하나의 계절이 오는 날들의 감정은 선명할 수가 없다. 계절의 변화는 어떤 시간을 소모했는지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에 떠난 큰언니의 추도예배를 드리며 나눈 대화가 그러했다. 큰언니의 냉장고 속 유통기간이 지난 양념을 정리하면서도 1년이라는 시간에 담긴 일상의 조각을 떠올렸다. 큰언니가 아꼈던 나무는 더위를 견디지 못했고 나는 그것들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가 야자수라 부르는 나무만 건재했다. 잘린 줄기에서 자란 잎이 너무 예뻤다. 다음에 만날 때는 또 얼마나 자라있을까. 고마운 나무였다. 청소를 하고 필요한 물건을 메모하고 우편물을 챙겨 돌아왔다. 큰언니의 집에 다녀오면 더욱 빈자리는 커진다. 

 

 냉장실에는 여름 과일인 복숭아가 사라지고 사과와 포도가 들어왔다. 순환하는 중이다. 책장도 순환한다. 알림 문자가 반가웠던 김혜진의 첫 단편집 『어비』와 백수린의 두 번째 단편집 『참담한 빛』,삶과 죽음을 말하는 두 권의 책『해피엔딩』『숨결이 바람 될 때』, 남겨진 여름을 위한 책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지난했던 여름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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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6-08-26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 아이스 라떼를 마시니 이제 따뜻한 커피를 마셔야겠구나, 했어요. 아웅, 가을결이 느껴지니 또 마음이 좀 그래요.

자목련 2016-08-29 10:41   좋아요 0 | URL
기척도 없이 가을이 다가오니 저도 마음이 살짝 이상해요. 가을이 온다는 건 겨울도 멀지 않았다는 일이니... 그래도 더위가 물러가니 한결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