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우울한 기색을 보였더니 신랑이 불안스레 쳐다본다. 아무래도 봄날의 여파가 심한 듯하다.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공수부대원들에게 쫓기며 곤봉에 머리를 다치기도 하고 대검에 찔리기도 하며 마구 짓밟히고 피를 흘리고 있다. 이제 겨우 3일치 정도의 분량을 읽고 있다. 공수부대원들에게 붙잡혀 옷이 벗겨지고 겨우 팬티 한장 걸치고 앞으로 뒤로 좌로 구르고 또 구른다. 심지어 여자들에게는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가슴을 대검으로 찌르고 도려내고 임산부의 배를 찢어 태아를 꺼내고 욕지거리에 손찌검에 별의별일이 다 일어나고 있는데 내가 어찌 침통하지 않았겠는가.
다시 이 책을 읽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뜬금없이 봄날이 읽고 싶어졌다. 나의 과거를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정말 뜬금없다. 나에게 광주는 너무도 머나먼 곳이고 한번도 간 적이 없는 곳이기에 나는 정말 뜬금없는 사람이다.
길거리에서 구호를 외치며 박수를 치고 노래를 부르던 우리 때와는 너무도 다른 처절한 아픔과 슬픔이 베어져 있는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뭐라 말 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또 책을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