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에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작년 12월 31일엔 우리 무얼했었지? 하는데 둘 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정말 아무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제 겨우 1년전 일인데도 가물거린다니, 참,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건지......

2013년을 어떻게 살았는지 정리를 해보려고 해도 매일 매일 기록해둔 것들도 없고,

아, 이렇게 사는 건 아닌데......하고 생각했다.

 

그래도 2013년을 반성하는 의미로 연말엔 책 한권을 열심히 읽었다.

예전에 알라디너로부터 받았던 책인데 받았던 당시에는 대충 넘겨보고 미루다가 이제야 읽게 되었다. 그게 12월 2일에 이사를 했고, 이사를 하면서 책이 너무 많다고 이삿짐 아저씨들로부터 싫은 소리를 좀 많이 들었다. 그래서 책은 대충 아무 곳이나 아무렇게나 꽂아놓고 가도 된다고 했고, 결국 이사를 하고 몇날며칠 걸려 책장을 정리했다. 힘은 들었지만 책을 정리하면서 아, 맞다 이 책, 하고 잊고 있던 책들을 발견하고 또 그게 즐거워서 책장에 정리하는 일을 힘든지 모르고 했다. 결국 정리를 다 마치고는 몸살 감기로 며칠 호되게 앓기도 했지만 말이다.

사실 우리집은 책쟁이들의 책에 비하면 얼마 없는 편이다. 요새는 보통 다른 집들도 책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우리집에 특별히 책이 많은 것은 아닌데도 이사하는 내내 듣는 지청구는 정말 짜증스러웠다.

한국의 책쟁이들에 소개된 사람들이 대부분 남성이라는 건 정말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여성은 자신만을 위한 책 수집에 모두를 쏟아붓기 힘든 탓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나 조차도 책 사는 일에 열심이었던 때가 언제였냐는 듯이 현재는 책을 덜 구매한다. 책을 사는 일은 경제적인 문제와 공간적인 문제가 함께이기 때문인 듯 하다. 얼마전까지만해도 아이들 책보다 내 책이 더 많았는데 이제는 아이들 책 놓을 공간이 없는 탓에 내 책은 어느 구석엔가 파묻혀 있기가 일쑤고, 결국엔 아이들 책이 내 책을 넘어선 듯하다. 혼자 살지 않는 이상 책에 대한 끝없는 욕구를 채울 수는 없다. 결국엔 도서관을 많이 이용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달랜다. 이사를 계획하면서 도서관과 가까운가에 대한 고려도 있었다. 도서관을 내 집처럼 드나들면 좋은데 역시 난 좀 게으른 편이라 집처럼 드나들진 못한다. 그래도 도서관을 자주 찾아가려고 노력중이다.

 

"여자는 결혼을 하면서 참으로 많은 준비를 한다고, 장롱도 사고, 냉장고도 사고, 세탁기도 사고, 식탁도 사고, 전자레인지 가스레인지도 새것으로 사고, 텔레비전도 사고, 비디오 오디오도 사고, 거실에 놓을 커다란 장식장도 사고, 침대도 큰 것으로 새로 사고...... 그런데 그렇게 많은 것을 새로 장만하면서 결혼하는데는 결혼하기 전에 쓰던 아주 귀한 물건 하나를 너무도 쉽게 잃어버리고 마는데 그게 바로 책상이거든. 처녀 때 쓰던 책상을 결혼하면서는 짐이 된다고, 놓을데가 없다고, 또 앞으로 쓸 일이 없다고 조카에게 주고 오거나 동생에게 주고 시집을 가는 거야. 전에 어떤 집에 갔는데 엄마가 학교 선생님인데도 그 집에 엄마 책상이 없더구나. 다른 물건들은 다 있는데 말이지. 아빠 눈엔 그게 참 이상하게 보였단다." (p96)

<아들과 함께 걷는 길>중에서 발췌해뒀던 부분이다.

여자는 정말 그렇다. 참으로 많은 준비를 하는데, 그게 혼자만 쓰려고 사는 건 아니다. 늘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들을 준비하느라 정작 자신의 것을 챙기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주변의 엄마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책상은 식탁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식탁, 밥을 차려 가족들을 키워내기도 하지만, 엄마에게 정리의 공간이기도 하고, 사색의 공간이고 책을 읽고 차를 마시는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된다.

그러고보니 이 책도 알라디너로부터 받은 책이다.

 

 

 

 

 

 

  "이런 책을 좋아하는 네가 나쁜 사람일 리 없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선물한다는 것은 나의 내밀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드러낸다는 뜻인 것 같다.(p.26)

 

  책장을 넘기다가 내가 그은 밑줄을 발견했을 때, 상대는 무슨 생각을 할까. 나와 같은 부분에 밑줄을 긋고 싶었을까, 혹은 대체 왜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는지 궁금해서 다시 한번 읽어보게 될까. 누구든 빌린 책에서 밑줄이 그어진 문장을 만난다면, 거기에 밑줄을 그은 사람과 그 감정에 대해 잠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잘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르니까.(p.30)

 

  책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느끼게 한다. 울게 하고 웃게 한다. 더 나은 삶과 더 나은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더 나은 환경과 더 나은 사회를 꿈꾸게 한다. 그러나 책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그다음, 그 모든 것들을 실천해서 한 걸음 내딛게 하는 건 책이 아니라 '책을 읽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p.40)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짝사랑을 시작할 때, 그 상대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p.44)

 

  상처받은 소년을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이끄는 것, 이것은 괜찮은 어른들이 해야 할 몫이다. 상처받은 소년을 괜찮은 어른이 되게 도와주는 사람, 그가 바로 괜찮은 어른인 것이다.(p.66)

알라딘에 적을 두고 살던 내게도 다락방님과의 추억은 있다.

다락방님 글을 읽으며 신선하고 매력적이다라고 생각하며 매일 기웃거렸었다. 그러다 한번은 다락방님 책장에 있던 다락방님이 읽으며 직접 밑줄을 그은 소설책 두권이 내게로 왔다.

그때, 책 방출하시며 친하지 않던 내게도 흔쾌히 책을 보내주셨고 난 그 두 소설을 열심히 읽었다. 다락방님의 밑줄과 메모를 보며 다락방님을 생각했었다. 그녀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하고 말이다.

알라딘에 소홀해졌지만 다락방님의 글이 책으로 묶여져 나온다는 소식을 접했고, 그걸 장바구니에 한참동안 담아 두었다. 그때가 이사를 준비할 무렵이라 이사하고나서 사야지했던 탓이다. 결국 이사하고나서도 주문은 뒤로 미루어졌고, 이제는 주문을 해야지하고 있던 연말, 알라디너께서 선물하고 싶다는 문자를 보내셨다. 한편으로 뻔뻔하게 그걸 감사히 또 받았다.

알라딘과 책읽기에 소홀했지만 늘 잊지 않고 챙겨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다.

한장 한장 다락방님과 소통한다는 생각으로 읽어내려간다. 내 마음에 와닿은 글귀들을 읽으며 맞아, 맞아, 그렇지, 그렇지, 하고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나마 이 사회를 좀 더 나은 사회로 꿈꾸고 실천하려는 괜찮은 어른들일 거라는 생각을 하며 올 2014년에는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책과 더 많이 친하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알라딘과도.

해가 바뀌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일이 좋다.

무슨 일이든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새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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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4-01-07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넘 멋진 페이퍼예요

꿈꾸는섬 2014-01-07 20:43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ㅎㅎ 새해에는 뭐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아요.^^
책도 열심히 읽고 알라딘마을에도 자주 들러서 기록도 남기고 해야겠어요.^^
동희랑 태은이랑 행복한 날들 보내시고 계시죠?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늘 빌어요.^^

순오기 2014-01-08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1년 전 일인데도 가물거리니....
잘 살기 위해 뭘 어떡해야 되는지... 생각하며 살아야겠어요.
요즘 읽고 있는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의 영향도 받아서...

꿈꾸는섬 2014-01-08 12:10   좋아요 0 | URL
<어떻게 살 것인가>, 리뷰를 기대해야겠어요.ㅎㅎ
1년전 일인데 기록물이 없으니 정말 아무 생각이 안나더라구요.ㅜ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끊임없이 해야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