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올 해는 바쁜척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바쁜 일도 없으면서 바쁜척하느라 책도 제대로 읽지 않고 시간만 흘러 어느새 8월말이다.
2월부터 읽기 시작했던 레미제라블을 이번달에야 마무리를 했다. 책을 잡으면 금새 읽게 될 것처럼 이번달까진 꼭 읽어야지 했는데 다짐처럼 책읽기는 수월하지 않았다. 이번달, 이번달 하던 것이 결국 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서로를 위하여 과감하게 생존하거라. 서로를 한껏 귀애하거라. 우리들이 너희들만큼 사랑하지 못하여 광증에 거꾸러지도록 만들어라. 서로를 우상 섬기듯 하여라. 이 지상에 있는 모든 환희의 가닥들을 너희들의 부리로 물어다가 너희들이 살 둥지를 틀어라. 정말이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젊을 때는 그것이 아름다운 기적이니라! 그것을 너희들이 처음으로 고안해내었다고는 생각하지 마라. 나 역시 꿈꾸고 몽상하고 한숨지었느니라. 나 역시 달빛 같은 영혼을 가졌었느니라. 사랑이란 나이 육천 살 된 아이이니라. 사랑은 길고 하얀 수염을 가질 권리를 가지고 있느니라. (......)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함으로써 곤경을 극복해 왔느니라. 그러한 방식으로, 그는 마귀가 자기에게 끼친 해악보다 더 많은 이로움을 자신에게 끼쳤느니라. 그러한 방식으로, 그는 마귀가 자기에게 끼친 해악보다 더 많은 이로움을 자신에게 끼쳤느니라. 그러한 교묘함은 이미 지상낙원 시절부터 발견되었느니라. 나의 벗들이여, 고안된 지는 오래되었으되, 그것이 여전히 새롭다. 그것을 한껏 이용하거라. (레미제라블 5, 빅또로 위고, 펭귄클레식, p.302)
사랑에 관한 글은 어디에서 만나든 좋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사랑없이는 살 수 없을테니까.
<7년의 밤>의 작가 정유정, 신간 소설 <28>이 출간 되었다는 소식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선뜻 책을 사지는 못했다. 여전히 우리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내 책을 사는 일보단 아이들 책을 사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몇달을 속끓이다가 결국엔 애들 책 주문하면서 <28>도 함께 주문했다. 책이 도착하던 날부터 꼬박 3일, 틈틈이 책읽기에 몰두했다. 역시 정유정 작가의 흡입력을 거부할 수 없다.
두권을 묶어서 세트로 구매할 수도 있게 되어 있다.
<28>의 Book Soundtrack Alum이 함께 있다.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으니 훨씬 드라마틱하다.
링고는 화해하고 싶었다. 가까이에서 스타의 눈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시간이 좀 흘렀으니 가능할지도 몰랐다. 그는 배를 깔고 엎드린 자세로 스타에게 기어갔다. 촉촉하게 젖기 시작한 그녀의 코에 코를 맞댔다. 입술을 핥고 귀를 비볐다. 스타는 으르렁대지 않았다. 얼굴을 돌리지도, 밀쳐내지도 않았다. 화해 요청을 못 이기는 척 받아들였다. 링고는 스타와 얼굴을 맞대고 엎드렸다. 시선이 마주치자 안도와 온기가 그를 감쌌다.(28, 정유정, 은행나무, p.244~245)
링고는 한 발짝 앞으로 다리를 내디뎠다. 머리로 철장을 들이받으며 분노를 드러내고 의사를 전달하려 애썼다. 제발 스타를 거기 놔두라고.
대장은 가방 옆에 몸을 낮추고 앉아 지퍼를 열었다. 잿빛 그림자 밑에 스타가 누워 있었다. 목에 흰 붕대를 감고, 머리와 몸을 옆으로 눕히고, 잠든 것처럼 편안하게. 불에 덴 것처럼 눈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꽉 막힌 목 밑에서 신음이 끓었다. 링고는 주둥이를 창살 사이로 내밀고 발톱으로 바닥을 긁으며 몸부림을 쳤다. 철장에서 나가고 싶었다. 스타 옆으로 가고 싶었다.
"링고 가만 있어."
대장은 가방을 철장 문 앞으로 끌고 왔다. 링고는 스타를 향해 몸을 돌려 앉았다. 철장 쇠살 틈으로 주둥이를 내밀고 스타의 냄새를 맡았다. 스타의 차가운 입술을 핥았다. 코를 맞댔다. 숨결이 느껴지지 않았다. 콧등은 말라 있었다. 그녀의 머리 위에는 잿빛 그림자가 내려앉아 있었다. 링고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익히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고개를 돌려 간절한 심정으로 대장을 올려다봤다.
스타를 산막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예전처럼, 쉼터에서 산막으로 스타를 데려왔던 첫 밤처럼, 상처를 핥고, 코를 맞대고, 몸을 붙인 채 잠들고 싶었다. 그러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p.304~305)
링고의 스타를 향한 절대적인 사랑에 눈물이 흘렀다. 가슴이 아팠다. 인간이 동물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자신의 부인이 개떼의 습격을 받아 죽었다는 사실은 안 기준으로서는 링고와 스타가 혹은 그 어느 개라도 죽여야만 했을 것이다. 젊고 예쁜 아내와 어린 딸이 개떼의 습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기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링고가 사람이었다고해도 무자비하게 도끼를 휘두를 수 있었을까?
화양에서 발생한 인수공통전염병에 대한 정부의 대책과 사람들의 대처에 대해 잔인하고,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을 본다. 도시에 살고 있는 개들을 모두 살처분하는 장면은 어찌나 잔혹한지, '살려주세요'하고 외치는 개들의 소리가 내게도 들려오는 듯 했다. 그래도 그 안에는 다른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수진, 기준, 유반장 등)의 모습이 있고, 동물의 마음을 헤아리는 기준이, 그리고 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 윤주가 있다.
"욕망이 없다면 잃어버릴 것도 없어. 잃을 게 없으면 두려움도 없고. 드림랜드에 있으면 그렇게 살 수 있을 줄 알았어. 잃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적어도 그때보다 무서운 일은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어. 그런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야."
재형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자신의 발부리를 내려다봤다.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어. 승아의 목소리가 들려서. 선생님 어디 있어요, 자꾸 물어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때 이후로 아무런 욕심도 부리지 않았는데, 꿈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왜 또 나 혼자 남았는지 어리둥절해서."
윤주는 계단을 올라갔다. 더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가서 알려주고 싶었다. 두 사람이 남았다고. 재형 앞에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그의 두 손을 잡아다 가슴에 댔다. 벌컥벌컥 뛰는 자신의 심장을 만질 수 있도고, 움찔하는 그의 손을 양손으로 덮고 가만히 눌렀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재형의 시선이 그녀의 눈을 더듬었다. 그녀는 속삭였다.
"나도 있어."(p.347)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손을 내미는 행위, 살아가는데 누군가 내 손을 잡고 함께 갈 수 있다는 일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함께 팔짱을 끼고 식장을 걸어나오던 그 어느 날처럼, 화려한 꽃가루도 폭죽도 박수를 쳐주는 사람도 없지만, 함께 살고 아이들을 낳고 서로가 나누며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생각한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다면 좋았을텐데, 끝내 소설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그것이 현실이라는 듯 말한다. 남겨진 사람들은 과거의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가슴에 담아두고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어떤 무게로 다가올지 알 수는 없다. 어쨌든 함께 살아가며 보듬어 줄 수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소설을 읽고 그 소설 속의 주인공들처럼 되지는 않을까?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가끔 이제는 내가 나이가 들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초콜릿을 달고 살던 시절이 있었던가 싶을만큼 이제는 단 것이 싫고, 불편한 것은 이제 피하고 싶어 한다. 소설은 소설이고, 영화는 영화다라고 생각하며 산다. 나는 이제 정말 나이가 들었구나.
얼마 전 아무 생각없이 남편과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보러 갔다가 인간이 지닌 폭력과 잔인함에 치를 떨었다.
살기 위해서 치뤄야할 어쩔 수 없는 규칙, 정말이지 너무 싫었다. 끔찍했다. 종렬로 늘어설 수 밖에 없는 기차, 마지막 화물칸에 살고자 올라탔던 가난한 사람들, 그들은 기차의 균형을 위해 존재하는 소모품처럼 취급되었다. 그들의 목숨을 이어오게 했던 단백질 블록의 진실, 기차안의 균형을 위해 반란마저도 조작되었다는 사실의 충격, 어느 한편 이것이 이 사회의, 이 세계의 규칙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가슴 아파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딜가나 가난할 수 밖에 없고, 늘 가진 사람들의 소모품처럼 가진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한동안 열심히 욕을 해댔다. 나쁜 것들이라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뿐인 것도 슬프다.
그래도 그 안에 분명 사랑은 있었다. 딸을 지키려던 아빠, 꼬리칸을 해방시키려고 했던 커티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며칠 전 갑자기 오전에 일이 취소되어 시간이 많은 남편과 영화 한편 봤다.
남편은 <투 마더스>를 보자고 하고 나는 <나우 유 씨 미>를 보자고 했다. 서로 영화 정보 확인해보고 결국 <나우 유 씨 미>를 봤다. 엄마의 친구를 사랑하는 아들들의 이야기가 불편하고 싫다. 아무리 아름다운 영상과 그들의 사랑이 매혹적이라고 해도, 이제는 불편한 것은 피하고 싶다는 게 내 생각이다. 유쾌하지 않은 영화는 이제 피하고 싶은 나이가 됐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 울적하긴 했다. 결혼전이었다면 봤을만한 영화였는데, 이제는 보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긴다.
<나우 유 씨 미>는 사람의 시선과 마음을 충분히 사로잡는 영화다.
마술이 가진 신기함, 반전에 반전을 더하는 그런 영화였다. 화려한 영상과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푹 빠졌다. 사실 가기 전에 남편은 조금 투덜댔다. 하지만 보고 난 후엔 재밌었다고.
어제 인터넷 뉴스에서 40대주부가 7살, 6살 아이들과 자살한 기사를 봤다.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우울증에 걸린 주부, 결국 아이들을 죽이고 자신도 죽었다. 산다는 것이 이처럼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에 한참 속상해했다. 형편은 어렵지만 삶을 즐기면서 살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는 나를 손가락질한다. 보고 싶은 영화, 읽고 싶은 책, 먹고 싶은 음식 다 누리고 산다고,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참고 산다고해서 내게 돌아오는 것은 무엇인가. 할 수 없다는 좌절, 슬픔, 속상함, 나는 왜 이러고 사는가 하는 우울함. 나는 그런 것들을 불러 들여서 살고 싶지 않다. 내가 즐거워야 아이들도 즐겁고, 그래야 남편도 행복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는 소비하는 시대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자꾸만 유혹한다. 사라고, 즐기라고, 그 모든 것을 마음대로 누릴 수는 없어도 내가 즐거워하는만큼, 내가 우울해하지 않을만큼의 소비는 필요하다고 본다.
살아야 한다는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누구든. 살아야 한다. 고통스럽게 비참하게가 아니라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서 누군가의 손을 잡고, 누군가의 손을 이끌어주면서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내 옆에는 항상 든든하게 지켜주는 남편과 의젓하게 자라는 아들과 조잘조잘 예쁘게 떠들어대는 딸이 있다. 그들의 삶도 즐거웠으면 좋겠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사랑으로 넘쳐났으면 좋겠다. 세상에 사랑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