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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ㅣ 창비아동문고 219
유은실 지음, 권사우 그림 / 창비 / 2005년 1월
평점 :
어린 시절 마루에 놓여 있던 커다란 책장엔 삼촌이 모으던 책들과 백과사전 전집, 동화 전집 그리고 위인 전집이 꽃혀 있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언니들 공부하는 어깨너머로 배운 한글은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주어서 정말 좋았었다. 늘 큰 집안 살림에 바쁜 엄마는 새벽부터 밤까지 늘 바빴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을 짓고 설거지, 많은 식구들 빨래(이때는 세탁기라는 게 없었다. 그나마 짤순이라는게 생겨서 참 신기해하던 때였다. 그러고도 몇년 뒤에 세탁기라는게 생겼는데 지금의 세탁기와는 정말 다르다.), 점심식사준비, 설거지, 청소, 저녁식사준비, 설거지, 정리, 정말 매일매일이 너무도 바쁘셨다. 단촐한 가정도 아니었고 대가족이 함께 사는 집의 살림을 엄마 혼자 하려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지금 생각하니 엄마의 인생이 너무도 고달프고 힘드셨을 것 같다. 그러다가 아빠가 실직을 하시고 엄마는 땔거리 먹을거리를 구하러 다른 집으로 일을 찾으러 나가시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큰언니가 엄마를 도와 살림을 많이 거들었다. 나는 막내라 늘 열외가 있었고, 그런 시간들에 나는 주로 책장에 있는 책들을 읽었다.
그때 그시절 책을 읽는 게 내게는 가장 큰 행복이고 위안이었다. 엄마가 사주신 동화전집은 지금처럼 다양한 색상의 예쁜 그림은 아니었고 까만 글씨에 흑백 그림이 간간이 들어가는 그런 동화책이었기에 더 많은 상상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사촌동생이 책을 읽을 시기가 되면서 작은엄마는 색색의 예쁜 그림 동화책을 많이 사주셨다. 물론 그 책들을 받는 사촌동생이 늘 부럽기도 했었다. 그 집에 가서 전래동화전집을 몇번씩 읽었는지 모른다. 또 엄마는 사준적이 없는 동화 퍼즐도 사촌동생보다는 내가 더 많이 가지고 놀았던 것 같다. 전집을 하나씩 꺼내 읽고 다 읽으면 다시 처음부터 동화책을 읽었었다. 위인전집도 마찬가지로 열심히 읽었더랬다.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의 비읍이처럼 저금통을 털어서 책을 살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면 나도 그렇게 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사실 서점이라는 곳이 있는 줄도 몰랐다. 엄마가 책을 사주신 건 방문판매하러 온 아줌마에게 할부로 구입했던 것이라서 그랬다. 그 당시에 서점에 가서 책을 사면 된다는 걸 알았다면 세배돈으로 받았던 돈을 들고 아마도 서점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때 내가 너무 어렸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은 씁쓸하다.
비읍이의 엄마는 <말괄량이 삐삐>를 영화로 보고 책은 읽지 않는다고 엄마가 린드그렌 선생님 책을 읽기를 비읍이는 바란다. 텔레비전 세대에 걸맞는 설정이 아니었나 싶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텔레비전을 더 많이 보는 게 사실이니까 말이다. 그래도 비읍이가 좋아하는 책을 싸게 사기 위해 헌책방을 다니고 그곳의 그러게 언니와 사귀면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나눌 수 있어서 정말 다행스러웠다.
우리 어릴때는 책도 참 귀했던 것 같고, 책에 대해 무지했던 부모님 덕에 늘 집에 있는 책을 읽거나 나중에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친구들에게 빌려 읽었었다. 그리고 중3때 담임선생님이 다니시던 교회의 도서실에서 책도 많이 빌려 읽었었다. 그런데 빌려 읽었던 책들은 내가 정말 읽었었나 싶을때가 있다. 그때는 참 책도 많이 읽었던 것 같은데 정작 내돈주고 사보지 않으니 내 책 같지가 않다.
헌책방이라는 곳도 스무살이 넘어서야 알았으니 이 책의 주인공 비읍이는 나보다 얼마나 많이 성숙한가. 지금와서 돌아보면 참 많이 모르고 살았던 것이 아쉽고 후회스럽다. 책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었던 것은 좋았지만, 비읍이처럼 적극적인 책 읽기는 안 되었던 것이니 말이다.
요새도 엄마는 나의 책 사모으기에 대해서 한 말씀 하신다. 저 책 다 뭐할거냐고, 아마도 어린시절 책에 대한 결핍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책을 사 모으며 살았을까? 우리 아이들이 나처럼 책에 대해서 만큼은 부족하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 책 사는 돈은 정말 아깝지가 않다.
요즘처럼 예쁜 그림에 좋은 내용을 담은 책들을 다양하게 접하며 살았다면 지금처럼 아이들 책을 읽으면서 행복해 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요새 아이들이 부럽고 또 부럽기만하다. 물질적으로 풍요한 시대에 살고 있으니 모든 걸 다 누리며 살고 있는 것도 부럽고 책 하나 하나 멋진 글들이 가득하니 부럽기만 하다. 벌써 한세기 전, 먼 나라에 살고 있는 린드그렌 선생님의 책을 이리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요즘 아이들이 마냥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