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랑 앨범 꺼내 보는 걸 좋아한다. 아이들 어릴때의 모습들도 새록새록하고 나와 남편의 지난 모습 보는 것도 즐겁다. 앨범을 들춰보며 남편이랑 아이들이 엄마 생머리가 더 예쁘다고 한다. 가끔 짜증나거나 할때 불필요하게 꾸불거리는 파마를 할때가 있었다. 한달도 못 넘기고 다시 머리 풀어서 주위에서 머리 스타일을 너무 자주 바꾼다며 한소리 듣기도 했었다. 근데 근 3개월은 파마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어찌나 안어울리고 불편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당장 미용실을 가지 않고 그냥저냥 살았었다.
결혼하고나서 생긴 습관은 1년 단기 적금을 드는 것, 금액은 십만원일때도 있고 이십만원일때도 있고 삼십만원일때도 있었는데 1년동안 기다리다가 찾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고 중간에 깨서 쓴 적이 더 많았던 듯 하다. 그래도 깨는 날 다시 적금에 가입하고 1년을 기다리며 살았었다.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으면 그 돈을 다시 정기예금으로 넣어 두고 일년을 기다리며 살기도 했는데 까마득히 잊고 있던 통장 하나가 있었던 듯, 문자로 만기가 되니 방문해달라고 연락이 왔었다.
금요일, 사촌동생을 보내고, 은행에 들려 만기된 통장을 내밀어 돈을 받아들었는데 4개월 뒤에 만기되는 적금을 두달치나 밀려 있어서 그 돈 덜어내고, 얼마전 아이들 돈 빌려 쓴게 있어서 그 돈을 채워넣어주었다. 그리고 남은 돈을 반으로 나누어 남편과 내가 각자 용돈으로 쓰자고 나누었다. 남편은 그날 친구들과 은사님을 만나러 갔고, 난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풀렀다. 다시 생머리를 하고나니 아직도 학생같다는데, 머리는 학생같지만 얼굴이 푸석푸석한게 영락없는 삼십대 중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들이 엄마 머리 예쁘게 하고 왔다고 꼭 끌어안고, 뽀뽀를 해주어서 기분이 정말 좋았다.
요즘은 <황홀한 글감옥>을 열심히 보고 있는 중이다. 40년 세월동안 대하소설 3편을 써내신 선생님의 끈기와 인내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은 늘 잠재되어 있었는데, 열심히 부지런히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지 않고 있는 나를 보면서 부끄러워하며 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힘이 되는 글이 있는 것은 나를 차곡차곡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라는 위안이 되는 것들인데, 그래도 너무 늦어버린 게 아닐까하는 불안감에 애도 타고 속도 상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자격지심일 것이다. 그래도 힘을 내어보려고 한다. 내 인생의 반도 아직 오지 않았다면 아직 시간은 많이 있을테니까 말이다. 자꾸만 남의 시간에 쫓겨 나의 시계도 빨리빨리 돌리려고 하지 말아야겠다. 내가 걸어온 시간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계와 같지 않았을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