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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우린 단지 걷고 있을 뿐이구나
헬기도 장갑차도 대공포도 하나 없이
세계 최강 미제국의 군대에 맞서
곤봉으로 맞을 길을 찾아, 경찰서로 끌려갈 일을 찾아
가다가다 보면 레바논으로 팔레스타인으로
이라크로 이어져 총 맞을 일을 찾아
우리는 다만 걷고 있을 뿐이구나
이름 없는 풀꽃 하나에 마음 쓸리며
철조망 넘나드는 나비들의 자유로운 유여을 부러워하며
철부지처럼 그냥 그렇게
역사의 뒤안 길을 걷고 있을 뿐이구나
하지만 아이야
그래도 쉬지 않고 걷고
또 걸어야 하는 길이 있단다
가다보면 벗이라곤 저 하늘에 별뿐이더라도
저 포탄도 전투기도 레이더도 끝내 따라오지 못할
역사의 먼 길이 있단다
엄마와 아빠는 그 길로 가고 싶은데
아이야, 조금만 더 우리를 기다려 주면 안되겠니
대치리 어느 폐가, 지킴이의 집에서
곤히 잠든 아이 머리맡에 앉아
가난한 상념에 젖곤 했다
황새울 가는 길 중 (112~1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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