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외딴방>을 읽었던 몇년전은 기억조차나질 않는다. 다만 신경숙이라는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던 작품이었고 작가의 진솔함이 좋았던걸로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그때의 기억 속에 아련하게 떠오르는 저릿저릿했던 그 무엇이 있었던 것도 기억한다. 

  며칠전부터 <외딴방>이 내 손에 들려 있었다. 읽으면서, 맞아. 그랬지. 한다. 

  가슴이 아렸다. 열여섯의 소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가슴이 쓰리고 아팠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을 것이기에, 그게 또다른 나의 모습일지도 모르기에. 하지만 나의 열여섯과 그녀의 열여섯이 온전히 똑같지 않은 건, 사실이고 부끄럽다. 

  내게도 남들에게 쉽게 얘기하지 않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런 것이 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게 1999년, 내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나를 늘 신기하게 생각해온 한 선배조차 '알 수 없는 놈'이라는 말로 일축해버렸다. 그들과의 대화속에 늘 끼지 못했던 건 그들의 학창시절 이야기. 물론 내게도 학창시절은 있었다. 어려운 가정환경속에 대학진학은 일찌감치 포기한 상태였다. 그래서 결정한게 상고를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상고에 진학해서 이런저런 자격증을 따면 취업이 잘 된다는 누군가의 얘기가 작용했을거다. 하지만 난 고등학교에서 늘 걷돌았다. 국영수는 잘해도 주산, 타자는 늘 서툴렀고, 틈틈이 짬나는대로 소설책에 빠져들었다. 그런 나를 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듯 생각한 단짝 친구는 고3 여름이 끝나가기전에 증권회사에 취업을 했었다. 나는 여기저기 면접은 보았지만 늘 떨어지고 졸업식이 끝날때가지 취업을 하지 못했었다. 그때의 그 부끄러움은 말로 할 수 없었다. 겨우겨우 일자리를 구해도 몇달을 견뎌내지 못하는 나는 직장생활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그 시절 친구들이며 함께 직장을 다녔던 누군가와 연락도 하지 않으며 지낸다. 나는 한번도 제대로된 나의 소개를 하지 않고 살아왔다. 

  별볼일없이 지내며 책을 파고 들던 나에게 <외딴방>은 글쓰기에 대한 꿈을 일깨워줬었다.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아닌 나였으므로 책 속의 모든 것들이 내게 하는 얘기라고 생각했을거다. 예술을 하는 사람은 나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다르게 태어난 사람일거라고 얘기하던 외사촌의 생각과 달리 나의 꿈을 쫓아가며 열심히 노력하면 나의 꿈이 이루어질거라고 얘기하는 작가의 얘기는 아직도 내게 남아 있었던 듯 나는 아직도 꿈을 꾼다. 아직까지 제대로 된 글을 써보지도 못한 내가. 

   
 

  내가 문학을 하려고 했던 건 문학이 뭔가를 변화시켜주리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어. 그냥 좋았어. 문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현실에선 불가능한 것, 금지된 것들을 꿈꿀 수가 있었지. 대체 그 꿈은 어디에서 흘러온 것일까. 나는 내가 사회의 일원이라고 생각해. 문학으로 인해 내가 꿈을 꿀 수 있다면 사회도 꿈을 꿀 수 있는 거 아니야? 

 
   

 

 

 

수도꼭지 하나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집에 세를 들어 살아가며 옆집의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밖을 나서던 사춘기 수줍은 소녀가 지금은 아이 둘을 낳은 엄마가 되었는데도 그 꿈은 아직 바뀌지 않고 있다. 언젠가 그녀가 말했던대로 나의 꿈을 이룰 날이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때도 그랬겠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아도 나에게도 문학이란 그런 것이었다. 꿈꿀 수 있는 것, 그냥 좋은 것.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9-07-30 0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7-30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고시절에 내 감성을 콕콕 찔러대던 신경숙의 감수성..

좀 더 나이들어선 그 감상이 싫어서 결별했습니다만..

꿈꾸는섬 2009-07-31 10:21   좋아요 0 | URL
신경숙 소설의 우울함이 싫다는 사람들 많이 봤어요. 그래도 전 여전히 좋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