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갑작스럽게 들어닥친 시부모님, 오후에 볼 일 보고 늦게나 오실거라던 남편의 말과는 달리 아침 일찍, 그러니까 그게 현준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준 그 시간에 오셨다. 가지고 올라갈 물건이 많으니 얼른 내려오라는 전화였는데, 난 요새 오른쪽 허리부터 다리까지 거의 마비에 가까운 고통을 느끼며 살고 있는차였다.
얼른 현준이 두고 집으로 왔더니 현관앞에 짐이 한보따리, 또 뭘 가져오셨을까? 솔직히 두렵기도 하다. 호박죽 한 솥단지(정말 큰 솥단지를 통째로 가져오셨다), 머위나물, 무말랭이무침, 상추 두봉지, 그리고 여벌옷보따리......
새벽한시에 일어나서 호박껍질을 벗겨 호박죽을 쑤어오셨다면 감동을 해야하는게 맞을텐데, 난 속으론 한숨이 나왔다. 도대체 이 많은 걸 누가 다 먹는다고......가져오신 성의를 봐서 우선 한그릇 떠서 맛있게 먹고, 현수도 한그릇 주고, 옆집 할머니 한그릇 가져다 드리고(호박죽 한그릇 가져갔는데 그 전날 뇌사상태에 빠지셨단다. 오늘은 보니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이 아무래도 상을 치르시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옆집 할머니도 좋은 세상에 가셔서 편안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경비아저씨 한그릇 떠서 가져다 드렸다(인심좋으신 경비아저씨, 고맙다고 아이들 과자 사주셨는데 그것도 베베, 그래도 현준이가 아토피가 있어서 아직 먹이지도 못했다. 마음만 받고 싶었는데 절대 돌려받지 않겠다는 아저씨의 의지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져왔다).
아버님이 오신 이유는 부동산의 근저당설정해지를 하시기 위해서 오셨단다. 부지런히 무언가 열심히 찾으셨는데 결국 원하는 서류는 찾지 못했다. 그러니까 근저당권설정계약서를 분실하신것이다. 시아버지는 평생을 운전을 하셨다. 버스운전부터 트럭운전까지, 그러니까 그게 1997년 현대자동차에서 덤프트럭을 9천2백만원에 구입하시면서 자동차와 부동산에 담보설정을 해두었다. 할부가 끝나고 근저당권설정을 해지해야하는데 시아버지는 자동차의 근저당만 해지하시고 부동산의 근저당은 생각도 안하고 사신 거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의 토지와 집을 인수했던 작은집에서 최근에 등기부등본을 떼어보고 근저당이 설정되어 있는걸 보시고 그걸 해결해달라고 하셨단다. 그래서 부랴부랴 올라오셔서 근저당권설정계약서를 찾았는데 그게 도통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현대자동차에(전에 차를 판매했던 영업사원에게) 연락을 했더니 등기부등본을 보내면 해지증서를 보내주겠다고 했단다. 그걸 가져가면 등기소에서 해지를 해준다고......
등기부등본은 인터넷으로 신청했고, 현대자동차에 팩스를 넣었다. 해지증서를 바로 발급해주어서 마음급한 시아버지는 퀵서비스로 등기소에서 바로 만나 해결을 하시려고 했다. 그런데 등기소 직원이 엄청 땍땍거렸단다. 근저당권설정계약서를 가져오던가 없으면 현대자동자 법인인감증명서, 사장 주민등록증 사본, 확인서면, 확인서면에 우무인......뭐 이런걸 하려면 법무사를 통해서 서류를 만들어와야한단다. 그래서 평소 알고 지내던 법무사 사무장님께 부탁드려 서류를 만들어 시아버지를 드렸고, 아침 일찍부터 법무사에 들러 현대자동차를 들렀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자동차 법인인감증명서와 해지증서에 찍인 직인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게다가 확인서면의 우무인도 가짜라는 것, 결국 해결을 하지 못한 것이다.
처음부터 현대자동차 지정 법무사를 통해서 해결해주었다면 쉽게 해결될 수 있었던 일을 나이많은 노인네를 이리저리 불러다니게 만들어놓고, 일도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것이다. 차를 팔때는 간이고 쓸개고 빼줄 것처럼 굴다가 막상 지나고나니 이렇게 일을 어렵게 만든다는 게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시아버지의 서류를 만들어주신 현대자동차 그분 참 뻔뻔하고 너무한다는게 노인네가 계약서를 분실한탓만한다. 계약서를 분실했다고해도 현대자동차에서는 분명히 채권자의 권리가 없으므로 근저당설정해지를 도와야하는게 아닌가말이다. 그때 그걸 가져가서 해결 못한 노인네 탓을 하는데 솔직히 젊은 나도 법이라면 늘 멀게 느껴지고 법이라면 참 어렵고 뭔 소린지 잘 이해가 안 갈때가 많다. 그런데 초등학교 겨우 나오신 예순다섯의 노인이 얼마나 명석하게 일을 처리하실 수 있겠는가 말이다. 똑똑한 자기들이 설정한 물건에 대해서 권리가 없으면 자기들이 말소해야할 것을 왜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가 말이다.
현대자동차에 참 유감이다. 기분이 나쁘다. 나이 많은 노인네가 결국 전화로 사정사정하면서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그쪽 법무사에서 해결 좀 해주시면 안되겠냐고 애걸복걸하시더라. 그런식으로 돈없고 못 배운 사람들 등쳐먹는 기분이 어떤지 참 궁금하다. 어제 오늘 이틀을 고생 고생하시다가 시골에서 키우는 개들 때문에 하루라도 더 지체하면 안된다고 내려가신 노인네를 생각하면 참 화도 나고, 안쓰럽기도 하고, 정말 속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