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나는 현준이의 상처가 깊지 않을까 너무 고민이 많았다. 현준이 선생님이 전화할 당시 난 현준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점심도 먹지 않은 아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밥을 먹였고, 그게 친구의 폭행때문이었다는 걸 밤에야 알게 되고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오늘 아침 통화하기 힘든 담임선생님께 어제 현준이의 상황을 메모로 남겼고, 아침에도 현준이가 유치원을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바람에 늦을 것 같다는 전화를 원장선생님께 어제 있었던 일과 함께 알렸다. 원장선생님은 오전에 선생님들께 구연동화로 현준이의 상황을 전달하겠다고 하셨고 현준이가 유치원에 되도록이면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셨고 내 생각도 그래서 안가도 된다고 말하면서도 은근히 가겠다는 말이 나오도록 유도를 했었다. 결국 친구들과 선생님이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말에 현준이가 즐겁게 유치원을 갔다. 그런데 유치원 현관 앞에서 그제 우리집에서 막무가내 행동을 보인 친구와 마주쳤고 다시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 상황을 그 친구가 모르게 알리고 다른 선생님이 나오셔서 도와주셨는데도 한번 떼를 부리기 시작한 아이는 걷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유치원에 맡겨 달라는 선생님에 대한 믿음으로 아이를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방과후 아이의 얼굴이 밝았다. 밝게 웃으며 나오는 아이를 보니까 내 마음도 덩달아 좋아져서 신발을 신기며 밥은 잘 먹었냐고 물었고, 배웅하시던 원장선생님 오늘 현준이가 너무 잘했고, 밥도 잘 먹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말을 믿고 현준이도 별말이 없어서 놀이터에서 잠시 놀고 현준이와 도서관을 다녀왔다. 도서관은 걸어서 15분정도 걸리는 곳인데 다녀오니 3시30분정도 되어 있었고 다음날 현준이 생일을 위해서 시부모님도 올라오셨는데 이번에도 먹거리를 잔뜩 싸오셔서 그것 먼저 정리해놓고 현준이 유치원 가방을 열었는데 도시락이 깨끗한 상태였다. 4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는데 점심도 먹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내가 이리저리 끌고 다닌 걸 생각하니 너무 화가 났다. 도대체 무슨 일을 이렇게 하는가. 어제 밥을 안 먹은 이유에 대해서 메모까지 남겼는데 오늘도 밥을 먹이지 않았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정말 화가 난건 현준이가 오늘도 밥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바로 알려주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당연히 잘 먹었을 거라고 생각했고 원장님도 그렇게 말을 했고 현준이도 별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화로 알려주지 못하면 아이들 원아수첩에 현준이가 밥을 먹지 않았다는 메모는 간단히 남겨둘만도 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정도 성의도 보이지 않는 교사를 내가 믿어야 하는 걸까? 당장 전화를 걸었고 선생님 너무 죄송하다고 말하지만 이미 예전에 깨진 신뢰감이 회복되지 않을 것 같다.
누구에게나 처음이라는 시절은 있다. 실수투성이일 수도 있었고, 잘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다. 내가 볼때 현준이 담임선생님은 이제 막 시작하는 선생님같았고 원장님께 넌지시 여쭤 보았다. 그제서야 선생님이 경험이 별로 없어서 실수했다며 죄송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정말이지 죄송하다는 말을 듣자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게 아니다. 현준이가 막무가내로 밥을 먹지 않겠다고 버텼을 수도 있다. 그걸 꼭 억지로 먹였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성의도 보이지 않았고, 그것에 대해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게 너무도 화가난다. 나는 당연히 믿고, 밥도 먹질 않은 아일 데리고 여기저기 볼일을 보러 다닌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라 먹은만큼 에너지도 넘치고 배가 불려야 기분도 좋고 그렇다. 그런데 한참 먹어야 할 아이를 이틀씩이나 점심을 먹이지 않았다니 정말 지금도 그 화가 가라앉지 않는다. 내가 낸 식대를 환불해줄 것도 아니면서 아이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선생님께 아이를 맡겨야하는게 옳은 일일까 싶다.
현준이 담임 선생님 한다는 말이 아이들이 하기 싫어하는 것 억지로 시키지 않는단다. 나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일정한 규칙과 약속이 있는 곳이고 우리는 그것이 싫든 좋든 지켜야 하는 거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현준이도 그것에 익숙했고 5일동안 유치원에서 바른 모습 보이다가 하루 이틀 친구들에게 상처를 받았지만 그걸 보듬어주어야 하는 선생님은 아이의 자율에 맡긴다니 나는 그 선생님의 자질이 사실 의심스럽다. 일정한 규칙과 약속을 지키게 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해나갈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 공간이 오히려 현준이에게 독이 되는 건 아닌지......
오늘 너무 피곤하고 몸도 아픈데 마음까지 아픈 날이 되었다. 잠을 자려고 해도 자꾸 현준이가 걱정되어 잠이 오질 않는다. 녀석은 태연하게 내일부터는 정말 유치원에 가지 않겠단다. 내가 볼때 현준이가 담임선생님께 밥을 먹지 않겠다고 선생님을 떠본거 같다. 선생님의 반응이 어떤지 살펴보고 싶었는가보다 그런데 선생님은 현준이에게 관심이 없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아이가 밥을 먹지 않으면 엄마는 속이 상해하고 조금이라도 더 한술이라도 더 떠넣어주려고 하는데 선생님에겐 그런 애정이 없다는 걸 눈치챈 것 같다.
남편은 우리가 너무 일찍 현준이를 보낸게 아닐까하며 유치원 교육비 환불해달라고 하란다. 그래도 이제 겨우 일주일정도 지났는데 좀 더 지켜보자 했더니 현준이가 상처를 받아도 그걸 꿋꿋하게 이겨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씩씩한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우리의 바람들만 얘기하다가 잠이 들었다.
아이가 크면 더 많은 것들로 고민하게 된다는 선배들의 충고가 이제서야 내게 와 닿는다.
현준아, 우리 세상에 나가서 상처가 났다고 주저앉지 말자.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게 되고 그 다음엔 상처가 나지 않게 조심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거든. 우리 함께 해보자. 무조건 피하지만 말자. 한번 해보고 안되면 다음에 또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해보자. 엄마도 네가 너무 많이 다치지 않게 옆에서 지켜봐줄게. 세상 밖으로 나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