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현준이는 또 밥을 먹기 싫다고 외면했다. 내가 너무 심하게 대했던가? 이제는 아예 거부를 하네. 사실 좀 겁이 났다. 남편이 나섰다. 아빠가 먹여줄게. 얼른 와. 한 입 가득 밥을 물었는데 나를 보더니 울상을 지으며 뱉어버렸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벌써 며칠째 밥을 안 먹겠다고 버티는데 진이 다 빠졌다.
어쨌든 오늘은 모임도 있는 날이고 밖에 나가면 괜찮아질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외출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이 허겁지겁 먹어댔다. 속 모르는 남들은 애가 밥 잘 먹어 좋겠어요. 한마디씩 던졌지만 내 속은 속이 아니었다. 이건 명백한 엄마에 대한 배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는 집에서 먹는 밥은 맛이 없다는 암묵적인 반항이었던 것이라고 깨달으니 정말 한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꿀떡꿀떡 밥을 먹는 걸 보니 한결 마음은 편안해졌다. 이렇게 잘 먹을 것을 왜 그렇게 고집을 피웠을까? 어쨌든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저녁밥, 이 녀석이 또 나를 애먹이는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그걸 눈치채게 할 순 없었고 짐짓 아무렇지 않게 집으로 돌아와 책을 읽고(나는 한 10분도 못 본 것 같다), 현수랑 현준이 책만 무려 1시간을 넘게 읽어 줬다. 책을 읽는동안 아들이 슬그머니 물었다. 엄마, 배가 고픈 것 같은데, 왜 밥 안줘? 이제 슬슬 밥을 준비할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천천히 밥을 준비하니 나를 채근하기 시작했었다. 엄마, 밥 얼른 줘. 드디어 밥과의 전쟁이 끝난 듯 싶다. 저녁에는 아무 투정없이 달걀국과 배추김치와 멸치볶음과 동치미와 김구운 것을 올려놓고 조촐하게 먹었다. 신랑이 술에 곯아 떨어져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기때문에 아이들만 먹이면 되었고 그래서 밥상이 조금은 초라했을지도 모르지만 녀석이 저녁밥도 잘 먹었다. 오늘 저녁은 정말 맛있는데 한 마디까지 하면서 하지만 내일 아침이면 또 어떻게 변하려는지 두고 볼 일이긴 하지만 이제는 한시름 놓았다.
이렇게 밥과의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가지고 내일부터는 다시 밥 잘 먹는 현준이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일......엄마의 마음은 늘 복잡하다. 단순명료하게 처리되면 얼마나 좋을까?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는데 배부른 투정을 부리는 현준이가 조금은 얄밉기도 하다. 그래도 아들이니 어쩌겠는가? 현준이와 나의 밥전쟁은 언제쯤 종결을 보려는지 걱정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