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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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삶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딸로서, 엄마로서, 지금 잘 하고 있는 건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이 책을 내려놓고도 오래 지속되었다.

삶에 정답은 없는데 옳고 그름을 따지기 시작하면 모든 게 다 엉퀴어 버리는 것 같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고 싶다. 

너무 먼 미래를 지금부터 책임지려고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젠을 통해 들여다 본 삶의 허무함에 지금부터 무기력해지고 싶지는 않다.

딸을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딸이라도 충분히 지지해주고 격려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수용해줄 수 있으나 비인간적인 처사는 눈감아주거나 침묵하지 말아야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더 생겨난 듯 하다.

종업원이 뜨거운 우동 두 그릇을 내온다. 수저통을 뒤져 숟가락과 젓가락을 꺼내는 딸애의 얼굴은 조금 지친 것 같기도, 마른 것 같기도, 늙어 버린 것 같기도 하다. - P7

이유 없이 몸이 아프면 무병이라고 하잖아요.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고 . 그걸 하지 않으려고 끝까지 버티면 자식에게 대물림될 거라고 말하잖아요. 도대체 누가 그런 걸 제 자식에게 대물림하고 싶겠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자기가 다 받기로 하는 거겠죠. - P17

제 부모를 요양원에 맡겨 두고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자식은 드물다. 그걸 알면서도 교수 부인은 그만두려 하지 않는다.
그래도 아예 없는 거랑은 틀리지. 정말 몇 년씩 저렇게 혼자 있는 걸 보면 참 딱해. 그러니까 지금 힘들어도 애들 잘 키워. 그게 재산이고 보험이야. - P19

청년들은 젠이 여기 없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하긴 어떤 의미에서 그들이 만나러 온 젠은 이곳에 없다. 그러면 여기 있는 젠은 젠이 아닌가? 이들은 젠에게 벌을 주러 온 것일까? 존경받아 마땅한 젊은 날에 비해 얼마나 초라하고 볼품없어졌는지, 지금 네 꼴이 어떤지 보라는 말을 에둘러 하고 있는 걸까? - P28

언젠가부터 나는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천천히 시간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뭐든 무리하게 바꾸려면 너무나 큰 수고로움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 걸 각오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거의 없다. 좋든 나쁘든. 모든 게 내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내가 선택했으므로 내것이 된 것들. 그것들이 지금의 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는다. 과거나 미래 같은 지금 있지도 않은 것들에 고개를 빼고 두리번거리는 동안 허비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들의 몫일지도 모른다. - P30

문득 삶이 예상보다 더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 딸애에게 양해를 구하고 싶다. - P33

딸애는 내 삶 속에서 생겨났다. 내 삶 속에서 태어나서 한동안은 조건 없는 호의와 보살핌 속에서 자라난 존재. 그러나 이제는 나와 아무 상관 없다는 듯 굴고 있다. 저 혼자 태어나서 저 스스로 자라고 어른이 된 것처럼 행동한다. 모든 걸 저 혼자 판단하고 결정하고 언젠가부터 내게는 통보만 한다. 심지어 통보하지 않는 것들도 많다. 딸애가 말하지 않지만 내가 아는 것들. 내가 모른 척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딸애와 나 사이로 고요히, 시퍼렇게 흐르는 것을 난 매일 본다. - P37

아니. 어쩌면 겁을 먹은 사람. 아무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 뛰어들려고 하지 않는 사람. 깊이 빠지려 하지 않는 사람. 나는 입은 옷을, 내 몸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사람. 나는 경계에 서 있는 사람. 듣기 좋은 말과 보기 좋은 표정을 하고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뒷걸음질 치는 사람. 여전히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은 걸까. 그러나 지금 딸애에게 어떤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 P69

엄마가 세상의 전부라고 알던 아이. 내 말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성장한 아이 아니다, 하면 아니라고 이해하고 옳다, 하면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던 아이. 잘못했따고 말하고 금세 내가 원하는 자리로 되돌아오던 아이. 이제 아이는 나를 앞지르고 저만큼 가 버렷따. 이제는 회초리를 들고 아무리 엄한 얼굴을 해 봐도 소용이 없다. 딸애의 세계는 나로부터 너무 멀다. 딸애는 다시는 내 품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 P97

왜 낲면이나 자식만 가족이 되는 건데? 엄마, 레인은 내 가족이야. 친구가 아니고, 지난 7년 동안 우리는 정말 가족처럼 지냈어. 가족이 뭔데? 힘이 되고 곁에 있고 그런 거 아냐? 왜 이건 가족이고 저건 가족이 아닌데? - P105

그냥 있는 그대로 그러려니 봐 주면 안 되는 거야? 내가 뭐 세세하게 다 이해를 해달라는 것도 아니잖아.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며?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며? 다른 게 나쁜 건 아니라며? 그거 다 엄마가 한 말 아냐? 그런 말이 왜 나한테는 항삳 예외인 건데! - P106

그럼에도 불구하고 했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나는 간신히 사민다. 내 잘못이 아니지. 너의 잘못이 아니지.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 그렇게 말한다면 세상의 수많은 피해자들은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사과를 받아야 할까. 이렇게 생각하는 나도 예외가 아니다. - P162

나는 내 딸이 이렇게 차별받는 게 속이 상해요. 공부도 많이 하고 아는 것도 많은 그 애가 일터에서 쫓겨나고 돈 앞에서 쩔쩔매다가 가난 속에 처박히고 늙어서까지 나처럼 이런 고된 육체노동 속에 내던져질까 봐 두려워요. 그건 내딸이 여자를 좋아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잖아요. 난 이 애들을 이해해 달라고 사정하는 게 아니에요. 다만 이 애들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고 그만한 대우를 해주는 것.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전부예요.

누군가를 보살피는 것의 수고로움. 내가 아닌 누군가를 돌보는 것의 지난함. 실은 나는 아름답고 고결해 보이는 이런 일의 끔직함과 가혹함을 딸애와 그 애에게 알려주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 애들이 다만 책에서 읽거나, 누군가에게 전해 듣는 게 아니라 직접 경험하게 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10년 뒤, 20년 뒤, 나를 이렇게 보살펴 달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난ㄴ 이 애들이 자신들의 노년을 젊은 날에는 어떻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그때를, 그렇지만 반드시 찾아고야 마는 그 순간을,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하게 하고 싶다. - P184

아직 철이 없어서 그렇죠, 나중엔 부모님 마음을 헤아리게 될 거에요. 교사로서 학부모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말. 나는 정말 그렇게 될 거라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순진하고 어리석었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아이는 점점 더 엇나가고 멀어질 거라고. 어떻게 해도 부모가 원하는 자리로 되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그럼에도 연전히 그 아이는 내 자식이고 나는 그애의 부모이고, 그 사릴만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말해줘야 했을까.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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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3-25 1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꿈섬님 오랜만에 리뷰 반가워요 ^^
늙어버린, 아직도 마음은 소녀같은 엄마의 맏딸로서 두 딸들의 엄마로서 인용문장에 공감되네요. 어찌 지내셨나요 와락~

2022-03-25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3-25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