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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 사이드의 남자 1 ㅣ 뫼비우스 서재
칼렙 카 지음, 이은정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익히 듣고 보고 접했던 2008년의 뉴욕은 세계의 중심 도시 중 한 곳이며, 금융, 패션이 첨단을 달리는 곳이다.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에게 뉴욕은 꿈의 도시이자 선망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만큼 뉴욕은 영화,매체를 통해 많이 알려져 있고 어쩌면 그래서 더 멀게 느껴지는 도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1896년의 뉴욕은 지금의 뉴욕과 천지 차이이다. 말똥은 길가에 굴러다니고 마차가 지금의 택시처럼 총알같이 달리던 시절이다. 19세기말 급속한 산업화 도시화로 당연히 지금보다는 더 극심한 빈부의 차이가 나는 곳이며 신흥부호로 등장한 철도, 석유, 철강업자들은 정치권과 결탁하여 정계를 쥐락펴락하는 위치까지 오르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성공 뒤에는 항상 빛과 어둠처럼 아무런 대우도 받지 못하고 노동력 착취현장에서 소리없이 죽어가야만 했던 수많은 이민자들과 그 후손들은 극 빈민층으로 전락해서 희망도 없고 어둠만이 가득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희망도 없고 경찰들도 믿을 수 없는 상황 속에 어린 소년들을 거리로 내몰게 되고 상류층의 비틀린 욕망을 해결해 주고자하는 암흑가의 갱들에게 힘없이 걸려들게 된다. 10대 초반의 어린 소년들은 여장 매춘부가 되어 술과 마약이 넘쳐나는 곳에서 결코 멈출 것 같지 않은 어른들의 추악한 욕망의 희생양이 되어 하루하루 시들어 가고 있다.
그러던 중 어린 소년 매춘부들의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서 뉴욕은 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 사건을 덮으려는 자들과 소년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고 범인을 잡고자하는 자들 간의 팽팽한 줄 달리기가 시작된다. 사회적 약자인 매춘 소년들의 사건은 소리 없이 은폐될 운명이었지만 범죄자의 심리를 연구하며 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과 목소리를 듣고자 했던 정신과 의사 크라이즐러 박사에 의해 사건은 표면 위에 떠오르게 된다. 크라이즐러 박사는 이 사건이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의 본성은 어디에서 기원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의문을 해결할 기회라는 사실을 깨닫고, 당시 사회개혁 운동을 펼치고 있던 뉴욕 경찰청장이던 친구 시어도어 루스벨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루스벨트의 지원으로 크라이즐러와 뉴욕 타임스 기자 존 무어, 과학 수사팀의 아이잭슨 형사 형제, 뉴욕 최초의 여경 새러 등으로 구성된 특별 수사팀이 결성된다.
마치 영화 '언터쳐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미국 금주 법 시대에 알카포네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해야만 했던 미연방경찰 FBI는 알 카포네를 잡기 위해 엘리엇 네스를 책임자로 임명하고 부패하지 않은 경찰들로 팀을 구성하여 갱들과의 전쟁에서 이겨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그들과 같은 활약을 펼칠 팀원들에게 애정이 갔다. 그들은 기존의 구태의연한 수사방법에서 한층 발전된 수사방법을 시도하게 되고 열린 사고로 인해 수사는 놀라운 진척을 보이게 된다. 아이잭슨 형사 형제는 막 도입되기 시작한 지문 감식법 같은 과학 수사 기법을 동원해 범인의 뒤를 추적하게 되고, 크라이즐러 박사의 지도로 지금의 수사방법인 프로 파일링을 토대로 유사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범인의 실체를 구체화시키게 된다. 지금은 경찰영화의 기본처럼 다루어지는 지문 감식법, 프로파일링이 거의 최초로 시도되고 팀원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범인의 윤곽을 만들어내는 장면에는 흥미가 더해진다. 그러나 사건은 파헤칠 수록 사건은 의문 속으로 빠져들게 되고 그 사건을 은폐시키고자 하는 자들의 방해가 계속되면서 범인의 과거의 현재를 이을 수 있는 실마리를 잡게 된다. 과연 무엇이 그를 범인으로 만들었고 끔찍한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의문과 그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두 권으로 나누어진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는 모처럼 처음과 끝이 명쾌하게 끝나는 소설이다. 1890년을 배경으로 빠르게 변해가는 뉴욕의 모습과 도시 빈민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이민자들의 힘겨운 삶과 그런 점을 노려 자신들의 비틀린 욕망을 채우려는 상류층들과 갱단의 모습에서 힘없이 나약한 모습으로 처참하게 죽어간 소년 매춘부들의 모습이 상상이 되어 세상에 지옥이 따로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은 소설 속 배경보다 100여년의 훨씬 지난 현재에도 무자비한 노동력 착취와 성적학대를 당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어린 소년, 소녀들이 많이 있다는 현실이 무섭다. 거리로 내몰린 어린 소년, 소녀들은 생계를 위해서 그들이 가진 기본적인 행위로 먹고 살 수밖에 없는 현실에 내몰리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문제가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러기에 소설 속 시어도어의 도움으로 크라이즐러 박사와 네 명의 팀원들의 보여주는 인간적인 모습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도전의식을 가지고 세상과 맞서는 그들의 활약이 가슴에 오래 남는다. 어디선가 그들과 같은 열정을 지닌 많은 사람들이 악에 맞서고 희생양일 수밖에 없는 약자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면 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소망을 품게 되는 소설이었다. 작가의 철저한 고증과 함께 시대말의 뉴욕의 거리를 달리는 마차와 함께 엿 볼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