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처럼 콩브레에서 내 잠자리의 비극과 무대 외에 다른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지도 오랜 어느 겨울 날, 집에 돌아온 내가 추워하는 걸 본 어머니께서는 평소 내 습관과는 달리 홍차를 마시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셨다.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왠지 마음이 바뀌었다. 어머니는 사람을 시켜 생자크라는 조가비 모양의, 가느다란 홈이 팬 틀에 넣어 만든 '프티트 마들렌이라는 짧고 통통한 과자를 사 오게 하셨다.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로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이 기쁨은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면서 삶의 변전에 무관심하게 만들었고, 삶의 재난을 무해한 것으로, 그 짧음을 착각으로 여기게 했다. 아니, 그 본질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초라하고 우연적이고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85~86쪽->
오래전부터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싶었었다. 그런데 너무나 방대한 분량과 프루스트 이전 소설들의 종착지이자, 프루스트 이후 소설들의 출발점이 될 만큼 문학사에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작품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때문에 망설이고 망설였었는데, 다행히 이번에 새롭게 출간된 책을 만나 도전해볼 수 있게 되었다. 이야기가 중심이 아닌 화자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형식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망설였던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책이 출간되자마자 구입해서 아직까지 87페이지를 읽는 중이지만 뭔가 모를 막연한 행복감과 평온함을 느끼며 최대한 천천히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조가비 모양의 마들렌 과자와 홍차를 마시면서 화자가 느꼈을 명백한 행복감과 현실감을 느껴보고 싶다는 욕망을 감출 수 없다. 전체 일곱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어떨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이제 겨우 1편 87페이지를 읽으면서...;;) 정말, 정말 오랜만에 느린 독서를 실천하면서 최대한 음미하며 읽고 싶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뿐만 아니라 나의 읽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