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의 초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양억관 옮김 / 이상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데이코는 26살이 되자, 결혼을 해야겠다고 느꼈고 그저 단란한 가정을 꿈꾸며 선을 보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자와 서둘러 결혼을 한다. 서로 열렬히 사랑을 해서 결혼을 한 것이 아니기에,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와도 남편 우하라 겐이치에 대해 여전히 낯설고 서먹하게 느껴진다. 더구나 신혼여행에서 보인 남편의 행동은 데이코에게 작은 불안감을 남긴다. 데이코는 왠지 모르게 남편이 다른 여자와 자신을 비교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고 남편이 여전히 타인처럼 느껴지고 결혼 생활에 대한 어두운 그림자를 갖게 된다. 남편은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곧바로 출장을 떠나게 되고 호쿠리쿠에서의 2년여 생활을 정리하고 본사로 돌아오기로 한다. 하지만 남편 우하라는 며칠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고 결국 실종 신고를 내고 회사 직원의 도움으로 데이코는 남편을 직접 찾아 나서게 되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들과 마주치게 된다.

 

1957년 일본 북서지방 호쿠리쿠 카나자와를 배경으로 매서운 추운 겨울과 사연 깊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잃어버리려고 혹은 찾으려고 떠나고 돌아오는 것만 같은 기차를 내세워 소설의 어두운 당혹감, 공포감을 스산하게 표현하고 있다. 결혼 전이나 후에나 여전히 낯설고 알지 못하는 남편 우하라를 찾아나서는 데이코의 심정처럼 막연하고 불안하고 적막하다. 남편의 과거 행적을 알게 될수록 점점 더 멀게만 느껴지고 모든 것이 희미하게 보이고 연이어 일어나는 살인사건 속에 드러나는 진실들은 깊은 슬픔이 배어 있고 고단했던 삶에 버림받은 여인들의 한숨소리처럼 먹먹하다. 제 2차 세계 대전 후, 미국 점령기 일본 사회의 혼란스럽고 막막했던 삶 속에서 지치지 않고 살고자 했던 여인들의 한과 전쟁이 끝난 후, 여전히 전쟁 전과 같은 관습과 인습을 그대로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들의 이야기에 무력함을 갖게 된다.

 

'제로의 초점'은 역사적, 사회적으로 자신의 삶에 주체가 되지 못했던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그저 혼기가 찼다는 이유만으로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서둘러 결혼한 데이코와 사회적 현상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휩쓸렸던 그녀들의 불행했던 삶을 데이코의 남편 우하라 겐이치의 실종과 살인사건과 연계시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는 점에서 사회현상을 오히려 더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인지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깊은 슬픔과 연민을 느낀다. 불행한 시대에 잘못된 선택을 했던 그들에게 무슨 말을 더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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