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몇 해 전만해도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해하기가 싫었다. 도대체 왜? 자신을 버린 부모를 찾아, 해마다 많은 입양아들이 찾아오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새로운 삶에 만족하며 살면 되지 않을까? 왜 굳이 찾아와서 자신들과 자신들을 버린 특히, 엄마를 찾아와 분란을 일으키는 것일까 하는 단순하고도 이해심 부족한 생각을 갖고 있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엄마의 모습에서 내 모습이 보이고, 내 모습에서 엄마의 모습과 행동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생각은 순식간에 바뀌기 시작했다. 이것은 혈연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만 그 순간 느끼기 시작한 것은 혈연 이상의 것이 서로에게 담겨 있는 것이구나 하는 당연하고도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된다. 특히, 엄마와 딸은....... 늘 함께하면서도 이런 깨달음이 놀랍게 느껴지고 가슴 뭉클하게 느껴지는데, 입양아들은 얼마나 자신의 뿌리가 궁금하고 애달펐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춘기를 겪은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고 자신 안에 깊이 담겨 있는 부모의 흔적을, 엄마의 흔적을 찾고자 하는 열망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비록 그 일로 인해, 또 다시 자신들이 상처를 받게 될지라도 끝까지 진실을 향해서 가야만 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그 길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테니까 말이다.

 

생후 6개월에 미국 중산층 백인 가정으로 입양되어 작가로 성장한 '카밀라 포트만'은 자신의 뿌리를 찾는 논픽션을 쓰기 위해서 한국 진남을 찾게 된다. 그가 가진 단서와 자료는 낡은 사진 속에 단발머리 소녀가 안고 있는 아기 사진과 편지 한 장 밖에 없었지만 그녀는 진남 현지의 관련 인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과거와 엄마의 과거를 동시에 찾게 된다. 카밀라는 엄마가 진남여고에 다니던 어린 미혼모였다는 단서를 들고 찾아다니기 시작하지만 엄마, 정지은과 관련된 사람들은 한결같이 사건을 덮으려고만 하고 진실을 말하기를 꺼려한다. 결국 그녀는 과거의 진실을 어느 정도 맞추어 가기 시작하는데.......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고 1부에 '카밀라'에서는 카밀라가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엄마를 찾아 나서 한국 진남으로 오게 되면서 겪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고 2부 '지은'에서는 24년 전 지은과 가족들이 겪은 불행한 사건과 지은의 모습을 그리고, 3부 '우리'에서는 지은의 과거와 맞물려 있던 관련 사람들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화자는 카밀라로 시작해서 24년 전의 일과 관련된 사람들의 시점을 통해, 당시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자신들이 기억하는 이야기와 기억하고 있지만 감추고 싶었던 이야기와 차마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까지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카밀라, 지은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말과 기억들이 더 촘촘히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최근에 읽은 작가의 에세이 이외에 소설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읽은 후에 정말 오래간만에 읽은 소설인데, 뭐랄까 조금 더 독자들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 선 것만 같은 작가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설레고 좋았다. 과거의 슬픈 잔혹사 같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슬픔과 눈물을 강요하지 않은 채, 담담하면서도 애처롭고 애달픈 마음을 스며들게 해서 더욱 더 마음이 눈물 한 방울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먹먹하고 카밀라와 정지은을 오래도록 생각하게 한다. 특히, 어린 미혼모였고 가장 이해받고 싶었던 친구들의 등 돌림을, 어른들의 이기적인 횡포에, 날개를 달아 준 그와 뱃속의 아이 카밀라에게, 가족들에게 차마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가슴에 담고, 또 담고 담았을 지은이를 오랫동안 생각한다. 더불어 작가가 전하고 싶었던 이 소설에서 쓰지 않은 이야기를 읽었을 수 있기를 바라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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