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가을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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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었던 점들이 무엇이 있었을까? 하고 생각을 더듬어 본다.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중세의 지독했던 봉건제, 잔혹한 마녀사냥, 종교의 이름으로 모든 삶을 통제했던 시대, 흑사병이 창궐해서 유럽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고갔던 시대, 바로 '암흑의 시대'로만 떠올랐고 가장 답답했던 시대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나마 낭만적으로 생각되었던 부분들은 기사들과 그 기사들이 보호했던 아름다운 여인들과의 연애사가 전부였다. 그러니까 '중세'에 대해서 그동안 얼마나 얇게, 편견을 갖고 생각해왔는지를 새삼 '중세의 가을'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작가 하위징아는 '중세의 가을'을 전성기가 지나 쇠락해가는 시대라는 의미와 앞으로 다가올 르네상스를 품고 있는 근대로 나아가는 시대라는 의미로 '가을'이라고 표현했다. 하위징아가 들려주는 '중세의 가을'의 시대적 배경은 14세기와 15세를 중심으로 지역은 프랑스와 부르고뉴, 잉글랜드, 독일, 이탈리아 등을 중심으로 한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중세를 알면 알수록 참으로 극단의 시대였음을 알게 된다. 강렬하다못해 장렬해 보이기까지하는 신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빈자와 부자, 귀족과 신흥 부르주아 간의 경제적 대립, 왕족의 권력다툼은 극렬한 대비를 보이며 전개된다. 이러한 모든 극적인 역사적 중세 이야기들을 하위징아는 조근조근 설명해준다. 자신의 중세의 대한 역사관과 그동안 잘못 알려진 중세에 대한 편견을 조목조목 나열하며 설명해준다. 읽다보며 하위징아의 깊은 중세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도대체 나는 중세를 왜 그리도 편견을 갖고 바라보았을까, 그 시대 역시 우리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현대보다 조금 더 극적인 상황에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았을텐데, 왜 무조건 비참하기만 한 생활을 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까, 왜 그들을 종교의 광적인 상태에서 잔혹함을 받아들이기만 한 사람들이라고 단순히 생각하는 우를 범했을까 싶다. 결국 난, 중세를 다룬 현대의 영화, 중세를 다룬 낭만적인 소설에서나 볼 수 있었던 기사들과 아름다운 공주들만을 생각했고 결코 보고 싶지 않았던 중세의 다른 면들은 또 다른 세계처럼 분리해서 생각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하위징아를 따라 중세의 읽다보면 그러한 편견들이 깨지기 시작한다.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중세 봉건주의에서 평민들과 신흥계급 부르주아, 왕족들은 중세의 빛과 그림자 속에서 두 극단을 오가며 삶을 이끌어왔던 것이다. 현실의 비참함을 귀족들의 화려한 생활모습에서, 신께 바치는 사랑으로 말이다.

 

하위징아는 말한다. 중세는 그 나름의 소박한 삶과 신께 바치는 열정과 왕권 다툼 속에서 앞으로 다가올 인본주의를 품고 있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르네상스와 근대의 시대를 만들수 있었다고 말이다. 또한 강조해서 전한다. 진정한 역사를 파악하려면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대립시키기만 해서는 안 되고 미학, 윤리, 심리, 종교, 학문, 예술, 사회 등을 다양하게 파악하고 중세 인들의 삶을 이해해야만 온전한 역사를 알 수 있다고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피상적인 면만 보게 되고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역사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계산적이고 냉철한 사람들이지만 그 속에서 소박한 삶을 이끌어가고 아름답지만 헛된 환상을 꿈꾸기도 하면서 꿈과 소망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면서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이다. 작가 요한 하위징아를 통해서 중세뿐만 아니라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편협했던 시각에서 좀 더 확장된 시각으로 중세를,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작은 '힘'이 생겼다고 믿고 있다. 결국 역사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세계이고 삶이니까 말이다. 아직은 엄청 부족한 지식으로 헤매고 있지만 꾸준히 공부를 한다면 건강한 역사관과 세계관을 지니게 되지 않을까하는 희망 찬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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