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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레오레 ㅣ 오늘의 일본문학 10
호시노 도모유키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나' 자신이 수없이 증식하는 상상만해도 소름이 돋는다고 하면 심한 과장일까? 그냥 '나' 한 명이니까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인격체가 전혀 다른 쌍생아 하고는 달리 무수한 '나'의 인격체를 가진 다양한 변종된 '나'가 주위에 득실거린다면 '나'와 '나'들은 어떤 반응을 하게 될까?
가전제품 매장에서 일하는 나, 히토시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맥도날드에서 혼자 점심을 먹고 있는 중이었는데, 옆자리 앉는 사람의 휴대폰이 내 쪽에 있었고 그것을 주인에게 알리지 않은채 들고 나오게 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무심코 들고 나온 휴대폰 벨은 계속해서 울리고 히토시는 장난삼아 전화를 받게 된다. 전화를 건 상대는 휴대폰 주인의 엄마였는데, 히토시는 아들인 척을 하게 되고 돈이 필요하다고 말하게 된다. 이에 휴대폰 주인의 엄마는 히토시가 아들 다이키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고 돈을 보내온다. 히토시는 그때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되고 원래대로 돌려놓으려 하지만 상황은 비현실적으로 돌아가게 된다. 다이키의 엄마는 '나'를 실제로 보고도 '다이키'라고 생각하며 대하게 되고 이에 불안감을 느낀 '나'는 진짜 엄마 집으로 찾아간다. 하지만 그곳에는 다른 남자가 '나'의 행세를 하고 진짜 엄마는 진짜 '나'를 알아보지 못하며 두려운 눈길로 쳐다보며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진짜 '나'는 당혹감과 황당함을 느끼며 나오게 되는데, '나'의 행세를 하는 가짜 '나'가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면서 또 다른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 것일까?
'오레오레'는 무수히 증식되는 또 다른 '나'가 나타나게 되면서 진짜 본연의 '나'라고 믿었던 '나'의 모습이 점차 희미해지고 왜곡된 기억만이 가득해지면서 도대체 진짜 '나'는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무섭고 두려워졌던 부분인데, '나'의 모습이 조금씩 '나'의 다른 모습으로 부각되거나 축소되어 또 다른 '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나'에게 숨겨져 있던 폭력성을 지닌 또 다른 '나'의 모습, 매사에 가볍게 생각하던 '나'의 모습 등등이 무수한 '나'의 모습으로 진짜라고 믿는 '나'를 온통 에워싸는 장면은 그 어느 공포 영화보다도 소름 돋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들은 생각을 공유하는 '나'이기 때문에 사태는 점점 더 파국으로 치닫게 되고 결코 희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상황까지 몰리게 되는 히토시의 모습은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인간이 기본적으로 지니게 되는 모든 상황을 비현실적이면서 현실감 백배로 표현한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나'의 존재감을 인식시키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들이 필요 없이 똑같은 '나'이기에 오히려 같이 있으면 편안함을 느끼며 '우정'을 쌓기도 했었고 서로를 완벽하게 알기 때문에 서로를 못 견디어 하는 부분들도 충분히 공감이 간다. 그러다 더욱 더 갈등은 고조되고 이젠 더 이상 진짜 '히토시'조차도 내가 진짜 '히토시'일까? 처음부터 '히토시'였을까? 하는 의심 속에 갈등하게 되고 감정의 고조는 극단을 달리게 된다. 그래서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을 것만 같은 상황까지 가게 되면서 비로소 히토시는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생각하게 되고 스스로의 자존감과 이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진정 찾고자 했고, 되고 싶었던 것을 찾게 되면서 '희망'에 또 다시 걸게 된다. 그러한 부분들이 섬세하고 자연스런 공감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은 작가의 역량이 크다는 점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도 무수한 '나'와 싸워야 했을 때도 '나'의 존재 가치를 깨달아 갈 때도, 마지막으로 희망의 손을 잡게 되었을 때도 충분한 공감으로 '나'를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직은 비록 존재가치를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급 좌절모드여도 조금은 희망적으로 생각해보련다. 그러다보면 지금 현재의 '나'의 모습에 스스로 지쳐가고 있더라도 곧 회복되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긍정적인 생각을 대량의 푸념과 함께 해본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