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가 슬플 수 있다면...

벽장 속의 치요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 박상희 그림 / 예담 / 2007년 8월

그림자가 슬픔을 지닐 수 있다면, 그래서 서서히 눈물이 스며 나오듯이 흐를 수 있다면 그 이야기는 바로 '벽장 속의 치요'의 이야기들이 아닐까 싶다. 아홉 편의 이야기는 제각기 모두 다 섬뜩한 느낌과 슬픔이 어우려져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벽장 속의 치요'의 가장 큰 특징은 잔혹한 공포가 난무하는 소설도 아니고 슬픔을 강요하는 내용도 아니면서도 묘하리만큼 잔상이 많이 남는 소설들로 구성되어 있어, 읽고나서 눈을 감으면 책의 내용들이 머릿속 영상으로 남아 읽은 내용을 반복하게 된다.

'벽장 속의 치요'는 사람들한테 너무나 큰 상처만 받다 죽은 소녀가 유령이 되어 백수 청년의 벽장 속에서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령인 치요는 먹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을 너무 쉽게 믿어, 오히려 사람이 유령을 보호해야 하는 기이한 일이 일어나게 한다. 벽장 속에서 꼬마 유령 치요가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call' 은 서술트릭이 매력있게 전개되었고 '어머니의 러시아 수프'는 아홉 편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깜짝 놀란 단편이었다. 세 사람의 대화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마지막 장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던 흥미 있는 이야기였다. 사실 그래서 더 이야기에 담겨진 슬픔이 더 크게 느껴졌지만 말이다.'예기치 못한 방문자'는 인간의 잔혹함, 어리석음을 동시에 보여주는 이야기이고 '살인 레시피'는 한 때 사랑했던 두 사람이, 이렇게 가장 잔혹하고, 서글프고, 우습게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랐던 이야기였다. 또한 '냉혹한 간병인'은 이 이야기가 잔혹하고 비정한 현실을 담고 있는 것만 몸서리 쳐졌던 이야기였다. 어쩌면 아홉 단편 중 가장 호러에 가까운 이야기일 것이다. '늙은 고양이'는 숙부가 돌아가시면서 그 집에 살게 된 조카 가족이, 숙부가 남긴 늙은 고양이와 의도하지 않았던 동거를 하게 되면서 가족들이 묘하게 변해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상한 냄새가 풀풀, 끈질기게 나는 것만 같은 이야기였다. '어두운 나무 그늘'은 15년 전 숨바꼭질을 하다가 사라진 여동생을, 15년 만에 다시 찾아 나선 언니의 이야기이고 '신이치의 자전거'는 가장 동화적인 색채를 보이는 단편이었다. 아홉 편 모두 블랙 유머, 미스터리, 호러, 로맨스, 동화적 요소를 두루두루 다루고 있어 읽는 동안 지루할 틈을 주지 않은 적당히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단편들이어서 좋았다. 내내 슬픈 그림자가 떠오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