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국
반도 마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사국'은 일본 네 개의 섬 중 가장 작으며 최남단에 위치한 시코쿠 섬이 소설의 배경이며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선을 허물려는 망자와 지키려는 산자의 이야기를 일본 토속적인 기담을 곁들여 풀어내고 있다. 시코쿠와 사국이 일본식으로 발음이 같음을 착안하여 시코쿠 섬이 원래 사국이었고 그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신의 골짜기를 주인공들의 고향 야쿠무라를 금기된 장소로 설정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금기시한 장소를 히나코, 사요리, 후미야는 어린 시절 셋이서 곧잘 술래놀이를 하면서 놀던 곳이었고 그곳은 후에 이들의 운명을 죽음과 삶으로 갈라놓게 되는 결정적인 장소가 되기도 한다.

도쿄에서 잘나가는 일러스트레이터인 주인공 묘진 히나코가 부모님대신 집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야쿠무라로 가면서 시작된다. 히나코는 야쿠무라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전반을 이끌었던 아름답지만 묘한 분위기를 지녔던 친구 사요리를 회상하면서 그녀가 얼마나 자신에게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는지 기억해내며 성장한 그녀를 상상하게 된다. 그러던 중 우연히 기차 안에서 만난 동창에게서 사요리가 십팔 년 전에 이미 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그 후부터 히나코는 기이한 기분에 휩싸이게 되지만 짝사랑했던 후미야가 이혼 후 낙향해 마을 사무소에 다닌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 곧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그때부터 히나코와 후미야에게는 커다란 장애물과 같은 죽은 사요리의 존재가 산자만큼이나 큰 영향을 끼치게 되고 둘의 관계는 불안함과 집요한 시선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게 된다.  

'사국'은 죽은 소녀가 등장하는 공포소설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은 소녀를 둘러싼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할 정도로 셋의 관계의 시작과 변화 종말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그들 셋의 관계는 어린시절에서부터 이미 예견된 관계였을지도 모른다. 선망하는 마음으로 사요리를 좋아하고 따랐던 히나코는 후미야를 좋아했지만 사요리도 좋아하고 있다는 어렴풋한 사실에 아무 말 못하고 움츠려 들었던 기억을 갖고 있다. 또한 사요리는 자신의 뜨거운 시선을 매번 느끼면서 모른 척 외면하고 있는 후미야를 향한 마음을 줄 곧 갖고 있었고 히나코에 대한 마음은 자신을 따라다니는 아이정도로만 생각해 왔었기에 후에 전보다 강해진 히나코에게 큰 반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 두 여자 사이에서 후미야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에게 차갑지만 뜨거운 시선을 줄곧 보내고 있는 사요리의 시선을 평생 느끼면서 살아왔고 그녀의 그런 시선에서 행복감을 맛보았던 남자였기에 산 자인 히나코와의 관계에서도 사요리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사요리와 죽은 자에게 결코 사랑하는 사람을 결코 빼앗길 수 없다는 결의를 보이는 히나코에게서 강한 집념을 느끼게 된다. 오히려 우유부단했던 후미야에게 슬쩍 실망감이 들었다.

'사국'은 단순히 공포소설로 보기에는 소제목에 담긴 의미와 기담과 같은 일본 토속적인 신앙과 결부하여 기이한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무언가 묵직함을 주는 내용과 인간의 삶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죽음의 나라 사국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공포감만으로는 말할 수 없는 많은 이야기와 느낌이 담겨 있다. 소설 속에서 사요리는 말한다. 죽은 자는 산자의 기억 속에서 살 수 없다고, 산 자가 기억해주고 그리워해주면 소생할 수 있다고. 그래서 소생한 죽은 자와 산자가 같이 살 수 있는 '사국'을 만들고 싶다고.......  

만약에 억울하게 혹은 안타깝게 죽은 가족이나 지인을 잃은 경험이 있다면 그녀, 사요리가 이루고 싶어하는 '사국'은 그리 공포만을 안겨주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단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면 죽은 그들은 영원히 산 자의 기억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사국'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알게 된다. 죽은 사요리를 되살리기 위해 도보로 시코쿠의 88개 사찰을 거꾸로 죽은 사람 나이만큼 돌면 그 사람이 살아 돌아온다는 믿음을 갖고 역행 순례를 하는 사요리의 엄마 데루코의 집념에서 이미 산자와 죽은 자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되는 순간 공포와 함께 깊게 밴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마지막 히나코가 느끼게 되는 시선 때문인지 자꾸 뒷목이 뜨끔뜨끔해진다. (영원한 사랑과 술래잡기 놀이가 이렇게 무섭게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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